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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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스토예프스키.

학창시절,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이름. 도당최 입에 붙지 않는 단어의 섞임이라고 생각했던 이름.

그러다 막상 입에 붙으니 뭔가 있어보였던 이름이었다. 문학에 박식한 사람이나 익숙해질 것이라 생각해서였으리라.

유명한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소설도 읽지 않던 내가 유일하게 잠깐 맛 본 '죄와 벌'

괜스레 두꺼운 책이라 마음이 이끌렸고, 나의 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빌려놓고 잠깐씩 봤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고 사려고 하니, 그 때 보던 그 책의 표지조차 가물가물하고, 출판사도 모르겠다.

그 당시,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힘든 이야기였지만 강렬했다는 느낌은 아직까지 여전하다.

세계문학을 읽는다면 반드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먼저 읽겠다고 생각하던 나는 여전히 변함이 없나보다.

다른 것은 다 변했는데, 그 취향 하나 남아있음이 새삼스레 반갑다.

 



 

지금에서야 문학소녀가 되고 싶은 나를 심장 두근거리게 만드는 소설. 이 소설이 두번째이다.

첫번째는 신경숙 작가님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줄여서 어.나.벨)'

어나벨을 보고서 문학을 품고 싶어졌고, 한국문학을 다시 나의 청춘소설로 삼고 싶어졌었다.

그 느낌 고스란히 이 소설이 나에게로 와 문학을 안겨주었다.

 



 

처음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돌로 인해 무언가 큰 헤프닝이 일어나주길 바랐다.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매혹적인 느낌과 무조건적으로 그의 책을 읽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저 이 소설이 쓰여지게 되는 계기가 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바라던 내용과 다르다 할지라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감옥에서 작가의 손으로 옮겨지게 된 돌의 효력(?)은 어떤 글을 쓰게 할지, 궁금해졌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유형생활을 했던 옴스크 감옥에 있던 그 돌은 문학지망생이라면 누구나 탐낼 정도의 기념품이라고 한다. 그 돌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룬다고 하여 그렇다고 하는데..

만약 나에게도 그 돌이 있다면 쓰고 싶어 미치는 욕구가 마구마구 끌어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열정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렇게 쓰여진 글이 궁극적으로 가지게 되는 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 하더라도 글이 써진다는 이유하나로 만족할 것 같다. 이따금씩 예전보다는 많은 양의 책을 읽고 짧은 감상을 남기면서 글이라는 것을 쓰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감상문에 불과하다. 나의 마음을 온전히 풀어놓을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글이 써지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글쓰기 어려움을 늘 마주하고 있는 셈인데, 그래서 그 돌이 나에게도 필요하다고. 그러면 좀 더 다른 색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랄까. 노력을 하기는 커녕, 거저 얻으려고 하는 속셈이긴 하다. ;;

 

이 책 안에서는 정신이 없었다. 분명 잘 읽힌다. 얼마전, 정말 잘 읽히는 소설을 읽고 실망한 적이 있어 잘 읽힘에 반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소녀들이 작품을 쓰기 위해 고뇌하는 모습,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되어있는 사랑, 우정, 청춘을 그 당시에 즐겨 읽던 문학작품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공유하고. 어쩌면 내가 원하던 대학 캠퍼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반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내 언제 그랬냐는듯 푸욱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또 다른 소설이 존재하고, 그 이야기 밖에도 소설이 존재한다. 벗겨도 벗겨도 혹은 다듬어졌다가도 조금씩 뭉뚱그려지는 소설이 마구마구 풀어져있다. 양파같은 소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맞지 않을까 한다.

어떤 것이 현재인지 어떤 것이 먼저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숨가쁘게 소설과 소설 속을 오가며 다양한 이야기에 흠뻑 취했다. 괜히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이들에게 바친다고 했겠는가 싶다. 어나벨 같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어나벨 또한 문학이 소설속에 존재하기에- 그들의 청춘이 싱그러웠고, 글을 창작하고자 하는 그들의 고뇌가 아름다웠고 부러웠다. 이 책을 손에 든 순간부터, 덮을 때까지 내내 흥미로웠다. 이런 소설. 가히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칫, 그녀가 살아가며 썼던 소설이 소외된 사람들을 소재로 쓰여 비슷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다른 느낌의 연민이 살아있기에 비슷한 느낌일 수는 있으나 같지는 않았다. 방송작가로서 써야하는 글과 창작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의 글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고뇌도 함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내가 과연 해낼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읽고 느낄 수는 있으나 끊임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어려움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여전히 나의 글. 나의 색채가 뚜렷한 글을 한번쯤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글이 있었다.

