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새기도 전부터 무슨 소리가 들린다. 잠은 다 잔 것 같아서 가만히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라.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하더니, 정말 비가 내리는구나...
올 한해, 비가 그리운 계절이 이어진다. 여긴 7월 초에 이틀 정도 폭우가 쏟아지더니 두 달이 넘도록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를 싫어하는 내가 비를 기다릴 정도였으니 정말 심했다. 그러다 9월 중순이 지나면서 빗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사실 입맛만 버린 것처럼 내려서 더 갈증이 난다고, 엄마가 그랬다. 여름 수도요금이 평소의 2배 이상 나왔다. 여름이라 욕실에서 사용한 것도 더 많았고, 빨래도 더 자주 돌렸다. 무엇보다 엄마의 텃밭에 하루도 빠짐없이 물을 줬다. 정말 손바닥만 한 텃밭에 물기가 없어 쩍쩍 갈라지는 걸 보니 물을 주지 않을 수가 없더라. 얘네들이 잘살아서 커가는 모습에 엄마가 한없이 기뻐했는데, 가뭄에 타 죽어가는 걸 보니 엄마도 덩달아 시들시들해지는 기분이 드는가 보다. 그러니 오늘 새벽의 빗소리에 깬 잠이 하나도 아쉽지 않다. 주말까지 내릴 거라고 하니, 조금 넉넉하게, 그렇지만 비 피해는 없게, 그렇게 계속 내렸으면 좋겠다. 지금 내리는 이 비 때문에 밖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며칠 미뤄져 피곤해졌지만, 그래도 괜찮다.
엊그제 저녁에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갔다가 서가를 돌고 있는데, 거기서 본 책이 <뷰티 인사이드>이었다. 요즘엔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포토에세이도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 나도 이 영화를 상영관에서 봤다.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이 영화 좋았다. 포토에세이를 보니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괜히 입가에 웃음이 배시시 걸린다. 가슴으로 들어왔던 대사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다시 보인다. 그때 그랬지, 얘네들이 걱정되긴 했는데 달콤해서 부러웠어, 동시에 불안했지, 어떻게 될까 봐 계속 떨리는 마음으로 봤었어...

매일 자고 일어나면 외모가 바뀌는 남자.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는데, 그런 그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사람은 그의 엄마와 그의 절친 상백이뿐이다. 어제 만난 내 친구가 오늘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게 상상이 되지도 않고, 또 이해한다고 해서 매일 마주하는 그 ‘다른’ 얼굴이 금방 적응되지도 않을 듯하다. 아마 부모의 자리에서 보듬어야 할 당연함과 친구의 자리에서 익숙해진 시간의 힘일 테다. 어쨌든 그렇게 변신하는 남자 우진은 숨은 듯 살아가면서 가구를 만든다.
거의 십년을 외롭게 살아가던 우진이 가구 편집숍에서 이수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그녀에게 고백도 하고 싶고 데이트도 하고 싶은데, 그의 외모가 걸린다. 좀 더 멋진 모습일 때 고백하고 싶은데, 또 고백하고 나서는 어떡할까. 매일 변하는 그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하지?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고 일단 그는 고백한다. 정말 멋진 모습으로 일어났을 때. ^^ 그녀에게 고백하고 같이 밥을 먹고 내일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는 그녀를 만나는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서 변한 모습을 감당할 수 없기에 날을 새며 그녀와 만난다. 그러다 정말, 어휴 ㅠㅠ 그렇게 잠을 참다가 깜빡 졸아버리는데... 그의 외모가 변했다. 그녀와의 약속 시각은 이미 넘겨버렸고, 그는 변한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설 수 없었다. 그렇게 헤어지듯 서로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흐르고,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다시 고백한다. 자기의 상황에 대해서, 믿을 수 없겠지만 설명해야만 했다.
나는 여기서 이수의 태도가 궁금했는데, 아마 현실이라면 나는 선뜻 그 앞에 다시 나타나지 못했을 것 같다. 그가 한 말이 사실인지 궁금하고 또 확인해보고 싶었을지는 몰라도, 그를 계속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쉽게 못 했을 것 같은데... 이수는 그의 변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더라. 그녀는 정말 그의 모든 것을 이해했을까?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까? 결국, 앓던 게 터져버렸다. 아무리 마음이 다가가도 걸리는 게 있기 마련이더라. 이수를 위해서 우진은 헤어지자고 말하고 사라진다.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계속 궁금하고 고민이 되더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좋아하고, 그러다 또 헤어지고... 그렇게 헤어지는 이유는 참 많고 다양한데, 이런 상황과 이유는 또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걸까 계속 고민했던 거다.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이 정도 쯤이야 괜찮아, 견딜 수 있어, 하는, 보통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도 그렇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봐도 헤어지는 경우 대부분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당연하게 이해했던 일들이 더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끝나는 거였다. 비슷하구나 생각하면서도 반복하기도 하는 일.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일. 너무 궁금해서 같은 사람과 일곱 번 만나고 일곱 번 헤어졌던 친구 커플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너희는 어쩌다가 일곱 번이나 다시 만나니?” 그때 대답을 했던 남자 사람 친구는 그녀와 일곱 번째로 헤어졌을 때 이렇게 말했었다. “이런 게 좋아서 다시 만났는데, 이런 게 싫어서 다시 헤어지게 되더라. 이상하지?” 그래, 이상했다. 다시 만나는 이유와 헤어지는 이유가 똑같은 것도 웃음 나고, 게다가 그 똑같은 이유를 일곱 번이나 반복했던 그 녀석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이해는 내 몫이 아니므로 뭐, 상관없었다. 그런데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일곱 번을 반복한 건 아직도 이해 못 하겠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친구 커플이 참 많이 생각났는데, 그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들려온 이수의 대사 때문이었다. 다시 우진을 찾아간 이수는 말한다. 너를 못 보고 사는 게 더 힘들었노라고... (정확하진 않지만 뭐 대충 이런 대사였다) 그 친구 커플도 그랬을까? 헤어지는 이유를 분명히 알았는데도, 안 보고 사는 게 더 힘들어서 몇 번씩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걸까?
정말 좋게 본 영화이지만, 나에게 이 영화가 쌍 엄지 추켜들고 최고를 외친다거나,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 애틋해진다거나 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어디선가 본 이 영화의 영화평 때문이다. 영화가 괜찮았어도 포토에세이는 별로 관심 없는 분야인데도 굳이 이 책을 꺼내서 본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 궁금했던 영화가 있으면 그냥 보는 편이고 굳이 다른 이의 평점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그 영화를 먼저 본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묻긴 한다. 그 영화 어땠어? 괜찮았어? 음, 그렇구나, 정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굳이 이 영화를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근데 안 보려고 하니까 괜히 궁금한 거다. 볼까? 말까? 주변 사람들 평은 그냥 쏘쏘... 그러다 하루 상영 횟수가 1~2회 정도였던 끝물에 보게 되었는데, 영화 예매를 하기 직전까지도 고민하던 차에, 어느 사이트에서 이 영화의 실관람객의 영화평을 보게 된 거다. 딱 한 줄. 한 문장.
그냥, 너랑 봐서 좋았다...
그렇구나. 영화의 장르도 내용도 재미도 다 필요 없는 거였다. 누구랑 봤느냐에 따라 그 영화의 평도, 기억도, 다르게 남는 거였는데...
그럼 이 영화를 혼자 보면 어떤 느낌이라고 적어야 하나?
그래서 예매했다.
그리고
그냥, 혼자 봐도 괜찮더라, 라고 나도 실관람객 후기를 쓰고 싶었으나, 안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