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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 완결판
리처드 바크 지음, 공경희 옮김, 러셀 먼슨 사진 / 나무옆의자 / 2018년 6월
평점 :
책 제목: 갈매기의 꿈
지은이: 리처드 바크 / 공경희 옮김
제 목: 얼리 버드와 하이에나, 그리고 조나단과 킬리만자로의 표범
푸른 바다위를 날으는 갈매기는 넘실 넘실, 구름과 태양 사이를 날아 다닌다.
어릴때 나는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면 항상 아라비아 숫자 '3' 을 뒤집어 쓴 모자 모양으로 갈매기를 그렸었다.
새중에 갈매기만 유독 편하게 그릴 수 있다. '3' 만 넓게 휘휙 그리면 되니까...
나 뿐만 아니라 다들 어릴 때 부터 미술 시간에 바다 위를 나르는 그림 속에 갈매기는 숫자 3으로 표현하는것 같다.
그게 다른 새들에 비해 날아가는 갈매기를 표현하기가 가장 쉽기 때문이다.
갈매기가 아닌 새들은 새에 대한 묘사를 대충이라도 해야 한다.
새의 눈매, 부리, 날개, 발톱. 같은 부위 마다. 그리고 날아가는 모양 보다 그냥 땅이나 나무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그릴려면 갈매기 보단 어렵다.
나는 어릴때 부터 바닷가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갈매기는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 갈매기들에 대한 특별한 감상이나 의미는 있는 것 같지 않다.
갈매기는 바다를 배경으로 사는 그냥 까치보다 좀 큰 회색빛 새 정도로만 생각했다.
왜 걔네들은 바다에서만 사는지 별로 궁금해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니 왜 얘네들은 바다가 주변에서만 날아 다녔을까?
산이나 도시에는 왜 없었을까? 과학적으로 새는 본래 바닷 속 물고기가
진화했다는 설이 있던데 갈매기들이 거쳐온 진화의 특성상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잡았을
수도 있겠다.
얘네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렇게 얼리 버드가 되어 바다 위를 부지런히 맴돌았다.
이번에 <갈매기의 꿈> 을 읽으며 예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갈매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은 청소년 권장 독서에 오를 만큼 참으로 유명한 책이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는 구절이 나오는 책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꿈과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인용된다.
이와 더불어 '가장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 는 얼리 버드(early bird) 와 함께 중고등 학생들의 책상 앞에 붙혀진 격언 문구들
중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하이 플라이 버드' 는 이상과 꿈을 쫓는 삶을, '얼리 버드' 는 현실성 있는 삶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상과 현실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합쳐 놓으면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라는 체 게바라의 명언 하고도 묘하게 통
하는 면이 있다.
이 책 <갈매기의 꿈> 은 리얼리스트 입장에서 보면 불가능한 꿈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정말 황당하지만 현실성 있는 꿈 이야기 이기도 하다.
먼저 이 책은 45년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완결된 최종판이란 선전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원래 이 소설의 초판은 1970년에 미국에서 출판 되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 나온 책의 3장 까지 구성 되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기존에 3장까지 출판이 되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4장이 추가 된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이 소설은 작가의 확장판 소설인셈이다.
작가가 그려낸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우리 마음속의 잠재적 능력을 상징한다.
일반적인 갈매기들은 높이 날지 않는다. 바다에서 먹이를 잡는데 필요한 비행만 있으면 족 할 뿐이다. 그들에겐 오직 먹고 살기 위한 비행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은 그렇질 않다. 2400미터에서 급하강에 시속 344키로로 비행하며 온갖 곡예비행을 연습한다.
그에게 비행은 삶의 의미를 가진 숭고한 배움이자, 수행이었다.
1장에서 조나단은 자신이 속 했던 갈매기 무리에서 쫓겨난다.
조나단은 먹이만 찾고 사는 얼리 버드가 되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조나단이 왜 비행에 집착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2 장에서 그는 완전한 비행에 가까워지고 결국 자신과 같은 성향을 가진 다른 차원의 무리와 함께 수행
하며 더 높은 경지에 이른다. 결국 그의 속도는 차원을 넘나들며 빛을
넘어서는 존재 (눈 깜짝할 새 ? )가 되어 버린다.
애초에 자기 계발류 같은 성장적인 우화로 생각하며 읽었던 내용이 갑자기 수행과 윤회를 의미하는 내용들로
이어져, 엥~ 이게 뭔가 싶다.
3장에서는 원래 쫓겨난 무리로 돌아온 조나단은 자신의 제자들을 양성한다.
자신과 같은 비행을 갈망하는 갈매기들에게 자신이 아는 바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조나단은 수제자 플레처를 이끌면서 후에 부활의 경지까지 보여준다.
이는 조나단이 마치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이 연상 될 정도로 묘사되는 장면이었다.
이후 4장은 추가가 된 장으로 수행 공동체에 대한 일화를 차지한다.
수행 공동체가 신격화가 되어 종교적 믿음으로 변질이 되는 순간, 원래 수행 공동체를 창시했던 창시자의 뜻과는
이미 멀어지게 됨을 알려준다.
다소 황당한 전개이긴 하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대략 이해가 된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단순히 '우리 모두 얼리 버드가 되지 말고 높이 나는 새가 되자' 는 뜻은 아니다.
꿈과 이상을 추구 하라는 뜻 보다는 자신의 잠재적 재능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엔 수행, 스승과 제자, 불교의 윤회, 기독교의 부활과 우상 경배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에서 조나단의 비행술의 경지는 수행을 통한 득도(得道) 의 수준까지 보여준다.
갈매기 조나단은 우리 안에 잠재된 힘을 뜻한다.
우리 안의 잠재된 힘은 본성이자, 진정한 참나를 뜻한다.
왜냐면 책의 서두에 작가는 "모든 이의 내면에 깃든 진정한 갈매기 조나단에게 바칩니다." 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 <갈매기의 꿈>은 단순한 자기 계발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잠재된 능력에 대한 믿음, 즉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잠들고 있는 자성(自性), 자신에 대한 믿음을 일깨우는 책이었다.
갑자기 조용필의 <킬로만자로의 표범>의 가사 구절이 흥얼거려진다.
갈매기 조나단과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평범하게 먹고 사는 것을 거부한다는 면에서 서로 공통점이 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다니는 산 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서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나는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라는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어럼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 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이 없으면 또 어떠리>
이상과 현실, 둘은 서로 같이 공존 할 순 없는 모순적 관계일까?
형제 여러분! 의미를, 삶의 더 숭고한 목표를 찾고 추구하는 갈매기보다 더 책임있는 갈매기가 누구란 말입니까? 천년간 우리는 물고기 머리나 쫓아다녔지만, 이제는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P37
공간을 초월하면 ‘이곳‘ 만 남습니다. 시간을 초월하면 ‘지금‘ 만 남지요. 그러니 이곳과 지금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한두 번은 마주치지 않겠습니까? - P76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마라. 눈에 보여주는 것은 다 한계가 있을 뿐이란다. 너의 이해력으로 보고, 이미 아는 것을 찾아 내거라. 그러면 너는 나는 법을 알게 될 게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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