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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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나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소년이었던 날 ...
 
나는 언제부터 성인이 된 것일까. 내가 마지막으로 소녀였던 날, 소녀의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그 날은 언제일까.
 
학업에 쫓겨, 일에 쫓겨, 늘 무언가에 쫓기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그렇게 깨어지고 깎이며 한숨을 토할 때, 아.. 아직도 마냥 어린애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영원히 아이일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이 힘에 부치지 않을텐데.. 물론, 아이도 그 나름의 고민과 걱정이 따르지만.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또 더듬어 본다. 남들한테는, 먼지만한 가시 같아도, 그게 내 상처일 때는..우주보다 더 아픈거래요...  
누구나 자신의 상처가 되면, 더 쓰리고 아픈 법이니까.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자신도 어렸을 때 겪었을 법한 일이니 추억이 되겠지만 그것을 실제로 겪고 있는 아이에게는 크나큰 고통이 될 수 있다. 아이가 겪는 고통이라고 결코 작거나 덜 아프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아직, 성인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는 그 시간만 흘러갈 뿐, 내가 머물러 있는 시간은 초등학교 4학년 쯤.
그 때부터 더 크지도, 자라지도 못했다. 항상 마음은 늘 그 때 같고,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 때로 돌아가서 무언가를 바꾸고 싶은걸까?
 
"성장이란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다섯개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에게 풀리지 않는 해답이 있음을 알았다. 아직도 어릴 적 그대로로 머물러 있는 나에게 주어진 과제 같은 것. 성인식이라 부를 수 있는 계기.
성장하면서 있을 법한,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나와 공유할 수 있는 성장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았을 뿐. 힘들었겠구나. 나도 저랬을 때가 있었던가. 하고 회상에 젖어들었을 뿐.
작가의 해설을 보지 않고 덮었더라면, 진정한 나의 성인식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나는 저자의 성인식과 닮아 있었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정, 그것이 내가 성인식이라 부를 수 있는 계기가 되다니.
 
무엇인가를 잃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모른 채, 공허함을 맛보았다. 그저 눈물이 흐르기에 슬픈 것이구나, 아.. 다시는 볼 수 없구나..
그것이 나에게 걸림돌이 될 수도, 놀림을 받을 수도, 늘 무거운 짐을 안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은 겪고 난 후에 알게 되는 법. 지금에야 그 때는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일들이 추억이 되어 회상할 수 있지만 그 당시의 고통을 또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또 같은 일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그 때처럼 나약하지는 않겠지만, 그냥 무뎌지는 것이겠지만.
 
제대로 된 성장기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성장기를 접하고서야 이렇게 한단계 더 어른스러워지는 과정을 볼 수있다. 그리고 그냥 되짚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아픈 감정을 다시 느껴본다. 이것도 내가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노라고,
 
하루가 다르게 뉴스에서는 죽음의 소식을 알려준다.
오늘도 누가 자살했다더라, 하는 얘기를 어쩌다가 이렇게 쉽게 내뱉을 수 밖에 없게 되었을까?
죽음을 쉽게 여기는 사람들. 쉽게 죽고, 또 누군가를 쉽게 죽이는 사람들. 죽음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이토록 가벼워졌단 말인가.
지금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생명이라는 가치는 얼마 정도 일까?
대체 우리는 무엇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 싶어했던 내일입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것인지..
내가 이렇게 보내고 있는 순간에도 한 생명이 태어나고, 한 생명이 죽어가겠지.
누군가는 그토록 살고 싶어하는데, 왜 하루가 다르게 못 죽어서, 못 죽여서 혈안이 되어 있는 건지.
 
내가 살고 싶었던 내일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좀 더 희망차고, 밝은. 나의 어두운 과거따위는 말끔하게 지워줄 수있는 그런 따뜻한 내일이었는데.
 
이 책은 삶의 진정한 의미,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해주고자 하는 저자의 외침같다.
살아가는 것들의 눈빛을 그리고 싶었다. 부디, 잘 버티어 주기를...
 

