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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감자 ㅣ 풀빛 그림 아이 6
파멜라 엘렌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풀빛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밤 11시이다. 집에 들어서니 하하 호호 웃는 소리가 현관에서부터 들린다. “아이들이 이 시간까지 안자고 뭐하지” 하면서 들어섰다. 평소 같으면 빨리 안 잔다고 야단을 칠 것인데 방학이라는 핑계로 그냥 봐 줄만 하다. 거실 가득 그림책이 펼쳐져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그림책 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난 너무 행복했다. 나의 부재에 그림책이 없었더라면 아빠와 아이들은 하루 이틀도 아닌 저녁에 무슨 놀이를 할까? 그림책의 존재는 엄마의 역할을 대변하는 듯 하다. 아이들이 집어 오면 남편이 읽어 주고 또 집어 오면 읽어 주고, 큰 아이가 크게 읽고, 그러는 가운데 나는 집안을 대충 정리한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닌다. 그러나 웃음은 끊이질 않는다. 그 중 유달리 웃는 책 하나, 자꾸만 “딱 너거 엄마가 늙어서 조런 할머니가 될거야”며 남편과 아이들이 나를 엉큼한 시선으로 보는 책. 너무 궁금하여 살며시 들여다보니 바로 이 책 “할머니는 감자”였다.
“자기 전 엄마의 서비스!” 하면서 여러 개의 책 중 집어든 책 한 권 .“ 자 나갑니다!” 하면서 “ 할매와 감자” 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의 할머니는 어딘지 모르게 포근함을 넘어 익살스러운지라 “할매” 이 단어를 더 사용하게 한다. 한 술 더 떠서 글자를 아직 모르는 둘째는 글자수를 맞추려는 듯 “아니어요! 할매와 감자땡”이라고 외친다. 한 바탕 더 웃는다.
이 책의 할머니는 딸의 말처럼 엽기적인 할머니다. 머리에 폭탄을 맞은 것 같고. 빨간 구두를 신었고 훌러덩 넘어지면서 팬티까지 보이는 할머니이다. 손자인 잭과 술래잡기를 하고 그림책을 읽으며 케잌을 자르는 할머니. 그 케익의 칼을 들여다보면서 또 웃고, (그 칼의 수준은 거의 식칼이었다). 남편이 옆에서 딱 너거 엄마다고 하면서 놀래대지만 난 그 닮았다는 소리까지 듣기에 좋았다. 고상하게 늙어가는 할머니, 조용히 늙어가는 할머니보다는 난 이 감자 할머니가 되겠다. 손자와 장난을 치면서 넘어져서 팬티가 보일망정 감자에다가 치마를 입히고 병뚜껑을 씌울망정 옆에서 호들갑스럽고 주책바가지라고 할망정 이 감자할머니처럼 되고 싶다. 손자가 있어서 더욱 즐거운 할머니! 금요일마다 오던 손자가 멀리 가 버리자 오지 않은 손자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감자처럼 쭈글렁탱이가 되고 그리움이 변하여 뿔도 나게 되지만 그 화도 잠시 손자를 품에 안 듯 찌그러지고 뿔이 난 감자를 퇴비 더미에 묻는 할머니의 모습은 다시 한 번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할머니와 손자의 세대간의 끈끈한 모습이, 수없이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 감자처럼 엮어져 있고 표정하나하나가 어쩜 그리도 미소 짓게 하는지 우울해진 마음도 이 책을 보면 절로 미소 짓게 한다. 아니 미소라기보다는 땅바닥을 치면서 웃게 만든다. 할머니의 세대와는 점점 잡을 수 없이 벌어지는 우리의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까? 잔잔하게 읽기 보다는 할머니의 펑퍼짐한 엉덩이와 짤막한 다리와 번개머리등을 보면서 깔깔거리고 잭의 띠룩띠룩한 눈망울과 오목한 입술. 감자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더욱 크게 웃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늦게나마 알게 되어서 얼마나 행복하지 모르겠다. 더불어 이 책으로 우리 식구가 다시 한 번 할머니를 느낄 수 있었고 웃음의 보따리를 맘껏 풀어 놓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뻤다. 4살 정도에서부터 초등저학년의 자녀를 가진 집에서는 꼭 간직했으면 한다. 아마 간직한 그 집에서는 웃음꽃이 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다시 한 번 이 책과 인연이 되게 해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