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을 들고 베란다에 앉았다. 습관이라는 것이 뭔지,머리가 오늘이다는 것을 잊었는지 눈을 뜨니 새벽이다. 눈앞에 보이는 파도와 간혹 달리는 차들. 스르락 스르르 나무와 풀들이 비비는 소리. 그러다가 거센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한 번 허리 휘어지도록 흔들어주고....... 일상을 떠나 맞이하는 아침은 고요하다. 한가하다.


어제는 6팀이 합류를 했다. 늘 찾던 계곡을 떠나 오래간만에 찾은 바닷가이다. 아이들은 명숙이의 아이들 셋과 내 아이들 둘과 그리고 대장이고 붙여준 5학년 머슴아 뿐. 모두 합쳐서 6명.  평소 아이들이 손님이 가장 큰 손님이라는 말처럼 어른들은 최대한 아이들을 위해서 놀아주었다. 어떤 모임에 가면 어른 아이가 각자 노는데 이 모임 만큼은 늘 아이들을 위해서 어설픈 게임도 한다. 다들 이제는 다 자라 중학교, 고등학생이 되어서  따라 오길 귀찮아해서 그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나의 중매쟁이이자 고등학교 3년 내내같이 자취를 한 명숙이는 여전히 고민이 많았다. 지역이 달라서 자주 못 보는 우리는 또 그때 그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특히 도둑놈은 겁났었다고 이야기하고, 만날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지겹지도 않은지. 명숙이와 나의 성격은 엄청난 차이이다. 외모도 하늘과 땅 차이이다. 말씨도 마찬가지이다. 명숙이는 표준어에 아직까지 귀여운 소녀 같은 말씨. 난 말 그대로 사투리의 무식한 아지매 말씨이다. 그리고 나는 만사가 천하태평. 예뻐서 아이를 낳고도 서울에 모델시험을 보러간 명숙이는 여전히 생각이 많은 형...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아이 셋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잘 안 먹어서 뼈만 남은 아이들을 볼 때 무지 속이 상하다고.......그러면서 장어구이도 마다하지 않고 먹어대는 내 새끼들을 부러워하였다. 그래서 배꼴이 작은 아이들은 자주 자주 먹이라고도 해보고 한 가지라도 맛있는 걸로 해줘봐 라고도 해보고 너의 일을 최대한 줄이라고도 해 보고.......(자기 자신이 일이 많고 몸이 약하니 아이들을 챙기기도 힘들고 집안일을 하기에도 힘들다고 했다.) 지금의 명숙이는 48Kg 나간다........거의 환상적인 몸매이다.

 

 그러나 아이 셋에 자기의 일도 있으니 모든 것이 힘들다고 한다. 명숙이는 소화능력이 안 좋아서 많이 먹지를 못한다. 그런 반면 난 돌을 씹어도 소화가 되는 형이고.......자연히 엄마가 입맛이 없으니 아이들에게 가지가지 못해 주고 그러다 보니 총각때는 통통한 남편이 뼈만 남아있고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고.......내가 더 안타까웠다. 그래서 최대한 일을 벌이지 말라고 했다. 돈을 벌이는 일도 아니고 남을 위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은 내 가정이 우선이고 내 남편과 내 새끼가 우선이지 않겠느냐고.......한 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결론은 내가 아무리 잘 나고 사회적으로 명성이 자자하고 그 이상이 되어도 우리가 결혼을 한 이상 우선은 가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명숙이와의 대화에는 거의 트러블이 없다.)

 

 난 어딘가 모르게 느리고 실수가 많고 집을 엉망으로 해 놓고 사는 명숙이를 좋아한다. 내 동생의 집인것처럼 보이면 쓱쓱 치우고  왜 이렇게 정신없이 사느냐는 등의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니 몸이 튼튼해야 아이들을 잘 먹이든지 하지란 말은 꼭 한다. 명숙이가 매운탕을 못 끊이고 설거지를 재빨리 못하고 머리가 팽팽 안돌아 가도 좋아한다. 까먹기를 자주 해도 좋아한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놓고 깜빡해서 내가 훌훌 털어서 팬티까지 널고 새벽에 일이 있어서 갔지만 또 깜빡하고 걷어 가지 못한 빨래거리와 카메라는 박스를 한 개 얻어서 몰래 담아 놓았다. 집에 와서 택배로 보낼려고......... 그런 친구를 왜 이토록 사랑할까? 그건 그 친구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여리고 착하고 악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명숙이에게 근사한 중매 턱을 못 내었다. 살다가 고맙다 싶으면 그 당시 유행했던 티코를 한 대 사준다고 했는데 한 번씩 아이들의 가방과 옷은 부쳐봤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이번에도 웃으면서 말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너가 소개시켜준 저 남자이다” 고 ......... 명숙이가 또 웃는다. “이 웬수야” 하면서.......

여전히 명숙이의 아이들은 내가 챙겨 먹였다. 민수가 옆에도 더 먹고 싶다고 밥그릇을 들로 오면  넌 이제 그만 좀 먹어 라고 한면서^^^^^^^(친구들이 너무 많이 웃는다. 그러면서 민수는 다른 곳으로 접근하고) 명숙이의  아이들이 잘 먹고 튼튼해야할텐데.........

힘든 학창시절에 만난 명숙이.......나를 보면서 기집애야 하면서 애기처럼 많이 울어준 명숙이......... 그의 앞날에 그가 제일 좋아하는 “하나님”의 축복만 많이 많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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