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평전 - 카리스마의 탄생 한국근현대학술총서 - 한국 근대 전환기 민족지도자 연구 1
이택선 지음 / 이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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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지금 40~50대에게 이승만에 대한 이미지를 만든 건 각급 국사교육, 대학의 선배들, 그리고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이 아닌가 한다. 끝없이 권력욕을 추구한 인간, 어느 조직에 가건 꼭대기에 앉아야 했기에 그 조직을 두쪽으로 만든 사람, 한반도 분단의 원흉, 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방송을 내보내고 혼자 내튄 국가 원수, 4.3항쟁, 거창 양민 학살사건, 조봉암 법살, 부산정치파동과 사사오입개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생각보다 그에 대한 텍스트를 읽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접한 게 박시백의 『35년』인데, 아시다시피 한겨레 출신의 진보성향이 강한 작가라, 이승만에 대한 묘사가 위에 나열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은 결론부터 말하면 '이승만에 대한 변론'의 성격이 다분하다. 이승만이 공격받는 부분에 대해 상당한 개인적, 역사적 맥락, 리더십 이론 등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책이 출간되고 월간조선에서 인터뷰를 했으니 공격받기 딱 좋을 터. 그래도 이 책이 괜찮다고 보는 건, 그를 '독부'로 칭하는 등 치우친 모습을 보이는 김삼웅의 저서도 상당히 인용했고, '구국의 영웅', '선지자' 같은 종교적 표현도 없다('외교의 신'으로 칭했는데, 그 맥락은 뒤에 설명한다). 마키아벨리스트이자 미국의 (후대에 미어샤이머가 제창한 이론인) '공격적 현실주의'를 몸소 여러 번 체험한 카리스마적 리더라는게 저자의 대체적인 평인 듯 싶다.


구체적으로 몇가지만 살펴보자. 이승만이 끝없는 권력욕을 보인 것은 사실인데, 그 배경에는 양녕대군의 십몇대손이라는 자부심, 맏이/독자(형은 어릴 적 사망했다)의 리더십 이론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명운-장인환 의거 당시 한인들이 변호를 부탁했으나 '개신교도로서 살인행위를 변호할 수 없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박시백은 딱 거기서까지만 소개하는 반면, 이 책은 당시 논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서, 미국인 살인사건이 터지자 모든 조선인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분위기 때문에 논문 심사를 거부당하고, 당시 아들도 사망했기 때문에 실의에 빠진 상태였다는 개인적 사정을 덧붙이고 있다.


전쟁 당시 거창 양민 학살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은 최악의 실책은 맞은데, 책임자 몇몇을 사형에 처했고(나중에 승진시킨 이도 있긴 하다), 부산정치파동과 사사오입개헌 등 무리수를 둔 것은 후계를 노리던 자유당 이범석, 이기붕 등이 알아서 긴 것이며, 막판에는 판단력이 거의 흐려진데다, 경무관 등 '인의 장벽'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점도 함께 감안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그의 업적인 토지개혁, 교육 정책 등은 까방권 인정. 그리고 전쟁 중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경제원조 등을 미국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장면에서는 '허'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전후 방미하여 행했던 의회연설은 그의 인생의 백미였다. 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그의 스승이었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그리고 해방 후 남한을 극동방위선에서 제외한 것은 미국의 실책이었다고 집요하게 지적한다. 개신교도이면서 미국 박사학위 1호였다면, 미국 앞에서 설설 길 법도 한데(역시 미국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했던 지금 대통령은 그렇게 한다), 엄청난 배짱을 부리면서도 필요한 것은 모두 취했다.


저자는 그의 몰락이 '카리스마적-변혁적 리더십'이 '거래적 리더십'으로 전환되면서부터라고 본다. 오랜기간, 어이에도 소속되지 않고 세력도 형성하지 않는 단독자를 고집하던 당시 그의 카리스마에는 누구도 저항할 수 없었고 자발적 존경심을 이끌어냈다. 그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 '자유당'을 창당하고, 이기붕 등 측근들의 충성심을 '인위적으로' 유도하게 되면서, 간신배가 날뛰게 되고 이것이 그를 역사의 죄인으로'만' 남게 한 것이다.


