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블루레이] 헨델 : 리날도
헨델 (George Friderich Handel),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Orchestr / OPUS ARTE(오퍼스 아르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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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은 처음이고, 바로크 오페라로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에 이어 두번째.

 

바로크 오페라답게 단순허접한 스토리에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단순 무한반복으로 지루했을 이 작품을 살린 것은 100% 로버트 카슨의 연출이다. 십자군 전쟁을 영국 교복차림의 남학생들과 일본 교복차림의 여학생들의 싸움으로 치환해서, 전통 연출이었으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을 다음 장면들이 어떨지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곳곳에 관객을 빵 터뜨리게 하는 아이디어들은 보너스.

 

음악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바로크적 예쁜 선율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오타비오 단토네의 지휘와 챔발로(먖나?) 연주는 물론이거니와 소니아 프리나, 브렌다 레이의 테크닉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알미레나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그간  (파리넬리 버전 등) 내가 기존에 들었던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공연 안에서 처음 접하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영어자막이지만 (영국 공연이라 그런지) 읽기 쉽도록 번역되어 공연 감상에 지장이 없다.부클릿은 네 페이지에 달하는 제작노트를 읽을거리로 제공한다. 헨델이 영국에 왔을 당시(1710년 이후) 바로크 오페라는 자신의 이전 작품이나 심지어 남의 작품의 곡들을 재사용했다고 하는데, 그의 리날도의 경우, 전체 멜로디의 1/3 정도만 작품을 위해 새로 창작되었다는 것과, 후에 헨델이 개작하면서 그 이후에 작곡한 작품들의 줄리오 체사레 등의 곡들을 대거 끼워넣고 캐릭터들의 성부도 바꾸었다고 한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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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 300년, 몰락과 재기의 역사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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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교과서 상으로 영국과 미국의 정치체제를 배울 때, '대통령제는 미국에서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의원내각제는 영국 의회정치의 오랜 역사의 산물'이라고 배웠다. 이상한 말이다. 그럼 그 나라의 정치체제가 역사적 산물이지 뭐란 말인가? 우리나라의 공화국 체제야 식민지라는 단절기간을 거쳐 미국으로부터 유학한 이들이 권력욕을 위해 이식된 시스템이라고 치더라도, 독일이든, 프랑스든, 일본이든 자기 나라의 현실에 부합하는 정치체제를 도입한 것이 아닌가?  미국의 영향력 하에 놓인 우리는 4년마다 뉴스를 점령하는 복잡다단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 방송을 보면서 대통령제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영국은 총리가 COVID-19에 감염되고 나서야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이 적어서 '의원내각제가 영국 의회정치의 오랜 역사의 산물'이라는 명제는 최근까지도 나에게 수수께끼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시민혁명(청교도혁명) 부터 2019년 보리스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준비까지, 역대 보수당의 당수와 총리의 역사를 차근차근 서술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면서도 변하지 않은 듯한 영국 정치제도의 변천사를 읽을 수 있다. '변화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듯한'이라는 말은 영국 왕실의 권위, 귀족들로 이루어진 상원, 유럽통합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영국'이라는 국가적 정체성 등이 도도히 유지되고 있다는 데 대한 경이로움이다. 나아가 전후 '자유당'이 몰락하고 '노동당'으로 대체된 것에 비해 '보수'라는 아이덴티티 뿐 아니라 '보수당'이라는 명칭이 300년, 적어도 200년 이상 존속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다. 영국 의회정치의 역사, 의원내각제의 역사는 곧 보수당의 역사인 것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영국역사에서 자유당이나 노동당이 집권한 시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다. 20세기 노동당이 안정적으로 통치하던 시기는 토니 블레어의 10년 뿐이었다. 그 이전에는 글래드스턴 정도가 족적을 남긴 자유당 수상으로 기억된다. 보수당은 거의 모든 시기에 집권하거나 연립내각의 구성원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이 긴 영국역사를 읽는 동안 보수당이 '궤멸' 수준에 이른 건 대처와 메이저 총리 직후, 10몇년에 걸친 장기집권과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추진에 시민들이 피로감을 느꼈을 때였던 것이다.

