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찾기
전아리 지음, 장유정 원작 / 노블마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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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완소.

친구들이 하도 연극, 연극하는 통에 보고 싶었던 작품이지만

연극보다는 영화, 영화보다는 책이 더 손이가고 마음이 가서일까.

연극을 두어번 본 적이 있지만, 함께 호흡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운 나로서는

그냥 어느 인기많은 연극의 하나일 뿐이었는데...

책으로 나온다고 하기에, 급 호기심이 생겼더랬다.

게다가 영화까지!! 주인공은 공유, 임수정. 우와우와, 겨울에 보기에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공유, 임수정의 얼굴을 마구마구 떠올리며 책 읽기에 돌입.

표지도 러블리 핑크, 하트 뿅뿅~ 기대 100% 그 이상.

 



 

 

당신의 첫사랑을 기억하십니까?

 

이따금씩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첫, 사랑.

 

처음 알게된 사랑이라는 이름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고 이 작품을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마구 뿌려대는 행복 바이러스가 아니라 자연스레 생기는 아련함 때문에 마음이 시려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랑스러운 커플. 공유와, 임수정만을 생각하고 싶었지만 나는 어느순간부터인가, 나의 첫사랑과 마주하고 있었다.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그 때로, 모든 것이 떨리고 낯설기만 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슴 깊이 묻었다고, 이제는 지난 추억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그리움. 아련함. 서글픔. 이 감정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이루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단지, 첫사랑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그저 한쪽 구석이, 숨어있던 감춰왔던 내 마음이 살짜기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던,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느꼈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 첫, 사랑.

 



 

 

유독 이 책에서 '기억'이라는 단어에 한없이 매달려 있었고, 붙잡고 있었다. 기억하는 만큼만 떠올리고 싶어서

내 마음을 흔들던 글귀. 좋은 모습만 보고 싶었고, 다른 사람이 무어라 말하건 내가 보는 그라면 충분했다. 단지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의 모습이 그에 대한 전부다. 늘 그렇게 되뇌이고 되뇌였었다. 내가 기억하는 딱 그만큼이면, 내 안에 그를 간직하기에 모자라지는 않을테니까..

 

 



 

 

굳은 의미가 부여된 기억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한 기억을 나에게 흘린다하더라도 그것을 비집고 들어올 수는 없다. 내 안의 방어막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방어하고 있으니까. 첫, 사랑은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비밀. 혹은 보물상자.

언제든 나를 위해 꺼내보고, 나를 위해 닫아둔다. 오직, 내가 꺼내보았을 때 비로소 존재하는 그런 것.

 

첫사랑이란 건 조금씩 덜 익거나 부서진 구석이 있게 마련이라 그 모자란 부분 속에 환상을 채워 넣을 수 있다. (242쪽)

환상, 실로 그는 내가 만든 상상 속에 존재한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와 나와 있을 때는 무언가 다르겠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나의 환상 속에 그를 가둬두고 나의 생각대로 그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처음이라고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라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만 한다. 함께 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나의 환상으로 채워간다. 모든 것이 콩깍지로 에워싸이는 첫, 사랑이란 꼭 그런 것.

 



 

