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하루 - <만약은 없다> 두번째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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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맛이 참 좋은 작가다.

적당한 선 안의 응급실 묘사지만, 매우 선명하게 다가와서 과연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임이 느껴진다.

삶의 경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지는 무거움을 외면하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전해졌다.

만약은 없다와 이어 보면 좋을 듯 하다.


고작 설사로 하루 만에, 단 하루 만에 돌아가신다고요?
네, 고령 환자의 경우엔 생각보다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건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 보호자는 항의할 수도, 어쩔 도리도 없었다. 그는 더이상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지만, 전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나는 응급투석을 준비하러 진료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찰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과연 납득 가능하거나 위안이 될 수 있는 말인지 생각해보았다. 이 공간에서 필경 사용할 수밖에 없는 그말, 그것을 과연 나는 보호자에게 위안이 되라고 지껄인 것일까. 전쟁을 겪고 평생 피부병으로 뜨악한 시선을 견디며 보냈을 사람이, 이제 며칠 뒤 다른 병으로 갑자기 죽을 운명이라는 선고를 하면서, 응당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해준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안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이는 사실을 그대로 기술하는 일일 뿐, 다른 설명 방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매번 그렇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 26

문득 간밤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되레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곧 죽을 거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내 목숨이 간신히 살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간신히, 하지만 온몸에 기운이 없어, 곧 죽을 운명인 것만 같았다. 아, 차라리 그 일이 미리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어둠만 보고 있는 동전의 뒷면처럼,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 34

2017.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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