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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여자
안트예 라비크 슈트루벨 지음, 이지윤 옮김 / PADO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푸른 여자』는 아픔을 겪은 한 체코 여성의 삶을 통해 개인의 트라우마와 동시대 유럽 사회의 아픔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현실 부분과 환상 부분이 나선형으로 교차하며, 폭력 이후의 생존과 말하기, 그리고 침묵을 추적한다.
아디나는 정치가인 요한 만프레드 벵엘에게 성폭력을 당하지만, 이를 고발해도 조직은 오히려 그녀를 감금한다. 결국 어디서도 도움을 얻지 못한 아디나는 그곳을 벗어나 핀란드로 가고, 그곳에서 레오니데스를 만나 또 다른 권력 관계와 마주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
인물들의 대화가 거의 토론 수준인데, 우리나라 운동권 세대, 일본의 전공투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 '내적 결집이 단단한 집단일수록 성폭력에 취약하다'는 우리네 일반적인 인식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내가 즐겨 읽는 영문학, 불문학, 노문학과 다른 지적 사조를 읽는 재미가 있는데, 곱씹을 만한 문장이나 대사가 상당히 많다. 몇 개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있는 곳에 한 번도 진정으로 있어 본 적이 없어요." 그가 말했다. "어디에 도착하기도 전에 떠나야 하거든요.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세계인이 아닐까요." 59쪽
"사람들은 흔히 증오나 질투 같은 악한 마음이 나쁜 시스템을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살인적인 시스템이 자라게끔 하는 밑거름은 현실과 타협하는 인간의 능력입니다. 특히 사람들은 두려운과 금세 타협하죠. 그리고 금세 그것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아요." 71쪽
"고통은 잊으려 하고요. 어둠 속으로 가라앉은 고통은 역사의 어두운 면이 됩니다." 107쪽
우리는 전체주의 체제의 생존자들에게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유럽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152쪽
다만, 독일 문학답게(?) 상당히 난해하고 접근하기 쉽지 않다. 유럽의 지명이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그 역사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소화가 가능하다. 역사와 지정학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나조차 체코의 역사에서 떠오르는 것은 아우스터리츠 전투 뿐이니(그나마 전장이 현대의 체코일 뿐이지 체코인의 전쟁도 아님). 반대로 말하면,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한다면 동유럽에서 독일을 지나 핀란드에 이르기까지, 현대 유럽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갖게 될 것이다.
"서평단에 선정되어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