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X프린세스X블레이드 1 - Seed Novel
오버정우기 지음, 보라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페르세우스)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이 작품을 보기 전에 먼저 제목과 프롤로그의 시놉시스를 보는 순간 나는 어떤 그림이 생각났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영웅 페르세우스가 바다의 괴물로부터 안드로메다를 구출할 때를 말이다. 그 이유는 그 괴물은 바로 바다의 용이고, 페르세우스가 영웅이라고 하나 이번에 읽어본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를 구출하기 위해 긴 창으로 용을 꿰뚫고, 이에 용은 쓰러진다. 하지만 신화에서 등장하는 안드로메다의 표정은 기쁨보다 조금 허무한 심정으로 페르세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또 다른 그림으로 페르세우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티브와 유사한 그림인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역시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페르세우스와 유사한 상황이 보인다. 기본적인 판단력에서 요구되는 것은 이 작품에서 영웅은 남성, 구출되는 대상은 여성, 타도되는 대상은 용이다. 그러나 잘 알아야 할 것은 영웅의 복장이다. 로저의 복장은 중세 기사의 갑주이고, 페르세우스는 고대 그리스 장수의 복장이다. 페르세우스 복장이 결국 그리스 문화, 그 문화는 철기문화이고, 그리스 문화에서 산업체계는 노예제를 이용한 농경사회다.

 

폴리스국가를 이루던 그리스는 10%의 남성만이 정치적 의결권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을 미루어 보면 용의 퇴치는 남성중심 정치사회를 완전한 구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고, 용의 존재는 여성으로서 이미 몰락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일 중요한 신은 제우스다. 그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쫓고 헤라와 결혼하여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 제우스에 대한 연구에서 그의 딸인 아프로디테, 즉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로 들어가면, 비너스의 어머니는 메티스로 바다의 여신이다. 그 여신은 본래 뱀 내지 용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뱀과 용은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페르세우스의 긴 창은 단순히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으로 들어가면 여성의 첫 순결을 뺏는 남근이 되는 셈이다.

 

그런 신화적 요건에서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가 과연 어느 방식으로 갈지 궁금해서 책을 구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본래 생각하던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신화하고 조금 거리가 있었다. 드래곤이란 부족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부족이라면 좋았을 것인데, 아쉽게도 주인공 히로인 밀레니아는 용왕의 딸인 황녀이었고, 그의 용약의 계약자는 리온이란 드래곤 슬레이어 일족이었다. 용과 인간의 전투에서 안드로메다의 페르세우스의 결투는 남성과 여성의 주도권을 다투는 과정에 남성의 승리였다면, 만약 이런 신화적 요소가 여성이라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한 환상문학과 많이 연결된 라이트노벨에서 흥미와 재미로 이끌어 가면 어떤 결과로 나올지 생각해보았다.

 

작가는 라이트노벨을 작성하면서 북구신화에서 많은 모티브를 삼았고, 주인공이 드래곤 슬레이어였다면 신화적인 요소를 빌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살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신화란 우리 현대인에게 낯선 것일지 모르나, 신화는 집단적인 무의식의 표출이라 볼 수 있다. 어딘가 다르나 각국의 신화는 조금씩 유사한 요소가 많은 것이다. 게다가 신화란 우리 현대인에게 환상이겠지만, 신화는 옛날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서 역사인 셈이다. 그리스에서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위해 축가를 불렀다.

 

그의 영원한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점에서 말이다. 북구신화와 그리스신화에서 차이점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신들의 의상과 무기, 타도대상에서 유사한 점이 많았다. 신화가 역사인 옛날, 신화가 환상인 지금에서 현대인에게 신화와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지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다. 라이트노벨을 토대로 만화 내지 애니메이션 역시 그렇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최초의 서사는 신화고, 현재 최근에 만들어진 서사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다. 따라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서 근본적으로 인간이 드러내는 욕망에 대한 심리적 근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를 보면서 위의 맥락에 충족되지 않은 것은 분명 필자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을 보면서 나름 만족했다. 드래곤이란 소재, 검사의 소재, 그리고 불완전한 소년의 등장에서 많은 cliche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나름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고, 복선 설정 역시 억지로 불어넣지 않았다. 작가가 만든 세계관에서 나름 충실하게 반영되었고, 용인전쟁에서 패배한 인간에게 현재 우리 지구의 중심은 인간이나,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에선 용이 중심이다.

 

세계의 중심이 용이라면 그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에 빠지는 것인가? 게다가 최근 일본에서 방영한 라이트노벨 원작의 애니메이션 <성각의 용기사>와 비교해보면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의 흐름이 훨씬 부드럽고, <성각의 용기사>에서 용기사와 용에 대한 모험이나 그 속내는 하렘장르란 한계성에 갇히나,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는 연애적 요소를 크게 부각하기 보단 하나의 보조적인 역할로 설정했다. 그런 점은 작가가 작품에서 서사를 얼마나 잘 전개하는가에서 독자로 하여금 재미와 흥미를 줄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생각에서 불평등에 대해 생각했는데, 인간은 불평등은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나이, 민족, 성별에 의한 선천적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에 의한 후천적 불평등이다.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에서 용과 인간의 불평등은 바로 선천적 불평등, 즉 선천적인 불평등이다. 황녀 밀레니아는 다른 용과 다르게 인간에게 매우 관대한 자세를 보인다. 불평등의 차이에서 오히려 상대방과 자신의 존재가 다른 것을 알기에 그런 판단이 가능하다.