 

이러한 보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다. 시대에 걸맞는 유연성. 영국의 보수은 절대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과거에 토리당이 성립했을 당시의 보수는 전통 지주계층이었다. 이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그들은 상공인으로, 자본가로 변신해왔다. 혁명을 통해 귀족이 부르주아로 대체된 이웃 프랑스와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영국의 보수/기득권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시민계급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모색했다. 복지제도 주창을 노동자 계급이 먼저 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기꺼이 수용한 것은 보수당이었다. 반동 정치도 없었다. 앞선 정부의 조치를 뒤집는다거 하지는 않았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보완해 나갔을 따름이다.

 

한편으로, 의회정치의 역사에서 그들의 성숙한 정치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일단, 특정 정책에 자신의 신임을 결부시키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그러하다. 여야를 불문하고 내로남불이 난무하는 우리정치를 보면 저 평범한 원칙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대처는 지지율 폭락이 아닌 변화를 원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스스로 물러났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하고 온갖 말도 안되는 선동, 억지 폭로, 불법적은 방법을 서슴지 않고 선거를 이기고 집권을 늘리려는 자들을 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매우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책에는 아쉬움도 있다. 분명 대중을 위한 서적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영국의 정치제도를 알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일례로 무슨 선거가 그리 많은지. 총리의 신임을 묻는 등의 사유로 선거가 셀 수도 없이 치러지는데, 심지어 총선을 13개만에 치른다거나, 1918년부터 1922년까지 5년 내 보궐선거만 14회나 치르기도 하는데, 그걸 보면 영국은 선거공화국이고 갑작스레 치러지는 선거예산은 또 어디서 얼마나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반대로 전시기간에는 10년 동안 선거를 아예 안치르기도 했는데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불문법 국가라더니 그런게 선거법에 정해져 있지도 않은 건가? (책에 따르면 선거 주기가 5년으로 못박힌 건 2011년 관련법이 통과되면서라고 한다). 국왕의 역할도 아리송한데, 수상을 국왕이 임명하는건지, 수상이 사임을 결정했을 때 국왕이 다수당에 내각 구성을 요구할 수 있는지 등등 우리네 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제도를 읽는 이들의 과제로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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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운동권 출신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서 보수를 다시 생각하고 있고, 그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안하는 책들을 찾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선택했다. 촛불혁명으로 한국의 보수(라고 쓰고 수구라고 읽는다)는 사망선고를 받았고, 2020년 4월 총선을 통해 압살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 영국의 자유당처럼 되지는 않았기에 기회는 있다. 유연하라. 시대의 목소리를 들어라. 경직된 대북관과 교조주의적 친기업정책, 철지난 시장만능주의에서 탈피하라. 조금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반동세력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한 이는 보수당게는 거의 불가능한 주문이다. 그렇기에 이해찬이 말한 '20년 수권정당'이 꿈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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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 : 진주 조개잡이 [한글 자막] - 박종호와 함께하는 유럽 오페라하우스 명연시리즈 박종호와 함께하는 유럽오페라하우스 명연시리즈 21
비제 (Georges Bizet), 비오티 (Marcello Viotti) 외 / Dynamic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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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조개잡이는 처음.

 

비제는 '카르멘' 하나로 프랑스의 다른 오페라를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대신 다른 작품들은 아무도 연주하지 않고 있고, 그나마 스탠더드 목록에 오른게 '진주 조개잡이'.

 

내용만 보면 '카르멘'을 제외한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묻힐 뻔할 정도로 단순하다. 여사제가 있고, 마을의 지도자가 그를 사랑하고, 그 지도자의 친구가 여행에서 돌아와 여사제와 사랑에 빠지고, 그들을 벌을 받게 되는데...

 

대신 음악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 작품이 그나마 극장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비제의 힘. 아리아들이 애절하고, 오케스트라도 비극적인 영화나 드라마 OST 같은게 내용 없는 대본을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공연으로 보자면, 완만한 U자 형의 무대 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도록 디자인 된 게 특이하다. 브라만교 신상들이나 남아시아 계통의 복장들을 보면 지휘도 반드시 주빈 메타가 해야만 할 것 같다. 인도풍 춤인지, 프랑스풍 발레인지 알쏭달쏭한 춤들을 보고 있자면 다소 지루한 건 사실이다. 아니크 마시스를 비롯한 가수들의 지명도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끝까지 보게 해주는 건 비제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그 지명도 높지 않은 마시스와 나카지마의 열창이다.

