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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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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서, 그의 지적 배경이 궁금해졌다. 여러 책을 읽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보르헤스의 작품들이었다고. 그는 보르헤스의 책들을 여기저기 갖다두고 읽었다고 한다. 특히, 「기억의 천재 푸네스」와 「비밀의 기적」은 그의 작품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매우 어려웠지만 진득하게 앉아 읽었다. 보통 '환상문학'이라고 칭하던데, 그런 수식어가 과연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우리의 인지능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기존의 통념들을 흔들어 놓는다는 것에 가깝다. 처음에는 테드 창의 SF 단편들을 읽는 느낌이었다. 


한가지 더, '픽션들'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하듯,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의 기록이나 말들을 대부분 1인칭(아마도 작가 자신의) 시점으로 검토한다. 어딘가 익숙한 설정이다. '당연히, 이것은 수기이다'라는 제사(題辭)에, 작가가 고서점들을 뒤적여 발견한 중세의 한 수도원에서 발생한 사건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작가의 서장, 사람들은 그것이 작가의 경험이라고 믿었으나, 사실은 허구이다. 보르헤스는 그렇게 움베르토 에코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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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할리스 대장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6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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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주의. 시대가 그런 인간상을 요구했을 수도. 다만, 이 정도 고집 세고 터프한 캐릭터는 메이지유신 전후의 일본사에서 여럿 찾을 수 있기에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엔딩은 『아이네이스』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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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유혹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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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이, 엘로이'

그러더니 고개를 숙여 기절한다. 눈을 떴더니, 그는 언제나 바라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자매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많은 자식을 낳는다. 그 모든 것이,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직면한 유혹이었다.


유다는, 그 많은 동료 중 가장 그가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어려운 임무를 그에게 부탁한다. 나를 배신하라. 내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3일만에 부활하기 위해서는 그대가 나를 배신해야 한다. 베지터가 초사이어인이 되기 위해 크리링에게 치명상을 입혀달라고 부탁한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주작을 한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마태오는, 눈에 보이는 것만 기록하는 그 습관대로 '유다의 배신'이라고 쓴다.


구원은 육체와 영혼이 투쟁하는 과정이다. '육체', '칼',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를 좇던 유다와 '영혼', '사랑', '인류'를 구원하려는 예수의 갈등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린다. 어릴적 친구였다가 창녀가 된 막달라 여인 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그와 결혼을 갈구하고, 이브의 뱀이 여자의 형상으로 그를 유혹한다. 마지막, 십자가에 매달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그 유혹에 굴복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은 그 투쟁에서 승리하고, 로마는 멸망의 길을 가게 되고, 인류는,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는다.


역시 카잔자키스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원전을 뛰어넘는 2차 창작물은 없다'는 내 오랜 신념을(이문열의 '초한지'는 지루하기만 했다), 날려버렸다. 한 작품을 연거푸 두 번 읽은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두번째 읽는 시간이 더 소중했다. 늙은 랍비 시므온의 소망처럼, 내가 이 작품에 바라는 마지막 한가지는, 헬라어 원전번역을 읽는 것인데, 과연 가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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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2 아이네이스 2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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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 읽는 이가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구성, 꼼꼼한 주석... 뭐 하나 뺄 것 없이 완벽하다. 천병희 번역을 읽을 후, 아이네이스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이 번역본도 꼭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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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지옥.연옥.천국 귀스타브 도레 삽화 수록본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귀스타브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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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곡』을 김운찬 번역본으로 처음 접했는데, 그때가 대략 영화 '인페르노'가 개봉했을 때였다. 정독을 한 것은 35세 정도로, 단테 시대에는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일 나이였다. 그리고 올해 출간된 이 김운찬의 개역판을 읽은 지금은 우리 시대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이 된 것 같다는 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그보다는 더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다른 번역본을 읽지 않고 막 출판된 이 개역판을 또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를 모두 수록했기 때문이다. 한길사의 책을 사고싶었으나 지나친 고가에 고민하던 차에,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였던 것. 더구나 한권에 텍스트와 삽화를 모두 담았다. '사람들은 화끈한 오브제의 겉모습에 의해 폭행을 당하는데, 그것은 내 지갑을 털어간다.'


그럼 어떤 점들이 바뀌었을까. 역자 개역판 서문에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문헌 전문가들이 검토에 참여해 몇몇 오류가 수정된 것 같다(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자연학』). 또, 기존의 일본식 역어들을 우리말로 풀어 표기한 것들도 눈에 띈다. '청신체'는 '달콤한 새로운 문체'로, '원동천'은 '최초 움직임의 하늘'로... 작은 것들이지만 이는 번역문학에 대한 나의 바람과 방향성이 같아 무척이나 반갑다. 제목도 역자의 생각대로 '거룩한 희극'으로 표기했더라면 경의를 표했겠지만, 아마도 상업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했을 것이다(나는 그보다 단테가 붙였다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를 더 선호하지만). 이하에는 역자가 못 다 이룬 꿈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작품명을『희극』이라고 표기한다.


번역과 관련하여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확인한 것은 몇 개 뿐이지만, 원문에 조금 더 가깝게, 어순까지 고려하여 번역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첫 문장을 보자.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으니 /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신번역)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구번역)


2행과 3행이 바뀌었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 ché la diritta via era smarrita.


이탈리아어는 모르지만, 단어들을 검색해보면 신번역이 원문에 좀 더 충실함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지옥 5곡에서 프란체스카와의 대화이다(121~123행).


그녀는 말했다. 「비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으니, / 그것은 당신의 스승도 잘 알지요. (신번역)


그러자 그녀는 「당신의 스승이 알듯이, / 비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는 법이지요. (구번역)

E quella a me: «Nessun maggior dolore / che ricordarsi del tempo felice / ne la miseria; e ciò sa ’l tuo dottore.


원문에 '당신의 스승이 안다'는 표현이 셋째 행에 있는데, 신번역이 좀 더 가깝다.


나는 이번에 개역판을 읽으면서, 원문에서 암시된 것들에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희극』은 그 이전까지 모든 지식들을 단 몇 줄로 압축한 복잡다단한 텍스트. 그가 인용한 원문들을 모두 읽으려면 '나의 남은 절반의 인생길'로도 부족할 것이다. 결국 역자가 주석에서 가장 많이 거론한 텍스트인 『성경』, 『아이네이스』, 『변신이야기』중 우선 성경에 집중했다. 갖고 있는 전자책 성경에 주석에서 소개한 문구들을 모두 표시해 두고 틈나는 대로 반복해 읽어서 그에 익숙해지려 했다(그런 의미에서 어릴 적부터 성경을 읽은 사람들이 부럽다). 


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단테의 지인들은 그냥 포기하자. 우리가 일연이나 허균이 아는 사람들까지 모두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희극』은 어려운 책이다. 매우 어려운 책이다. 서양 문화의 근간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콜라보가 최고조에 이른 작품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괴테가 '인간의 손으로 빚은 최고의 것'이라는 격찬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작품이기에, 읽고 나서의 성취감은 비할 데가 없을 것이다.


『희극』에서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행의 번역은 구판과 개역판이 같았다. 3개가 모두 '별stelle'로 끝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대목. 원문과 영역을 참고해서 우리말로 옮겨보았다.


l’amor che move il sole e l’altre stelle.

the Love that moves the sun and the other stars.

사랑으로 움직이는 태양과 다른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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