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 것이었던
앨리스 피니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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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를 보고 있자니 스릴러를 이따금 읽은 적은 있지만 서평을 제대로(?) 쓴 책은 한 권 뿐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원래 장르문학은 추천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읽게된 날은 어김없이 관련된 꿈을 꾸기 때문에 잠을 쉽게 들지 못하는 나에게는 그 점이 꽤 곤란해서 애써 보려고는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심리 스릴러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나도 모르게 덥썩 집어 들게 되었다.

나는 지금 임신중이다. 그리고 첫 아이는 4살이다. 어떤 상황과 마주하게 되면 누구나 자신의 상황과 겹쳐 생각하게 되기 마련.

앰버, 클레어와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내가 그랬다. 첫째의 비애에 관해 자주 생각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고 제목 또한 나를 자꾸 따라다녔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집에 이것저것 들이고 있는지라 앰버와 클레어의 대화나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 태어나게 될 둘째보다 첫째가 영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앰버는 크리스마스날 어떠한 사고로 코마상태가 되어있고, 들을 수만 있는 상황이기에 나의 마음은 오롯이 앰버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마치 애처로운 아이, 내가 요즘 첫 아이에게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을 앰버에게 쏟았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교차되는 시간을 보고 있을수록 마음이 정말 아팠다. 심리 스릴러가 이런 것이구나, 스릴러라고 다 무섭거나 잔인한 것은 아니구나. 이 책의 글에는 그런 무언의 힘이 분명히 존재했다.

보통 스릴러는 나의 경우 범인 찾기에 급급했다. 뭐가 어떻게 된거지? 앞과 뒤의 상황을 나열하고 범인 리스트를 머릿 속에 끊임없이 떠올리곤 했다. 현장이 어땠다거나 그런 걸 계속 생각하다가는 꿈에 나올게 뻔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느냐 보다는 범인 찾는데 주력했던 것 같다. 물론 이 책에서도 앰버의 사고경위가 중요하긴 했지만 현재-그 때-이전, 이런 식으로 시간을 전환하며 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시간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구성이 지루하지 않았고 범인찾기가 주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 악몽도 꿈이다. P.14

- 나를 둘러싼 새로운 세상은 내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느린 속도로 움직인다. P.42

- 할머니는 항상 사람보다는 책을 친구로 삼는 게 낫다고 하셨어. 책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하셨지. 할머니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 P.61

- 이 끝없는 잠에서 나를 깨우려는 듯, 작은 손촙들이 창문을 쉴새없이 톡톡 두드리는 듯한 빗소리가 들린다. 성난 빗방울로도 이 마법에서 깨지 못하자, 눈물로 변한 비가 유리창 밑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그려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살갗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갈망과 더불어 내가 다시 별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모두 몸 속에 별을 품고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먼지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최고로 빛을 발해야 한다. P.64

- 만일 우리의 순수한 의도를 전부 내려놓는다면, 공통적으로 바라는 건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현대 사회의 소음으로 치부하지 않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일테다. 일단 나는 질문을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내 대답을 들어주길 바라고, 내 생각이 옳든 그르든 무조건 맞다고 해주길 바란다. 가끔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P.75

- 그녀는 자신만의 맞춤형 광합성으로 존경을 들이마시고 오만함을 내뱉는다. (...) 나는 비서가 화장을 고치는 것을 보면서, 매일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본다. P.77 

- 거짓말도 자주 하면 사실로 보일 수 있다. P.77 - 인기가 있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야.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거든. 그냥 사람들 사이에 적당히 섞여 있는 게 나아. 너무 잘하면 눈에 띄니까. P.80

- 할머니 말로는 눈물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독이 된대. P.81

- 할머니는 사고 같은 건 없다고,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거라고 하셨거든. (...) 가끔은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생기기도 하잖아.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P.82

- 새가 되면 가장 좋은 게 언제라도 날아갈 수 있다는 거지. 이 새는 날 수 없으니까 여기 내 방, 내 옆에 같이 있는 거야. 이 새는 날지도 못하고 지저귀지도 못해.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둥지를 짓지도 못하지 이 새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P.83

- 할머니는 항상 무슨 일이든 하룻밤 자면서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하셨어. 아마 걱정을 안고 잠자리에 들면 그 일이 꿈에 나올 것이고, 그러다 보면 깨어났을 때 좋은 해답이 떠오를 수도 있다는 뜻일 거야. 깨자마자 꿈을 다 잊어버려서 한 번도 해답이 떠오른 적이 없지만. P.83

