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weetmagic > 20040818 - 엄마의 일기장 2 -

 11 .2

" 아기를 등에 업고 손잡고 외출조차 어려웠던 그때가 어제 같은데
  오후 여섯시가 넘어 땅거미가 지고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이 시간까지도
  아무도 집에 돌아오지 않을 만큼의 .... 세월이 흘러갔다.
  코끝을 유혹하는 구수한 밥 냄새가, 같이 식탁에 마주할 사람을 더 기다리게 한다.
  앞으로는 더 많은 날들을 이렇게 기다려야 하고
  종래에는 다 떠나가고 말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시선은 창 밖으로 가고 귀는 대문을 향해  열려 있다.
  자기들 기분 내키는 대로 요구하고 화내고 ,
  언제부턴가 ... 나는 .....자식들의 눈치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옛날의 내 어머니들은 그 많은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냈는데
  나는 가끔 나의 어머니 자질을 의심하곤 한다
  남도 아니 내 속에서 난 아이들에게 화내고 속상해 하며
  언뜻언뜻 서글퍼지는 자신을 돌아보며 한없는 비애를 느낀다. "


엄마 일기장을 읽는 데 정신이 팔려 책을 손에서 놓았다.
지하철에서도  어쩔 땐 걸으면서도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미안하다는 말로는 절대로 모자란 만큼의 미안함과
사랑한다는 말로도 근처에 닿지도 못할 없을 만큼의 사랑으로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또 짠...하다.

오늘 타 학교 강사 선생님 한 분이 실험실에 놀러 오셨다.
서른 다섯의 노처녀..
서울에서 온다는 만선 볼 총각이 아무래도 더블로 약속을 한 것 같다며
내가 눈치가 십팔단인데 어디 전에 없던 동문회 핑계냐고 흥분을 한다.
그리고 나 더러 참한 총각하나 빨리 소개하라고 닦달을 하더니
전에 소개시킨 사람에게는 왜 연락을 안 했나고 득달을 해댄다.
지금이라도 연락을 좀 하라고 난리 득달을 한다.

자기가 엄청 잘생긴 걸로 한참 착각하던 한 총각이 떠올랐다.
갑자기 안경을 벗고 술기운에 후끈 달아오른 느끼하기 짝이 없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세지 쌍꺼풀을 한 얼굴을 들이댔던...
그 자리에서 그러고 싶었다.

" 아저씨, 눈 한번 꼬옥.... 감아보세요 ....."

라고 말 하고는 술안주로 나온 김에 마요네즈를 발라 눈 위에 살포시 붙여주고

" 저 나갈 때까지 절대 눈뜨지 마세요 .....
  아저씨의 느끼한 눈빛은 너무나 느끼해 돌아서 가다가 그 눈빛에 미끌어
  제가 넘어 질 것 같거든요. 부탁입니다. "

라고 말하고 자리를 뜨고 싶었던... 걸  날 위한답시고 갑작스런 자리 만든 선생님 얼굴 보며 꾸역꾸역 참으며 창밖에 불빛만 바라봤댔다.

그 사람.....자기가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니만...
나도 눈치가 있다면 있는 편인데...
하잘없이 나를 중간에 끼우고는 나 같은 ( 자기 보다 한참 어린 ??) 아이에게 호감을 느끼는 지 안 느끼는지 한번 시험해 보는 줄 알면서, 그냥 속아줬다.
호호.. 하하.. 웃는 모습이 참 안스러워 기름 구덩이 같은 그 남자 앞에 앉아 있어야 했고,
버터 삼백개는 씹어먹은 듯한 목소리를 내는 전화도 몇 번 받아 줘야 했다.
그리고 통화 내용과는 상관없는 보고를 꼬박 꼬박 해줬다.

" 저 같은 애는 정신연령이 안 맞아 하는 것 같아요. "
" 그래 ? 어머 그래 그럴수도 있겠다."
" 선생님이 한번 만나보시지 그래요 ?"
" 내가 ? 어머 내가 무슨......"

하이톤으로 한참을 뭐라고 뭐라고 얘기를 늘어좋더니 어느새 얘기가 자기가 기르는 강아지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 강아지가 자기를 얼마나 따르는지 모른다느니,
그 강아지는 자기가 밖에 나가면 맛난 것도 안 먹고 대문 앞만 바라보다가 
자기가 집에 와야지만 맛난 것도 먹는 다나 ?
혼자 사는 자기가 문이라도 안 잠그고 자면 짖어서 문이 안 잠겼다 알려주고
자기가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다른 사람은 정대로 좋아할 수가 없대나 ?
하루는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데 문 뒤에 숨는 건 너무 쉽게 들켜서 행거에 걸린 옷
상에 숨었더니 킁킁 킁킁 하고 자길 찾더니 다시 숨으라고 뒤로 돌라 서더란다.
그래서 다시 이 녀석이 못 찾을 곳 없다 싶어 한참 숨을 곳을 찾다가 
신발장 바닥에 바짝 엎드려 죽은 듯이 붙어 있는데 강아지가 금새 찾아서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참 민망하더라며 꼴딱꼴딱 넘어간다.
자기가 그 강아지를 잃어 버렸을 때 그 강아지 방석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많은 전단지를 뿌렸는지 ,  잃어버린 아이의 부모들의 심정을 딱 알겠더라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다가 우연히 강아지를 다시 찾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그 강아지를 집에 다시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꼭 안아 줬다느니...
그 사건 이후로는 그 강아지가 자기만 없으면 불안해 죽는다느니
여튼 그 강아지가 자기를 얼마나 생각하는 지 자랑이 늘어졌다.
강아지를 사람으로 바꾸면 딱 연애담이다.

내 눈에 왜 그렇게 안돼 보였을까 ?
별 그럴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안 돼고 쓸쓸해 보였을까...
강아지를 아끼는 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인데....

혼자인 사람들에게 특별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을 날 다되 어 간다는 강아지 한 마리에게 온갖 정을 다 퍼붓는 그녀의 모습은 ..
속 앓이 가슴앓이...에  언뜻언뜻 서글퍼지는 자신을 돌아보며 한없는 비애감을
느끼면서도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 밥을 짓고 또 기다리고..또 기다리는
엄마의 기다림의 시간과 닮아 있음을 ......

부인하지 않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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