 

작품 내에서 다른 용과 계약으로 하나의 우월성을 얻는 자들은 오히려 후천적인 요소에 강하다. 그것은 서로 간의 계약, 사회적 계약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용인전쟁에서 승리한 용의 지배권에 인간과 용의 평등관계를 강요하는 것이나 혹은 그 이전의 불평등을 강요하는 것이나 모두 지배권자의 논리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논리가 논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윤리라는 가치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밀레이나의 그의 의지, 그녀가 가진 각오, 드래곤에 대하여 혐오감을 가진 리온은 과연 그녀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 보면 나름 잘 풀어나갔다고 본다.

 

그리고 인간과 용이 서로 다르지만, 밀레니아는 항상 나는 나이고, 내가 아닌 다른 드래곤은 나하고 같은 대상으로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 상당히 작품에서 실존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명확한 인식에 대한 발언은 어느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서 봐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드래곤 황녀인 밀레니아가 아니라 리온의 친구인 밀레니아로서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1-2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단 무의식이라 할 때 아담-뱀-이브 / 전사 혹은 왕자-용-여자 이 구도는 어떤 연결점이 있을지요?

만화애니비평 2015-01-21 16:41   좋아요 0 | URL
제 개임적으로 뱀에 대한 여성적 상징성을 부정적으로 몰아넣는 것이 예상됩니다. 예전에 마빈 해리스의 서적을 보면 남성의 무의식에 의해 조성된 (문명적 폭력) 것이기보단 문화에 의해 조성된 남성의 것이라고 보더군요.
에덴동산의 뱀은 욕망을 말하고 금기를 어기는 존재로 나오듯이 문명화 된 국가사회에선 여자의 행동을 배제하려는 남성의 심리가 아닌가 합니다.

AgalmA 2015-01-21 16:51   좋아요 0 | URL
음. 남성적 문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기도 하겠군요. 답변이 엄청 빨리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1-21 16:55   좋아요 0 | URL
사무실에 컴 앞에 있으면, 메일로 바로 알림이 오거든요(아니 알라딘 북플로도).
예전에 제우스, 아프로디테, 메티스에 대한 페미니즘 분석을 귀동냥하면서 신화적인 요소와 인류학(히즈 스토리)에 대한 서적을 보면서 정리한 것이죠.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스펙타클러도 스펙타클을 선택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솔짓히 대놓고 말하자면, TV에서 방영되는 저 많고 많은 영상들, 거기서 우리 일상과 연결되는 것도 혹은 아닌 것들도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하고 직접적인 것들에 대해 너무 쉽게 잊히고,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것들만이 열광한다.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스펙타클이란 이미지가 매개되어 된 사회다. 이미지란 것은 결국 3차원적인 물리적 공간보단 오히려 영상으로 이루어진 미디어에 의해 좌우되는 세상이다. 그런다고 물리적 공간조차 스펙타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사상이 지배하는 게 아니라 사상이 인간을 지배한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 단지 자신의 주머니 속의 자본이랄까?


하지만 그 자본 역시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만들어준 조류를 타고 흘러갈 뿐이다. 어째든 이런 글을 쓴 동기는 토요일 독서모임을 할 때다. 1차로 책 이야기를 하고, 2차로 근처 통닭집에 가서 맥주, 소주를 주문하여 안주로 치킨과 감자튀김을 먹을 때다. 그런 시기에 가게 안에는 수많은 인파로 붐볐고, TV에선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 그리고 그 영상의 움직임과 소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환성이 큰 노이즈로 되었다.


한국과 호주의 축구시합, 운동을 좋아하고 특히 축구경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마 좋은 구경거리일 것이다. 스펙타클의 사회란 곧 구경거리의 사회이니 말이다. 단지 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축구경기의 대본 없는 파노라마한 액션에 환호성을 지른 후 TV에서 축구경기 후의 방송채널이 무엇이 나오는지 보았다. 그것은 부평어린이집 폭행사건이었다.


뉴스화면에서 어린 아이에게 뺨을 날리는 보육교사의 행동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 충격적인 모습을 보면서 가게 안을 볼 때 방금까지 축구경기를 하던 때와 다르게 조용했다. 아니 거의 보통 가게와 다른 없는 상황이었다. 축구경기에서 슛을 날리고 공을 드리블 하는 모습에선 열광하는 손님이 이제는 다른 모습인 것이다.


솔직히 축구시합에 한국이 이기면 좋기도 하겠지만, 딱히 좋거나 나쁜 게 아니다. 단지 운동시합에서 그 선수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충분히 내뿜을 수 있기에 그들의 노력과 성과를 볼 수 있음이 중요한 점이다. 실존적인 인간상으로 그것은 선수들의 보상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고 뉴스에 침묵한다. 물론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더 겁나는 것은 어느 사람이 폭행사건 당사자가 아닌데, 이상하게 번호가 유출되어 곤혹을 치룬 점이다.


그 사람의 폰이 인터넷 웹사이트에 유머 내지 엽기 라는 주제로 올라가 있었는데 수백 건의 문자와 카톡, 전화들이 와서 그 당사자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억지로 욕을 먹는 입장에서 그야말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자기 안으로 가는 공간이 아니라 스펙타클의 사회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움직인다.


