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폴레옹 세계사 - 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지음, 최파일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알렉산더 미카베리즈의 『나폴레옹 세계사』는 나폴레옹 전쟁의 세계적 차원에서의 영향을 강조하는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기존의 나폴레옹 관련 저서들이 주로 유럽과 오스만제국, 이집트 등에 집중된 반면, 이 책은 나폴레옹 전쟁을 그야말로 '지구를 뒤집어 놓으신' 사건으로 해석한다. 스토리텔링을 특히 저자는 프랑스 혁명정신이 나폴레옹 전쟁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음을 입증하려 한다.
다른 정복자들의 생전 업적들과 비교해 보자. '헬레니즘'이라는 유산을 남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역은 그리스와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서쪽, 그리고 인도 북부까지였다. 카이사르는 이탈리아반도에서 갈리아였다. 샤를마뉴는 유럽을 벗어나지 못했다. 칭기즈칸이 전세계의 진정 주인이기는 했으나, 그에게도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는 미지의 세계였다. 자신의 행위나 성취들이 인류가 발을 내딛은 모든 땅에 영향을 미친 최초의 인물은 나폴레옹인 것이다.
이 책에서 나폴레옹은 단순한 주인공이 아닌, 세계적 격변 속 '주된 소재'에 불과하다. 오히려 책의 주요 흐름은 영국의 활동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오히려 영국의 활동들이 더 두드러진다. 나폴레옹이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영국과 오랜 기간 싸웠다. 다만 영국군과 직접 맞붙은 건 아크레와 워털루 전투 뿐이기 때문에, 기존 나폴레옹 관련 저서들에서 영국의 두드러진 역할들은 트라팔가 전투, 대불동맹국에 대한 보조금 지원, 이베리아 반도전쟁 정도일 것이다(적어도 내가 직전에 읽은 앤드루 로버츠의 평전은 그랬다).
그런데, 전투의 범위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와 아메리카 식민지로까지 확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어릴적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심취해 '오리엔트 컴플렉스'를 가진 그는 결코 인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트라팔가 해전을 통해 영국의 제해권이 확인되었음에도, 꾸준히 전함을 만들거나 네덜란드, 덴마크, 포르투갈 같은 해양강국의 배들을 탈취했다. 영국 군함들을 피해 대서양과 인도양의 영국의 상선들을 공격했다. 인도로 가는 육로를 확보하기 위해 혁명 전 '전통적인' 우방이던 오스만 제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했고, 이란의 카자르 왕조나 아프가니스탄과도 연결하려 했다.
유럽대륙을 제패하고, 경제적 수단으로 영국을 굴복시키려는 한 나폴레옹에 맞서, 영국은 세계 곳곳에서 나폴레옹을 제압하기 위해 갖을 노력을 기울인다. 인도에서, 북미대륙에서, 카리브해에서, 이란에서, 중동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모리셔스 섬에서,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에서, 아르헨티나에서. 심지어 나폴레옹이 해당 지역에 관심을 가졌을까봐 무리수를 두기도 하는데, 전통적인 동맹국인 포트투갈령 마카오를 점령하려 시도한 것이 그 예이다.
이런 경험 덕일까, 나폴레옹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라이프치히 전투와, 이어지는 빈 회의에서, 영국은 러시아의 동진을 경계하면서도, 유럽 균형론을 내세운 메테르니히의 주장과도 다르게 나폴레옹의 무조건 퇴위를 요구한다. 나폴레옹이라는 개인은 '러시아를 견제하는 강대국'의 역할에 스스로를 한정짓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큰 주제는 '나폴레옹에 맞서는 영국의 그레이트 워 게임'이라 하겠다. 실질적으로 '영국'이라는 나라가 주인공라는 것. 그래서, 이후 이어지는 러시아와 영국 간 90년에 걸친 첩보전인 '그레이트 게임'의 프리퀄로 읽히기도 한다. 러시아는 가장 참혹하고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나폴레옹 전쟁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이후 일관되게 파리 점령을 주장해 관철시킴에 따라 몸집이 커졌다. 유라시아의 나폴레옹 제국을 지향했던 것. 이에 영국이 지키려 한 기득권은 전선은 더이상 바다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 역사는 동유럽, 중앙아시아, 꿀단지 인도 등 곳곳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으로 역사는 이어진다.
한편으로 책의 제2주제는 식민지 제국들의 혁명(독립)전쟁이다. 프랑스 혁명정신이 전 세계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까지 뻗어나갔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본국이 약해진 틈을 타 식민지들이 독립운동을 해 이를 쟁취한 것이다. 다만, 독립은 아메리카 국가들에 한정되고, (이에 대한 보상인지) 아시아 국가들의 예속은 더욱 심화되었으니,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목이 '전쟁'이긴 했지만, 나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치열한 '외교전'이 더욱 흥미로웠다. 외교는 고차원방정식이라는 것,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고, 혈맹은 더더욱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고려시대 이전의 사료가 극히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유럽과 같은 다자 간 외교 경험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명청 교체기, 그리고 도쿠가와 바쿠후 시대에나 이슈가 조금 있었을까. 그런 배경에서 일제시대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것과 같았을 터. 우리 역사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재해석하고 교육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 석달 남았지만, 이 책이 내가 읽은 올해 책 중 최고일 듯하다. 압도적인 분량도 그렇고, 책의 목적처럼 세계관을 확대시켜준 점에서 그렇다. 덕분에 중앙아시아 분야 책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전쟁사와 역사적 배경을 다루면서도 저자의 서술 방식은 쉽게 따라갈 수 있을 만큼 흡입력이 있으며, 방대한 분량임에도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더불어 번역의 질이 좋았는데, 이것이 책의 가치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