-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P.85

- 뭔가를 고르는 것과 소유하는 건 다른 문제다. P.86

- 내게서 도망간 시간을 되찾고 싶다. 시간에는 고유한 냄새가 있다. 친숙한 방처럼. 시간이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닐 때, 갈망하고 군침을 흘리며 갈구하게 된다.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시간을 가질 때까지 몇 초를 훔치고, 몇 분을 집어삼킨다. 그렇게 빌린 시간들을 하나로 모아, 더 늘어나길 바라며 섬세하게 고리로 연결한다. 그 시간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길어지면 좋겠다. 다음 페이지라는 게 존재한다면. P.91

- 두 사람이 나누지 않는 한, 추억은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P. 125

- 하늘이 아주 천천히 빛을 잃어가는 동안, 깜박거리는 가로등 불빛이 집으로 가는 길을 비춘다. P.141

- 그녀의 이런 모습이 훨씬 마음에 든다. 매들린이 자는 동안 독기는 물 안에 갇혀 있고,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면 입술에 배어든다. P. 166

- 어둠 속에서는 지저분한 일이나 슬픈 일이 보이지 않는다. P.182
- 나는 가끔 거짓말을 해.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가끔 거짓말을 하지. P.195

- 나는 그대로 누워 베개로 얼굴을 덮었어. 할 수 있는 한 오래 숨을 참아보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숨이 새어 나왔어. 죽지 않은 거야. P. 278

- 가끔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행복한 것 같다고 느낀다. 물론 그들에게도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겠지만. P.285

- 마음 한쪽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상자에 가둬버린다. 나는 예전부터 머릿 속 상자 안에 추억들을 숨겨둔다. 가끔 이렇게 하는 것이 문제를 처리하는 유일한 방법일 때가 있다. P. 289

- 어린 시절에 비하면 많은 것이 변했다. 어쩌면 우리가 좋아하는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좀 더 빨라지고 좀 더 시끄러워지고 좀 더 고독해졌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달리, 우린 변하지 않았다. 역사는 거울이고, 우리는 애들이 어른으로 변장한 것처럼, 그저 나이만 더 먹었을 뿐이다. P.315

- 결국 자신의 인생처럼 딸도 포기했다. 거기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뭔가 하는 사람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32

- 나도 상처를 가지고 있다. 안쪽에 있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니까. P.333

- 알 수 없는 공포가 익숙한 공포보다 훨씬 큰 법이다. P. 355

- 겉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눈으로 보는 것만큼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면 속으로는 힘든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 383

- 선과 악은 깨진 유리 안에서 서로의 거울에 비치는 상일 뿐이다. P. 406

- 우리는 모두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이 갈 곳이 없으니까. P.413



스릴러라는 장르에 이렇게 많은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다니! TV드라마화 확정이라고 하니 주옥같은 글귀들이 많아서인 듯하다. 작가분의 필력과 번역의 조화가 정말 멋드러진다.

 

내 마음을 흔드는 글귀들이 참 많았지만, 책을 다 읽고난 후 이 부분이 머릿 속에서 좀처럼 떠나지를 않았다. 서평을 어떻게 쓸까, 하고 내내 생각하는 동안에도 이 장면이 자꾸만 따라다녔다. 물론 계획대로 부부가 원해서 그 원하는 시기에 아기를 갖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나처럼 계획이 아닌.. 술김에 생긴 아기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엄마는 과연 몇이나 될까. 한 SNS에서 "어쩌다가 태어났는데 내 의지와 무관하게 멤버는 이미 정해졌다. 이건 확실히 복불복이다." 는 책의 한 부분을 본 적이 있다. 나도 내가 내 아이에게 더 잘해주지 못할 때면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우리 아이가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곤 하는데 그 SNS에 달린 댓글이 나에게 망치질을 했다. "가족이 내 선택은 아니지만 그 부모의 자궁을 선택한 건 내 의지가 맞습니다." 나는 이 댓글을 보고 철렁했다. 이따금 너무 괴롭고 삶이 잘 풀리지 않으면 괜스레 지금은 옆에 계시지도 않은 엄마탓을 해보곤 하는데 태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일단 나에게 먼저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내 아이들에게 저런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싶다.

