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방에만 들어오면 드러눕는다.

아픈 다리를 따뜻한 이불 속에 묻고 있으면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다들 드러누워 이야기하고 인사도 하다보니, 후배가 여기서는 <와식 생활>을 한다고 해서 한참 웃었다.

 

1월 6일

새벽 기도를 마치고 7시 쯤 공양 목탁 소리가 울린다.

공양간에 가려고 나오는데 먼 하늘엔 눈썹같은 그믐달과 별이, 동 터오는 주황빛 하늘에 그림처럼 걸려있다. 너무 아름다워 모두들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법당에 앉아 있으면, <우리 아이를 위해 , 우리 남편을 위해 >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기도가 얼마나 하찮게 느껴지는지......나도 모르게 큰 발원을 하게 된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넉넉하고 향기로운 사람으로 자라서 서로서로 회향하며 살게 되기를 기원한다.

남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진실한 길임을 우리 아이들이 알게 되었으면 한다.

저녁 때쯤 몸살끼가 있다.

공양간에서 몸이 좀 좋지 않고 소화가 안된다고 했더니, 부처님의 손길인지 소화제와 기운 돋우는 한약 환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귀한 약이라 약을 쪼개어 나누어 먹었다.

1월 7일 

2시에 일어났다.

어제 내게 약을 주신 분은 절 옆에 그림같은 별장을 지어놓고 비서도 딸려서 생활한다.하지만 몸이 약한 것 같았다. 가진 물질로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내가 얼마나 더 많이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남편에 대해 가시 돋힌 말을 한 것, 아이들이 어릴 때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한 자잘한 일상들이 떠 올라 참회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4시쯤 내려와서 잠을 잤다.

두시간쯤 자고 나니 몸이 가볍다.

 

1월 8일

오늘은 부산에 가는 날.

삼천배 6일째다.

마침 제가 있어서 사시 예불을 마치고 지장전으로 향했다.

스님의 무상게 독송을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처음에는 훌쩍 훌쩍 훔치던 눈물이 나중엔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우리말로 무상게를 읊으니 그 말의 의미 하나하나가 가슴에 사무쳤다.

 

혼자 먼저 간다고 스님께서 부르신다.

성철 스님 문도회에서 발행하는 책과 분홍빛 예쁜 단주를 주신다.

조금 전 무상게 독송하던 스님의 목소리와 감동이 떠올라 스님 얼굴만 봐도 눈물을 흘리니, 스님께서 '울보 선생님 잘 달래서 보내라'고 도반들과 함께 차 마실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

택시를 불러 놓고, 법당에 올라 삼배를 한다.

초발심으로 돌아가 정진에 퇴굴심을 내지 않기를 , 내가 수행한 만큼 회향하며 살 수 있기를 기원한다. 도반들도 7일 기도, 21일 기도 잘 마치고 회향 잘 하길......

_()()()_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선명하지가 않네요.

약사여래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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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와서 처음 접한 소식이 이천의 가스폭발 사고 소식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1월 2일 저녁 제주 법성사 도착

저녁 예불에 참석하고 공양을 했다.

조그만 방에 6명이 들어가 칼잠을 자려니, 덥기도 하고 좁기도 해서 잠을 설쳤다.

 

1월 3일 새벽 2시 30분

깜깜한 그믐달과 하늘에 쏟아부은 듯 많은 별빛을 보며  간단하게 세수하고 법당으로 향했다.

아직 도량석을 도는 목탁 소리도 울리기 전이라, 불이 환한 법당이 고요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법당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우리방의 6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법당을 가득 메우고 절을 하고 있어서.

주지 스님을 비롯해 모든 스님이 새벽부터 천배에서 삼천배까지 수행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1월 4일 새벽 1시 30분 일찍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 것 같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 깨지 않게 조심조심 법당으로 향했다.

공양주 보살님과 절 살림 하시는 보살님, 몇몇분이 벌써 와 계셨다.

새벽 4시쯤,법당 뒤에 비치되어 있는 초코파이와 음료수로 간단히 허기를 면한다.