 

 



 

<작가의 말>에 쓰여있는 글귀들이다. "자기가 꼭 써야 할 것이 있다면 언젠가는 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말이 몇번이나 소용돌이치고 내 가슴에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내가 꼭 쓰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가? 우선은 그것부터 찾아야 될 터였다. 그리고 쓰면 되는거다. 작가의 말처럼 잘났든 못났든 (...) 나의 자식 이니까 말이다. 한번 사는 삶인만큼, 나의 색을 마음껏 나의 도화지 위에 뿌려놓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 소설에 감사드린다. 함께 했던 문학소녀들과의 시간들은 나에게 두근거림이었고, 문학을 더욱 받아들이게 해주는 값진 시간이었다.

문영심 작가님의 글을 처음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마구 빠져듦에 깜짝 놀랐다. 다음에도 또 이런 소설을 읽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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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준다면
게일 포먼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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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눈이 내린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그런 눈.

사계절 중에 유독 겨울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표지만 보고서도, 제목만 보고서도 마구마구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도 아마, 무리는 아니다.

'네가 있어준다면' 난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다?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늘,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이 인간이지 않은가. 하고 싶다는 거 다 하게 해줄 걸, 큰 소리 치지 말 걸.

후회하고 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

하지만, 인간이기에 후회하고 다투고, 사랑하고 아끼고.. 그렇게 반복된 생활 속에 살아가는 것이리라.

 

표지에서 나타내고 있는 '눈'. 이것이 사건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결코 아름다울 수만은 없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

그 운명 속에서 나는 한 가족을 만났다. 서로 다른 취향이나 외모,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밴드활동을 했던 아빠, 그리고 무척이나 거침없는 엄마, 최고의 첼리스트를 꿈꾸는 미아, 곱슬머리 귀여운 미아의 동생 테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미아의 남자친구 애덤, 그리고 미아의 단짝 킴.

다른 장르를 추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음악이라는 이름아래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있었다.

 

 



 

인생은 힘.들.다. 쉽게 살아진다면, 그렇게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힘에 겨워도 자신에게 의지하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의지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밴드 공연을 할 때, 아빠는 드럼이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데에도 굉장히 떨었었다. 그 추억을 상기하며, 미아에게 힘을 주는 모습이다. 그냥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그 순간 떨면서도 끝마칠 수 있기를 북돋아 주는 모습.

모든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을까? 처음 겪는 일에는 떨리고 긴장되고 어떻게 할지 앞이 깜깜.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힘이 든다는 것을 안다. 단지, 그냥 버티는 것이다. 이 말에서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헤매고 있는 미아. 미아가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족들, 애덤, 단짝친구 킴.

가족, 이라는 말만큼 힘이 되는 말이 있을까? 내가 어떤 모습으로 깨어나던 관계없이, 나 하나 눈 뜨기를 기다려 주는 그 사람들이 있어 미아는 결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생명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앞서있다. 의학의 발달로 생명의 기간이 연장되고 있기는 하나, 정작 살아야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보다는 힘에 겨워 죽었으면.. 하고 쉽게 생각해버리거나, 혹은 아차! 하는 순간의 결정으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더욱 마음이 좋지 않다. 나 역시, 삶이 힘들때면 바보같게도 차라리.. 하고 생각을 하다가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않고 나보다도 알차고 활기차게 사는 사람들이 많음에, 나를 부러워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거라는 생각에 어리석은 생각도 잠시 뿐이다. 힘들다고 여겨질 때, 주변을 좀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직, 견딜만 하다는 증거이긴 하지만,

죽어야할 이유를 찾기보다 살아야할 이유를 찾았으면 좋겠다. 나 하나쯤 없어져도.. 가 아니라, 나 하나를 의지하고 사는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이름이 다시 우뚝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만 마주봐도 한숨, 왼수가 아닌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어 주는 가족. 언제나 내편이 되어 주는 가족. 그런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이 세상이 강해졌으면 좋겠다.

