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00일 정진, 26일차
<能隨境滅/능수경멸/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境逐能沈/경축능침/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서>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에 가게 되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 세개가 있다.
그 문을 *삼문(三門)이라고 한다. 그 삼문의 마지막은 바로 불이문(不二門)이다.
불이문을 통과하기 전에 제일 먼저 통과하는 문이 일주문(一柱門)이다.
일주문은 기둥이 하나로 되어 있어고 사찰에 들어설 때 첫번째 관문이다.
속세를 떠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깨달음을 향해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금강문 혹은 사천왕문을 지나게 된다.
금강역사와 사천왕은 눈을 부라리며 험상 궂은 모습이지만 절 즉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이다.
악귀를 몰아내고 청정한 도량을 유지하는 역할로 우리 마음 속의 번뇌나 마장을 몰아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 관문이 바로 해탈문이라 불리는 불이문이다.
불이는 둘이 아니다라고 일반적으로 해석한다.
둘이 아니라면 하나인가? 아니다.
둘이 아님은 하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둘이 아니라고 한다면 왜 하나가 아닌가?
달 빛에 비춘 내 그림자는 나와 하나 인가?
그림자는 그림자이고, 나는 나다.
내가 그림자는 아니다. 또한 그림자가 나는 아니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나로 인해 나타났다.
이때 하나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둘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둘이 아님은 그런 것이다.
둘이 아님은 명확하게 하나라고 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둘은 하나의 바탕을 공유한다.
파도와 바다가 둘인가?
부처와 중생이 둘인가?
깨달음과 번뇌는 둘인가?
이때 선에서는 '둘이 아니다(不二)' 라고 답한다.
부처가 들은 연꽃과 가섭이 답한 미소는 둘이 아니다.
일심불생(一心不生)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무구(萬法無咎)만법은 허물이 없느니라
본래 둘이 아님을 알게 되면 한 생각이 랄 것도 없어진다.
그러니 만법은 허물이 없게 된다.
능수경멸(能隨境滅)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경축능침(境逐能沈)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서
주관이든 객관이든 결국 이름이 다를 뿐, 그 바탕은 둘이 아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주문을 지나, 마음 속 번뇌를 다스리면
마침내 그 모든 과정들이 둘이 아니었음을 알 게 되는 곳.
그곳이 바로 마음의 고향이며, 우리는 그곳을 가람 혹은 절이라고 부른다.
주: 能隨: 능할 능, 따를 수: 능함을 따르면, 여기서 능함이란 주관적인 작용을 뜻함.
境滅: 지경 경, 멸할 명: 경계가 멸한다 즉, 경계는 객관적인 상태로 여기서는 객관을 뜻함
境逐: 지경 경, 쫓을 축 : 경계를 쫓으면, 즉 객관을 쫓게 되면
能沈: 능할 능, 잠길 침: 능함이 잠긴다. 즉 주관은 잠긴다.
*삼문(三門): 일주문, 금강문 혹은 천왕문, 불이문을 합쳐서 삼문이라고 한다. 절으로 들어가는 문이라하여 산문(山門)이라고도 부른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