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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평점 :
전혜린을 감정 과잉, 자의식 과잉이라고 놀린다면, 그보다 비대한 자의식과 감정 폭발을 하고 있는 남성작가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뭐든 남성에게만 관대함의 잣대를 대는 사회 전반의 무게가 무겁다.
언제쯤 참을만 해질까.
얼마전 알게된 김명순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특히나 놀라웠는데, 이 책에서는 자세하게 언급되진 않았다. 김동인이 동료 작가 김명순을 악의적으로 조롱한 작품 ‘김연실전‘의 일부를 인용했다.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성폭력 이차 가해, 악의적 불링. 그야말로 여혐의 교과서적 행태.
김동인.... 싫음을 넘어서는 이 우울함.
전혜린을 가장 적극적으로 우습게 만드는 인물로 언급된 고종석.
특히 이 두 인물은 진짜 싫다고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ㅡ.,ㅡ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문학소녀‘의 뜻은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 작품의 창작에 뜻이 있는 소녀. 또는 문학적 분위기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소녀˝다. 그러나 여기서의 ‘소녀‘가 반드시 어린 나이대의 여자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여성의 ‘미성숙함‘을 뜻하는 용어로도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정미지는 장덕조의 단편 <해바라기>(1937년) 중 한 대목을 인용한다. ˝남편의 손을 더듬어 잡는 아내에게 ‘또 우리 문학소녀가‘라며 손을 뿌리치고 결혼이 사랑을 고백할 때와는 다른 현실임을 깨닫고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며 울기까지 하는 아내에게 ‘저 만년 문학소녀를 어째 연극이나 소설에 나오는 소리를 그대로 실행하려드니‘라며 무시˝하는 남편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문학소녀‘는 미성숙한 여성의 기표로서 여성으로 하여금 미완의 상태를 주지시키는 표상˝이 된다. 정미지, <1960년대 ‘문학소녀‘ 표상과 독서양상 연구>, 성균관 대학교 국어국문학 석사논문, 2011, 28p. - 10
문학소녀 카테고리를 전혜린이라는 단 한명으로 싸잡아 일컫기는 쉽다. 그러나 정작 문학소녀에 대해, 그 문학소녀 카테고리를 창조하다시피 했던 전혜린에 대해 알고 있긴 한가? 전혜린이라는 드문 개인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또는, 과거의 인물 전혜린의 지적 허영이 지금에 와서는 유치해 보인다는게 비난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남들과 달라지겠다는 그 허영심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성장해온 출발점이 아닌가? - 18
애초에 <여자계>나 <신여자> 발간을 주도했던 재일 조선 여성 유학생들이 <세이토> 동인들로부터 강하게 영향 받아 ‘여성해방운동을 추구하는 의미‘로서 ‘신여자‘라는 명칭을 즐겨 썼다면, <신여성>의 (남성)필진들은 ‘신여성‘을 ‘조선 사회를 문명화시킬 개조의 주체‘라 호명하며 자리매김했다. 적어도 창간 초기엔 신여성을 두고 ‘자각이 잇고 의뢰성이 업는 노예적 근성을 버린 사람‘으로서 ˝‘낡은 습관‘, ‘낡은 제도‘, ‘낡은 도덕‘과 싸우는 존재이며, 그래서 ‘금일의 현실생활‘을 ‘부정 혹은 항거‘하려는 ‘청년남녀‘의 일원˝이라는 ˝선구자이자, 메시아, 순교자˝로 찬사를 바쳤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모던걸‘이라는 호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 139
당대의 ‘아프레걸‘ 여대생들이 ˝대중잡지만 읽고 시사지, 학술지를 읽지 않으며 전후파적인 내용의 소설이나 일본에서 판매 금지되었던 <차타레 부인의 연인>과 같은 소설을 유입시켜 읽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나 소녀 및 주부들의 독서 모임에 양서 목록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펄 벅의 <숨은 꽃> 등이 여성 대상 독서 목록 앙케트에 계속 이름을 올렸던 것은, 그녀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이 책들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들에게 지속적으로 제시된 책들이 이 목록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일껏 이 권장 도서를 읽더라도 남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언제나 지성이 부족한 것으로 폄하되었다. 안 읽으면 더욱더 경멸받고 훈계를 들었지만, 막상 읽더라도 의심을 받았다. 독서에 대한 사랑의 강도가 또 지나치거나 혹은 교양-문학에 지나치게 함몰되는 것 역시 금지되어 마땅한 감정이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불안정한‘ 여학생들에게는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할 열정이었다. 당시 여학생 교육 관련 도서로 각광 받았던 김용호의 <여학생의 심리>의 한 구절을 보자.
[여학생들은 자기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하여서도 자기의 감정에 맡겨 관념상의 세계를 그려보며 미래의 세계에 대하여서도 감정에 움직이어 꿈과 같은 세계를 그려본다. (.......) 무엇이든지 자기의 기분을 알아줄만한 것에 자기를 맡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거기서 고금의 시가를 찾게 되고 현대문학에 취미를 갖게 되며 그 중에 자기의 기분과 같은 것을 노래하고 혹은 쓴 것을 ㅏㄹ견하면 대단히 기뻐하며 몰두해 읽는다. 그러는 가운데 점점 여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소위 문학소녀가 되어버린다.]
독서에의 몰두, 탐닉, 열렬한 환상은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의 전유물처럼, ‘사랑과 낭만‘에만 매달리며 현실이 아닌 꿈만을 좇는 물정 모르는 ‘미성숙한‘여성의 태도인 것처럼 배제되어 왔다. 문학 고전을 읽으며 교양을 쌓는 소녀의 이상적인 모습이 점점 열광적인 도취 상태에 빠지는 철없는 ‘문학소녀‘로 바뀌는 순간이다. -151
<리라기>와 <태양의 계속>등을 쓴 소설가 손소희(1917~1987)는 소녀 시절 친척 오빠로부터 ˝너는 그 떼까단적인 인생관을 버려라.˝하는 편지를 받았고, 등단하고 나서도 어떤 문단 선배로부터 ˝당신은 그 떼까단적인 니힐한 면을 버리시오.˝하는 주의를 받았다면서, ˝실로 무거운 우수가 거미줄같이 나를 열거매여놓고 종시 놓아주지 않는 때면 나는 꾸밈도 거짓도 아니고 진정 산다는 것이 싫다.˝고 푸념한다. - 166
김명순, 김원주, 나혜석 등 1세대 여류 문사들이 남성들의 구경거리이자 조롱의 대상이 되어 비극으로 치달았던 것과 달리, 수적으로 많아진 2세대 여류들은 (남성)문단내에 위치하는 새로운 조류로 비춰졌고, 일종의 ˝문단 유행어˝로서 ‘여류‘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175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여류‘의 뜻풀이는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즉 여류 문인/여류 작가라는 말은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글 쓰는 일에 능숙한 여자라는 뜻이며, 일반적인 여성에게는 적용될 수 없지만 특수한 재능을 갖고 있는 여성에게는 허용된다는 배제와 차별의 원리가 작동하는 단어다. - 177
2017. j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