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날짜:2025 1113 (18525일, 중국생활 9443일)

오늘의정진:  시간의 의미, 알아내기


18525일, 한국 생활 9082일, 중국 생활 9443일.

숫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지난 줌법회에서 스님께서 하신 말씀 내가 곧 중국에 의미를 알게 되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따져 봤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날 수와 한국에서 생활했던 날 수, 그리고 중국에서 생활해온 날 수를 모두 계산해 봤다.

내가 태어난 이후 오늘까지 18525일을 살았다. 그 중 한국에서 살았던 날은 9082일 이었다.

2000년 1월 7일, 내가 중국으로 취직해 온 날이다. 그날을 나의 중국생활 기준일로 잡았다. 군 제대 이후 배낭여행과 어학연수 기간도 있지만 그때는 한국에 적을 둔거라, 기준이 되지 않다고 정했다. 그렇게 따지니 나의 중국 생활은 오늘로서 9443일이다.

25년 8개월의 중국에서 삶.

중국에서 보낸 시간이 한국에서 보다 거의 년을 지낸 셈이다.

앞으로 여기서 살게 , 아니면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야 할 지, 아직 모호하다.


확실성과 모호성은 항상 경계에 있다.

삶과 죽음은 순간에 결정된다. 생과 사 처럼 더 명확한 경계는 없다. 

하지만 사실 살아간다는 것은 모호함의 연속이다. 삶이란 시간에 구속 되지 않으면 언제나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시간  지나고 봐야 명확해 진다. 그래서 시간은 과거일 때야 비로소 마음에 와닿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은 늘 모호한 경계에 있는 셈이다.

지금, 이라는 순간에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하는 생각, 모두가 미래로 연결되고 있다. 그 모호함의 경계가 시간을 만나면 확실해 진다.

그래서 현재의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호함을 확실함으로 구분 짓는 시간이란 놈은 희안하게도 실체가 없다. 시간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인데 늘 우리는 시간이라는 허상에 사로 잡혀 있다.  

진짜 오늘이 2025년 11월 13일 일까?

그렇다면 애초부터 확실성과 모호성이란 구분도 허상이 아닐까?

어쩌면 시간은 믿음의 영역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2025년 11월 13일, 18525일, 9443일.

나는 내가 살아왔던 삶을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 올 나의 변화를 믿을 것이다.

확실성과 모호성은 믿음으로 구분되어지는 셈이다.                     

내 근본에 대한 나의 믿음만이 내가 보낸 시간의 의미를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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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16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무한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무한을 유한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달력을 발명했죠. 일년 단위의 반복이 무한에 대한 두려움을 다소 근절시켰죠. 불교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윤회도 그런 두려움에 의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지평선 너머로 지나가는 삶이 영원히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이 윤회를 만들어냈고 그 너머의 삶을 긍정하는 자만이 윤회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초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힐 2025-11-16 22:21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의 무한의 두려움으로 달력을 발명했단 신선한 의견에 무척 공감합니다. ㅎㅎ
사실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 공포, 기쁨, 슬픔이 모두 결국엔 다 ‘생존의 기술‘이 아니였을까요? 불교에서 버리라고 하는 오욕칠정 조차도 사실은 그냥 결함이 아니라 그 또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진화의 동력이 아니였을까요?
그렇게 바라보면 윤회든 종교든 사상이라는 것도 그 감정들의 확장판인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우리 모두는 감정으로 진화했고 앞으로도 진화할 피곤한 생명체인 거죠. ㅎㅎ

2025-11-26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26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