빛이 바래는 걸 원치 않아서 늘 햇빛이 들지 않는 나의 마음속에 꽁꽁 숨겨두고 있었던 것 같다. 꺼내어 놓았다가 유리처럼 깨어져 버릴까봐 늘 조바심에.. 내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자물쇠를 굳게 채운 채로 나의 것인냥. 그리고 바라보는 그 숨결 속에서는 한없이 상쾌한 공기내음이 났다. 그 순간만큼은 그가 내 하늘이었고 바람이었다. 나와 일상을 함께한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하지 못할 만큼, 닳을까봐 멀어져버릴까봐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전전긍긍. 이 책 속에서 내가 첫, 사랑을 할 때의 그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나는 쉼없이 동요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추억속의 그가 온전하지는 않지만 희미하게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다. 코흘리개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이 책을 통해 내가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지만 주인공은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공유'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신사적인 이미지랄까. - '성재'와 오버랩이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주인공이 아니었다. 좀 더 멋진 운명으로 만나지길 바랬다. 아마, 환상을 깨지 못한채 완벽한 해피엔딩을 꿈꾸었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난 것 같다. 아마도, 내 생각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공감되는 인연 - 주변을 돌아보라. 인연은 바로 주변에. 이런식의- 을 통해 사랑이라는 의미를 재탄생시키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조금 아쉬웠던 점은 내가 공감가는 문구를 곱씹으며 다른 활자로 눈을 옮겨가고 있을 때 일러스트가 몇번씩 등장한다. 위 사진에도 볼 수 있는 삽화. 그림+글.  공감하고 있는데 그 똑같은 문구가 반복이 되어 또 튀어나온다. 흐름이 완전 끊겼다. 앞에 뭐였지. 하고 다시 돌아가기를 몇 번.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강조되는 것이겠지만, 그런 부분은 아무래도 공감이 많이 가는 문구이기 때문에 글의 중간에 끼워넣지 말고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에 넣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좀 더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은... 나는 그다지 좋지 않았었다.  그리고 엔딩이 너무 짧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조금 더.. 없나요? .... 아쉽다...

 

내가 느꼈던, 혹은 생각했던, 그리고 지금도 생각하는 첫, 사랑의 느낌과 너무 닮아 있는 이 소설은 첫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는 듯 했다. 까만 밤하늘에 조금씩 피어나는 눈꽃송이를 맞이한 느낌. 첫, 사랑의 느낌을 잘 표현한 소설이라면 여지없이 이 소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많이 닮아있는 모습이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감성적인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이 작가. 나와 또 만나게 될 것 같다. 나와 코드가 맞는, 글쟁이를 만난 느낌이다. 괜스레 뿌듯하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나에게 다가온 김종욱 찾기.

이번 겨울은 내 옆을 늘 지켜주는 그와 함께 따뜻하게 맞이해야지. 운명처럼 연인이된 그들보다 더 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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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 마라 - 박해선 詩를 담은 에세이
박해선 지음 / 헤르메스미디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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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이 공허하게 떨어지는 그리고 쌓여가는 나의 발 밑을 바라보며, 가을을 한껏 느끼고 바스락거리는 나뭇가지에게 인사할 때 이 책과 만났다. 붉게 타는 노을과 하얀 눈이 서린 꼭 그 사이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은색 빛으로 곱게 장식하고 있는 반짝이는 제목을 보며 스윽 매만져 보았다. 그.리.움. 이란 단어에 손이 닿았을 뿐인데 금새 울컥. 빛에 비춰본 제목은 그 자체만으로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명확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희미하지도 않은 꼭 그 것. 그.리.움.

그가 풀어내는 시 그리고 이야기가 사진과 잘 어우러지는 느낌.

그의 마음에는 어떤 길이 나 있을까. 또 나의 마음엔 어떤 길이 나 있는걸까.

 



 

고인 물을 보며 나도 이같은 추억을 한 적이 있었다.

비록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닐지라도,

나의 가슴이 저리다면 그대 역시도 아주 조금은 저릴 것이다, 하는 추억 같은.

그 추억에 무너져 버리는, 나.

 



 

그의 이야기와 시를 읽어내려가는 동안에도,

함께 해주는 풍경들이 있어 눈까지 싱그러웠다.

떨어지는 꽃잎에도 그리운 이가 있다는 것.

그대에게도 그런 사람이 혹, 있지 않은가.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을 올려다보며, 함께 했던 시는 나에게 있어

애잔함이었고, 가슴떨림이었고,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함께였다.

 

 



 

제목이 되어준 시.

추억하는 이들에게 주는,

마음을 가벼이 해주고자 하는 그의 마음.

 

이문세, 김장훈, 이소라, 윤도현, 유희열, 성시경, 호란과 함께한 그의 시들.