초코파이가 이렇게 맛있기는 처음이다.

사시 예불이 끝나고 11시 30분쯤 도반들이 모두 잠시 쉬러 내려갔다.

혼자 좀 더 있다 가겠다고 하며 법당에 남아 있었다.

200배만 더 하면 오늘의 삼천배를 다 하는 것이라  남은 이백배를 하고 조용히 앉아 있는 순간, 갑자기 청하스님의 책제목 <가장 행복한 공부>가 떠올랐다.

내가 지금 가장 행복한 공부를 하고 있구나, 이렇게 백일쯤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2시쯤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17년전 쯤 나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셨던 선생님께서 출가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절에서 다시 만났다.

함께 간 도반들과 스님 방에서 차를 마셨다.

예전의 모습을 지금 스님 모습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함께 근무했었던 기억이 마치 전생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살도 조금 빠지시고, 맑고 고요해진 옆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삼켰다.

예쁜 얼굴은 아닌데도 사람을 끄는 매력을 가지신 분이셨고 옷을 참 잘 입는 멋장이셨다.

예전의 모습이 화려한 파르페같은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맑은 유리컵에 담긴 한잔의 물 같은 모습으로 고요하고 맑아져 있었다.

구도의 길이 쉽지 않은데, 이렇게 먹물 옷 입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슬픔이 먼저 밀려왔다.

잘 닦으셔서  많은 중생을 제도해 주시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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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1-09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선선하고 온기 머금은 불빛이 한 방에 모여있군요.
반가운 인연을 만나시고 돌아오셨으니 영혼에 비질하는 기분이 드셨겠습니다.
태안주민들도, 이천주민들도, 그리고 또 이 밤을 힘들게 보낼 분들...
요즘 마음이 덩달아 허합니다.
혜덕화님의 사진을 한참 구다보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08-01-1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글을 오랫만에 뵈는 것 같은데 맞나요? ㅎㅎ 위에는 반가운 여우님 댓글도 달려있고... 저는 절을 좋아하지만 그건 순전히 구경거리로서지 아무래도 수행쪽으로는 엄두도 안나더라구요. 주변에서 가끔 그렇게 일정기간이라 가서 수행을 하고 오는 분들을 뵙는데 그것도 참 대단하다 싶어요. 혜덕화님도요. ^^

혜덕화 2008-01-1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 여우님, 집에 와서도 새벽 2시가 되니 저절로 잠에서 깨었습니다. 며칠 간의 경험이지만 제겐 소중하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수행이 혼자만을 위한 수행이 아니라 나와 인연지어진 모든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람돌이님, 오랫만입니다. 저는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 가시는 분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일상을 모두 하느님의 발아래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수행하며 살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글샘 2008-02-1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ㅠㅜ
저는 맞춤법 전공이라...(잘 모르지만서도...)
오랜만에... 이런 거나 보이고요...ㅠㅜ

오랫-만
「명」'오랜만'의 잘못

ksosing 2009-03-03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속가에 인연때문에 스님들은 고향을 등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맑은 수행자를 보는 눈이 있으셔서 참 고맙게 생각 듭니다.
이미 스님이시고 큰복과 깨달음이 있으신분입니다.
상구보리요 하화중생 을 위해 살게 되있으시니
참 아름답다 싶어 댓글을 올립니다.
관세음보살 두손모음....

혜덕화 2009-03-04 21:12   좋아요 0 | URL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모든 수행자들의 꿈이겠지요.
고맙습니다._()_
 

 

태안 앞바다의 기름띠는

우주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보여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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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7-12-11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무거워하는 분들이 아직 적지 않은 거 같아요. 무거운 마음이 좋은 우주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되면 좋겠어요.

전호인 2007-12-1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지도 않은 대선에 밀려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혜덕화 2007-12-1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전호인님 오랫만입니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하루였습니다.
제가 아무리 마음 무거워한들, 그 일을 당한 어부들 마음의 백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터지고 난 후 뒷수습은 아무리 잘해도 미리 예방하는 것만 못함을, 대선 주자들도, 우리 모두도 가슴 깊이 새기는 사건이었으면 합니다.
어부들의 근심과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기름이 걷어지듯, 그분들의 근심도 걷어지길 바랍니다.