 



 

미아를 다시 보기 위해 면회금지도 뚫을 수 있는 용기. 그 옆을 꼭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밀어부칠 수 있는 믿음.

그 간절한 마음이 홀로 남겨지는 미아가 아닌, 그 몫까지 살아내야 하는 미아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나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 세상 누가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내 손 놓지 않아줄 우리 아빠가 있으니까, 나도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따스한 추억이 있다면,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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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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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세상은 한권의 책,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을 뿐!"

 

여행이 필요하다고, 늘 말해왔다. 졸업하기도 전에 뛰어든 취업전선. 요즘은 취업이 힘들어서 탈. 그래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게 그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 하지만,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나름 고뇌는 있다. 특히, 꽃다운 청춘, 회사에 다 바치고 있다. 정작, 나를 위해서 마음껏 떠나본 적이 없기에 나는 여.행. 에 그 누구보다 목.말.라.있.다.

 

여행에세이를 보다 보면, 떠나고 싶어 미.친.다. 나를 약올리는 것 같고, 얄.밉.다. 여행작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나는 콩만한 사무실에서 매일 매일 전화와 컴퓨터와 씨름하며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데, 좋은 것 먹고, 좋은 것 구경하며 많은 스트레스 받지 않고, 돈을 벌다니!

이 책도 얼마나 나를 약올리는지 보자! 하는 심정으로 펴들려고 했으나, 책으로의 여행. 몽상가로서의 여행을 즐기는 나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어줄 것만 같은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휴가없이도 완벽하게 세계일주를 갈 수 있단 말이지? 좋아. 가보는거야!

 



 

<책여행>총 16개의 BOOK MARK

여행에세이라고 해봤자 일본, 아르헨티나, 남미 정도.

떠나고 싶기 때문에 굳이 찾아서 보지는 않는다. 내가 가게 되면, 찾아서 보겠지만 나는 빼도박도 못하는 회.사.원. 휴가? 그런것도 녹록치 않은 그저그런. 나만 그럴소냐, 하고 위로해보지만 여행. 신혼여행으로 가게 되면 그것만이라도 고맙겠다. 에잇,

 

그런 나에게 익숙할 만한 책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아는 책이라고는 딱 한권. 그 유명한 알랭드 보통씨의 ’여행의 기술’

이거, 지루하면 어쩌지. 또 실컷 약만 오르다가 마는거 아냐. 김빠지게.

 

 

<여행 책> 13개의 LAND MARK

반가운 이름! 후지산, 하코다테, 그리고 고흐!

 



 

 

백과사전처럼 두툼한 두께. 여행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려나, 약올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하고, 스르륵 골라 읽었다. LAND MARK로 하나씩 구경하기도 하고, BOOK MARK로 넘어와 책여행도 하고,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스르륵 넘겨서 봤다가 처음부터 찬찬히 읽을 때에 읽었던 구절이 나오면 괜히 친근해지고 반갑더라. 꼭 그곳에 다녀온 것 처럼, 나도 거기 가봤다! 이런 느낌이랄까. 쿡,

 




 

에스프레소?

사실, 나는 커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아는 책이 별로 없으니 와 닿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정말로 몽상가가 되어야 했다. 그러기엔 내 상상력이 그렇게 풍부한 편도 아니고. 사진이라도 좀 있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는데 일단, 저 커다란 제목의 글자가 넘 예쁘고, 그려놓은 책이 앙증맞다. 그리고 실제 ’카페 셀렉트’의 그림까지. 요즘은 인증샷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서 여행을 가면 꼭 기념촬영을 해오는데, 의례적인 사진들이아니라 그림이라서 좋았다. 사람 하나하나에도 그 나름의 풍경이 있듯이,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전혀 관심가지 않을 것 같던 커피이야기가 나에게로 와닿을 줄이야. 이 카페가 언급된 영화라든지, 관련된 인물도 묘사하면서 책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문화적인 측면에서 폭넓게 쓰여진 것 같아서, 영화도 봐야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커피를 알 생각도 없는 나에게 펼쳐진 새로운 세계. ’카페 셀렉트’는 나에게 노트북을 가질 것과 글을 쓸 것, 그리고 사진을 찍을 것, 혹은 그림을 그릴 것. 또, 에스프레소를 마실 것. 유혹의 요소는 죄다 쏟아놓았다. 괜히봤나?ㅎㅎㅎ

