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무슨 꽃을
무슨 꽃을 보여주랴?
마술 상자 속에 꽃이 다 떨어졌으니.
아마도 이대로 이렇게,
초월인지 체념인지
햇빛인지 달빛인지
육십 평생이 맥빠진 산문처럼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내 귀 가까이에선
분명한 시계 초침 소리.
일초일초 분명히 나를 비웃으며
시간이 내게 초치는 소리.
허공에서 어느 한 순간,
너무도 지겨운 어느 한 순간,
나는 내 목숨의 끝을 가볍게 놓아버릴 수는 없을까?
최승자의 '무슨 꽃을'
숨가쁜 하루를 보내고 늘어진 육신으로 지는해를 바라보며 퇴근을 하는 길. 갑자기 가슴 깊은 곳까지 텅 빈 듯한 허허로움이 순식간에 밀려 올 때가 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모두 공(空)이며, 허공속으로 날아가도 아깝지 않을 것들이다. 그 헛깨비를 붙잡고 있는 나 자신의 빈 허울의 모습이 거리의 쇼윈도우에 비추어 질때면 애써 시선을 외면한다. 산다는 일은 허허바다라고 여기며 집으로 돌아 오는 길. 동네 다다라 논길을 걸으면서 어느 새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들판의 벼들의 숙연한 자태앞에 내게서 버려져도 아깝지 않을 것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