단지 그 열광적인 자세가 어느 것에 매달려 있는지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나도 열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본 적이 있었다. 하다못해 지금 어느 것에 열광할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은 남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혹은 아닌가란 생각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어느 특정 아이콘에 목매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위가 자신이 결국 정의 내지 좋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 인간들은 평소 정의로운 삶을 살지 않는다. 만약 죄없이 욕먹었던 사람에게 전화, 문자, 카톡을 보낸 사람 중에 과연 몇 %가 어려운 이웃이나 사람들을 도울까? 거의 없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진짜 세상을 먼저 생각한 사람들은 저런 일이 있기 전부터 먼저 찾아가고, 진짜 그 보육교사의 악행을 처벌하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직접 가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기 실천적이지 못한 정의관, 혹은 그게 아니라면 정의도 아닌 정의를 두고 성난 군중떼처럼 몰리는 인간, 민주주의사회에서 시민들의 의식으로 통한 연대운동은 중요하나, 정작 그 연대정신에 일반의지가 결여된 것이라면 만들지 않은 것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운동조차 하나의 스펙타클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명제에 대한 안티테제, 그 안티테제에 대한 또 다른 안티테제가 이어지는 현상에서 우리의 스펙타클의 사회는 달려간다.


이런 사회에서 마치 자신은 아무 것도 원하지도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자칭 아나키스트들, 내가 볼 때 이들은 정말로 정신적인 자위를 도가 지나친 자다. 아나키스트들은 자신만이 속박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세상 그 자체를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는 아무도 지지하지 않아 나쁜 놈이 아니네요. 나는 투표하지 않아 책임이 없다면서 누릴 것은 다 누리려는 멍청한 지성, 만약 촘스키나 신채호의 책을 읽어본 자라면 인정하겠지만 글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너무 부족하다 못해 어설프다고 말할 수 있다. 가령 다른 국가의 축제 내지 기념일을 찾아보면 그들의 국가 내지 민족에 대한 기념적인 행사로 남을 수 있도록 최대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발휘한다. 프랑스의 경우 1789714일 처음으로 프랑스 민중들이 봉기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한 것을 최고로 여기며, 미국의 경우 독립기념일을 최고로 여긴다. 자신들의 국가가 지금의 모습을 생기게 해준 것에 대한 가치다. 그런 반면에 일본은 경우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문화, 혹은 근대 전후로 생긴 문화를 이어져 내려온다. 그들의 축제는 전통문화의 연속적인 향연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의 얼굴을 내보일 수 있는 정체성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한국의 근대 이전 사회, 즉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시절과 그 이전에 있던 조선이란 이름으로 왕조가 있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잔혹한 일제나 시대에 뒤떨어진 조선이란 시기는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역사에서 그 시대의 흐름이 없었다면 현재 모습이 없다. 한국에서 최고의 도시는 서울이다. 서울이 도읍이 된 시기가 바로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개성이 도읍이던 고려에서 한성이 수도이던 서울로 이전한다.

 

서울이란 곳이 한성 즉 한양이란 말처럼 한양이 우리의 수도가 된지가 거의 620년이 넘었다. 조선에서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이란 국가로서 살아온 시기를 본다면 한국의 역사에서 조선은 최후의 왕조국가이면서, 우리가 남긴 문화적 유산을 가진 국가다. 아쉽게도 그나마 조선 이전에 남은 문화적 유산은 고려나 통일신라(보단 후기신라가 맞겠지만) 정도다. 종교가 정치적인 제도로 살아가던 시기에 한국의 종교는 단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 샤머니즘에 의해 유지되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말기까지 불교,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유학, 그 안에서 성리학으로 대체된다.

 

성리학이 조선의 학문과 정치사상이 되면서 사회는 오히려 개혁을 추구하기보단 퇴보하기 시작했다. 사농공상이란 사대부 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사대부는 학문의 근본을 세우기보단 그저 성리학 안에서 허례허식만 추구했다. 공자의 유학은 전쟁이 많은 시기, 군자의 정치로서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 어려운 국가 내정을 회복하고자 했다. 왕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쌀이라 할 수 있다. 배고픔에 굶주려 옷을 헐벗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군자의 적선이라 할 수 있다.

 

본래 사대부들은 유럽 중세시대에 봉건영주와 같은 위치다. 마을에 향약이나 서당을 열고, 그 마을에 일어난 일을 주관하거나 관리하기도 한다. 물론 관청도 있으나, 마을의 풍속은 그 고을에 사대부들의 인품과 학문적 기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물론 조선후기로 갈수록 양반들 사이에서 부익부 빈익빈, 특히 당파전쟁과 세도정치로 인해 많은 사대부들이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이번에 읽어본 <서재에 살다>는 바로 그런 시대에 살아간 지식인에 대한 기록이다.

 

지식인들이 나온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학문적 가치와 삶의 향기를 찾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 것도 우연인지 <서재에 살다>는 내가 최근에 읽어본 서적에서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서적이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가족을 제외하자)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한국에서 조선이란 국가의 마지막 르네상스, 그 시기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일대기를 찾아보고 그분이 귀향살이를 하던 강진군 도암면에 가본 적이 있었다.

 

다산 정약용이 기거하던 도암면 귤정처사의 산장인 다산초당은 한국 전통문화로서 혹은 더 나아가 한국인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이른바 다산학단이 생긴 곳이며, 한국의 인문학에서 모든 종점은 다산이었다. <서재에 살다>에서 다산의 지인이 하던 말처럼 열수의 죽음 수 만권의 서고가 무너진 것만이 아니라 조선의 학문과 미래까지 멸망이었다. 그런 그가 머문 곳 인근에 그분의 따님이 시집가서 살던 곳이 있었다. 한국 후기 유학자 중에 이름을 날린 방산 윤정기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었다.