 

박종호의 '불멸의 오페라'에는 추천영상물이 이것 하나다. 2010년대부터 담라우 등 유명가수들이 출연한 다른 공연들 있어, 몇 개는 더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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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보엠
앙리 뮈르제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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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어려웠던 때가 다들 있다. 20대부터 승승장구하던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어려움을 뚫고 부와 명성을 거머쥔 이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이야기이다.

 

이 책 '보헤미안의 생활정경', 일명 '라 보엠'은 자유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유라는 건 각 분야 네 예술가(보헤미안)의 삶이 돈에 얽매이지 않고 지극히 자유분방하다는 것이고, 사랑이라는 건 각자의 연인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게, 배경이 19세기 중반의 파리였음에도 그 사랑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연인이 만나고 함께 살고, 그러다 싸우거나 구속됨에 지쳐 헤어져 다른 연인을 만나지만 서로를 잊지 못해 돌아오곤 한다. 동시대인 프랑스 제2제정 시기를 다룬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이 여자가 전남편과 현남편 둘과의 기묘한 동거를 묘사하고 있다. 지금의 프랑스인들도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이미 이 이전부터 프랑스는 연인들의 동거가 일반화 되었던 것 같다.

 

나아가, 두 여자 주인공의 당당함이란! 그들은 서로 닮은 듯 다른 캐릭터이다. 먼저, 미미는 캐시미어 등 비싼 물건을 사줄 수 있는 재력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 푸른 눈에 반한 폴 자작의 마차에 몇 번이고 오른다. 반면, 뮈제타는 그 매력에 남자가 줄을 서기 때문에 입맛대로 고른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건 언제나 마르셀이라고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한다.

 

'80프랑짜리 코르셋 안에 심장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아요...'

 

'후렴구는 마르셀이에요...'

 

이러한 당당함으로, 둘은 보헤미안 남친들과 귀족 젊은이들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영국에서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게 20세기 초이고, 프랑스는 20세기 중반이다. 그런데 투표권과 관계 없이, 이미 100여 년 전부터 프랑스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 사랑 등을 주장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물론 목로주점의 제르베르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어찌됐든, 진솔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크게 성공을 거두어, 작가인 뮈르제는 안정된 여건 속에서 글쓰기를 계속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로돌프는 바로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뒤마나 발자크 처럼 돈에 쫓겨 살다 끝난 것 같은데, 그로서는 무척 다행이다.

 

19세기는 프랑스 문학계에 엄청난 작가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발자크, 빅토르, 알렉상드르 뒤마, 뒤이어 에밀 졸라 등등... 다들 사회문제를 고발하거나 남자들의 모험담을 다루는 등 묵직한 글들을 썼다. 그 틈새로 이렇게 작고 아기자기한, 현대 시트콤의 원형이 될만한 이야기를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이 연작소설의 에피소드 몇 개를 재구성한 것인데, 미미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캐릭터들의 특성을 그대로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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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블루레이] 모차르트 : 돈 지오반니 (한글자막)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외 / DG (도이치 그라모폰)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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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광철을 비롯한 8명의 등장인물 모두 좋다. 안나 네트렙코가 지명도에 비해 조금 아깝고, 브린 터펠이 레포렐로 역할을 잘 소화했다는 점이 의외. 앤드 듀프레인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마테이의 연기는 돈 조반니와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돈나 엘비라의 하녀를 향해 부르는 세레나데(내 사랑, 창가로 오세요)가 기가 막히게 로맨틱하다. 바렌보임의 지휘도 마음에 드는데, 가끔 고음악처럼 들리는 부분이 있다.

 

로버트 카슨이 꾸민 무대는 라 스칼라 극장의 커튼과 발코니석 이미지들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처음에는 심심하지만 갈수록 매력적이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돈 조반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프로덕션. 한글자막이 좋은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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