 
이 세상에 무엇하나 하찮은 것이 있었던가.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의 뒷 그림자에는, 분명 제대로 살고 싶은 마음또한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죽음. 꺼져가는 빛을 하나라도 보듬어 주기 위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몸부림을 이 책에서 보았다. 겪고난 뒤에는 반드시 그 과정을 뛰어넘는 무언가 깨달음이 있을 거라고, 살아있으라. 어떻게든 살아있으라. 하고 말해주는 것 같다. 다른 삶의 달콤함도 맛보기 위해 이런 쓴 맛도 존재하는 거라고, 누구에게나 넘어야할 산은 있는 거라고, 토닥토닥 다독이고 이끌어주는 아빠같은 느낌과 작가의 눈으로 보는 시대상황-조류독감, 광우병 등-에 대한 생각과 그 상황에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제시함으로써 소재의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때로는 몸보다 눈물이 무겁다는 사실을 알았다
 
울어보지 않고서야, 진정한 아픔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눈물을 쏟아내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을 때. 비로소 조금 더 성장한 나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만이 다인 세상. 그 세상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건 순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쉽게 현혹되고, 유혹되는 세상에서 이렇게 우리의 마음과 그 마음의 눈을 일깨워주려고 하는 건, 순수하고 순박한 내 안의 어린아이를 꺼내 다시 아름답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살아있음이 행복하고, 그 존재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게 당연함을 우리는 자꾸 잊어가고 있다. 가끔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나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어린아이를 깨우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하나 하나 생명의 기가 닿아 있는 한,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내가 있어,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이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성장해온 과정을 돌아보고, 내 마음속의 순수한 자아를 깨우는 시간이 되었다.
주저 앉고 싶을 때, 세상과 섞이려는 나를 발견할 때 이 책을 다시 펼칠 것이다. 내 마음안에 아이를 다시 되살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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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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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는 학교 과제가 나왔다. '밀양'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렇게 두가지였는데, 마침 얼마전에 영화를 보았고, 지인에게 말하니 책도 있었던 터라 망설임 없이 우행시를 택했다. 아무래도 밀양보다는 우행시 쪽이 좀 더 쉬울 것이라 생각했던 점도 있다. 과제를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보고 싶어졌던 영화. 지금 한창 방영중인 '도망자'에 '이나영'이 나온다고 하길래, 뜬금없이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언젠가 한번은 봐야지 했던 영화. 책은 사실 과제가 아니었다면 읽을 생각이 없었다. 영화로도 충분히 내용을 알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다들 정말 좋다. 고 말하는 건 책이든 영화든 왜 보기 싫은걸까? 아무래도 머릿속에 청개구리가 들어있나보다.

 

책을 검색해보니, 4월에 개정판이 나왔었구나. 예전표지보다 이 책이 더 예쁘네. 왠지 영화 속 폴라로이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리라. 그리고 이따금 영상이 겹쳐온다. 이 글을 쓰기 전, 영화를 한번 더 보았다. 그리고 바뀐 표지를 보니 더 마음이 먹먹해진다. 예전 책으로도 읽었고, 물론 그 예전 책을 소장하고 있지만 개정판이 나와도 또 사고 싶은 책이 아직까지 나에게는 없다.  이 책의 개정판을 직접 눈으로 본다면, 사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공지영' 님의 책은 '사랑후에 오는 것들' 을 가장 좋아한다. 출간하신 책 중에 가장 일본 정서와 맞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에쿠니 가오리에게 빠져있었다. 그리고, 일본 책을 좋아했다. 그저 소소하고 깨끗한. 어디에도 매달리지 않는 깔끔함이 단지 좋았다. 나의 청춘을 일본 소설과 보냈기에, 부끄럽게도 한국작가는 나에게 그다지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처음 접한 책이 '봉순이 언니'였다.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읽기는 읽었는데,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 작가님의 책은 쉽게 읽힌다. 그래서인지 오래도록 남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작가와 취향이 맞기는 힘드니까. 나와 조금은 코드가 맞지 않았었던 것 같아 '봉순이 언니' 외에는 보지 않다가,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은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작업을 했다기에, '냉정과 열정사이' 만큼의 그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나와 코드가 맞지 않은 경험이 있던터라 바로 사서 볼 수는 없었고, 빌려 읽었었는데 읽은 후에 자꾸 눈에 아른거려서 결국은 구입했다. 처음 이 작가의 책을 사게 된 이후, 신간이 나올 때마다 서점으로 달려가 훑어 보곤 했는데, '괜찮다. 다 괜찮다.'는 인터뷰 집이기에 그냥 덮었고, 그 책을 덮은 이후, 고르고 고르다가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가 그나마 코드가 맞을 것 같아 구입했고,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도 진부한 이야기 같아서 관심을 껐었는데 우연찮게 제목만으로 내게 힘을 주고 싶었던 사람에게 선물을 받고는,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있다. 편견이라는 것은 한번 자리가 잡히면 이렇게도 사람을 괴롭힌다. 이렇게 어렵게 다시 공지영 작가님의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정말 맞는 책 찾기도 쉽지 않구나. 그냥 편견따위는 버리고, 모조리 읽을 수 있는 내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그만큼 우여곡절 끝에 읽게 된 책이라 더 꼼꼼하게 보고자 노력했지만 영화를 미리 보고 난 후라, 내용은 익히 알고 있고, 결말도 알고 있던 터라 굉장히 슬픈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술술술 조금은 무감각하게 지나간 부분도 있었다. 아무래도 과제로 인해 영화와 소설을 비교해야 하는 지라, 내용을 음미하기 보다는 비교 분석하는데에 중점을 둔 것이 참 마음에 걸린다. 과제가 끝나고 나면, 꼭 다시 한 번 정독해보고 싶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 그 즈음이 되지 않을까. 윤수를 추억하면서.

