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스펙타클러도 스펙타클을 선택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솔짓히 대놓고 말하자면, TV에서 방영되는 저 많고 많은 영상들, 거기서 우리 일상과 연결되는 것도 혹은 아닌 것들도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하고 직접적인 것들에 대해 너무 쉽게 잊히고,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것들만이 열광한다.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스펙타클이란 이미지가 매개되어 된 사회다. 이미지란 것은 결국 3차원적인 물리적 공간보단 오히려 영상으로 이루어진 미디어에 의해 좌우되는 세상이다. 그런다고 물리적 공간조차 스펙타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사상이 지배하는 게 아니라 사상이 인간을 지배한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 단지 자신의 주머니 속의 자본이랄까?


하지만 그 자본 역시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만들어준 조류를 타고 흘러갈 뿐이다. 어째든 이런 글을 쓴 동기는 토요일 독서모임을 할 때다. 1차로 책 이야기를 하고, 2차로 근처 통닭집에 가서 맥주, 소주를 주문하여 안주로 치킨과 감자튀김을 먹을 때다. 그런 시기에 가게 안에는 수많은 인파로 붐볐고, TV에선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 그리고 그 영상의 움직임과 소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환성이 큰 노이즈로 되었다.


한국과 호주의 축구시합, 운동을 좋아하고 특히 축구경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마 좋은 구경거리일 것이다. 스펙타클의 사회란 곧 구경거리의 사회이니 말이다. 단지 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축구경기의 대본 없는 파노라마한 액션에 환호성을 지른 후 TV에서 축구경기 후의 방송채널이 무엇이 나오는지 보았다. 그것은 부평어린이집 폭행사건이었다.


뉴스화면에서 어린 아이에게 뺨을 날리는 보육교사의 행동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 충격적인 모습을 보면서 가게 안을 볼 때 방금까지 축구경기를 하던 때와 다르게 조용했다. 아니 거의 보통 가게와 다른 없는 상황이었다. 축구경기에서 슛을 날리고 공을 드리블 하는 모습에선 열광하는 손님이 이제는 다른 모습인 것이다.


솔직히 축구시합에 한국이 이기면 좋기도 하겠지만, 딱히 좋거나 나쁜 게 아니다. 단지 운동시합에서 그 선수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충분히 내뿜을 수 있기에 그들의 노력과 성과를 볼 수 있음이 중요한 점이다. 실존적인 인간상으로 그것은 선수들의 보상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고 뉴스에 침묵한다. 물론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더 겁나는 것은 어느 사람이 폭행사건 당사자가 아닌데, 이상하게 번호가 유출되어 곤혹을 치룬 점이다.


그 사람의 폰이 인터넷 웹사이트에 유머 내지 엽기 라는 주제로 올라가 있었는데 수백 건의 문자와 카톡, 전화들이 와서 그 당사자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억지로 욕을 먹는 입장에서 그야말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자기 안으로 가는 공간이 아니라 스펙타클의 사회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움직인다.


단지 그 열광적인 자세가 어느 것에 매달려 있는지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나도 열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본 적이 있었다. 하다못해 지금 어느 것에 열광할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은 남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혹은 아닌가란 생각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어느 특정 아이콘에 목매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위가 자신이 결국 정의 내지 좋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 인간들은 평소 정의로운 삶을 살지 않는다. 만약 죄없이 욕먹었던 사람에게 전화, 문자, 카톡을 보낸 사람 중에 과연 몇 %가 어려운 이웃이나 사람들을 도울까? 거의 없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진짜 세상을 먼저 생각한 사람들은 저런 일이 있기 전부터 먼저 찾아가고, 진짜 그 보육교사의 악행을 처벌하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직접 가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기 실천적이지 못한 정의관, 혹은 그게 아니라면 정의도 아닌 정의를 두고 성난 군중떼처럼 몰리는 인간, 민주주의사회에서 시민들의 의식으로 통한 연대운동은 중요하나, 정작 그 연대정신에 일반의지가 결여된 것이라면 만들지 않은 것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운동조차 하나의 스펙타클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명제에 대한 안티테제, 그 안티테제에 대한 또 다른 안티테제가 이어지는 현상에서 우리의 스펙타클의 사회는 달려간다.


이런 사회에서 마치 자신은 아무 것도 원하지도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자칭 아나키스트들, 내가 볼 때 이들은 정말로 정신적인 자위를 도가 지나친 자다. 아나키스트들은 자신만이 속박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세상 그 자체를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는 아무도 지지하지 않아 나쁜 놈이 아니네요. 나는 투표하지 않아 책임이 없다면서 누릴 것은 다 누리려는 멍청한 지성, 만약 촘스키나 신채호의 책을 읽어본 자라면 인정하겠지만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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