파란여우 2007-12-1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올해 저를 알은체 해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그냥 오늘은 아픈 팔 부여잡고 아픈 마음을 달래며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동생분께서도 어여 쾌차 하셔서 다시 좋은 새 봄을 맞으시길
먼 곳에서나마 함께 기도합니다.
앗참, 주손 그대로시지요?

혜덕화 2007-12-1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오늘에야 글을 보네요.
여우님께서 저를 알은 체 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하지요.
벌써 한해가 또 소리없이 가버리려 하네요.
내년엔 팔도 얼른 낫고 활기찬 여우님의 글을 기대해 봅니다.
주소는 그대롭니다.
 

해인사 입구를 지키는 벚나무 단풍은 참 아름답다.

백련암의 붉은 단풍 나무는 10월에 절정이더니, 11월엔 잎이 말라 바스라져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옆의 도반이 말한다.

"꼭 우리 부모님 모습같아. 일생을 우리에게 다 줘버리고 잎이 마르고 얇아져서 금방 사그라들 것 같은 모습이."

 

동생이 10월에 뇌종양 수술을 다시 받았다.

수술이 있던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했다. 동생에게 아무런 잡생각 하지 말고 관세음보살만 염하라는 문자를 넣고......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아내와 자식이 있지만, 옆에서 나누는 위로도 결코 동생의 짐을 덜어주진 못한다.

인간은 철저히 혼자임을 동생을 보면서 느낀다.

슬픔과 고통을 나누어 진다고 해도, 나누어 진 자의 마음과 동생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다.

이 세상엔 삼천 대천 세계가 있고

나는 삼천대천세계의 일부일 뿐.

내 잣대는 단지 나만의 잣대이므로 주변을 향해 하고 싶은 말도, 생각도 점점 없어져간다.

 

바깥을 보던 눈이

내 몸의 고통에 집중하게 되고

몸을 바라보던 시선이 마음으로 온전히 모아지는 것.

근기 낮은 내게 절이 베풀어 준 공덕이다.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가시 같은 말과 생각이 온전히 비워지면

고통에도, 고통 아닌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될까?

 

苦에도 樂에도 집착하지 않는

그런 때가 오기는 오는 걸까?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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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7-11-1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혜덕화님 동생분이 받은 수술경과가 좋아 쾌유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말씀하신대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의 아픔은
그 누구도 대신해서 받을 수 없는 몸의 인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육친인 혜덕화님의 간절한 기도덕분에
하루빨리 육신의 아픔을 딛고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회귀를 함께 빌어드립니다.

_()()()_




달팽이 2007-11-1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혜덕화 2007-11-1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반갑습니다.
동생은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서 수술하고 일주일만에 혼자 걸어다닐만큼 회복되었고, 어제 집에 가서 보니 얼굴도 맑고 좋더군요.
악성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자꾸 종양이 새로 생기는 것을 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앞으로 남은 항암 약물 치료를 잘 이겨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짧은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_()_

혜덕화 2007-11-13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누군가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반가울 수 있는 거군요.
고맙습니다.
_()_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임길택 지음 / 보리 / 200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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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이네

돈이 없으면 안쓰고

옷이 없으면  기워입고

쌀이 없으면 굶기도 하며

할머니와 둘이서 살아가요.

가난해도 어떻게든 살아요.

-p   162-

나는 누가 울 때, 왜 우는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울 땐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울게 하는 것처럼 나쁜 일이 이 세상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 표지에서-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온갖 더러운 추측과 이성적인 듯 포장된 미움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렇게 깨끗하고 순결한 책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아름다운 사람은 명도 짧은 것인지, 그의 젊은 나이의 죽음이 새삼 안타깝다.

우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우는 것을 사랑하고, 작고 약한 것을 돌아보며 사는가, 그가 나에게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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