 

방산 윤정기의 가택 이름은 명발당(明發堂)이라 한다. 방산 윤정기는 후사가 없지만, 지금은 방산 윤정기의 먼 일가의 후손이 기거하고 있다. 작년 가을 시골에 가면서 그곳에 가보았다.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살아가던 집에서 걸어가면 10분조차 되지 않았다. 약간의 현대적인 기술이 있지만, 아직도 기와로 이루어진 지붕을 보며,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한 점이 있었다. 유학이 중심이던 조선은 확실히 구시대적인 세기다. 하지만 19세기 초반에 움이 트던 실학이란 과연 무시하지 못할 사상과 가치관이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비롯하여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이 3사람은 한국의 다도(茶道)문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고, 한국의 차의 성인으로 지금 이 시기의 사람들에게 추앙 받고 있다. 나 역시 대학교 동아리가 다도동아리였기에 다도문화를 배우면서 이 3사람의 이야기를 보았고, 현재 남양주 마재, 여유당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살이할 때 그가 머문 산장의 주인이면서 제자이던 사람의 후손에게 헌다를 받고 있다. 스승이 귀향하고 서거하면서도 아직도 찾아오는 제자의 후손을 보면서 뭔가 200년이란 시간을 넘어 계속 이어지는 이런 모습이야 말로 우리의 정체성이라 여겼다.

 

그동안 한국의 모습은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게다가 근대경제화로 인한 빠른 변화와 방황에서 우리가 원래 천천히 바꾸고 가꾸어야 할 것들을 모조리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저 비극적인 40(을사늑약 포함)3년간의 전쟁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거의 파괴되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문화에는 외국의 문화를 천천히 받아들인 게 아니라 급작스레 억지로 밀어 넣고, 그것이 우리하고 전혀 다르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변화라는 것은 마치 공기가 진공의 공간에 흘려 들어가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지만 그 변화의 바람이 조화를 이루고 새로운 양식이 하나의 산들바람이라면 모를까 태풍처럼 몰아치면 남는 게 없다. 우리의 정체성 그게 뭔가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왜 나츠메 소세키가 근대와 전근대 시대의 문화적 간극에서 고뇌하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인생이라 삶의 미학이 오로지 사사로운 이익에 묻히기 때문이다. <서재에 살다>를 읽는 순간,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되찾음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나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잘못된 인식에서 계속 유지된다는 점이다. 군사문화에 길들어진 사회, 사회라는 공간에서 특히 남자들은 군대문화에 익숙해져 이른바 까라면 까라는 게 통용된다.

 

이런 시기에 여자들은 오로지 자가만의 이익, 혹은 자식을 위한다고 하나 막상 자신의 자존심만 채우는 이런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그런 천박한 현실적 가치관이 한국의 정체성으로 되어 버렸다. 남을 위해 살아가지 못할망정 남을 파멸로 몰아가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은 세상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생과 삶의 미학이 다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사람들은 자신에 먹고 사는 것이 약간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문화적 욕구를 채우려 한다. 하지만 그 욕구의 해소는 그저 대중문화라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남과 나의 자아적 경계구분이 없다.

 

19세기의 지식인들의 서재는 바로 남이 아닌 나만의 공간이 있고, 그 속에는 삶의 미학과 지식인의 가치가 있다. <서재에 살다>는 바로 그런 우리 조상들 중에서 19세기 북학파 중심으로 구성된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흔히 조선의 사대부만이 있는 게 아니다. 서얼 출신도 있었고, 가난에 허덕이는 자들도 많았다. 심지어 세력가에 의해 노염을 사서 먼 곳에 가서 귀양살이를 수 년 동안 고생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 바로 서재였다. 책과 붓, 벼루 그림 그리고 그림이 걸려있는 공간을 말이다.

 

지금 우리의 공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예전에 개마고원 출판사로부터 선물로 책을 받으면서 <나만의 공간>이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나만의 공간, 어느 자는 책이고 누구는 옷이고 누구는 음악이며 누구는 다른 무엇인가가 채워져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과 취미 그리고 더 나아가 삶의 모습은 그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풍요롭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란 점이다. 우리에겐 바로 그 원동력이 존재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어본다면 과연 있을까?

 

