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야샤 와이드판 23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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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시대를 초월하는 마음


어제 우리는 나락(나라쿠)을 결핍에서 탄생한 뒤틀린 욕망의 괴물이라고 보았다.

나락의 생존 방식은 끊임없는 ‘흡수’와 ‘증식’이다.

그는 자신의 태생적 결핍을 메우기 위해 다른 요괴의 육체를 삼키고, 타인의 능력을 훔치며, 사혼의 구슬 조각을 몸 안에 채워 넣는다.

본체인 자신이 약하기에 외부의 것으로 자신을 덕지덕지 포장하여 거대해지려 한다이것은 마치 결핍을 채우려 할수록 더욱 공허해지는 ‘아귀(餓鬼)’의 굶주림과 같다. 외부의 힘을 빌려 자신을 채우려는 시도는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고 괴물이 되는 길임을 나락은 보여준다.

 

<이누야샤>에서는 나락과의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이누야샤의 이복형, 셋쇼마루다.

셋쇼마루는 태생부터 세계관 최강자에 속했다. 

그 어느 것도 셋쇼마루를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고, 그 자부심 역시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나락과 이누야샤는 그와 달리, 자신들의 결핍과 열등감을 채우고자 사혼의 구슬에 더욱 광적으로 집착했다. 

사혼의 구슬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셋쇼마루였지만 사실 그 또한 이야기 초반에는 나락과 다를 바 없는 ‘집착의 노예’였다.

셋쇼마루처럼 완벽에 가까운 존재조차 결국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위대한 아버지(투아왕)가 자신이 아닌 반요 동생에게 ‘철쇄아’를 물려주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왜 내가 아닌가? 왜 나는 아버지의 유산(힘)을 온전히 가질 수 없는가?”

질문은 셋쇼마루에게 거대한 결핍이자 상처였다.

역시 아버지의 유산이라는 ‘외부의 힘’으로 자신의 완벽함을 증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까지 셋쇼마루와 나락은 본질적으로 같았다. 둘 다 외부의 힘(사혼의 구슬, 철쇄아)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셋쇼마루는 나락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나락이 욕망을 끝없이 ‘더하는’ 방식으로 괴물이 되었다면, 셋쇼마루는 자신의 집착을 ‘빼는’ 방식으로 일종의 성인(聖人)에 가까운 경지에 오른다. 그 전환점에는 ‘링’이라는 가장 나약한 인간 소녀가 있었다. 가장 강한 요괴가 가장 약한 생명의 죽음을 목격하며 느낀 감정은 연민와 책임이었다. 생명의 유한함을 온전히 마주하는 순간, 그는 아버지의 힘(철쇄아)에 대한 미련을 놓아버린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방하착(放下着), 즉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그가 아버지에 대한 집착을 버린 순간, 비로소 그의 몸 안에서 그만의 칼 ‘폭쇄아’가 발현된다. 폭쇄아는 외부에서 주어지거나 빼앗아 온 칼이 아니었다.

본래부터 그의 내면에 있었으나, 외부를 향한 집착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본체의 힘’이었다.

나락은 외부를 삼켜 자신을 비대하게 만들었지만, 셋쇼마루는 내부의 집착을 내려놓아 진짜 자기를 찾게 되었다.

결국 진정한 강함이란 외부에서 무언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번뇌를 녹여내는 것임을 셋쇼마루는 보여준다.

 

그는 마침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던졌던 질문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네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완전무결한 존재에게는 사실 질문이 필요 없다.

지킬 것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고, 잃을 것이 없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셋쇼마루는 결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존재가 된다.

말은 , 다시 상처받을 수 있는 자리로 내려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락과 셋쇼마루는 인간 무의식이 걷는 가지 길이다.

하나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고 끊임없이 탐욕을 부리는 ‘채움의 지옥’이다. 

다른 하나는 결핍을 인정하고 집착을 버림으로써 스스로 온전해지는 ‘비움의 완성’이다.

우리의 마음속 전장(戰場)에는 이 두 존재가 늘 공존한다.

외부의 인정과 물질로 나를 채우려는 나락의 속성이 있고, 내면의 본성을 믿고 집착을 놓으려는 셋쇼마루의 속성도 있다.

우리는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채울 것인가, 아니면 비울 것인가?

외부의 분신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본체가 될 것인가?

 

“욕망으로 비대해진 괴물과 집착을 버려 완성된 존재.”

이누야샤라는 만화가 던진 화두는 결국 우리 내면의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나락과 셋쇼마루, 이 두 그림자 사이를 오가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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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1-26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누야사를 이렇게도 볼 수 있다뉘!!ㅎㅎ

마힐 2025-11-26 13:32   좋아요 0 | URL
제가 사회 생활 초기 좀 힘들었거든요.ㅎㅎ 그때 루미코 여사님 이누야사 만화와 이누야사 애니메이션을 보고 많이 위안을 받았어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늦게나마 글이라도 써야 될 것 같아서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