 

  작가가 되기란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일이지 싶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했을까. 아무래도 종교를 가지고 계신 분이기에 그 믿음이 컸던 것일까.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이기에 그토록 오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쉽게 읽어진다고는 하나 결코 쉽게 쓰여지지 않았음을 읽고 있으려니 가슴한 켠이 불편해졌다. 그런 노고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코드. 코드 타령만 했던 내가 순간 미안함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괜스레 반성의 시간을 좀 갖는다.

 

  으레 삶이 힘들어질 때면, 쉽게 죽음을 생각하는 세상이다. 나 또한, 삶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생각한 적이 꽤 된다. 어릴 적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았고, 무관심 속에 살았다. 지금에야 나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예전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마음까지 나아지지는 않았다. 조금씩 병든 마음을 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마음에 병이 든 사람들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이 든다. 윤수나, 유정이가 아침이 두려웠던 것처럼 그렇게.

  유정이와 윤수.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랐지만, 어딘가 모르게 닮은 두 사람. 어떤 환경으로 인해, 마음을 닫고 세상을 등지게 되 버렸지. 그 두 사람이 진짜 이야기(속내를 드러내는 것)를 하고, 두 사람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그렇게 들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것만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것이 나는 감히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버려짐이다. 아무리 겉이 풍족해도 마음은 가난한데, 깊숙한 곳이 가난한데 그것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 겉은 가난하더라도 가족간의 따뜻함. 진심어린 배려가 있는 곳은 마음은 가난하지 않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위선일지라도 착하게 사는 남을 위한 마음. 진심. 그것이 아닐까?

 

  누군가에는 그냥 헛되이 보낼 삼십분이 누구에게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시간. 이렇게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한없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 자신이 겪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 이 책은 종교적인 느낌 마저도 인정하게 만든다. 아마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리라.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기도하고, 엄숙해지게 마련이니까.

  마지막으로 주어진 과제는 바로 용서이다. 제일 쉽지 않은 일. 자신에게 해가 될 소지가 있거나 해를 끼친 사람. 그 사람이나 그에 관련된 것을 용서하는 일. 유정이가 했던 대로 나는 용서할 수 있을까. 윤수를 용서하겠다던 그 할머니처럼 나는 용서할 용기가 조금이라도 있을까. 나에게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세 명씩이나. 마지 못해 얼굴을 맞대고는 있지만, 아주 가끔씩 옛날 일을 회상하면 치가 떨리기도 한다. 지금에야 많이 늙으셨기에 조금의 원망과 안타까움도 있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아직까지는 용서할 수 없다. 아니, 내가 용서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헷갈리고 어렵기만 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옆을 지켜주는 일.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하는 일. 그것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세상에 지칠 때. 삶이 무료하고 의미없게 느껴질 때. 이 책이 그 생각을 깨뜨려주리라 믿는다. 그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용서할 마음을 다시금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며 더이상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기를 나 혼자만을 생각하며 살지 않기를 지금의 이 다짐을 다시 일깨워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편견마저도 버릴 수 있기를. 모니카 수녀님께서 윤수를 만났을 때 그 처음이 과거를 떠나 윤수의 전부였던 것처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기를. 그리고 우리 마음에도 행복한 시간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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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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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이 가을에 정말 멋들어 지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냥 한글로 봤을 때는 어감이 좋지는 않아서 무슨 주문인가? 주문이라면 어떤 것을 이뤄주기 위함일까?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외수 작가님의 책은 '하악하악'을 시작으로 '청춘불패'까지 딱 두 권 읽었다. 빳빳한 표지가 좋았고, 책의 냄새도 좋았고, 예쁜 그림과 어우러진 활자들과 빠짐없이 하나씩은 들어있는 책갈피가 좋았다. 마니아가 있을 정도로 유명하신 작가님이지만, 좀처럼 다가가기 힘들었달까. 마구 꾸중 들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마니아 층이 있다고 하면 대개는 맹목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버린다. 일반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  단 시간에는 전혀 섞일 수 없는 벽이 존재할 것만 같아 섣불리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달랐다. 이미 두 권을 읽은 적이 있고,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지인들 사이에서 한참 이 책을 주고 받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나, 꼭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운 좋게도 선물을 받게 되었다.

