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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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것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에는 동의.
그러나 읽을 책이 너무나 많고, 재독을 하려고 모셔놓은 책들은 그저 먼지만 쌓여가는 게 현실이지 않은지.

재독이 여러 면에서 심리 상담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도 동의한다. 과거의 좋았던 책들, 심지어는 인생의 책이라고까지 여겼던 책들이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했을 때 실망감과 헛헛함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왕왕 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좋았던 책은 그냥 좋았던 책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름답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 경멸스러운 감정까지 느껴지는 후진 성인지 감수성을 마주할 때 그런 생각이 유독 든다.

그러나 읽었던 작품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삶의 정수를 느낄 수도 있다.
경험의 깊이가 달라서, 미처 알지 못했어서, 읽는 시점의 내면이 달라져서.... 어떤 경우든지 과거의 좋았던 책이 더 좋아지는 경험도 충분히 있었다.

작가도 그런 지점들을 이야기하고, 그 책들 안의 좋은 점을 보존하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역자 후기에서 말하는 '80대의 읽기가 20대의 읽기를 무화하지 않는다는 사실' 점이 와닿았다.

언급된 많은 작가들 중 엘리자베스 보엔, 엘리자베스 스텐턴이 궁금해졌다. 영미문학은 번역을 거쳐야 제대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늘 생각한다.

- 문학작품에는 일관성을 갈구하는 열망과 어설프고 미숙한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려는 비상한 시도가 각인되어 있어, 우리는 거기서 평화와 흥분, 안온과 위로를 얻는다.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 10

- 내 독서의 목적은 한결같이, 오로지 단 하나였다.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얽혀드는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짜릿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대문자 L로 쓰인 Life, 그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책을 읽었다. - 13

- 손가락 말단까지 철저히 정치적 동물이었던 스탠턴은 이 사유를 여성을 위한 정치적 평등의 필요성과 연결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에게 행동 반경을 확장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 그가 아는 한 가장 강력한 것은 모든 삶은 궁극적으로 고독하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그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여자들에게 시민의 권리를 허락지 않은 결과에 직접 호소한다.
인생의 사나운 풍파에서 여자들을 보호한다는 얘기는 순전히 조롱일 따름입니다. 삶의 폭풍은 남자들에게 불어치듯 여자들에게도 나침반의 전 방위에서 불어 칠 뿐만 아니라 더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합니다. 남자들은 자기를 보호하며 저항하고 승리하는 훈련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간 경험에 있어선 사실이 그러합니다.(...) 부자와 빈자, 지식인과 무지렁이, 현자와 바보, 선한 자와 악한 자, 여자와 남자를 막론하고, 언제나 똑같습니다. 그 모든 영혼은 각자 혼자서 다만 자기 자신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 길고 따분한 행진을 각자 혼자서 해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항상 짊어지고 살아온 고독입니다. 그것은 차디찬 얼음산보다 더 접근하기 어렵고, 한밤의 바다보다 더 심오하지요. 그것이 바로 자아의 고독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 일컫는 내면의 존재는 그 어떤 인간이나 천사의 눈길, 손길로도 꿰뚫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개인의 삶입니다. 나는 묻습니다. 누가 감히, 그 누가 감히 다른 인간 영혼의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대신 떠맡을 수 있단 말입니까?
유대계 미국인의 그 어떤 글도 <자아의 고독> 만큼 정곡을 꿰찌르는 자아 감각을 내게 돌려주지 못했다. 자연과 역사라는 이중의 덫에 갇힌 내 자아의 감각 말이다. 내게 그 연설문은 시처럼 읽혔다. 그만큼 존재의 본질 자체로 느껴졌다. - 145

2024.may.

#끝나지않은일 #비비언고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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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4-05-3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독을 좋아하는데 인생책이었던 책이 더이상 인생책이 아니게 되면 진짜 헛헛할 것 같아요. 얼마전 이동진님 책을 읽었는데 이동진님은 다른 이유로 재독을 안하시더라고요. 일단 지식에 대한 열망이 강하셔서 다독을 하시고 세상에 읽을 책이 넘나 많잖아요.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고요. 한 사람이 일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은 유한하니까 재독은 안하신다고. 저는 그래도 재독이 좋아요. 심리적 안정감 ㅎㅎㅎㅎ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안전가옥 쇼-트 24
백승화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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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로부터 세자를 지키는 용맹함을 선보이며 숙종의 총애를 받게 되는 금손이.

임금 덕질에 일가견이 있는 부친을 둔 서얼 변상벽.

악명 높은 애묘인인 까치부부 할머니 할아버지 자객.

임금의 고양이 도난 사건으로 일어나는 액션(냥냥) 활극이랄까.
임금의 고양이가 나라의 쥐를 잡는 이야기.

