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퍼온글] 우리의 의료, 구멍이 커지고 있다.

어제 오전, 국무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에 세워질 외국 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고
영리법인의 설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의료관련 NGO들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재경부에 맞서서 그래도 김근태 장관이 버텨 줄 것이라는 미련이 아직 한가닥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이미 지난주에 합의를 다 해놓고는 NGO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이미 합의가 되고도 1주일동안 합의가 안된 줄 알고 그 전에 막아보겠다고 
미친놈들처럼 인터넷 여기저기 영향을 미칠만한 게시판에 의견글을 올리자는 전문들, 언론에 관련 기사나 사설을 싣도록 힘쓰던 계획, 전국 순회 강연 등을 준비하던 것들..... 그냥 다 허공에 떠버렸다.

외국계 병원에서 환자 좀 볼거라고, 우리 나라 돈이 외국으로 흘러들어간다고 아우성 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체계가 조각나게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도입된 민간의료보험이 더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후회하는 것은,  게시판에 의견글을 올려달라는 메일이나 글들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물론, 내 글 하나 더 올라갔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겠지만,
발 동동굴리던 중앙의 사람들과 달리
지방에 산다는 면죄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는 미안함이 앞서서이다.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대신 '공공의료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 고 5년간 4조원을 들여 무엇무엇을 하겠다고 나열해 놓았다.
그런데, 그 대책이라는 것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영리법인과 내국인 진료 허용이 되지 않았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다. 
게다가 5년간 4조?  이걸로 누구 코에 붙이게? 현재 의료보험 재정만 해도 1년에 15조인데! 

민간의료보험의 확대가 되기 전에 우선 공공의료보험을 안정시켜야 한다.
현재 의료비의 50%을 겨우겨우 보장하는 공공의료보험을 최소한 80%로 끌어올려놓고 민간의보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도 복지부의 "대책"에는 공공의료보험의 강화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나와 있지 않다.
공공의보의 확충에 대한 의지가 없고, 국민의 건강을 민간의보에 기댈 속샘인게다!!!

 

어제, 원래는 경제자유구역의 '예상되는'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모이려던 자리를 급히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모임으로 바꾼 자리에서,  
국회에서 법안의 심의 과정이 남아있으니 그때까지 무엇을 할지에 대해 의논했다.

'알려내자'. '투고하자'  등등의 이야기들이 또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후회를 덜하기 위해 일단 여기에라도 글을 남긴다. 

아래에 덧붙이는 글은 얼마전 한 회지에 올렸던 글이다.  이곳에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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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료, 구멍이 커지고 있다.

                                                      


사람 치고 아프지 않을 사람은 없고, 중환이 있을 경우에 우리 나라에서 부담이 되지 않을 가정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의료제도는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마음 놓고 살 것이냐 아니냐, 아플 때 마음놓고(?) 아플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1970년대 말에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후, 비교적 최근까지 여러 가지 곡절을 거치면서 의료보장은 점점 확대되었고, 병원 문턱은 점점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는 그런 추세가 반전 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대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요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 대상자들은 늘고 있고, 의료보험 가입자들의 의료보험료 미납 세대 또한 점차 늘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반증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들은 본인 부담금 거의 없이 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외래 진료나 입원의 경우 비보험 항목, 즉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은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 보험 체계상 의료비의 30-50%는 비보험이라 나타나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라 하더라도 실재로는 많은 병원비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른바 차상위 계층, 즉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는 아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은 더욱 사정이 어렵다.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서 의료보험료와 의료비가 가계에 부담이 되는 세대가 점차 늘고 있으며, 만약 의료보험료를 3개월 이상 미납하기라도 하면 의료보험 자격이 상실되어 실질적인 의료 이용이 거의 단절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오히려 기초생활 수급권자보다도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들 계층의 의료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와같이 가만히 있어도 어렵고 구멍이 점점 커지고 이는 우리의 의료안전망에 외부로부터 큰 충격이 닥쳐오고 있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면 수시로 나오는 ‘의료보험’ 광고. ‘다보장’이니 ‘1만 몇천가지 질환’이니 하며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고, 뉴스마다 나오는 경제 특구나 시장 개방 이야기 중에 의료개방도 꼭 포함되어 있다.

광고에 나오는 의료보험은 엄밀하게 말하면 ‘민간 의료보험’으로, 기본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운용되는 의료보험이다. 한달에 2-3만원으로 보장을 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1인당 비용이고, ‘다보장’은 실제로는 다보장이 아니라 일반 의료보험이 커버하고 남는 부분을 일부 보조하는 구조일 뿐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 가입하기 전에 검진을 해서 ‘건강한’ 사람만, 즉 병을 앓을 가능성이 적은 사람만 골라서 뽑는다.

그러니, 어찌 이런 민간 의료보험이 싸다고 할 수 있으며, 다보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돈을 낼 여력이 안되고, 또 가입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아 거절당하는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돈을 낼 수 있고, 건강한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보험에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도록 기댈 수 있는 것인가? 참으로 위험한 일인데, 이런 방향으로 착착 진행이 되어가고 있다.


경제특구나 의료시장 개방, 대덕 특구 문제도 그렇다.

원래 경제특구에서의 의료개방은 ‘경제특구의 외국인들의 의료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제안되었었다. 그러나 점차 경제특구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 허용, 이익금의 본국 송금, 영리의료법인 허용, 전면적인 민간의료보험 도입(국가 의료보험과 민간보험 중에서 택일하는 것) 등의 문제가 꼬리를 물고 제기되고 있다. 진보적인 보건의료단체들이 언뜻 생각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사안에 왜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일까?

작은 물꼬가 트이면 그것을 따라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정책을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나게 큰 물줄기가 밀고 들어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에 나열된 정책들이 도입이 되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돈 많이 내고 혜택이 많다는 민간의료보험으로 대거 이동할 것이고, 지금도 허술한 점이 많은 국가 의료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사회적 압력(아쉬워하는 사람)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의료비가 많이 드는 환자 가족이나 노인들은 경제적 여력이 그다지 없는 경우가 많다. 소득에 비례해서 내는 의료보험료이기 때문에 이들이 내는 보험 재정은 적은 반면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더 악화될 것이다.


영국에서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의 사망률을 비교해보았는데, 최하위 계층의 사망률이 최상위 계층의 네 배에 이른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되고,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는, 비교적 고른 의료 혜택을 받는 영국의 계층간 사망률의 차이가 이정도인데, 하물며 비보험 항목의 부담이 커서, 본인부담금의 벽에 막혀서, 의료보험료 낼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는 우리 나라의 사망률은 얼마나 크게 벌어질 것인가? 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다.


의료생협이 대안적인 모색으로 점차 관심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의 건강권을 위해, 아플 권리를 위해서, 의료 제도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함께 대안,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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