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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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라서 몹시 반가웠다. 오랜만에 새롭게 애정을 가질 작가를 찾았다.

캐릭터들을 따라가며 읽었는데, 책을 덮는 순간 내가 조용한 응원을 받은 기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보편교양>이 가장 좋았다.
아니 그냥 수록작 다 좋다.

- 일렉트릭기타 멜로디가 뇌리를 파고들었고 그녀는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 그때 세상은 더 따뜻하고 친절했으며 나도 세상에게 그러했지. 아니, 미화하지 말자. 세상은 고약했어. 그녀는 모순적인 기억들을 뭉쳐 눈밭에 굴렸다. - 44, 롤링 선더 러브

-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 76, 롤링 선더 러브

- 잠들지도 않고 이야기하지도 않고 그저 누운 채로 숨을 쉬다 보면 방안으로 노을이 스며들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사라진 뒤 조용히 일렁거리는 커튼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남 얘기 같았다. 예쁘고 멋있고 촉감 좋은 물건들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자아실현 같은 건 모르겠지만 견딜 만한 일을 하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삶. 가끔은 나란히 누워서 햇볕을 쬘 사람이 있는 삶. 이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어두운 골목을 걸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불안해졌다. 어느 날 흰 봉투가 날아와 계약 종료 통지서나 처음 들어보는 병명의 진단서를 덜컥 내놓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 133,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 143,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2024. jun.

#두사람의인터내셔널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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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4-07-04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이메요?!!! 선뜻 손이 안갔는데 찜하겠습니다.

hellas 2024-07-04 12:35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 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