자신만의 공간이 있기에 상대방과 교감이란 것이 있는 것을 아는가? 부끄러운 것인지 아닌 것인지 나는 TV를 보지 않은지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취미로 만화, 라이트노벨, 애니메이션과 같은 하위문화를 즐긴다고 하나, 나의 서고에는 각종 철학, 사회학, 인문학 도서들이 꽂혀 있다. 나의 서고엔 결국 철학과 사회학이란 학문적 영역처럼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문명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기 좋은 공간이다. 지식인들의 서재이름을 보면 화려하기보단 오히려 겸손하거나 또는 어려운 자신을 묘사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여유당(與猶堂)이라 한 것처럼 만약 나의 서고를 두고 어떻게 말하여야 하는가? 오타쿠란 별명이 한국에서 오덕 내지 덕후라고 하나, 본래 의미가 상대방의 댁을 부른 말이기에 은댁재(隱宅齋)가 좋을 것 같다. 오덕쿠의 서재 오덕의 서재, 그늘에 가려진 하위문화 공간이 즐길 수 있는 곳은 역시 집이다. 그 집에서 서고라면 은댁재가 내게 맞는 서재인 것 같다. 만화책과 철학책이 공존하는 공간이기에 세상의 유행 따위 잊은지가 옛날이다. 덕분에 보통 사람들과 대화를 제대로 이어가기 어렵다. 이미 TV와 단절했던 점과 사람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영역을 파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추구한다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한국의 문화, 세계의 문학과 문명, 그리고 예술의 세계까지 말이다. TV를 안 본 후에 내가 더 예술에 대해 더 관심을 두게 된 동기가 예술이란 모두 같은 것으로 보는 것으로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남과 다르게 살라고 하듯이 남도 다른 남과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만의 공간, 나만의 세계는 그 시작의 중심이면서 시작이다. 어찌 보면 다양성이 없는 우리의 모습에서 <서재에 살다>의 지식들은 자신의 가치에 의해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와 관계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나, 그들의 재산들은 우리의 우수한 문화재며, 국보와 보물로 남아있다. 게다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라는 그림은 바로 <서재의 살다>에 나온 것처럼 그들만의 삶에서 나타낸 삶의 미학이었다. 그러나 나는 서재를 생각하면 바로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만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서재가 곧 자신의 집이고 방이었다. 서재에서 글을 읽는 선비는 자신만의 세계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고고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학문의 성취는 무릇 자신의 출세만이 아니라 더 넓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아에 나아간 자, 백성보다 더 괴로운 일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괴로워하고, 백성들이 만족하고 나서 만족하라는 말은 인상적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유배 살이 할 때 갈밭마을의 아낙네 사연이 내 마음에서 항상 떠나지 않는다. 시아버지와 배냇물도 마르지 않은 아이에 대한 군포세 대신 소를 끌고 간 관청, 그것에 좌절한 남편은 칼로 자신이 남근을 자른다. 그 피가 흐르는 남근을 잡고 관청에 가는 아낙네지만, 아무리 곡성을 높여도 관청의 벽은 너무 높아 쳐다 볼 수 있다. 19세기의 일들이 200년이 지나 지금도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저 멀리서 안타까워 비통해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나그네 글방에서 시조를 읊으며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이 다 저렇게 백성을 위해 고뇌하는 것만이 아니지만, 적어도 서재에 책을 잡던 그들은 허례허식에 빠진 자들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에 큰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학문이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근본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란 점이다. 그런 치열한 공간에서 힘들게 살아가던 지식인들의 서재란 결국 그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크나큰 재산이란 점이다. 우리의 정체성 과연 우리에게 어디서부터 찾아가야 하는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ainly 2015-01-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기에 여자들은 오로지 자가만의 이익,혹은 자식을 위한다고하나 막상 자신의 자존심만 채우는 이런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그런 천박한 현실적 가치관이 한국의 정체성으로 되어버렸다? 참 뜬금없고 편협한 한국 정체성에 대한 정의네요.

만화애니비평 2015-01-18 23:27   좋아요 0 | URL
님의 그런 시선이 참 답답하네요.
현실의 교육을 보시면 알 겁니다. 학생들에게 언제나 과중한 교육, 부익부 빈익빈으로 양극화, 이런 문제로서 바라본 천박한 한국사회라는 것이고, 그러한 흐름이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가속화라는 점이고, 그런 것이 생긴 것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정립되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무슨 의도로 덧글을 남기는지 몰라도, 조금 본인의 생각을 현실적 상황에 전후맥락을 판단하여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여성만 비난했습니까?
 
라쇼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보면서이다. 그의 문학은 류노스케라는 사람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또 하나로 알게 된 동기는 애니메이션 기획물 중에 <푸른문학>에서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작품 하나인 <지옥변>을 본 것이었다. 지옥변이란 작품을 약 25분 정도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꾸몄지만, 그 작품이 단순히 애니메이션이라 하여 우리가 그래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미치광이 화가, 그리고 그 화가가 살던 폭군들, 이 작품을 보면서 인간이 가진 미적 감각이란 반드시 기존의 미적 가치에 부여한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것들을 찾아가거나 또는 추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소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전개나 성향은 다른 것 같았으나, 나와 친한 분에 의하면 <지옥변>이란 작품은 지상예술주의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작품을 한 번 보게 되면, 그의 작품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요소를 들여보는 것보다 그 예술적인 성향으로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이 보인다. 현실을 외면하는 비정치적인 표현의 글들, 하지만 과연 그가 그렇게 쓰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적으로 현실에 대한 외면 내지 회피는 그 시대에 대한 거울적인 요소로서 대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근대문학을 꽃 피우던 시기고, <라쇼몽>이란 서적을 읽은 후 류노스케의 정보를 보는 순간, 그가 일본 대문호인 나츠메 소세키의 문하로서 있었다는 점이다. 나츠메 소세키의 글을 보는 것과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글을 보는 것, 더 나아가 다자이 오사무가 좋아한 류노스케의 글을 생각하면 조금 다른 괴리감이 나온다.