CD를 들으며 시를 다시 곱씹는 그 느낌은 처음인지라 생소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아무래도 시를 낭송한 이들이 목소리로 마음을 전달하는 가수이기 때문이리라.

라디오DJ를 하신 분도 많으니, 더욱 시가 감미로워졌다. 특히, 작가님이 남자분이고 시 자체 특유의 강인함이랄까. 그 강인함에서 오는 미처 토해내지 못하고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무거운 느낌이랄까. 삶의 무게를 느껴야 하는 이야기와 시가 주였기 때문에 이문세님의 목소리가 가장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 시간이 더 지나, 부모가 되면 더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한다. 여인의 특유 감성도 함께 기대했지만, 사실 남자분의 시와 이야기라 여운이라기 보다는 책임의 비중이 더 크게 느껴진 것 같다. 늘 등뒤에서 말 없이 지켜봐주는 묵묵함. 그래서 아버지에게서 받는 위로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다 표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마음이 있음을. 그것이 더할나위없는 큰 힘이 됨을 알려주려 한 것 같아 내일은 아버지의 작아진 등을 꼬옥 껴안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미처 피지 못한 응어리가 한꺼번에 터지듯, 하나씩 방울지듯 모여 와르르 쏟아져 내리듯 한 땀 한 땀 씌였을 그의 시가 오늘도 나의 저녁을 적신다. 드러내기 위한 감성이 아니라 삶의 무게에서 조금씩 스며들고 베어 나오는 잔잔한 느낌이 참 좋았다.

 



 

나의 그리움아. 이제는 걱정하지 않을께.

나 없이도, 이젠 안녕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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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린의 멜로디북 - Lovelyn's Melody Book
린 (Lyn) 지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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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러블린.

11년차 가수 린. 본명 이 세 진.

 

그녀가 책을 출간했다. 내가 너무 좋아해 마지 않는 상콤한 노랑빛의. 제목은 멜로디북♬

 

비닐에 꼼꼼히 포장되어 있는 책을 받아들고는, 뭔가 특별한 대우라도 받는 냥, 기뻤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상과 생각들을 어떤식으로 풀어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평소 그녀, 당당하고 조금은 독특한 스타일이기에 이 책도 그녀만큼이나 톡톡 튀지 않을까.

그 톡톡 튐에 따라가느라 숨이 차지는 않을까, 알콩달콩 그녀의 이야기. 즐거울 것 같다.

 

 

누구나 꼭,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혼자만의 여행.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하루 하루들. 그녀의 이야기는 어떤 느낌일까?

그녀가 풍기는 이미지 그대로만 드러내고 있을까. 아니면, 그녀가 품고 있는 감성적인 멜로디의 그 어디쯤일까.

표지 뒷면. 상큼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좋은 카메라로 찍었으면, 더 잘 담아냈을까.

그래도 그녀의 미소는 상큼하다. 카메라가 어찌됐든 눈이 부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스르륵 넘겨본 그녀의 책. ’사랑해마지 않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스케치가 느껴지는 풍경.

사각사각 그려진 그림들과 오밀조밀한 글씨들. 그 솜씨는 내 다이어리 속에 훔쳐넣고 싶을 만큼, 깜찍하고 귀여웠다.

이런 에세이 느낌의 다이어리를 출간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녀의 재주가 또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상큼함과 발랄함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그녀의 이야기.

슬픈 가사를 쓰는 그녀에게, 스쳐지나가는 많은 이야기들이 보인다.

환하게 웃고 있는 미소 속에 비춰진 슬프고 여린 그림자.

서른이 된 그녀에게 찾아온 또다른 어른과 아이사이.

그녀의 목소리 만큼이나 짙은 안개들 사이로 무수한 이야기들을 펼쳐내고 있다.

누구나가 그렇듯,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그녀의 색깔로 곱게 입혀져 나를, 그리고 우리를 맞이한다.

