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벤허>를 봤다. 미루기만 하다가 여기 상영관에서 오늘이 마지막 상영 시간표로 잡혀 있기에 예매를 했으나, 그 시간도 못 지킬 것 같아 포기도 했다가, 어찌어찌 무리를 해서 보게 되었다. 나는 4시간에 가까운 오래 전 영화 <벤허>도 안 봤고, 원작도 읽지 않았다. 2시간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가 개봉할 때부터 궁금했으나, 뭐, 여건이 안 되어 못 봐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를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 정말 너무 재밌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4시간에 가까운 영화로도 보고 싶어졌고, 원작도 읽고 싶어졌다!
원래 싸움은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되고, 서운한 작은 마음에서 틀어지기 마련인데 메살라와 유다 벤허도 마찬가지였다. 형제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계급의 차이를 겪고 있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물론 그 사이에서 로맨스가 있으니, 메살라는 유다의 여동생을 좋아했으나 유다의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못해서 괴로워했고, 그에 자기 신분에 더 채워야 할 것을 생각하고 로마로 떠났다. 역시 사랑이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게 힘든 걸까, 라고 생각하던 차에 유다와 그 집의 하녀로 있던 에스더의 결혼은 역시 유다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로맨스소설 보다 더 설레잖아?!!!)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연신 유다를 칭찬했다. 엄마 엄마, 쟤(유다) 좀 봐. 잘생긴 애가 왜 멋지기까지 해? 누구는 신분의 벽을 무너뜨릴 시도조차 안 하고 떠났는데, 쟤는 결혼하러 가는 여자를 잡으러 말 타고 막 달려가잖아. 쟤네 엄마가 반대 안 했을까? 반대 했겠지? 근데 저렇게 딱 결혼해버리는 것 좀 봐. 역시 역시, 내가 처음부터 알아봤어. 잘생겼잖아!!!!
보지 않았어도 이미 본 것처럼 착각이 들게 하는 영화인데, 간략(?)하게 줄인 이 영화가 원작의 분위기나 의미를 얼마나 살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엇보다 나는 주인공 유다 벤허의 외모에 푹 빠져서는, 거부감 느끼던 교회에 대해서도 살짝 그 반감이 줄었으며, 영화를 보면서 내내 엄마에게 물었다. 원래 성경에서도 쟤네들은 사이가 안 좋아? 저기 물 떠주는 사람이 진짜 예수야? 설정이야, 아니면 성경에서도 저런 내용이야?
엄마가 영화 보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영화 볼 때 옆에서 말 걸면 싫어하는데) 보면서 계속 궁금한 거다. 그동안 전혀 관심 없던 내용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는, 전차 경주 장면에서는 두 손을 꼭 쥐고 보게 됐는데, 아~~~ 안돼에에에에~~~
경쟁자가 한명씩 경기장에서 사라지고 마지막에 메살라와 벤허만 남겨졌을 때는 완전 흥분 상태였다. 그러다가 경기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그 서늘한 상영관 안이 더워지는 거다. 영화 보면서 이렇게 흥분해보기는 또 처음이다. 저런 전략이 있어서 이길 수 있었군, 역시 무식하게 덤비면 안 되는 거였어, 간절하게 바라는 게 있으면 저렇게 힘을 낼 수 있는 거구나, 싶으면서... 정말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도 가장 기다렸던 게 그 유명한 전차 경주 장면이었는데, 나는 비어있는 앞자리에 몸을 기울이면서 봤다. 두 시간짜리가 이렇게 재밌으면, 4시간에 달하는 영화는 얼마나 재밌을까? 원작은 또 얼마나 섬세할까?
이런 훌륭한 영화에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처음 유다의 등장에서부터 유다만 쳐다봤는데, 특히 유다의 헤어스타일만 집중해서 봤다.
나는 예전부터 이 헤어스타일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내 얼굴형에는 안 어울리기에 마음이 안 좋았더랬다. 아, 달걀형의 얼굴에 정말 잘 어울리는데, 턱을 좀 깎아야 하나? 무섭다. 그냥 포기하자. 그러다 딱 등장한 유다의 헤어스타일을 보니 얼마나 탐이 났던지. 잘생긴 애가 헤어스타일도 내 눈에 들게 하고 나왔기에 눈에 하트가 뿅뿅. 엄마 말로는 옛날에는 저런 헤어스타일을 ‘그지 커트’라고 불렀다는데, 그지 커트가 아니라 멋진 커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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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유다가 노예선을 타고 5년이 흐른 장면에서는 뜨악~~ 어찌 저러한 모습으로?
어서 빨리 시간이 흘러라 흘러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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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경주를 준비하면서 유다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에서는 또 한 번 반해가지고서는... 아예 저렇게 짧게 커트해버린 거야? 얼굴이 훤히 보이니 또 다른 이미지네... 그렇게 경주에서 이기고 사람들은 파티를 하는데도, 그는 그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고 숙소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는데, 나는 또 그 옆모습을 보면서 어우~ 옆모습도 잘생겼네, 하는데 엄마는 옆에서 “에스더(유다의 아내)를 생각하나 보다.” 하시면서 달달한 분위기를 만들어버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남은 건 원작에 대한 호감과 유다의 세 가지 헤어스타일이라네... 마지막 상영일이라 아쉽다. 다시 보고 싶은데 말이여...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벤허'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25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