나츠메 소세키는 이른바 도쿠카와 쇼군 정치에서 메이지 시대로 이향되면서 그 시대에 보여진 희망찬 미래에 대해 그냥 보지 않았다. 오히려 메이지 시대가 이전의 시대보다 못하거나 비슷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메이지 시대가 일본의 문화적인 요소에서 상당히 개방적으로 변하여 진보적인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메이지유신의 도래는 다시 천황이란 이름에 대하여 신적인 힘을 부여하고, 군국주의적 이상을 만들어가던 시기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본다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지만, 막상 주인공인 간게쓰 선생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표정으로 달관한다. 그런 모습은 이전에 읽어본 니체의 <반사회적 고찰>에서 니체가 바라보던 독일의 모습이 흡사한 느낌이 있었다. 독일은 1871년 독불전쟁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한다. 그때 도취된 독일의 모습에 많은 독일 국민들은 그 흥겨움에 빠졌다. 그러나 니체는 바로 그런 독일 사람들에 비판을 날렸다.

조금 다르게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선 간게쓰 선생은 엉뚱하고 미련하나, 그 모습은 영락없이 실존주의적인 모습이었다. 국가가 승리해도 나에게 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오히려 신문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한 격려금 모금이라든지 혹은 전쟁에 참가한 장군이 군주의 죽음을 듣고 자살했다는 게 과연 자신과 무엇인가 말인가? 라는 의문을 남기는 것이다. 근대국가에서 일본은 근대사상에 입각한 게 아니라 단지 군국주의적인 요소로서 이향한 것이다.

근대국가에서 국가의 주체는 국민이고, 그 국민은 이성과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국가라는 조직을 운영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근대화란 이름에서 근대사상과 철학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근대화란 이름이 진행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차라리 근대사상에 입각한 국가적 체계는 무참히 살해된 1871년 파리의 시민, 꼬뮌들이라 볼 수 있다. 시민 내지 국민이 주인이 된다는 점은 그들의 표현과 의사전달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한다. 일본의 대문호들이 나오던 시기에 그런 일본이란 국가를 보면 그들이 추구하던 문학적 모습을 보면 일본이란 국가가 추구하던 방향이란 전혀 다르다.

문학이란 것, 혹은 예술이란 것이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과 성찰을 요구해야 하던 것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나츠메 소세키의 비판적인 성찰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회적인 구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적인 변화에 어느 개인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개인의 이야기로만 진행된다. 하지만 계속 읽는다면 그 사회에 놓인 개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에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과 사회의 모습에 대해 나츠메 소세키는 분명 일본이란 사회가 더 좋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츠메 소세키의 문하에 들어간 류노스케는 어떠한가? 류노스케의 작품을 읽다보면 처음과 끝에 대한 설정이 전혀 다르다. 이른바 보통 사람들이 즐겨쓰는 말인 기승전결, 문학에서 내러티브라는 것에서 그의 작품은 서사전개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시작과 끝의 방향이 전혀 다르거나 또는 이야기의 진행이 긴장감을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이나, 결말은 너무 싱겁고, 때로는 전혀 엉뚱한 설정으로 들어간다. 혹이라면 역자의 후기처럼 <덤불 속>이란 작품처럼 가려진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로 인해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다.

류노스케의 대표작품인 <라쇼몽>, 처음에 내가 <라쇼몽>이란 작품을 들어본 계기는 계명대학교 영화학과 서정남 교수의 <영화서사학>이란 도서를 접하면서부터다. 이른바 몽타주 기법에 대한 연구로서 혹은 다양한 영화이론을 독학하면서 <라쇼몽>을 알게 되었다. 그런 <라쇼몽>이 일본 거장감독인 구로자와 아키라에 의해 만들었지만, 막상 류노스케의 <라쇼몽>과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설정한 것을 알았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은 사실 류노스케의 <덤불 속>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었다. 아직까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감상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류노스케의 <덤불 속>과 그 <덤불 속>이 실린 <라쇼몽>을 읽으면서 류노스케의 소설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라쇼몽>이란 어느 절망적인 시기에 주인에 의해 쫓겨난 하인이 어느 노파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산적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대방이 다른 상대방의 것을 취한다면, 나 역시 그 상대방을 취하는 것이 문제없다는 것에서 인간의 본질적 요소를 보여준다.

그런 빼앗고 빼앗아가는 구도는 생명이란 이름이 새겨진 나생문(羅生門, 라쇼몽의 한자어)에서 인간의 윤리와 현실적 상황의 대립을 보여준다. 여기서 인간은 윤리보단 현실을 선택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최소한 산적이 된 하인은 노파의 목숨을 훔쳐가지 않는다. 후기 역자의 말처럼 주변에 시체들의 몸에는 옷이 입혀져 있었고, 그 중에 여자도 제법 있었기에 노파는 그 여자시체들의 옷을 입고, 그 여자의 머리를 뽑아 가발을 만들어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인의 도적질은 문제되나, 노파의 행동 역시 윤리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노파는 자기가 어느 여자의 머리를 뽑으면서 그 여자의 행동을 비난하는 모습이 나온다.

마치 끝도 없는 비난과 그 비난에 대한 응징의 도적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이 나온다. 아마 일본의 당시 모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인간들은 타인의 것을 빼앗아야 자신에게 부가 증가되고, 그런다고 하여 그 남을 것을 빼앗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분면 다른 방식으로든 그 문제점이 있다. <라쇼몽>이 류노스케의 첫 작품이고, 나츠메 소세키 문하시절에 내놓은 것이라면 충분히 나츠메 소세키의 영향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에 대해 다른 모습으로 바꾸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라쇼몽>과 다르게 다른 작품들은 초현실적인 요소로 보여주거나 혹은 인간이 현실에서 엉뚱한 착각을 하는 모습들을 다룬다. <덤불 속>은 어느 남자의 죽음에서 목격자와 가해자 그리고 다른 피해자의 진술이 모두 다른 것처럼 진실은 항상 다른 곳에서 숨어 있었다. 죽은 남자의 혼령이 무당에 의해 나올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혀 다른 전개로 흘러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세계에 있어도 전혀 다른 이야기와 증언이 흘러가면서 우리는 현실에 대해 일관적인 비판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계속 돌고 도는 것이다.

