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를 인양하다 창비시선 391
백무산 지음 / 창비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기회주의자로 만들고 싶지 않은 시인의 시는 어찌나 직선인지.

백무산이라는 이름마저 너무나 시인답다.


2015. Nov.

그 풍경이 내게 스며들자
나는 드러난다
내가 폐허라는 사실이 - 패닉 중

시가 무모해지더라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의 요구에 현실이 선택되거나, 시의 행위와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라면, 시가 오히려 삶을 소외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 기회주의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 시인의 말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광적으로 시작해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

그럼에도 따뜻하고 아련한 이야기.

메타포가 뭔지도 모르던 청년 마리오가 시를 만나고, 사랑을 만나고, 자신의 시를 갖게 되는 성장기로만 끝났다면

이렇게 깊숙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찬란한 삶 속에서 어느날 갑자기 끌어내려지는 암울함이 주는 여운이 확실히 있다.

전에 파블로 네루다의 시들을 읽었을 때는, 음.. 좋은 시네.. 정도의 감상을 가졌다면

이 소설을 본 후 다시 시를 읽는다면 무척 친밀하고 조금 더 깊은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몇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이야기.:)

2015. Nov.

어머니는 일어나서 가슴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단두대 칼날 모양을 만들었다.
"더 이상 말할 것 없어. 우리는 아주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렸어. 처음에 말로 집적대는 남자들은 다들 나중에 손으로 한술 더 뜨는 법이야."
"몇 마디 말이 해로울 게 뭐예요!"
베아트리스가 베개를 얼싸안으며 말했다.
"번드르르한 말처럼 사악한 마약은 없어. 촌구석 술집년을 베네치아 공주처럼 느끼게 만들지. 그리고 나중에 진실의 순간이 오면, 즉 현실로 되돌아오면 말이란 부도수표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 네 미소가 나비보다 더 높이 난다는 말보다 술주정꾼이 주점에서 네 엉덩짝을 치근덕거리는게 천만번 낫지."
베아트리스가 펄쩍 뛰었다.
"나비처럼 `번진다`고 했어요."
"난다고 하든 번진다고 하든 그게 그거야. 왠지 알아? 말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야. 허공에서 사라지는 불꽃 놀이일 뿐이라고."
"마리오가 해준 말은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할 때도 그 생각을 할 거예요." -p.63

정확히 백 년 전, 가련하지만 찬란한 시인, 처절하게 절망하던 한 시인이 이런 예언을 썼습니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저는 예지자 랭보의 이 예언을 믿습니다. 저는 지리적으로 철저히 격리된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한 지방 출신입니다. 가장 버림 받은 시인이었고, 저의 시는 지방적이고 고통스럽고 비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희망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도달했습니다. 시와 깃발을 가지고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미래는 랭보의 말대로라는 것을 노동자, 시인,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불타는 인내를 지녀야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이 충만한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p. 131

마리오는 쪽지를 몇 센티미터 앞에 고정시켰다. 마치 독서대 위에 쪽지를 놓은 듯했다. 그러고는 예의 한 자씩 읽는 방식으로 읽어갔다. "친-애-하-는 마-리-오, 마-침-표, 가-운-데 단-추-를 눌-러-봐-라"
과부가 하품하는 척하며 말했다.
"내가 편지 읽는 것보다 자네가 쪽지 읽는 게 더 오래 걸리는군."
"장모님은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삼켜버리잖아요. 글이란 음미해야 하는 거예요. 입 안에서 스르르 녹게 해야죠." -p. 106

네루다가 마리오를 길 쪽으로 슬며시 떠밀었을 때, 마리오의 뽀송뽀송한 턱수염이 화석처럼 굳어졌다. 마리오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말했다.
"시인 동무, 당신이 저를 이 소동에 빠뜨렸으니 책임지고 저를 구해 주세요.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쳤어요. 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천만에! 시집 두어 권 선물했다고 내 시를 표절하라고 허락해 준 줄 알아. 게다가 자네는 내가 마틸데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스에게 선사했어."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p. 8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6-08-14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말이란 부도수표일 뿐에 확 꽂혔습니다. 이거 간만에 질러야겠는걸요.

hellas 2016-08-14 10:55   좋아요 1 | URL
되게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뱃속이 몽그르르? 해집니다:)
 

이제 밤샘은 못하겠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리터럴리 몸이 아픔.