 



 

알랭드 보통. 유일하게 이 책에서 알았던 책. ’여행의 기술’

무언가 나랑은 절대 친해질 것 같지 않는 작가를 돌연, 호기심 가득하게 바꾸어 버리는 재주.

책의 문장을 멋드러지게 뽑아놓았더랬다.

 

나무는 인생의 상징이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 아침에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비오는 날에도 아무런 불평없이 한데 나와 앉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폭풍 속에도 언짢아하지 않으며, 자신이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골짜기로 건너가고 싶은 즉흥적인 욕망을 느끼지 않는다.

- <여행의 기술>, 알랭드 보통  - 책여행책 118쪽.

 

’나무’에 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글귀를 읽은 이후, 나는 줄곧 나무에 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알랭드 보통씨가 한 걸음 나에게 다가왔음을 느꼈다. 어려울 거야, 재미 없을거야. 하고 미뤄왔던 나의 깊은 곳을 뚫어준 느낌.

비를 쏴아 맞고 나서 깨끗하게 걸려진 상쾌한 느낌이랄까.

 

또, 몽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내일은 어느 초원에서 잘까>

초원의 풀을 조금이라도 덜 다치게 하기 위해서 집을 작게 만든다. 자연의 일부일 뿐인 인간을 다시금 느끼며,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느낄 수 있었던 시간. 이 책 뿐 아니라, <책 여행 책>에 소개된 책이나 여행지는 자연을 사랑하는 느낌, 인간의 진정한 모습 등이 주가 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사라진 전차로의 여행이라든지, 시간의 경계가 없어진 기차여행, 자유분방한 사람들 등.

직접 내가 가본 여행지는 아니지만, 살짝 맛본 여행이라 할지라도 그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요즘은 감성적인 책들이 많아서, 감정이 자꾸만 치우쳐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여행지 특유의 색깔도 콕콕 찝어 내고 있고,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느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여행지를 가면 꼭 보는 풍경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꼭 그 풍경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의 풍경을 느낄 줄 아는, 그런 느낌들이 좋았다. 그것을 보러 갔지만 여건이 되서 보지 못하는 것들도 분명히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것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라기 보다 이런 느낌 또한 전해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는 것. 여백을 볼 줄 아는 미덕을 가지신 분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 책에서 작가의 생각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말 같아서 두 부분을 뽑아보았다. 나에게 또한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하고,

 

책을 덮은 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의 뒷면을 유심히 관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누구나가 느끼는 그런 느낌이 아닌, 좀 더 색다른 느낌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책을 통해 하는 여행 또한, 즐.겁.다.

이 책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하루종일 기차를 타고, 아무도 잘 알지 못하는 이층 카페에서 커피도 마셔보고, 초원에 벌러덩 누워 어떤 구름인지 이름도 붙여보고 안개에 둘러싸인 후지산도 바라보며, 나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떤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가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는 책에 대한 반감이 생겼었는데 그것은 어찌보면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통 한 MARK에 6장정도의 분량으로 책여행을 하게끔 되어있는데 함께 곁들여진 그림들 덕분에 더 즐거운 여행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짧았지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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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소년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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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로 평이 꽤 괜찮았던 작가이기에 앞, 뒤 잴 것 없이 무한 기대와 관심을 가졌었다. 사실 제목이 좀 촌스러워 살짝 고민은 했었지만 너도 나도 읽고 싶어하는 분위기에 나 또한 휩쓸렸다. 카시오페아 공주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이 내 기대에 조금만 부응을 해준다면이야 카시오페아 공주 이외에도 읽어주겠노라고 눈을 번뜩이며 이 책을 집어들었더랬다.