 

 책을 펼치고 냄새를 킁킁 맡은 다음, 활자들과 어우러진 그림들을 스르륵 훑어 보았다. 글자도 기존 책 보다 작지 않고, 스르륵 넘겨보아도 부담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나서 책갈피를 찾았다. 그림 설명을 보니 '산부추' 라고 되어 있다. 보라색이 꽤나 매력적이다. 책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선물. 책을 사고 무언가를 하나 더 끼워주면 횡재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듯이 꼭 그런 짜릿한 기분이었다. 보물이라도 되는 냥 구겨지지는 않을까, 냄새가 날아가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책 속에 고이고이.

 

  1장에서 5장까지 총 323개의 글귀들. - 내용이 길지 않다고, 책을 잡은 순간 다 읽으려고 하지말자.

처음에는 정독할 마음에 다짜고짜 책을 잡았다가 2장까지인가 보고 덮어버렸다. 다 맞는 말 뿐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따분하달까. 곰방대를 태우시며 해주는 할아버지의 추억담을 듣는 것 마냥 그다지 재미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아마, 빨리 읽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서이다. 나름 책을 꾸준하게 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 때문에 책의 분량에도 욕심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짧은 이야기에 그림도 많으니까 빨리 보고 다른 책을 읽어야지. 하고 생각해버렸던거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보아서는 안된다. 덮고나서 한참을 다시 손에 잡지 못했다.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글 마저 빨리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려는 내 어리석은 생각에, 이럴거면 책을 뭣하러 읽어? 하며 의욕을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나에게한 실망감까지 들었고,

 

 이 책을 선물받은 것이 여름이었으니까, 한 계절이 지났다. 그리고, 날씨는 제법 쌀쌀해졌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아직 겨울은 아닌 그런 계절.

책은 현재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 때. 더 여운이 많이 남고, 감정이입도 더 잘되게 마련이다. 날씨가 습하고 몸에도 열이 올라오는데 감성이 먹힐리 없다. 지금에서야 이 책이 읽히게 된 이유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옮기고, 쏟을 수 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책이다.

 

  제목이 한자이다보니, 자연스레 한자에 관심이 갔다. 본디 어원부터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저자의 이름도 곰곰히 생각해봤을 법도 한데, 이외수 작가님은 어떤 한자를 쓰실까 궁금하지 않았다니. 의외다. 그만큼 마음을 쏟지 않았다는 뜻이라 좀 죄송스럽다. 이제서야 한자를 보니 바깥 외(外) 자에, 빼어날 수()를 쓰신다. 그러면 바깥으로 빼어나다는 뜻인데, 그래서 명문장을 쓰시나? 글로 널리 알려지신건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도시와 떨어져 자연과 함께 사시지만, 마니아 층도 가지고 계시고 유명하신 작가님이시니까 이름이 어느정도 맞아떨어지는 셈 같다. 그러고 보면, 이름도 참 중요하단 말이야. ^^;

 

  시적인 부분도 많고, 아.. 괜히 작가가 아니구나, 자연과 함께 사시니 이리도 싱그러운 표현이 가능하구나. 세속적인 사람들과는 생각 자체가 다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단풍을 보더라도, 메아리 소리를 듣더라도 작가님에겐 다 글쓸 거리가 되는 것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글을 쓰신 세월이 오래되셨어도 쉽게 써지지는 않는다고 하시지만 읽고 있는 활자들은 날개도 달렸고, 나름의 그림자와 풍류도 있다. 길지는 않지만 짧은 문장에서도 나의 뇌리를 탁 스쳐가는, 그래서 한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걸 보면 쉽게 읽어지지가 않는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탐관오리를 풍자하며, 세상의 속된 것들을 바로 잡고, 그래서 영영 섞일 수 없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인과 어우러지며, 감성이 그 누구보다 살아있으시고, 지친이들에게 위로와 격려, 용기를 주신다. 책 속에 모든 요소를 담아내는 일이 쉽지 않은데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사는 드라마를 총집합해놓은 느낌이다. 가벼이 던지신 말이라 할지라도, 그 속 뜻을 읽기 위해 쉽게 책장을 넘기지 않고 붙잡고 있었다.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함인지 내가 100% 다 이해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지만 최대한 가까이 이해하기 위해서, 활자를 곱씹고 곱씹었다.