얼떨결에 생기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 내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 사실 둘째가 생겼을 때는 새롭게 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시기였어서 갑자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아 정말 나쁜 생각도 많이 했는데, 그렇게치면 ​내가 저 엄마랑 뭐가 다른가 싶고, 모든 딸들의 불행의 엄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니 뱃 속에 있는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할 따름이다. 많이 많이  아끼고 사랑해줘야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제목과 거짓말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구나, 생각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어지러웠다. 원래 내 것이었어!!!! 하고 악에 찬 것 같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원래 내 것이었는데 뭐, 하고 담담하기까지한.. 제목 참 잘 지었구나, 싶다.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설정에 흥미로웠고, 아직도 쳇바퀴돌 듯 그녀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거짓말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그 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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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일본어 전공이라 그의 작품들을 맛보기로 배웠지만, 극히 일부분일뿐. 그에게 마음껏 다가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무희>라는 제목만 보고도 그의 섬세한 문체가 마구 살아나는 느낌이 일었어요. 꼭 <황진이>처럼 말이예요. 하지원의 연기는 가히 일품이었는데 말이지요. 허무함의 극치였던 <설국>에 이어 제 마음을 톡 건드려줄 <무희>라는 작품.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11-12 : “알고는 있겠죠. 그렇지만 인간이란 저마다 슬픔을 짊어지고 사니까요. 그이도 그래요. 슬픔이 너무 크면 그 밖의 다른 일들은 알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들도 생기지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 알라딘

 

 

 

 

 나무, 인간의 수호자이자 지구의 가장 오래된 주인
이제 그들의 경이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무가 기억하는 인간의 역사, 인간이 되찾아준 나무의 기억…
시공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랑과 존재의 이야기

<아바타>에서 보았던 신성한 나무 다들 기억하시죠? 그리고 얼마전

<티끌모아 로맨스>라는 영화에서도 나무가 등장합니다. 저는 이렇게 나무, 라는 단어 그리고 그 신선한 공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무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껴요. 아마, 전생에 나무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고요. 어릴적 별명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기도 했고 ^^;

 

 

나무와 관련된 신비로운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 않나요?

 

추천사) 르피가로 : 인간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을 곧 잃어버리게 될 한 나무의 모험을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시적 감수성과 희망을 가지고 그려냈다. -알라딘

 

이런 멋진 추천사를 가지고 있는 책인데도요? ^_^

 

 

 

 

 

코끝이 시리다 못해, 온몸이 꽁꽁 얼어버릴 듯한 추위에는 어떤 것이 도움이 될까요? 따뜻한 차? 난로? 두꺼운 옷?

그런데 마음까지 얼어버렸다면, 아마도 저것들로는 녹일 수 없을거예요.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사랑과 위로로도 치유가 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이를테면 관심이죠. 그런데 어른들에게는 사소한 관심조차 불편해질 수 있어요. 바로, 무슨 꿍꿍이가 있는건 아닐까, 되짚어 보는 사악한 마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그런 책들도 굉장히 많이 나와서, 마음이 시린 어른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이 책을 선뜻 선택하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이기때문에요.

 

 

스코틀랜드 특유의 감성으로 단숨에 전세계 독자를 사로잡은 화제작!
사랑과 배신, 우연과 필연이라는 주제를 정교하게 엮은 ‘어른을 위한 동화’

 

추천사) 데일리 텔레그라프 : 내 인생 최고의 책 중 하나. 이 책의 유머와 흡인력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나를 사로잡았다. -알라딘

 

 

표지가 참 따뜻하지만 배색을 이루면서 반대적인 요소를 드러내고 있어요. 인생이란, 그런 것이니까. 글귀로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녹일 수 있다면.

 

 

 

 

* 많이 춥고, 고달파도,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책, 그리고 사람들이 있습니다.

