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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 혼돈에서 제국을 세운 질서와 통치의 리더십 ㅣ 그레이트 하모니 1
에이드리언 골즈워디 지음, 박재영 옮김, 김덕수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다룬 책들은 (어린이 도서를 포함해) 우리나라에 상당히 소개되었다. 과업을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카이사르의 생애가 워낙 극적이라 역사가나 작가들을 매혹하는 탓일 게다. 나폴레옹도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를 숭배했으니.
반면, 카이사르로부터 시작된 내전을 종식하고 로마에 평화를 정착시킨 아우구스투스에 관한 책은 우리나라에서 찾기 힘들다. 양부와 다르게 수많은 사람들을 도륙내고 평생 가면을 쓰고 교활한 인간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서일까. 가장 유명한 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 팍스 로마나』일테고, 앤서니 애버렛의 저서 정도. 시오노는 매력적인 글쓰기를 하지만, 비전문가라는 한계가 있다. 애버렛의 책은 초반 몇 쪽을 읽었는데, 서술방식이 다분히 감상적이라서 아우구스투스의 참모습을 보여줄 있을지 의문이라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미국 역사가 배리 스트라우스는 『로마 황제 열전』(2021)에서는 단 몇 페이지로 요약했고, 『악티움 해전』(2023)은 특정 전투만 다룬 아쉬움이 있다.
그러던 중 반갑게도 고대 전쟁사 전문가인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아우구스투스 평전이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2026년 첫 구입 도서로 결정했다. 골즈워디의 역사서는 매우 희귀한 소재의(그러나 유라시아 역사에 흥미를 가진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로마와 페르시아』, 그리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이어 세 번째. 이 저자의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그랬을 수 있고 아닐수도 있다'라는 식의 서술이 적응이 안되었지만, 신빙성 있는 사료가 극히 적은 고대사의 특성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런 이상함은 신뢰로 변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생애를 네 시기로 구분한 이 책은, 특이하게도 구분방식이 그의 '이름'이다. 우리는 편의상 그의 이름을 '옥타비아누스'와 '아우구스투스' 두 개로 부르고 있지만,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은 정작 본인이 쓴 적이 없다는 점은 저자는 여러 책에서 강조해 왔다. 여기서는 아예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카이사르가 유언장을 통해 물려준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선대 카이사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또는 '독재관'으로 표기함으로써 혼돈을 피했다). 그 결과, 약관의 청년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라는 이름으로 율리우스 가문의 아욱토리타스 역시 계승함으로써 단숨에 몇백 배나 되는 무게감을 갖게 된다. 그 시대에 그가 모집한 로마군인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그가 카리스마를 얻어가는 과정과 반비례하여, 로마 공화정이 500년 세월 동안 이룩한 제도들이 무너져 간다. 마리우스와 술라 시대, 독재관 카이사르 시대를 거치면서 로마 최고 통치자인 '집정관' 직위의 무게감은 점점 떨어지는데, 마침내 아우구스투스에 이르러 바닥을 친다. 취임하고 단 하루만에 사퇴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거나, 열 몇번씩 해먹거나, 선거후보로 등록하지도 않았는데 유권자들이 그의 이름을 적어내는 등 500년 이어온 공화정의 핵심 제도가 유명무실해 지는 모습을 보며 씁쓸해진다. 뭘 자꾸 개혁 한답시고 기존의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로마의 폭력적인 선거가 (비폭력적이지만 폭력성을 띤) 강성지지층에 좌우되는 우리네 선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했든, 아우구스투스는 내전을 끝냈고 로마에는 평화가 도래했다. 강한 군 통솔권은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누구도 그에게 도전할 수 없다. 숱한 병치레를 했지만, 치료가 잘 되었는지 장수하면서 '뉴노멀'이 될 정치체제를 하나하나 이루어 간다. 그렇게 그가 만든 체제 때문에 우리는 흔히 그를 '초대 로마황제'라고 부르지만 정작 그는 그 호칭에 손사래를 친다. '독재관'도 피한다. 그저 그는 집정관을 여러 번 역임했지만 비공식적으로 무제한의 권력을 누리는 '프린켑스'이길 바랐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그의 시대의 정치체제를 '제정'이 아닌 '원수정'으로 칭하는 모양이다.
그가 수십년에 걸쳐 이룩한 것을 이제 누구에게 물려줄까 하는, 후계 문제가 생긴다. 그는 친아들을 갖지 못했으므로, 이중삼중으로 통혼하고 입양했다. 심지어 아그리파와 딸 율리아 사이의 두 자식을 입양하기도 했다(따라가기 헛갈린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두고 '아우구스투스는 혈연에 집착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기억한다. 골즈워디의 관점은 조금 다른데,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단 한명의 후계자가 아닌 후계자'군'을 만들어 이들이 공동통치하도록 하는 것이 아우구스투스의 의도라고 해석한다. 공화정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마음 속에 그 잔재가 남아있던 것일까.
출판사가 아우구스투스 '정전'이라고 광고했는데, 내용은 정전 치고는 약간 아쉬움이 있다. 740쪽 중 본문이 딱 600쪽에 불과한 게 그 이유. 총 1천 쪽에 본문이 800쪽은 되어야 한다는 게 벽돌 성애자인 내 지론.
책의 에필로그 제목이 인상적이다. 얼마 전 송도에 있는 '국립문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본 문구인데, 아우구스투스가 한 말이라고 수에토니우스가 기록했다. 이 말 두 마디에, 열혈청년이었으나 끝까지 살아남은 그의 인생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Festina Lente"(천천히 서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