 

 직접 읽어봐야 그 제맛을 느낄 수 있고, 또 제각기 다른 생각의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을테지만,

나혼자 느끼기에는 너무 아까운 부분이 있어 조금만 열거하려 한다.

 

 204

달밤에 홀로 숲속을 거닐면 여기저기 흩어져 빛나고 있는 달의 파편들.

몇 조각만 주워다 불면에 시달리는 그대 방 창틀에 매달아 주고 싶었네. - Page. 162

 

지금도 분명 온갖 고민과 번뇌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을 터.
표현이 참 멋지지 않은가? 여기저기 흩어져 빛나고 있는 달의 파편. 절로 상상을 하고 보니, 꽤 멋지다. 그 조각을 불면에 시달리는 그대를 위해 쓰고 싶으시다니.
지친 영혼을 달래주기에 너무 멋진 표현 같다.
누군가가 불면에 시달릴 때마다  들려주거나, 혹은 나를 위해 이 구절을 써야겠다. 그 깊은 밤 혼자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그것이 나의 마음이라고 말이다.

212

등잔밑이 어둡다고 탓하지 마세요.

이 세상 어딘에 제 모습 비추기 위해 켜져 있는 등불이 있던가요. - Page. 168

 

이 글귀를 읽고 한참동안 멍하게 있었다. 그리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가로등이 애처롭게 누군가의 가는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래. 자신을 위한 불빛이 아니라 그 어떤 누군가를 위한 불빛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가로등이 처량하게도 느껴지고, 따스하게도 느껴졌다.
단 한번도 가로등이 쓸쓸해보인다거나 아니면 고맙다거나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이제서야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아직 세상을 품기에 어리구나. 여겨졌다.
그리고 막연히 누군가를 위한 등불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그 밤이 무섭지 않게 나도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덩그러니 서 있어 주겠노라고.

 

290

길 가다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이라지요. 밤새우며 글자락을 스치면 얼마나 큰 인연일까요.  - Page. 224 

 

인연은 헛되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인연이면 쉽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믿고 있다. 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거나 어떤 기록을 남길 때도 손글은 잘 쓰지 않게 되는데 이따금 편지나 일기를 쓸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네모난 글자가 전해주는 느낌보다는 비뚤비뚤하더라도 그 사람의 필체를 마주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기쁨을 나는 안다. 그래서 이 글귀를 읽었을 때, 내가 편지를 쓰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듯 그 글자락들도 그 사람에게 닿아 서로 스치는 것일터인데 꼭 만나지 않더라도 그렇게 나마 마음을 전할 수 있음에 쉬이할 인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글자락을 스쳐보기로 했다. ^^

 

   정태련 님의 예쁜 그림을 감상하며 활자를 읽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기에 솔솔 은은한 향까지 더해져 꼭 소장하고 싶게 만든다. 책을 쫘악 펼쳐보아도 구겨지거나 뜯어질 염려가 없어 더욱 좋다. 세상에 어느 것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용기를 주는 책. 이따금씩 좋지 않은 것들의 대한 흉도 보면서, 지금 살아가는 삶을 반성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또 내려놓음까지 알려주는 책. 그래서 이 책은 그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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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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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읽어야지. 했었던 것 같다. 제목이 참 마음에 들어서.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서점에 들렀었는데, 그 때는 이 책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마음에 드는 내용이 하나라도 있을라치면 바로 구입할 생각이었는데 표지의 내용을 참고했지만 그닥 끌리는 부분이 없었고, 스르륵 넘겨보았을 때도 그저 그랬었다. 그래서 집에 그냥 돌아오고, 온라인으로 구입을 했다. 물론, 내가 읽을 것은 아니었다.

 

  막상, 책이 나의 손에 들어오고 시간이 좀 흘렀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을 집에 놔두고 왔던 터라 회사에서 짬짬이 볼 것이 없었는데 그 때 선물하려고 놔두었던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스르륵 넘겨볼 요량으로 턱을 괸 채 '성수선'이라는 저자에 대해 훑어보았다. '책' 자체를 좋아해서 읽었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서점에 가서 훑어 보았을 때는 책에 대한 개인의 평가 같은 색이 짙어보였었는데, 막상 발을 들여놓으니 저자 말대로 독서일기였다. 그 책을 읽게 된 상황과 저자의 일기같은 문체가 점점 책 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선물을 줄 책인데, 그래서 그냥 괜찮은가? 느낌만 보려고 했던 것이. 아차!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몰입하며 정독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만 읽어야 돼. 그래도 나름 선물 준다고 먼저 이야기한 책인데 내 흔적을 남길 순 없잖아. ' 머릿 속에선 이미 갈등이 시작되었다. 3가지 책에 대해 맛보고 있는 무렵. 앞으로 돌아가 포스트잇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새 책을 사서 다시 선물하고 이 책은 내가 읽어야겠다. 하고 결론을 내렸다. 나에게 올 인연이었구나, 하면서..