 

 



 

"마음을 얘기하는 건데, 마음대로 해도 괜찮잖아요."

딱 그녀다운 모습이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신세대 그녀인만큼,

서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발랄해서

나보다 동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녀의 말투며 행동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너무 감성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그런 모습을 골고루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녀를 알기에 충분했다면 충분했고,

그녀를 더 알고 싶어지는 호기심도 함께 했던 느낌.

살짝이나마 가수의 삶을 사는 린을 엿보기도 하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 이세진을 엿볼 수 있었다.

연예인이라는 공간에 그녀를 가둔 채 이 책을 접하기 보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하는 어쩌면 잔잔하고 애절한, 또 한편으로는 마냥 어린아이 같은 여러면을 가지고 있는 그녀 자체를 받아들이고 안아주며 읽는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짧지만 달콤하고 행복했던 그녀의 다이어리. 앞으로도 더욱 멋진 린, 더욱 상큼한 이세진 님이 되어 주길 바라며.

음악과 글이 함께하는 글을 나도 써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어보며.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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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보낸 일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
안토니오 콜리나스 지음, 정구석 옮김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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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온통 노란빛, 붉은빛으로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나와 함께한 책이었다. ㅣ자음과 모음 청소년 문학ㅣ '성인식'  다음으로 접하게 되는 성장소설이었고, 조금 아쉬웠던 부분을 이 책을 통해서 채우기 위해 선택했다. 무엇보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표지, 그리고 시와 음악이 함께하는 소재였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했었다. 역시나,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도 큰 것일까. 스페인 소설이 처음이었기 때문에서인지 읽고는 있지만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가 없었다. 무미건조하게 눈으로만 읽었고, 머리로 이해하려고만 하였다. 왜 나에게 와닿지 않는 것인지,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지 하루종일 물음표만이 나를 따라다녀 무척이나 피곤했다.

 

"이 소설은 '더욱 저 멀리' 가고자 하는 소설이다!"

이 띠지의 느낌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 더욱 저 멀리' 내가 찾지 못하는 그 느낌까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꼭 그런 글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지만, 쉼없이 반복되는 묘사와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는 그림들. 상상이 되지 않는 글을 읽고 있으려니 목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을 어찌해야할까 난감하기만 했다. 제목이 '남쪽에서 보낸 일년'이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그 중 ㅣ가을-겨울ㅣ 이니까, 아! 계절의 느낌을 살려서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하니 거기에 답이 있었다.한결 읽기가 편해졌다. 처음부터 무작정 덤벼야 하는 글이 아니었다. 마음에 와 닿는 감성적인 글귀들과 마주할 때는 이 책의 답답함을 언제 느꼈냐는 듯이 포스트잇이 붙여졌고 까만 밤 하늘 속에서 반짝이는 별, 그 중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북극성을 찾은 듯이 마음까지 환해지는 느낌.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며 피까지 정화되는 느낌. 그제서야 깨끗한 공기를 받아들이고 숨을 탁 뱉는 듯한 느낌이 느껴졌다면, 저 멀리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한 발자국은 전진한 것 같은 뿌듯함의 파도가 일렁였다.

 

우리와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오는 막연함. 이해할 수 없는 영역들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원서를 읽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번역물에 대한 실망감이 다가왔다.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번역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마음에 품고 대하다보니 진도는 말할 것도 없이 지루한데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좀 전에 내가 받아들였던 그 느낌이 또 나오지 않을까. 빨리 그런 부분이 나왔으면 좋겠다. 는 생각에 쉬이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붙잡고만 있었다. 중국소설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답답함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역자후기를 보았는데 그 역시도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번역을 하였다고 한다.