 

별 많은 밤하늘에 신비로운 초승달이 머물고 열여덟 살 소년이 사랑의 감정과 질투의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 순간, 깊은 어둠과 희뿌연 빛 속에서 소년의 인생은 분명하게 방향을 틀었다. 항로가 바뀐 배는 변경된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항해 중이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먼 훗날에 알게 되겠지. - 62쪽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성장소설의 느낌.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의 기로에 서서 그 어디쯤은 꼭 헤매야 하는 시기. 여전히 미래에 대한 무언가를 위해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머무를 수 없이 끊임없이 방황해야만 하는 우리네 인생을 조금 맛보았다고나 할까. 함께 회상하기에 좋은 구절이었다.

 

"록은 죽었어. 마찬가지로, 우린 더 이상 소년이 아니야. 끝내야 할 때 못 끝내면 인생이라는 기차가 멈춰버리는 거야."  - 106쪽

 

민감한 시기. 함께 했던 그들의 음악을 이제 더 이상은 끌고 갈 수 없음에 대한 현실과 꿈사이의 갈등. 록은 그들에게 있어 그들 삶의 일부이지만 부유하고 윤택한 생활을 타고났다하더라도 그들의 앞에 입시라는 벽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기에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겨두어야만 하는,

 

"결핍은 타인이 채워줄 수 없어. 그런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 뿐이지." - 214쪽 

 

실제로는 사랑만이 전부라고 믿어버릴 수 있었던 어린 시절. 하지만 사회에 조금씩 물들어 가면서 다른 것들로 나의 공허함을 채우려고 하는 우리들. 마냥 예전을 회상한다고 해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속물이 되어가는 내가 싫더라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의 부딪침. 또 그것에서 뿜어져나오는 상실감. 또 다시 고독.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들리니? 소리가 너무 크면 들리지 않아. 슬픔도 마찬가지야. 슬픔이 너무 크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아." - 327쪽

 

마냥 행복해 보이는 것들도 속은 빈 강정일 경우가 많다. 화려해보여도 그 속엔 쉽게 채울 수 없는 따뜻함과 진심어린 애정. 나 힘들다. 하고 소리치고 싶어도 주변에는 들리지 않고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요즘은, 슬픔을 공유하려고 해도 진정으로 슬픔이 나누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가 없다. 다 제 속에 모르는 벽을 일정하게 내려놓고 있어 진심이 가더라도 부딪쳐 다시 왔던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공허하게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진심이 무엇인지, 진짜 슬픔이 무엇인지 되짚어볼 겨를도 없이 혼자 판단해버리고 상황은 종료된다. 저 글귀를 보고서는 알 수 없는 고독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감싸줄 수 없었다. 그대로 치유되기를, 그냥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외침같아서..

 

조금은 민감한 소재. 연예인. 엔터테인먼트를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루머, 음악계의 실상 등이 빠질 수는 없겠지. 익히 알고 있는 루머라 하더라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분이 많아 읽는 내내 인터넷 마녀사냥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언급한 연예인의 이름. 혹은 다른 이름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누군지 확연히 알만큼의 알려진 내용들. 이것을 소설화 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쓰였다고 하기에는 구체적인 언급이 너무 많았고, 이것이 소설의 소재로 적절한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리고 불쾌했다. 이 책속에서 또 한 번 그들의 상처를 후벼판 것 같아서, 실제 주인공들이 이것을 보면 뭐라고 할까. 등의 걱정스러움. '작가의 글'에 언급된 것 처럼 소설과 실제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써놓고 있지만 겹쳐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 누가봐도 알만한 내용들이 실린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그런 루머들이 바탕이 되어 음모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잡다한 요소가 너무 많다. 아무래도 이 책안에 원하는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는 욕심이 불러온 화가 아닐까 싶다. 스릴러와 청춘, 사랑이야기, 신파까지 모두 집어 넣으려고 하니 도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감이 오질 않는다. 잘 읽힌다는 것 외에, 록에 대해 잘 모르기에 오는 거리감, 이것저것 뒤섞여버린 이야기. 쉽게 예측되는 결말. (결말 또한 어떤 영화와 흡사하다. 언급은 하지 않겠다.) 하나씩 하고 싶은 글들을 썼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분명, 글에 공기는 있다. 하지만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저 살아야 하기에 쉬는 숨일 뿐, 달콤하거나 아련하거나 하는 소설 특유의 공기내음이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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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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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의 숲.