 

  독서일기. 한 번은 써보고 싶었다. 물론, 일기나 블로그를 통해 간간히 나의 느낌을 써놓긴 하지만 게으른 것도 있거니와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이 전부 옮겨가지 않고 형식적이 되어 버리곤 한다. 이런 말을 쓰고 싶었었는데, 막상 옮겨 놓은 글들은 보이기 위한 글 뿐이었다. 다독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폭 넓은 세계에 있지 않다는 자신감이 결여된 것도 있으리라.  무조건 글을 잘 써야 된다. 누구에게나 공감을 받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섣불리 잘 써질리 만무하지만.

 

 ★ 이 책의 좋았던 점.

첫째, 강요하지 않는다. (상황에 맞는 독서를 권유하며, 미래보다는 현실을 중요시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경제나 경영, 실용서 위주로 도움이 되는 책만을 읽게 한다. 그래서 조금은 폭넓지 못하고, 앞만 좇아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일을 하면서도 어학을 공부해야하고 늘 미래를 설계해야 된다고 말하는 현실에서, 현재 순간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계획하는 것보다는 현재를 충실히 상황에 맡게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저자의 독서일기의 형식을 보면 저자에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책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으레 신간소식이나, 베스트셀러의 소식에는 잘 알고 있다. 그 당시 흐름에 따라 유행하는 책이 베스트셀러지 않은가. 그래서 베스트셀러라면 너도 나도 사본다. 모든 책은 상황에 맞게 읽어져야 자신에게 유익하다.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상황과 맞지 않다거나, 흥미가 없는 내용이었을 경우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으로써 독서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어떤 상황에 있었을 때 이런 책을 읽으니 도움이 되더라. TIP으로 이런 책도 보면 좋다. 는 식으로 강요하지 않고 그 상황에 맞는 독서를 권유하고 있다.   

 

둘째,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위로와 용기를 준다.

자신이 괜찮었던 책이니 읽어보아라. 는 식의 내용이 아니라 마음에 들었었는데 거기에 저자의 표현인 즉슨 '지친 영혼에 보습을 주는 밑줄 긋기'

이 책을 한마디로 정말 잘 표현한 것 같다. 어느 하나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밑줄은 없었다. 다 나에게도 일어났었고, 일어날 법한 상황에서의 도움이 되는 책이 많았었고, 하루하루 무료하지만 그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면 남보다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현대인에게 꼭 맞는 책이 아닐까 한다.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울컥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이며, 책을 선물하는 매너라든지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감동이라든지, 나 자신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이라든지, 그 상황, 상황을 잘 엮어 하나가 되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었다. 별로 관심이 없던 책에도 흥미가 생겼으며, 벌써 이 책에 나오는 책 중의 하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 생각나 선물을 하기도 했다. 책을 선물할 때 나는 나의 안목을 상대가 어떻게 평가할지를 염려해 늘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건 간에 중요한 건 나 자신이며,  마음이라는 것.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고 아무 이유없이 나를 안아주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사소한 내 마음의 응어리들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당분간 다른 책은 읽고 싶지 않을 만큼의 벅참. 그 자체였다.

 

셋째, 쉽게 잘 넘어가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출장이 잦고,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저자라서 더 활동적이고 그래서 부러운 면도 분명히 많았지만 저자도 사람인지라 나랑 닮은 구석이 많았다. 겉으로는 강하지만 속으로는 여린,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일을 겪고 더 꿋꿋하고 씩씩한 모습에 나도 절로 힘이 났다. 저자가 그은 밑줄과 일기만으로도 이 사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이 책을 잡는 순간 훅~ 하고 다 읽어버렸지만 내용만큼은 속이 꽉 차 있었다.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글이었기에 더더욱 위로 받고 마음의 여운이 많이 남는 것 같다.

 

넷째, 나 자신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보다는 재미가 중요하다.