모든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에는 항상 결론이 흐지부지 하거나 또는 싱겁게 끝나거나 도대체 작중 인물이 무엇을 말하고 전달하고자 하는지 제대로 전개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것은 곧 현실에 대하여 용린을 건들지 않겠다는 점과 같을 것이다. 현실의 이야기보단 환상과 괴이한 상황의 연출은 현실로부터 도피다. 하지만 그 도피는 암울한 시기에 살아간 지식인들의 숨이 막힌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우울한 상황이 류노스케의 글이 되었던 것이다. 현실을 벗어나 전혀 다른 결말과 결론, <덤불 속>과 <라쇼몽>에 있었던 자들은 <덤불 속>과 <라쇼몽>의 등장인물들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속에는 현실에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단지 그들은 그 속에 나온 주인공들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라쇼몽>의 형태는 21세기에도 진행 중이고, <덤불 속>에는 아직 우리들이 살아있다. 현실을 외면한 그의 현실에 대한 느낌이 그의 작품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격의 거인에 대해 글을 적어보기 전에 먼저 문화유물론이란 어느 것을 말하는지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본래의 자료는 마빈 해리스(미국 콜럼비아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2001년 타계)의 저서인 <문화유물론>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문화유물론자들은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가 어떻게, 또 무엇으로 변화할 것인지에 관한 정치적 방침을 공유하고 있지 않지만, 문화유물론은 전략을 추구함으로써 불가피하게 현상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기여한다. 역사시대, 선사시대를 통하여 지배계급은 항상 사회생활을 신비화시킴으로써 실제의 혹은 잠재적 적들에 대한 첫 번째의 방어선으로 삼았다. 현대의 정치적 맥락에서는 관념론과 절충주의가 지배계급의 존재자체를 호도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빈곤, 착취, 환경악화의 책임을 착취자로부터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 돌린다. 문화유물론은 문화관념론과 절충주의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 전략들은 왜곡된 비효율적인 분석을 통하여 전쟁, 빈곤, 착취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문화유물론은 이와 똑같은 정치적, 과학적 이유 때문에 변증법적 유물론에 반대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미래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는 확신을 조장함으로써 착취에 대항하는 투쟁을 촉진시키려 한다. 그렇지만 같은 의미에서의 확신이 새로운 지배계급의 착취를 영속화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즉 새로운 지배계급이 국가체계의 착취적 측면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끔 호도하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정교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해준다. 실증주의 인식론을 멸시한다면 변증법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은, 최고로 오도된 분석이다. 문화유물론은 정치적 편의 때문에 사회과학의 경험론적, 조작주의적 성실성을 억압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착취를 없앨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경험론적, 조작주의적 비판이 유지되지 않고는 이른바 민주주의라는 것이 새로운 형태의 자유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인가를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전격의 거인에 대해서 문화유물론적인 관념으로 취하려고 하는가? 기본적으로 나는 인류학자 내지 마빈 해리스 교수처럼 철학전공자가 아니다. 대부분 인류학자 중에서 철학이나 문학 전공자가 많았다. 프랑스 구조주의-인류학 창시자인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 역시 파리대학 문학과 법학학사였고, 마르크스와 소쉬르의 기호학으로 통해 구조주의를 탄생시킨다. 그의 인류학의 바탕에는 3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카를 마르크스, 둘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세번째는 지질학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서양사상은 이분법적인 관념으로 통해 인간의 이성을 우월하게 보는 휴머니즘으로 이룩했다. 하지만 막상 휴머니즘은 겉떼기에 불과하다. 1차와 2차 세계대전의 잔혹성과 가장 민주주의적인 체계 역시 파시스트 국가로 전략하는 경향에서 인간의 이성이란 그저 환상으로 만들어진 굴절될 거울과 같았다. 인간의 관념에서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놓은 프로이트와 인간의 역사는 투쟁과 하위구조, 그리고 자본주의구조에 대해 연구한 <자본론>은 과학적 사고와 더불어 현실에 대해 객관적 사실을 요구하게 된다.

 

게다가 소쉬르의 언어학으로 통해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규합은 우리가 원시하거나 미개한 부족마저 그들 나름의 언어와 행동규칙이 있음을 밝혀내었다. 야생의 사고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일반 서구사회의 과학보다 원주민들이 밝혀내는 식물의 분류법이 더 다양하고 객관적이란 사실을 적어놓는다. 따라서 인류학의 과제에서 각 문화에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연구는 절대적인 논리보단 상대적인 논리로 바라봐야 한다. 물론 무조건적인 상대주의는 위험하다. 문화유물론자 역시 상대주의적 문화를 알기 위해 현장탐문으로 중심된 연구를 원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어느 규칙에 대한 정립이고, 상대적인 것은 그들의 조건이란 점이다. 그런 조건에서 진격의 거인의 세계관에서 내가 지적하는 부분은 바로 권력에 대한 부분이다. 특별히 누가 어떻게 권력에 대한 지배논리와 정치적 의도 내지 사회적 구조, 그리고 경제적 상황에 대해 판단해 본다면 다소 이 글에 뭔가 새로운 전환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상황은 왜 벽이 3중으로 되어 있고, 그 벽 밖으로 인간이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이유다.