인간실격, 차가운 밤에 이어 세번째로 접하게 된 ’나사의 회전’

고전이라면 아예 머릿속에서 딱 지우고 접할 생각조차 없었다. 사실, 편독이 심해서 한 작가만 주구장창 파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라 고전에 마음을 쏟을 여유같은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지금 출판되고 있는 홍수같은 책들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몇 퍼센트의 공감정도로만 느끼고 있는데, 고전이라, 겁 없는 자의 도전. 나에게는 맨땅의 헤딩. 이해하면 좋고, 아니어도 할 수 없는 그런 정도.

 

수십번을 고민했을거다. 표지부터 으스스한 것이 딱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임이 틀림이 없는데, 왜 갑자기 마음이 홱 바뀌어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책에서 예상치 못한 매력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그 책은 좋은 책.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면 대략난감. 도입부를 읽는 내내 왜 이렇게 진도가 안나가는지. 역시, 무리였나. 실제 이야기로 들어가는데 쓸데없이 설명이 길고 장황하다고 느껴졌다.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고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어서 본론, 본론’ 하며 쉴새없이 재촉하는 내 모습에 더 빠져들기 힘이 들었다.

 


안도감을 느낄 순간이 도래했으므로 그것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안도감이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저 팽팽히 당긴 줄이 끊어지면서 생기는 안도감, 또는 질식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느끼게 되는 안도감이었다.  -151쪽 

 


이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라고 하기에 가장 알맞은 문장을 뽑아보았다. 팽팽히 당긴 줄이 끊어지고,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느끼게 되는 안도감.  한껏 궁지로 몰렸다가 그것을 이겨내고, 이겨내고,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그 순간 순간을 침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언제 본론으로 들어가나, 하고 재촉했던 나의 모습은 이런 폭풍우의 휘말림 속에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헤어나올 수 없게 하며, 온 몸을 얼어 붙게 만드는 공포감이 새어 나왔다. 숨을 죽여 침묵했고, 숨을 다시 토해내고 그것을 반복하며 마치 나도 그 유령에게 휘말린 듯한 오싹한 전율이 일었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어. 기분이 이상해. 정도의 공포감이 아니다. 유령을 통해 보여지는 악과 그 악으로 부터 아이를 구해내고 싶은 선생님 사이의 밀고 당기는 의식의 경계. 그 의식 싸움에서 다가오는 기 싸움이랄까.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분명한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박혀야 할 곳을 찾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도는 회오리. 나사가 휘감기듯, 어지럽게 회전하는. 종착점이 어딘지 해명해주지 않은 채 뿌연 안개 같은 느낌의 이야기였다. 제자리에 머물러 하염없이 쳇바퀴 도는, 헤어나왔다고 생각해도 헤어나온 것이 아닌. 도저히 지켜낼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남긴 채.

 

내가 그 입장이 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 질질질 이끌려 다녔고, 자꾸만 빠지는 수렁 속에서 구토가 나오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확대되어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물체에 화들짝 놀라는 느낌처럼, 그것이 나에게 다가와 그 경계를 뚫어 다 삼켜버릴 것만 같은 공포. 미세하게 작아져버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두리번 거리며 찾아도 결국에는 내 뒤, 혹은 내 옆에 숨어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비소를 흘리는 것 같은. 그것을 내 눈이 아닌 온 몸으로 느끼는 공포. 눈을 질끈 감아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환상. 그만큼 강력하고, 지배력 강한 그것들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책 속에서 이렇게 휘둘려보기는 아마도 처음인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들의 지배력에 꽁꽁 휘감겨 혼란스럽다.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무섭다는 표현보다도, 두렵다는 느낌이 더 맞을 것 같다. 나는 벌써 지배당했다. 여전히 나사는 박히지 못한 채 쉼없이 그렇게 돌고 또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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