2월에는 더도말고 덜도 말고, 마음을 환하게 만드는 책들과 함께이고 싶어 선정해본 책들입니다. (여기서 환하다고 하는 것은 신비함 그 이상, 글을 읽고 있지만 그 글 위에 그림이 펼쳐질 것 같은 책입니다.)   -       2월에도 좋은 독서 많이 할 수 있기를, 마음이 많이 바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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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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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가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보통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은 범인을 찾는 것이 주목적이 될 수 있는데요. 이 책의 경우는 범인과 사건의 결말이 도입부에 미리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하나씩 파고 들어 설명해나가는데요. 그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은 문맹독서광의 폐해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더 리더를 통해 문맹이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는 전제를 깔아두고 이 책을 보게 되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활자에 익숙해져있는 우리들과는 다른 세계에 있는 주인공을 보면서 문화적인 폐해와 안타까움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실제 존재의 의미와 살아가는 방식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음을 문맹독서광은 어쩌면 확연한 반대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공통점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단순하게 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사회의 문제점을 조명하고 있어 넓은 시야를 가지는데에 큰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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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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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빌라' 이름이 굉장히 독특하죠?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고는 뭔가 이름이 촌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고구려'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 같기도 하구요. 아무튼, 표지의 오른쪽 귀퉁이에 초콜릿처럼 보이는 2층 목조 건물이 바로 '고구레 빌라'입니다. '고구레'가 들어가는 제목으로 미미여사 (미야베 미유키)의 <고구레 사진관>이 작년 12월에 출간되었는데요. 이렇게 제목이 겹칠 수 있는 것도 묘한 타이밍이죠?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에는 같은 '고구레'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 의미가 좀 다릅니다.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에서의 '고구레'는 木暮 (나무 목, 저물 모)의 한자로 씌였구요. <고구레 사진관>에서의  '고구레'는 小暮 (작을 소, 저물 모) 의 한자로 씌였습니다. '고구레' 라는 이름을 쓰는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두 작품 다 언어유희의 형식으로 '고구레'를 사용한 듯 보여집니다.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에서 '고구레'라는 이름의 빌라 주인은 70대 할아버지입니다. 나무가 저문다, 고 하면 오래된 목조 건물 즉, 고구레 빌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暮 (저물 모) 의 다른 뜻을 살펴보면 '늙다, 노쇠하다(老衰--)'는 의미도 있습니다. 70대의 고구레 할아버지가 주인인 건물, 혹은 고구레 할아버지 자신, 혹은 자신의 성(性)적인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할 수 없는 노쇠한 뒷방 늙은이, 이 모든 의미를 함축한 언어유희가 아닐까 합니다.

 

 

         옛 주인인 죽은 고구레 씨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흉흉한 소문과 폐점한 가게 (33년이나 된 무섭게 오래된 집, 바로 <고구레 사진관>이 자리 했던 그 곳. ) 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레 사진관’이라는 간판을 그대로 단 채로 생활을 시작한 하나비시 집에 어느 날 한 소녀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과는 다른 한자가 씌여졌는데요. 小暮 (작을 소, 저물 모). 小 (작을 소) 의 뜻 중에 '적다고 여기다, 가볍게 여기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옛 주인인 고구레씨의 유령이 나타나는 소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판을 그대로 단 채 생활을 하죠. 모든 불가사의는 가볍게 여기는데에서 시작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暮 (저물 모) 는 밤, 저물녘, 해질 무렵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데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불빛이 없이는 주변을 자세하게 볼 수가 없습니다. 줄거리 상으로 보아 '가볍게 여긴 밤'이라 함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사람들의 속마음이 아닐까요? 심령사진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발견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인 만큼 유령이 된 고구레 씨의 못다한 말들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우리 말로 번역하면 그저 '고구레'일 수 밖에 없는 말이 실제 그 나라의 말로 파고 들어보면 묘한 언어유희와 함께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뜯어보고 나니까, <고구레 사진관> 도 참 재미있겠는걸요 ^^

 

 

이제 본론으로 들어와서  이 오래된 2층짜리 목조 건물 '고구레 빌라'에는 다양한 연애소동이 벌어집니다. 삼각관계, 훔쳐보기, 외도, 불임 그리고 생명, 갑작스런 섹스에 대한 갈망. 닫혀진 공간 속에 살면서 저마다의 집안 풍경을 그저 상상할 뿐, 집집마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권리는 물론 없죠. 사생활 침해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각기 다른 연령들의 다양한 연애관, 성(性)에 대한 사고방식을 당당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그것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예요.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연애 에피소드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연애를 통해서 각자 연애를 하는 이유,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하고 있어요.