본래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는 항상 서로 다른 두 언어의 구조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난관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스페인어 단어를 우리말로 낱낱이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따라서 도저히 원래의 뜻을 그대로 옮길 수 없는 단어 혹은 문장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 번역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번역작업의 일부분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316쪽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작가들, 작품들, 장소들이 난무하며 함께 호흡할 수 없음은 아무리 미학소설이라고 하더라도-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기에- 진정한 미학이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과 장소들을 어느정도 조사하고 읽어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더라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지는 글들이 참 많다. 그런면에서, 나의 상상력 부족으로 이 책이 나에게 별 감흥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해하는 부분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았기에 좀 안타까운 소설이었다. 내가 좀 더 시와 음악에 대해 일가견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가 들었던 멜로디, 끊임없이 읽었던 시들. 모든 것이 예술이었던 그의 삶은 평범한 내가 접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ㅣ가을-겨울ㅣ

 

그는 자신의 내부에 보다 더 진중한 실체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고조된 행복의 순간을 겉으로만 보고 자신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하고-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싶었다. - 70쪽

 

네가 도시의 일부분을 가져가버린 것 같아. 지금 내가 건너고 있는 이 길들은 우리가 밤에 걷곤 했던 거리와는 달라. 멀리서 보였던 산의 불빛은 내가 너에게 보여주었을 때처럼 반짝이질 않아.- 108쪽

 

형형색색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할지라도 물기를 머금지 않은 말라가는 낙엽과 서서히 차가워져 가는 공기 속에 이 글귀를 담았다. 온전히 가을도, 겨울도 아닌 지금. 하노가 있던 계절에 나도 함께 존재했다. 사람들도 하나둘씩 더 겹겹이 껴입으며 자신을 숨겨가는 계절. 그 계절에서 나 자신조차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꽁꽁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차가워져만 간다. 나의 마음은 뜨거울지라도, 무미건조해지는 그런 계절.

 

ㅣ겨울-봄ㅣ

 

'괜찮아, 레르마. 네가 별들을 보려고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별들이 너를 보려고 내려올 거니까.-159쪽

 

아름다움은 죽어 사라진 아름다움 위에서 다시 태어난다. -177쪽

 

차가워진 공기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만 싶어지는 겨울. 모든 것이 조용하고 스산한 계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야만 하는 계절로 옮겨감은 무언가는 죽여야 한다. 예를 들면, 늦장 부리던 성격, 주변사람들에게의 소홀함, 등 자신에 대한 반성이랄까. 겹겹이 자신을 더 껴안고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것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깨어내야 맞아들일 수 있는 계절. 봄.

 

ㅣ봄-여름ㅣ

 

그런 나 자신을 조금 숨기고, 극단적으로 어디까지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그가 알 수 있게 하고,- 241쪽

 

ㅡ너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구나. 너 꼭 죽은 사람 같아.- 277쪽

 

그가 우리 인생에는-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에는-항상 썩기 위해 꽃피는 뭔가가 있고, 꽃피기 위해 썩는 뭔가가 있다며 그걸 내게 보여주겠다고, -293쪽

 

따스해지는 봄이 오더라도, 겨울의 옷을 벗지 못한 것들이 있고, 이렇게 변화해도 되는 것인지의 의문을 자아낼 수가 있다. 따뜻해지는 것 같을 때 찾아오는 삼한사온. 춥고, 따뜻함이 반복되며 완전히 깨어나기 위한 몸부림. 그 속에 아직 머물러 있는 영혼. 하지만 진정한 녹음으로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단계. 봄에서 그리고 여름으로.

 

수없이 방황하는 떠도는 영혼들과 만났다. 끊임없는 비교와 묘사를 통해 둘러보지 못한 많은 부분을 구석구석 보았고, 조금은 깊은 생각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온전하지 않고, 완전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어쩌면 내가 겪었고, 혹은 다른 누군가가 겪을 예술과 삶의 경계선에서 끝없는 고민과 방황을 비춰주는, 흘러가는 계절속의 우리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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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꿈을 스캔하라 - 찾고! 모방하고! 이루어라!
김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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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고! 모방하고! 이루어라!