평소랑 비슷한 힐을 신고 다녔는데 막 관절이 쑤시고;ㅅ;

졸음 운전은 아니지만 영혼리스 운전.

주차장에서도 바로 못내리고 멍... 하다

찬 바람을 쐬려고 차문을 열었는데

열린 차 문에 까치가 날아와 앉음. ;;;;

아이컨택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손만 뻗으면 만질수 있는 거리...

그러나 영혼이 없던 나는 그냥 멀뚱멀뚱.

마침 손에 핸드폰도 들고 있어서 터치 두번이면 초초초초초초근접 까치(나이 미상, 특징 잘생김, 몸길이 약 28cm)촬영이 가능했는데......

아쉽다....

주문한 음반 배송은 언제오나

그냥 오프매장에서 한장 사올껄. 집용 차량용으로 나눠듣게....

어쨌든 바람이 많이 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고양이 스토커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표지의 검은 고양이가 자랑스레 똥꼬를 들이대며 심드렁한 미소를 ...

그게 너무 귀여워서 그만.... 구매.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는 십년이 넘게 길고양이를 은밀히 쫓아다니는 취미를 즐겨왔는데,

그 취미를 에세이로..라는 책.

말그대로 길고양이를 은근히 뒤쫓으며 고양이가 관심을 주면 무한 감사ㅋㅋㅋ 하는 작가.

사진을 찍고 간식을 주고, 멋대로 짐작한 길냥이의 사연에 혼자 울컥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귀여운 사람이다.

이런 취미를 즐기는 주제에 어찌나 소심한지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봐 매우 걱정하는 캐릭터.

작가의 취미가 알려져 나름 고양이 스토킹을 의뢰받아 작업도 하는 모양이지만.

실상 고양이를 쫓아다니며 감동하는 일은 행위의 주체는 즐겁지만

남들이 보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일 수도 있다는걸 이 책을 보고 깨닫고 말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고양이 하면 즉각 나라는 인간을 떠올릴 만큼 나 또한 애묘인이며 집사이며 고양이 동거인인지라

나도 매우 고양이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솔직히 이 책은 좀 지루하고 그 단조로운 내용에 비해 볼륨도 두껍다.

고양이라서 봐준다...ㅋㅋ


2015. Nov.

고양이를 늘 칭찬하라. 귀엽다, 영리하다, 착하다, 강하다, 천재다, 장군 같다 등등. - 이것만은 지키고 싶은 고양이 스토커 칠계명 중.

나만 온 게 잘못이었나? `고양이 운`을 몰고 다니는 S랑 함께 왔어야 했나? 다 먹고 빈 그릇만 남겨둔 채 몇 시간이고 앉아 있으면 싫어하겠지?
점원이 물을 더 따라주러 왔다. "고양이가 안 오네요. 천천히 있다 가세요. 오늘은 예약 손님도 없으니까......"
점원의 배려가 내 심장을 뚫었는지 "디저트 메뉴 좀 보여주세요"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어른이 되길 잘했다. 그렇지 않다면 오로지 고양이를 보기 위해 식사에 디저트까지 추가로 주문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아, 정말 좋다. - p. 2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묵은지가 있으니 김치찜을. 반찬이 다 빨간건 좀. . 한그릇 더 먹을까 고민중:)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qualia 2015-11-03 0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읍~! 아 정말 맛있겠네요~.
저는 방금 묵은지하고 라면 맛있게 먹었답니다.
정말 기가 막혀요. 묵은지 쉰 맛이 뇌에 가서 닿는 순간
완전 뿅가는 기분이에요~ ㅋ
아마 쉰 김치하고 라면을 저처럼 맛있게 먹는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을 겁니다~ ㅋㅋㅋ
김치찌개, 정말 맛있겠는데요.
밥도둑 잡으려면 고민 되시겠어요~ ^^

hellas 2015-11-03 07:09   좋아요 0 | URL
묵은지는 버릴게 없네요:) 밥 두공기 먹고 말았습니다

로제트50 2015-11-03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밥은 냉동실에서 전자렌지로
옮겨놓은!? ㅋㅋ

hellas 2015-11-03 07:09   좋아요 0 | URL
저 밥팩 너무 유용해요:) 전기밥솥 계속 안켜둬도 되고 짱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