소설은 읽어서 뭐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내심 불쾌했다. 나는 책을 공부하기 위해 읽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책마다 다 도움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터인데. 저자는 실용서만 읽다가는 감정이 없는 차가운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소설도 읽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도 결국 내가 좋아서 책을 보기보다 남의 눈을 의식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순간 부끄러웠다. 일을 하면서도 학교에 다니고, 어학공부를 한다. 하지만, 하루 중에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책을 보는 일. 그 책을 잡고만 있어도 내 얼굴에는 연신 미소이다. 그건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저자의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하고 싶으면 해~ 남의 눈치를 왜 봐. '하면서 내 등을 떠밀어 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치열함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도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어야 되겠다. 무엇을 하든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만들겠다. 하고 덤비기 보다는 단지 흥미로워서, 재미있어서 그것을 접했을 때와 결과물이 달라짐을 알려주었다. '재미' 이것이 삶의 정답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내려놓음'도 동시에 가능했다. 하나를 시작하더라도 원리, 원칙대로 근원부터 찾는 나의 효율적이지 않은 습관도 저자 말대로라면 나중에는 다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어렵더라도 괜찮다고,   '잘하고 있어' 하고 용기를 주는 따뜻한 책이었다.

 

짧은 글이더라도 이제 일기를 써야겠다. 그리고 나중에 모아서 다듬고, 다듬어 나만의 글을 손에 넣고 싶다.

새로운 시야로의 여행이었고, 즐거웠다.

방황하고 있는가? 어떤 방황이든 좋다. 이 책이 당신의 방황하는 길에 빛을 비춰줄 것이고, 보듬어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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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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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읽으리라 마음 먹었던 책이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그 바람에 팔랑이는 책. 이 책을 잡는 순간부터 다 읽기 전에는 덮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이 엄마의 편지' 로 시작되는 이 책은 도입부 부터 나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4백년 전에 부친 편지라... 그들에게는 어떤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들의 사연을 짚어보기 전에, '능소화'라는 꽃을 본 적이 없어 이 꽃에 대해 궁금해졌다. 나는 본디, 어떤 것을 하든 근원부터 짚고 넘어가는 스타일이라 좀 피곤하다 -;

아무튼 검색을 해보니, "금등화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다. 옛날에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말은 ‘명예’, ‘자랑’, ‘자만’ 이다. 전설에 의하면 땅을 기어가는 가련한 꽃이었던 능소화가 소나무에게 ‘나도 먼 곳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하자, 능소화의 아름다움에 반한 소나무가 쾌히 승낙하여 나무나 담을 붙잡고 자라게 되었다고 한다. " 고 되어 있었다.

  표지를 보았을 때, 꼭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 것 같은 자태같아 예쁘게 생긴 꽃이겠다. 이름도 예쁘니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알아보니 주홍빛깔에 귤색 수술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꽃이 떨어질 때 꽃잎이 떨어지는 것 아니라 꽃 전체가 툭, 하고 떨어진다고 한다. 실제 본 적은 없지만,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꽃이니 만큼 사연을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마음이 조금 아련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와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이라는 것. 이 두가지만 보더라도 흥미를 가지기에 충분했다. 4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은 죽은 사람의 미라, 그리고 편지. 이들은 얼마나 사랑했기에 이렇게 긴 시간이 흘러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부모의 가슴에 묻힐 아이. 이 아이가 바로 4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았던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응태'이다. 조선 명종 때 사람으로, 만석꾼인 이요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나기 전, 이름을 짓기 위해 스님께 말씀을 드렸으나, 요절할 운명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것과 소화꽃의 독을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식을 가슴에 묻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래서 이요신은 자신의 아들을 구해낼 방도를 찾는다. 방도인 즉슨, 소화꽃을 안고 집으로 들어오는 때에 아들을 내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혼례도 올리지 못하고 홀로 늙어 죽을 만큼 박색인 여자. 성질이 사납고 모진 여자와 혼인을 해야 된다는 것. 무인 집안이라, 서로 혼사를 앞다투는 집안인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미신이라 할 지라도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려는 마음으로 집 안뜰에 있는 소화꽃을 모두 뿌리 뽑게 된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총명해 칭찬을 한 몸에 받고 자라는 아이였지만, 아버지의 근심은 갈수록 깊어졌다. 부귀와 공명은 필요치 않다. 단지 아들을 가슴에 묻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 돌아온 응태의 손에 소화꽃이 들려 있었다. 때가 온 것이다. 아버지는 급히 중매쟁이를 불러 박색한 여인을 찾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박색한 여인은 소문으로 인해 박색해진 것이지 소문과는 다른 어여쁜 규수였다. 소문이 그렇게 난 것은 어떤 돌중이 자신의 자식에게 죽었어야 할 운명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여인을 구하려던 사람이 뜬금없이 주검이 되어 돌아왔고, 그리하여 아이를 밖에 내보내지 않고 아무도 아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뜬 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소화꽃은 담에 기대고 핀 것이 아니라 담에 점처럼 뚝뚝 묻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뚝뚝 묻은 꽃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것 같아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 Page. 74

 

