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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참 많이 듣던 스토너.
왜 다들 열광하나 싶은 마음에 일찌감치 책장에 모셔두고 이제야 읽게 됬다.
윌리엄 스토너의 삶에 대한 기록들.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큰 기대따위 없는 듯한, 언뜻 속을 알수 없는 사람 같은 인물.
세상의 어지간한 뉴스거리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듯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외면으로 표현하지만 않을 뿐, 그 어떤 인물 보다도 내면의 갈등이 넘치는 인물이다.
물론 넘친다라는 단어 자체도 스토너와는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지만.
그의 무심한 면은 타인에게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있는데, 이 부분이 스토너라는 인물을 어느 정도 희미하게 만드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뭔가 삶에 대한 성찰이나 명상 같은 이 인물의 생이, 특출난 것 그다지 없고 잔잔하기만 해 보이는 이 생이
왜 읽으면 읽을 수록 사무친다는 당혹스런 감정으로 다가오는지는.
문장도 어려운 구석이 없이 간결하고 서술도 명확한데 그 문장 뒤에서 비추는 희미한 빛이 계속 사색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이야기다.
매우 밋밋한 한 인물의 인생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 반하여, 오히려 스토너 주변의 인물들에게선 뜻밖의 에너지들이 범람하는데.
이것이 또한 매력적이랄까.
필연적으로 실패한 결혼,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비례해 적극적이지 못했던 딸과의 관계, 열병처럼 찾아와 결국은 언해피한 (불행이라는 말은 왠지 맞는 말이 아닌듯 하여...) 결말이 된 사랑, 이해할 수 없는 적의의 타깃으로 선택?되어 오랜시간 반목하는 되는 동료....
스토너라는 캐릭터는 매우 관조적인 시선으로 따라가는데 비해 대항하는 캐릭터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무자비한 구석도 있음을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된다. 전형적인 악당의 캐릭터를 맡게 된 아내 이디스나, 로맥스 같은...
꼿히는 구절들도 엄청 많았는데, 누군가 왜?라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설명하긴 힘들것 같다.
좌절과 실패를 지지하는 마음이라고 해야할지, 그럼에도 스토너가 끝까지 잃지 않으려던 가치 때문이라고 해야할지...
사실 나와 스토너의 접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보편적인 삶이라는 궤적에서 스토너의 삶은 그 누구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정리되지 않는 말을 주저리 늘어놓았지만.
요약해 말한다면, 정말 좋은 이야기라고 하겠다.
뜬금 없지만 영화로 만든다면 어울리는 캐스팅으로 고든 핀치 역에 왠지 고인이 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떠올랐다.
정말 뜬금 없이 떠오른 생각이 이야기에 고든 핀치가 등장할 때마다 성가시게 느껴질 정도로...;;; 그러다 보니 그의 연기가 또 매우 그립고 보고싶고...
싱숭생숭한 후기랄까..
2015. Jul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 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 p. 20.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p. 388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p. 31
자네는 꽤 똑똑해. 어쨌든 우리 둘의 친구인 저 녀석보다는 똑똑하니까. 하지만 자네에게는 오점이 있네. 오래된 약점. 자네는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여기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곧 알 수 있을 걸세. 자네 역시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졌다는 걸. 자네가 세상과 싸울거라는 얘기가 아냐. 세상이 자네를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내도 자네는 아무것도 못할 걸세. 그냥 멍하니 누워 므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겠지. 자네는 항상 세상에게서 실제로는 있지 않은 것, 세상이 원한 적 없는 것을 기대하니까. 목화밭의 바구미, 콩줄기 속의 벌레, 옥수수 속의 좀벌레. 자네는 그런 것들을 마주보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해. 너무 약하면서 동시에 너무 강하니까. 이 세상에 자네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없네. -p. 46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직접 말했던 것처럼 절망을 거의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레이스는 해가 갈수록 술을 조금씩 더 마셔서 공허해진 자신의 삶에 맞서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아갈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p. 350
"나도 알아." 스토너가 말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네. 다른 사람들도 아나?"
핀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그럼 입을 다물어주게. 부탁이야."
"염려말게, 빌." 핀치가 말했다. "그럼 금요일의 만찬 말인데...... 꼭 그 일을 해낼 필요는 없네. 자네도 알겠지만."
"그래도 하겠네." 스토너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씩 웃었다. "내가 로맥스한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핀치의 얼굴에 유령처럼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네 정말로 못된 고집쟁이 영감이 되어버렸구먼."
"그런것 같네." 스토너가 대답했다. -p. 372
스토너는 몸을 이리저리 찔러보는 남들의 손에 자신을 맡겼다. 그리고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검사대로 올라가서 끈에 고정된 채 커다란 기계가 소리 없이 몸 위에서 어른거리는 동안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이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지만, 반발하지 않았다. 반발하는 것은 매정한 일이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외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런 치료도 해볼 만했다. -p. 379
"아버지가 가엾어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는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편안한 삶이 아니었잖아요."
그는 잠시 생각해본 뒤 입을 열었다. "그랬지, 하지만 나도 쳔안한 삶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p.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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