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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페르시아 - 700년의 대결
에이드리언 골즈워디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5년 1월
평점 :
모르는 분야의 역사,
다른 렌즈로 조명한 역사서들은 언제나 반갑다.
지난해 윤성학의 '지리와 전쟁'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거의 20년쯤 전 '중앙아시아(또는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지정학적 명제가 기억났던 것인데, 그리고 그 주인공 중 하나가 페르시아 민족이다.
페르시아는 서양권에서 이란을 칭하는 표현이란다. 우리는 '페르시아 제국'하면 고대 그리스 군의 용맹에 무참히 발린 괴물 빌런이고, 이어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군주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제공한 패배자들로 기억한다. 그런데 '로마와 페르시아'라니?
즉, 그리스 세계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이 로마의 속주로 전락할 때, 페르시아는 (왕조는 바뀌었을지언정) 동방에서는 여전히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군주를 '왕중왕'으로 불렀다.
그 왕중왕이 서방의 황제와 전쟁도 하고 경쟁도 하면서 서로를 진화시켰다는 게 저자의 주장. 문제는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서는 거의 남은 것이 없어, 그동안 로마 쪽 기록들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에 그들을 다룬 책들은 숫자도 적을 뿐더러 대중적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이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중앙아시아에서 약간 변방(?)의 제국의 덜 알려진 700년 간의 이야기들을, 그것도 대제국 로마와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조명하고 있으니.
로마와 페르시아의 첫 조우인 술라의 동방 원정부터 시작해, 크라수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그리고 그 이후 서로 죽이고 죽은 황제들을 거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이어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멸망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파르티아는 크라수스가 원정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기억하고, 사산왕조도 지나가며 들었던 명칭이기 때문에 어디 변두리 왕조이겠거니 했으나, 그 시절 로마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한편으로, 로마사에 대한 우리의 통념들을 흔들어 놓는다. 위기의 로마 공화정에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셋이 부상한 것을 두고 삼두정치라는 '편리한' 명칭을 쓰고 있는데, 삼자 간 객관적인 계약은 카이사르가 딸을 폼페이우스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을 쓴 적이 없고, 그가 카이사르의 양자라는 것은 그의 주장일 뿐이다. 등등
게다가 이 책은 온갖 저자의 추측으로 가득하다. 어떤 사건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을 내놓지 않고, '그랬을 가능성'으로 채우고 있다. 당연하지, 남아 있는 사료가 절대 부족하니.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만한 분량을 뽑았다는 건, 비단 700년의 긴 세월을 다루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방대한 자료를 검토했으니 그런 추정을 할 수 있었을 것. 그렇기 때문에 더 신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