   정혼한 여인은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마을 어디쯤인가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찾아간 응태. 응태의 집에는 소화꽃이 없었기에-아버지가 다 잘라버렸기 때문-그런 아름다운 꽃을 보는데 얼굴이 희디희고, 검고 큰 눈을 가진 여인을 은연중에 보게 되었다. 그것이 둘의 첫만남이었다. 위의 구절은 응태가 소화꽃을 보고 생각한 것인데, 마치 그 아름다운 여인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첫만남이 운명이 된 그들. 정혼을 하고, 아버지의 명에 따라 여인의 댁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버지는 소화꽃을 다 베어버릴 것을 신신당부했지만, 여인은 소화꽃과 함께 자란 시절 때문에 뒷 마당의 소화꽃은 차마 자를 수 없어 응태에서 부탁한다. 그 남아있던 소화꽃이 후에 역신인 '팔목수라'가 그 여인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된다.

본디 소화꽃은 하늘의 꽃이라고 한다. 하늘에 있는 정원에서 훔쳐온 꽃이 지상에 퍼져 있는 것이다. '팔목수라' 라는 역신은 이 소화를 훔쳐 인간세상으로 달아난 자를 찾으러 다니는데 이것이 바로 응태의 부인이다. 만약 뒷마당의 소화꽃마저 잘라버렸다면, 둘은 오래도록 어여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에 그 꽃을 베어버리지 못한 여인이 원망스러웠다.

 

  소화꽃은 눈을 멀게 하는 독을 품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가시가 돋혀있듯 모든 아름다움 안에는 독이 있기 마련인가보다. 둘을 만나게 해 준 소화꽃이 나중에는 이별까지 안겨 주기 때문이다.

 

 "원이야, 어머니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너는 이제 네 어머니의 하나뿐인 위안이다. 네가 어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

내가 이제 너를 믿고 먼길을 가려한다. 아비가 많이 미안하구나. 내가 너를 안아 무등을 태우려고 했건만........

원이야, 내게 남은 날이 없구나. 너와 함꼐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가려 했건만.... 미안하구나" -Page. 152

 

   자식과 어여쁜아내. 그리고 부모를 앞세워야 하는 응태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이 여인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 그저 심성곱고, 착하디 착하기만 한 사람이었기에 더 마음이 아픈지도 모르겠다.

 

함께 누우면 언제나 저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 Page. 159

 

당신이 떠난 줄 알지만 저는 자주 놀랍니다. 낮은 발소리에도 놀라고 낙엽 뒹구는 소리에도 놀랍니다.

나뭇잎이 공연히 떨어지고 발소리가 저 혼자 날 리 있겠습니까.

저는 잎 지는 소리에 당신이 왔음을 압니다. - Page. 179

 

 꽃 귀한 여름날 그 크고 붉은 꽃을 보시거든 저인 줄 알고 달려와주세요.

저는 붉고 큰 꽃이 되어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처음 당신이 우리 집 담 너머에 핀 소화를 보고 저를 알아보셨듯,

이제 제 무덤에 핀 능소화를 보고 저 인줄 알아주세요. 우리는 만났고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 Page. 202-203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한 자 한 자 새겨놓은 편지를 보고 있자니 참 어여삐도 사랑했구나.  어차피 운명이었다면,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늘을 거역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는 하나 둘의 사랑의 확신 때문일까. 꽃을 보고 처음 만났듯 죽어서도 그 꽃을 통해 인연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이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이 사주는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죽어서 사라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중략)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은 사람이나 죽지 않는 사주 입니다. - Page. 41

 

  응태의 사주이다. 이런 사주를 가졌기에, 4백년이 지나고 발견되어서도 썩지 않았었나보다. 그렇다면 정말 타고난 운명이라는게 있는 것도 같다. 그런 사람에게 남긴 편지라 부인의 편지도 남아있었던 것일까? 죽어서도 죽지 않는 사주이기에, 둘은 헤어진 것이 아니겠지. 부인 여늬의 무덤에 자리 잡았던 능소화를 보고, 응태는 다시 알아보았겠지.

꽃잎이 따로 떨어지지 않고, 그 모양 그대로 툭 떨어지는 소화꽃. 그 모양새가 꼭 남편과 헤어질 수 없음을. 꽃잎으로는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여늬같아서 더 애처로운 꽃으로 기억될 것만 같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허구적으로 지어낸 이야기 라고는 하나, 편지라는 단서가 있고 무덤도 있기에 어쩌면 이들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기위해 저자에게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퇴색되고 변질되어 가는 '사랑'의 본디 의미를 되찾게 해주었고, 엄마 무릎을 베고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그 다음엔 어떻게 됐을까. 가 너무 궁금했던 책.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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