이승만의 실책들에 대해 살짝 옹호한 느낌은 들지만, 이렇게 모든 내용과 맥락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공론화하면서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매우 좋다. '이승만주의'가 '태극기'처럼 오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이승만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진보사관과 이승만주의가 극단에서 대립하는 등 '역사전쟁'이라고까지 하는 꼴불견, 해방전후사의 인식, 재인식, 재재인식, 재재재인식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는 이 시리즈가 계속 편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창호, 김구, 여운형, 조봉암 등도 다루었으면 한다. 저자는 『죽산 조봉암 평전』도 집필했던데 비매품이어서 구하기 어려운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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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삼국지 - 글로벌 반도체 산업 재편과 한국의 활로
권석준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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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의 지정학이자, 살아남기 위한 제언.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반도체의 역사의 재편 위주로 설명하고, 간간이 전문적인 설명이 들어가지만 건너 뛰어도 큰 문제는 없다. 꼭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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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술사 - 위대한 유토피아의 꿈
이진숙 지음 / 민음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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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선생은 언제나 옳다. 초기 저작인 이 책 역시 생소한 러시아 미술사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러시아는 언제나 유럽의 변방, 아류라는 편견이 있었으나, 이 책을 읽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음악과 문학을 생각해보자. 미술 역시 도스토옙스키, 차이콥스키 같은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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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유혹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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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이, 엘로이'

그러더니 고개를 숙여 기절한다. 눈을 떴더니, 그는 언제나 바라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자매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많은 자식을 낳는다. 그 모든 것이,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직면한 유혹이었다.


유다는, 그 많은 동료 중 가장 그가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어려운 임무를 그에게 부탁한다. 나를 배신하라. 내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3일만에 부활하기 위해서는 그대가 나를 배신해야 한다. 베지터가 초사이어인이 되기 위해 크리링에게 치명상을 입혀달라고 부탁한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주작을 한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마태오는, 눈에 보이는 것만 기록하는 그 습관대로 '유다의 배신'이라고 쓴다.


구원은 육체와 영혼이 투쟁하는 과정이다. '육체', '칼',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를 좇던 유다와 '영혼', '사랑', '인류'를 구원하려는 예수의 갈등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린다. 어릴적 친구였다가 창녀가 된 막달라 여인 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그와 결혼을 갈구하고, 이브의 뱀이 여자의 형상으로 그를 유혹한다. 마지막, 십자가에 매달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그 유혹에 굴복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은 그 투쟁에서 승리하고, 로마는 멸망의 길을 가게 되고, 인류는,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는다.


역시 카잔자키스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원전을 뛰어넘는 2차 창작물은 없다'는 내 오랜 신념을(이문열의 '초한지'는 지루하기만 했다), 날려버렸다. 한 작품을 연거푸 두 번 읽은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두번째 읽는 시간이 더 소중했다. 늙은 랍비 시므온의 소망처럼, 내가 이 작품에 바라는 마지막 한가지는, 헬라어 원전번역을 읽는 것인데, 과연 가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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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김헌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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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등 기존의 그리스 로마 책들은 이야기 중심이다 보니 권수는 많아도 내용을 다 담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에 반해,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580여 페이지에 지금까지 알려진 신화의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오비디우스는 물론, 플라톤, 3대 비극작가를 거쳐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으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다 읽고 나니 마치 천병희의 역서들을 갈무리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 7편 중 3편, 소포클레스 비극전집』 7편의 비극 중 6편,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9편 중 14편을 별도 꼭지로 다루거나 상세히 설명한 점은 기존의 책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 뿐 아니라, 황도 12궁을 비롯해 많은 별자리들의 유래들도 설명해 주는 것도 이 책만의 독특한 점이다. 여기에, 개별 사건들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전후 맥락의 흐름까지 짚어주고 있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아이 교육에 매우 유용할 것 같다.


저자가 각 이야기들에 대한 다양한 전승과 후대의 해석들을 소개하고, 그 현대적 의의를 서술한 것이 상당 분량을 차지함에도 다루지 않은 내용이 없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평생을 고전과 고전철학에 바친 저자의 내공이 돋보이는 부분이라 하겠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현대적 의의를 서술한 부분이 저자의 과도한 개입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도 처음에는 다소 거북했으니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작가의 엘리트주의적 국가관에 입각한 해석으로 채운 데 반해, 이 책의 저자는 신화를 읽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강조한다. 


단점은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엘리시온'을 다루면서도 그에 대한 상세한 서술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엘리시온으로 떠나 행복하게 살았다' 정도가 전부. 사료가 없어서일까? 둘째는 교열상태인데, 이는 저자보다는 편집자들의 문제로 돌리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은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뭔가를 하고 싶고, 누군가를 보고 싶을 때, 치열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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