 

주인공 엘렌 예거 일행이 사는 시대는 전반적인 유럽사회로 묘사된다. 중요한 부분은 이름 대부분이 서양식이란 점이고, 머리색이 검정을 시작하여 노란색과 갈색 계통이 많다는 점이다.  이름도 엘렌 예거라는 것은 영미문화권 이름에 가까우며, 그의 적대적 관계인 장 칼슈타인은 장(Jean)이란 성은 주로 프랑스 중심의 불어권에서 사용되는 성이며, 슈타인이란 것은 독일어로 사람이란 의미로 독일 문화권도 포함된다.

 

당연히 진격의 거인은 서양사회를 말하는 것이며, 주인공 친구인 아르민 알레르토는 이탈리아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이름처럼 보인다. 문제는 중간에 유럽 및 영미문화권 이름만 아니라 동양권 이름도 보인다. 대표적 인물이 미카사이고, 뒤에 조사병단 에이스인 한지 조에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진격의 거인에서 보이는 세계는 외부와 단절된 세계다. 그렇다면 서양문화권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왜 동양 문화권 이름이 나오는가이다. 게다가 100년 전에 거인이 나타나 성벽이 쌓이고, 미카사는 부모님들이 불의의 사고로 당해 성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의미는 성밖에 그 무엇인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성벽을 쌓고, 거인으로 하여금 인류를 계속 위축되고 있는가? 최근 9화로 통해 판단할 수 있는 바는 엘렌이 아버지의 주사로 인해 거인으로 변할 수 있는 조건이란 점에서 기존 거인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반추할 수 있다. 그들이 거인화 되었던 시기는 당시 인간이 주사를 맞은 시기이고, 그것에 따라 남녀노소의 외견이 달라진다. 대신 초대형 거인(해부학 실습실 표본처럼 생긴)과 갑옷거인은 정보가 부족해 판단할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주사를 놓아 몸 안에 변화를 일으키게 했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행동을 하여야 하고, 그렇게 해야하는 것일까? 작품은 1회씩 감상했으나, 중요한 포인트는 식량문제와 자원문제 인 것 같았다. 식량의 대부분을 중앙과 중앙밖의 중간거점에서 주로 다루고 있으며, 철광석은 외부에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정치적 체제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에서 군주정인 것으로 알 수 있다. 훈령병은 모두 왕을 위해 일하며, 그들은 왕을 위해 복무한다. 단지 조금 의아한 점은 리바이를 비록한 전문가집단의 군인들은 뒤에 자유의 날개를 그려진 옷을 입었다는 점이다.

 

군주정에서 자유라는 의미는 좋은 것이 아니다. 즉 군주정은 정치적 권력을 왕에게 독점해야 하는 시스템이기에 자유라는 것은 왕에 대한 직접적인 대립구도를 보여준다. 그런다고 하여 군주정에서 입헌군주정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귀족이나 백작이 각 성을 통치하기 때문이다. 그런 군주정에서 무엇이 아까워서 거인을 풀어놓는가 라는 질문은 결국 인구조절이다. 인구의 조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식량이다. 외곽지구 함락과 동시에 중앙지구로 이동하면서 식량이 매우 부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식량부족과 인구밀도 증가에 따른 사회적 여파로 거인을 공격하기 위해 부대와 개간지를 만들기 위한 개척민이 나누어진다. 그러나 대부분 모두 절멸한다. 그들의 절멸로 결국 식량이 충분히 인류에게 공급될 수 있었다. 식량의 중요성은 중앙지구에서 거인이 공격할 때 어느 상인이 자신의 수레를 급하게 성문으로 대피하려는 장면이다. 그는 자신이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에 자신이 없으면 모두 식량난으로 죽을 것이라고 한다. 도시주거지의 사람들은 항상 식량문제로 상인에 대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고, 상인이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정치경제적인 배경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생각하여 식량이 풍부해지자?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기본적으로 사냥을 하려도 성벽이 쌓여 있기에 간단히 나갈 수가 없기에 일정한 장소에서 동물을 잡거나 혹은 사육할 수밖에 없다. 식량의 조건은 한계적이고, 농경사회의 집중적인 노동집약으로 통해 곡식을 수확할 수밖에 없다. 주요 음식이 빵이란 점과 공간적 배경이 서양이란 점에서 농산물은 밀이라고 볼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한국의 경우 몬순기후로서 여름에 덥고 강우량이 많기에 벼농사가 가능하나, 밀농사가 부적당하다. 밀의 재배는 강우량이 일정하고 기상현상의 기복이 적을수록 유리하다. 진격의 거인에서 밀농사가 주요생산곡물이란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나의 판단은 작가본인이 생각했는지에 대해 알 수 없으나, 그런 거인의 발동에서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인구조절에서 식량부족은 폭동을 야기하고, 좁은 땅에서 외지로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중앙정부의 집권통제력이 약화되므로 권력적인 정치통치술에선 당연히 가두는 편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식량과 더불어 주요사항은 외곽지역에는 금속이 많이 나는 점이다. 금속의 중요성은 바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외부로 나간 사람들이 금속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면, 자신들의 군대에 대해 대항할 수 있는 체계가 성립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