역사와 허구가 살살 버무려져 있고, 고양이를 대하는 집사의 애틋한 마음이 조선시대풍으로 드러나 있어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 무엇보다 변상벽이 변빈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적서 차별이 행해질 때마다 변빈이 미안하다며 하는 말 때문이었다.
"나만 양반이라 미안해."
차라리 욕이 나았다. - 39

- 세자의 문제는 금손의 근처에만 가면 기침, 콧물, 홍반 등 알 수 없는 증상이 계속되어 만져 보기는 커녕 가까이 갈 수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세자는 커 가는 금손을 멀리서 바라보며 때때로 궁인들에게 금손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늘 금손은 어떠한가?"
"여전히 귀엽습니다요." - 170


2024. may.

#성은이냥극하옵니다 #백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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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빌려줄래? - 멈출 수 없는 책 읽기의 즐거움
그랜트 스나이더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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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우연히 일부를 보고 관심이 생겨 읽어보았다.

진지한 카툰 에세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철학적인 면모가 있다.

서재, 책, 서가, 고양이... 이런 것들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책장을 보고 타인을 판단하는 카툰이 너무 와닿았다. ㅋㅋ

책갈피로 쓸 만한 물건들에 포함된 고양이도 너무....ㅋ

여름방학 숙제로 읽는 고전
- 호밀밭의 파수꾼, 파리대왕, 고양이 요람, 소리와 분노, 길 위에서, 화씨451, 위대한 유산,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노인과 바다, 죄와 벌, 시간의 주름... 중 겨우 5권만 읽었네? 이거 올해 다 읽어볼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2024. may.

#책좀빌려줄래 #그랜트스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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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제자리에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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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한국 문학이 가장 잘 묘사하고 몰두하는 것은 '불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편집도 장편도 몹시 즐겨 읽었었는데, 어느 순간 읽는 순간 독자에게 불안이 전이되어 뒤끝이 씁쓸한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 되곤 해서 요즘은 손이 잘 안 가는 면도 좀 있고.

무능, 피해의식, 망상, 불안, 불균형, 분열, 집착, 편향된 사고, 잔뜩 곤두선 신경증적 자아들의 출현.
나는 저러지는 말아야지 싶은 그런 캐릭터들의 향연.

현대인들의 정신적 과민이 극대화된 인물들이 내 안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한편 한편 흥미롭고 확장성이 있는 단편들인데, 그저 요즘의 내가 못 견디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그 점이 아쉽다.

2024. may.

#모든것을제자리에
#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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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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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트 무비 장르의 하드보일드한 이야기.

재정적으로 궁지에 몰린 부양가족 줄줄이 딸린 가장 보러가드.
가족을 등진 범죄자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숙명..

범죄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데, 재밌다는 추천 하나만 믿고 읽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그래봐야 범죄자... 어차피 강도 짓이나 하겠지 하는 시큰둥한 마음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차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질주 하는 묘사는 정말이지 숨 가쁜... 긴장감이 최대치가 되고,
도대체 이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했다.

전혀 믿을 구석 없는 인간과 협업을 해야만 하는 경제적 곤란도 아내인 키아의 말대로 뭐든 팔고 일을 하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긴 했다. 그러면 이야기가 안되겠지만.
가난한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사는 이들에겐 성실하게 무언가를 한다는 선택지보다는 범죄에 빠지는 게 훨씬 쉬운 선택지임을 새삼 느끼게 한달까. 
충분히 숙려되지 않은 허술하고 즉흥적이고 촉박한 알콜중독자와 약쟁이 전과자들의 범죄 설계에 좀 실소가 났지만, 국토의 규모가 다르고 다인종 구성의 사회적 경제적 격차가 극심한 별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뭐... 받아들일 수 있다.


- 운전할 때 쫄면 져. 경주가 끝나고 엔진을 전부 재조립할 각오가 돼 있지 않으면 지기 마련이야. 저 목표까지 가는 것 외엔 뭣도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으로 밟아야 해. 씨발, 차를 훔친 것처럼 몰란 말이야. - 22

- 그는 다 마신 커피 컵을 싱크대에 두면서 소박한 꿈과 예상 가능한 꿈을 꾸는 것 중 무엇이 더 슬픈가를 생각했다. - 48

- 보러가드는 슈코르체니 씨의 선한 의도를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제퍼슨 데이비스 소년원의 여타 직원들과는 다르게, 슈코르체니 씨는 보러가드를 실패한 인생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슈코르체니 씨가 몰랐던, 혹은 이해할 수 없었던 사실이 있다면 보러가드와 같은 아이들은 선택할 수 있는 사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아버지도 없었다. 보러가드에게 허락된 가족은 구멍 난 타이어와 운수 나쁜 하루가 겹치면 신경쇠약으로 무너질 어머니, 극도의 빈곤에서 살다 죽어간 조부모 뿐이었다. 보러가드와 같은 아이들에게 대학이란 꿈과도 같은 곳이었다. 슈코르체니 씨는 보러가드에게 화성에 가보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 131



2024.may.

#검은황무지 #SA코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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