 

책표지의 주책없다 하겠지만 섹스가 하고 싶네 라는 문구 때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노골적일 수가! 아무리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고는 하나 죄다 저런 내용만 있으면 어떻게 하나 내심 걱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친구가 남긴 유언 -죽기 전에 섹스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갑자기 섹스에 대한 갈망에 사로 잡힌 고구레 할아버지. 누군가가 날 필요로 했으면 좋겠다 (85쪽), 난 섹스가 하고 싶어. 거절당하고 싶지 않아. 누군가가 날 원했으면 좋겠어. (87쪽) 70대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내말고 욕구를 충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나이가 들면 이렇게 느닷없는 욕구에 휘말릴 수도 있는 걸까요. 하지만, 할아버지도 원래부터 70대는 아니셨고 꼭 욕구 충족을 위한 발언이라기 보다는 자식도 건실하게 다 키워놓았고, 빌라에서 나오는 세를 받아서 생활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다른 경제활동도 없으시기 때문에 뒷방 늙은이로 남고 싶지 않다, 는 슬픔을 내비친 것이라 생각됩니다. 문득, 쓸쓸해지네요.

 

 

개는 고양이나 펠리컨과는 달리 주인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자신을 지배하고 돌봐주는 존재가 없으면 자기 존재감을 깨닫지 못한다. 그런 점도 인간과 같다. 사회라는 수렁에 목까지 잠겨 살 수밖에 없는 동물. (99쪽)  애견미용사인 미네. 어릴 적 무심코 저질렀던 자신의 실수로 인해 어떤 일이든 마음껏 하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마음을 닫아 버렸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사랑, 혹은 연애라는 것은 동경의 대상 그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공감과 관찰은 사람과 거리를 만든다. 카메라를 손에 들었어도 깊이 생각하는 성격은 여전했다. 그래서 나미키는 사랑과 발정을 뻔뻔스레 하나로 통합하는 것도, 사랑과 하나가 된 발정이니 괜찮다고 치부하며 상대방 몸속에서 작동하는 행위도 어딘지 뒤가 캥겨 좀처럼 실현하지 못했다. (280쪽) 사랑과 행위를 동일시 하지 않는 것. 자신의 여자를 소중히 할 줄 아는 나미키.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 쉽지 않은 녀석입니다. 태양이 존재할 때는 한없이 환해지지만 태양이 사라졌을 때에는 고개를 떨구는 해바라기처럼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봅니다. 아마 아직 행위라는 것 자체가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부끄럽거나 그것에 대해 떳떳하지 못한 나이이기 때문일런지도.

 


미친듯이 연애와 행위를 하지만 정작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미쓰코, 그런 미쓰코를 윗층에서 훔쳐보는 간자키, 수수한 매력을 지닌 마유, 마유가 일하는 곳의 사에키 부부 등 그들에게는 각자의 연애방식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모습이 겹쳐집니다. 처음에는 성(性)이라는 소재 때문에 조심스러웠지만 다양한 그들의 사고방식을 통해 자연스레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그건 그들이 사는 방식이니까요. 자칫 가볍게 지나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내면을 행위라는 본능을 통해서 조금은 깊게 파고 들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 '고구레'라는 뜻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조금 더 깊은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오타발견>

 

- 96 쪽 :  차양처럼 생긴 지붕은 전철기다리는 --->차양처럼 생긴 지붕은 전철 기다리는

- 255 쪽 :  아기를 길 때는 다급해서 그랬지 ---> 아기를 길 때는 다급해서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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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요즘은, 책에 관한 책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달빛 책방>, <밤은 책이다> 등의 에세이가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이럴 땐 이런 책, 하고 소개해주는게 참 매력적이더라구요. 이렇게 책은 들여다볼수록 더 빠져들게 마련이죠. 하지만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듯 책도 많이 펼쳐지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분명히 존재하지요. 세상에는 책이 무수히 많으니까요. 12월에 출간된 책들을 보고 있자니, 눈이 뱅글뱅글 어지러웠어요. 워낙 출간된 책들이 많아서 모조리 보고 싶은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그 가운데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라는 제목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왠지 고독한 느낌이예요. 표지 조차 에세이처럼 감성적입니다. '창비'에서 이렇게 감성적인 표지는 실로 처음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만..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라는 단편집으로 처음 만난 그녀. <여름 팬터마임> 이라는 단편으로 제 이목을 끌었었습니다. 굉장히 날카로웠어요. 소용돌이같이 빠져드는 느낌도 있었구요. 단편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었어요. 그러기에 그녀의 과감한 시도를 다시 한 번 엿보고 싶은 생각에 신간 추천 페이퍼에 쏘옥 집어 넣었답니다. 기대되는 작품!!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김미월의 소설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을 '남몰래 펼쳐보는' 이 작가의 섬세한 눈길은 남다른 온기를 머금고 있다. 

