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진/우맘 >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지 못했는가

 토리노의 도서 전시회에 때맞추어 다양한 계층의 지식인들에게 어떤 책을 읽지 않았는지 설문 조사를 하였다. 예상대로 다양한 대답이 나왔지만 부끄럽다는 이유로 거짓으로 대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프루스트를 읽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 또 어떤 사람은 위고, 톨스토이, 또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지 않았고, 어느 탁월한 성서학자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지는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책을 첫 페이지에서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비평판을 만드는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조이스를 읽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서>를 전혀 읽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하기도 하였다. 그런 결핍이 유별난 게 아니라 오히려 상당수가 그렇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말이다. 조르조 보카는 <돈키호테>와 나의 최근 소설을 몇 페이지 읽다가 내던져 버렸다고 말했다. 나는 분수에 넘치는 그런 대등한 평가에 감사의 마음이 넘쳐흐른다. 게다가 책을 너무 많이 읽다가는 돈키호테처럼 머리가 이상해질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설문조사는 보통 독자들에게 커다란 관심거리일 것이다. 사실 보통 독자들은(후천적 문맹이 아닌 보통 독자의 경우) 일반적 상식으로는 반드시 읽었어야 하는 어떤 책을 읽지 못하였다는 고민에 언제나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많은 유명한 사람이 엄청난 결핍을 고백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하나의 의혹, 또는 염려가 남는다. 혹시 보통 독자들이 그런 선언을 속물근성으로 돌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설문 응답자들이 실제로는 전혀 읽지 않은척하는 책을 몰래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만약 그렇다면 보통 독자들은 자신의 열등감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증폭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부끄러움 없이 단눈치오를 전혀 읽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서, 그 때문에 야만인으로 간주되지도 않는 그 선택받은 사람들의 대열에 끼이지 못함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모든 응답자들이 정말로 그 책들(그리고 더 많은 다른 책들)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보통 독자들을 위안하고 싶다. 거기에다 만약 내가 질문에 응답했어야 한다면, 내가 애정 어린 관계를 전혀 맺지 못했던 불멸의 작품들을 열거하면서 나 스스로 깜짝 놀랐을 것이라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다.

문학작품들에 대한 아주 풍요로운 목록인 <봄피아니 작품 사전>을 한번 보기 바란다. 등장인물들과 작가들에 대한 책은 제외하고 말이다. 현재 시판되는 판에서 작품들은 5,450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한 페이지에 평균 세 작품이 들어있다고 대충 계산해 보면 총 16,350편의 작품들이다. 그 작품들이 이제까지 쓰인 모든 작품을 대표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 고서들의 목록(또는 대규모 도서관의 색인 카드들)을 들춰 보기만 해도, <봄피아니 작품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온갖 책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전은 5천 페이지가 아니라 5만 페이지가 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목록은 소위 전범을 이루는 작품들, 즉 문화가 현재 기억하고 있으며 교양 있는 사람에게 기본적이라고 간주되는 작품들만 등재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은(합당하든 또는 부당하든) 전문 학자나 박식한 사람, 독서 애호가들만의 탐색 영역으로 남아 있게 된다.

책 한 권을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하루에 단지 몇 시간만 독서에 할애하는 보통 독자의 관점에서, 평균 분량의 작품 하나에 4일은 걸린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프루스트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을 읽으려면 몇 달이 걸리지만,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는 걸작들도 있다. 그러므로 평균 4일이 걸린다고 하자. 그렇다면 <봄피아니 작품 사전>에 실린 모든 작품에다 4일을 곱하면 6만 5천 4백 일이 된다. 365일로 나누면 거의 180년이나 된다. 이런 계산은 틀림없다. 그 누구도 중요한 작품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

만약 선택해야 한다면 최소한 세르반테스는 읽었어야 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에 어느 독자에게 <천일야화>(전체) 또는 <칼레발라>가 훨씬 더 중요하고 급박하였다면? 더구나 여기에서 고려되지 않은 것은, 훌륭한 독자들은 어떤 작품을 사랑할 경우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번 다시 읽으며, 가령 프루스트를 네 번 읽은 사람은 다른 책들, 아마도 자신에게는 덜 중요한 다른 책들을 읽을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이여, 안심하시라. 열 권의 책을 읽든 같은 책을 열 번 읽든, 똑같이 교양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단지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나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1997)

-움베르트 에코, 미네르바 성냥갑 1 중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지 못했는가' 전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놀자 > 책읽는 습관이 저절로 생기는 방

아이방은 벽지의 색깔보다 책 읽기 좋은지가 우선이다. 책 읽어라 읽어라 하는 것보다 책을 읽고 싶도록 꾸며주고 책에 대한 관심을 함께 나누는 엄마의 지혜가 책 읽는 습관 들이기의 첫째 작전이기 때문이다.