 

처음 이 책을 마주했을 때에는, 영웅, 생각도 해보지 않은 단어라 미궁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를 보며, 제발 그저 그런 책은 아니기만을 바랐다. 왜 영웅이 되라고 하는가. 왜 영웅타령인가. 꿈이 없는,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돌아오는 물음 뿐이었다.

 

첫번째 부딪힌 시련. 롤모델 찾기. 수많은 책을 읽으며 롤모델을 누구로 삶을 것인가 고민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롤모델을 찾아봤자 무의미한 일이 될 터였다. 나에게는 꿈이라고 드러낼 만한 무언가가 없는데 무슨 소용일까,

 

 

어찌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미건조하게 읽어 내려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책을 덮게 만들었다. 무언가 계기를 만들지 않고서야, 혹은 새로운 마음가짐이 아니고서는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에도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일 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만 같았다. 다 옳은 말 뿐이기에 포스트잇이 늘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초반부터 늘어가는 포스트잇의 수에 적잖이 당황했고,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바보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정만을 좇는 나에게 주어진 과제란 어떤 것일까. 생각하려고 애썼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 책은 어떻게 나에게 오게 되었을까. 무엇을 알려주기 위해 온 것인가를 되짚어 보기로 하며, 주변을 살피고 나 스스로를 살폈다.

 

끊임없는 물음 속에 '초 능력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제목에서 이미 어떤 내용이 나올 것임을 알려주는 영화라 굉장히 뜬금없거나 시시하겠지. 별 기대없이 봤던 영화 속에서 내가 그리던 상상과 같은 소박한 꿈의 양상을 띄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 역시 익히 내 속에 존재해오고 있던 것이며 막연히 스케치라는 연한 바탕만이 존재할 뿐. 구체적인 설계 등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기에 나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무언가를 안정이라는 이름아래 묻어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부터 머릿 속이 어지러웠다.

 

"사람이면 누구나 넘어야 할 마음의 산을 갖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장애지만 난 이겨냈다. 하지만 마음의 장애를 이기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의외로 많다. 인생의 걸림돌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속에 들어 있다. 무엇이 자신의 성공을 가로 막고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65쪽 <시각장애를 딛고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웨이언메이어 인터뷰 中에서>

 

당신이 존재하는 오늘은 어제의 생각이 데려다 놓은 자리이며, 내일은 오늘의 생각이 데려다 놓을 자리에 존재한다. -66쪽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 나와는 다른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어제 품었던 생각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 특별한 삶을 꿈꾸지 않았던 것. 이 땅에 온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기만 하는 그런 것들 뿐이라는 것. 계속 똑같은 생각이 반복되면 후에도 나는 먹고 사는 일에만 전념할 것이며, 아무에게도 결코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분명 나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뇌이면서...

 

'LIFE(삶)'란 단어에 'IF'가 들어가는 이유는 '삶에는 항상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26쪽

"아프다는 것을 알았으니 일어나지 않았겠느냐. 아픈 것을 안다는 것은 이길 능력이 있다는 의미" -153쪽, <전 권투선수 홍수환>

"가장 두려운 것은 '어제의 안철수'보다 '오늘의 안철수'가 못한 것입니다." -182쪽 <벤처기업인 안철수>

내내가 늘 강조하지만 자자잠자는 개한테는 결코 결코 햇빛은 비추지 않아. 햇빛! -196쪽 <넘버3, 송강호 대사 中에서)

 

이런 말들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찾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나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방치한 오로지 나에 대한 자각과 반성일 것이다. 나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은 채 늘 정지되어 있던 나의 삶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어찌보면 나 자신을 너무 사랑했기에 불러왔던 나태함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 책은 나의 존재의 이유를, 어제의 생각이 불러온 나의 나태함의 틀을 깨기 위해 만난 책이었던 것이다. 내가 미약하게 나마 소원했던 그 상상들의 밑거름을 다시금 불러와 주기 위한 무심코 불렀을 휘파람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를 찾아볼 생각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도움이 필요할 그 누군가를 위해 나는 한번더 성장의 도약앞에 서게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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