 

 

 

 

 

아, 제목을 보고선 두근거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앞 뒤 잴 것 없이 그냥 읽고 싶어졌습니다. 최근들어 조금 다르게 책을 고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어요. 문학을 전공하신 작가님말고 다른 분야를 전공하신 작가님의 책을 접하고자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도 김미진 작가님이 예술학 석사를 지내셨더라구요. 아를, 뉴욕, 서울, 네팔을 무대로 감성적이게 풀어나가는 글들이라 더욱 기대가 됩니다. 가보지 못했던 여행지를 통해 엮어지는 글들은 여행에세이 느낌도 나면서 뭔가 다른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설레임을 오래 간직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출판사 책소개 중에서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가야 할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야.”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윤성희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잘 놀고 잘 웃지만, 그것은 자기 연민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의도치 않게 일그러뜨렸다는 자책과 부끄러움을 감내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모두 개인적 마음의 역사에 은밀하게 각인된 어떤 근원적인 상처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상처가 어느 날 문득, 우연히 드러날 때, 자신의 삶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떠오르는 형상도 저마다 다 다르지요. 이 소설에 묻어있는 상처들을 통해서 제가 미처 상처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으로의 드러남과 그것에 대한 치유작용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주인공들간의 속내와 그것이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삶이라는 것에 대한 중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쓸쓸한 가운데에서도 담담하게 피어나는 무언가를 꼭 찾을 수 있게 되기를.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에서

 

그날, 그 남자의 책이 내 마음을 훔쳐 달아났다!

존재 자체가 예술이 된 잔혹극 창시자 ‘앙토냉 아르토’,
그의 자취를 좇는 ‘나’와 ‘동주’, 지금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예술가들….
광기 어린 우리들 삶을 ‘소설’로 끌어안은 영화 같은 이야기

 

 

 

 

 

내 마음을 훔쳐간 그날, 그 남자의 책. 소개가 참 멋드러집니다. 갑자기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주원 (현빈 분)이 생각이 나는군요. 그 남자가 읽은 책도 굉장히 많이 팔렸죠? ^^

책에 관련된 소재가 또 등장하는군요. 표지도 굉장히 독특합니다.  예술을 바탕으로 깔고  낯선 곳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손에 잡았다하면 쉽사리 놓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편의 드라마 같고, 영화같을 이 소설이 참 기대되는군요~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에서

 

「젬마」를 읽으며 그러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잠시 잡아주는 손으로 위로하고, 때로는 잘한다고 칭찬하며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주자! 둘이 가면 다정하고, 셋이 걸으면 오른쪽, 왼쪽으로 양쪽에 인생을 손잡고 함께 가는 글 속의 사람들처럼 나는 읽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싶다. 누군가가 떠나고 남겨진 사람, 아픈 사람들의 손까지도 다함께 잡고 가고 싶다고 나는「젬마」를 쓰면서 속삭여본다.

 

 

 

 

어느 정도의 줄거리를 읽으면서, <국화꽃 향기>와 어느정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 떠난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 남겨진 사람을 보듬어 주고 싶어하는 한 여자. 설정이 비슷하지요.  요즘은 수목장이 많아서 나무만 보아도 쓸쓸하고 뭉클한 느낌인데요. 수목장하는 장면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젬마의 표지마저 그렇게 보이는 군요.

비슷한 설정에도 읽고 싶은 이유는,  이별에서 오는 또 다른 따뜻함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작가님이 굉장히 따뜻한 분인 것 같아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연스레 겪어가는 과정 속에서 작가님이 풀어내셨을 위로를 젬마를 통해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리 리스트를 뽑아놓고 난 후에 느낌과 추천페이퍼를 쓰고 난 후에 느낌을 비교해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군요^^

12월에 출간된 책들은 정말 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유일하게 풍년이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것도 참 행복한 고민이네요~

 

1월에도 행복한 독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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