책 읽는 게 생활화돼 있는 집은 서재에 대한 대접(?)이 대단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멋진 인테리어와 고급스러운 가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중심 공간에 서재와 책장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이방도 마찬가지. 키 큰 책장에 장난감과 책이 함께 꽂혀 있다면 책 좋아하는 아이가 되길 기대하긴 힘들다.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장난감과 책을 구별하는 것. 아이가 둘이라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방을 따로 주는 것보다 놀이방과 침실로 나눠서 둘이 함께 쓰게 하는 것이 좋다. 장난감과 책이 한 방에 특히 한 책장에 꽂혀 있다면 책은 가장 적게 사용하는 장난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방이 하나라면? 장난감을 두는 공간과 책장 공간을 나눠주는 것이 좋다. 앉아서 책을 보는 공간에서, 장난감이 눈에 들어와 한눈팔지 않게 배치해야 한다.


가장 좋은 책장 배치는 ㄷ자형. ㄷ자의 가운데는 쿠션이나 매트, 방석, 앉은뱅이 책상을 놓아 책 읽기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 다음은 =형. 사진처럼 벽에 책 읽는 공간을 두고 양쪽에 책을 놓으면 아늑한 책 읽기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다음은 ㄴ자형, -자형. 주의해야 할 점은 이 공간에 앉았을 때 장난감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책장. 높이는 아이 키에 맞춘다. 아이가 손을 뻗어서 제일 위쪽 칸의 책을 손쉽게 꺼낼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특히 취학 전 아이라면 높은 책장을 기어올라가는 안전사고의 위험까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갖춰졌다면 책 읽을 공간을 만들어줄 차례. 아직 책 읽는 습관이 잡히지 않은 아이라면 책상이 있다고 해도 책상은 공부하는(싫어하는) 공간일 수 있으므로 따로 아늑한 읽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좋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만든 방석, 쿠션 하나여도 좋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을 함께 읽는 것은 물론 매달 또는 계절마다 한 번씩 책의 위치를 바꾸는 재미를 함께 누려보자. 봄에는 출판사별로, 여름에는 주제별로, 가을에는 책의 키에 맞춰서.
 
1. 장난감과 책은 한 방에 놓지 않는 것이 최선, 한 방에 둘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장난감과는 멀리 분리해두어야 하는 것이 포인트.
2. 한달에 한 번 정도 엄마와 함께 책 정리하는 방법을 바꿔보자. 출판사별로, 주인공별로, 주제별로.
3. 책장도 아이 키에 맞춰야 한다. 아이가 섰을 때 제일 위쪽 칸의 책을 쉽게 꺼낼 수 있어야 한다.
4. 가장 좋은 책장 배치는 ㄷ자형. 가운데에 책 읽는 공간을 만들어주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파란여우 > 무슨 꽃을


무슨 꽃을 보여주랴?
마술 상자 속에 꽃이 다 떨어졌으니.

아마도 이대로 이렇게,
초월인지 체념인지
햇빛인지 달빛인지
육십 평생이 맥빠진 산문처럼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내 귀 가까이에선
분명한 시계 초침 소리.
일초일초 분명히 나를 비웃으며
시간이 내게 초치는 소리.

허공에서 어느 한 순간,
너무도 지겨운 어느 한 순간,
나는 내 목숨의 끝을 가볍게 놓아버릴 수는 없을까?

최승자의 '무슨 꽃을'


숨가쁜 하루를 보내고 늘어진 육신으로 지는해를 바라보며 퇴근을 하는 길. 갑자기 가슴 깊은 곳까지 텅 빈 듯한 허허로움이 순식간에 밀려 올 때가 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모두 공(空)이며, 허공속으로 날아가도 아깝지 않을 것들이다. 그 헛깨비를 붙잡고 있는 나 자신의 빈 허울의 모습이 거리의 쇼윈도우에 비추어 질때면 애써 시선을 외면한다. 산다는 일은 허허바다라고 여기며 집으로 돌아 오는 길. 동네 다다라 논길을 걸으면서 어느 새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들판의 벼들의 숙연한 자태앞에 내게서 버려져도 아깝지 않을 것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stella.K > 게으름은 시간도둑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밥헬퍼 > 아래를 보는 사람들

다른 카페에 들렀다가 발견한 그림입니다. Bernard Safran의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더군요. 그림을 보다가 이들이 시선이 궁금해졌습니다. 어디를 보고 있을까?  바라보는 '푯대'는 어디인가? 이들이 고개를 들어 아래보다는 위를 보는 날들이 더 많아야 할텐데요.

Sleeping 1986, 16" x 33", oil on masonite

 
The Old Lady 1970, 18" x 24", oil on masonite


 
The Manhattan Bridge 1970, 17" x 24", oil on masonite



The Window 1970, 18" x 24", oil on masonite


 
The Renovation 1971, 12" x 20", oil on masonite

 
The Fish Store 1970, 18" x 24", oil on masonite




Gossip 1986, 20" x 28", oil on masonite


 
The Bookstore 1971, 20" x 39", oil on masonite


 
The Garment Center 1970, 20" x 37", oil on masonite


 
Clotheslines 1969, 19" x 37", oil on masonite




The Hat Maker 1971, 21" x 30", oil on masonite


 
Subway Rider 1971, 17" x 24", oil on masonit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