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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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날이었다. 벡과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러 간다. 그날은 곧 엘리자베스가 사망한 날이 된다.


8년을 시체처럼 살았다. 눈앞에서 아내를 잃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의사인 그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빈민가에서 환자를 돌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도착한 메일 한 통. 그 메일에 담긴 아내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죽은 아내가 살아있는 건지, 누가 장난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누가 메일을 보낸 걸까? 아주 조심스럽게 보내온 메일은 한 번 더 이어지고, 벡에게 경고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갑자기 무슨 일이지? 게다가 아내가 살해당한 호숫가 근처에서 백골 사체 두 구와 혈흔이 묻은 야구방망이가 함께 발견된다. 점점 8년 전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살해당한 아내의 사건이 진실이 아니었을 거라는 의심이 계속된다.


나라면? 아내가 보낸 것이 분명해 보이는 메일을 받고 의심만 하고 있을까? 아니다. 호기심은 늘 위험을 감수하게 한다. 아내를 그리워한 시간도 이 위험을 선택하는데 한몫한다. 무엇보다 아내와 나만이 아는 신호 같은 이야기가 암호처럼 이어질 때 확신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리워하던 사람의 흔적이라는 걸. 죽었다고 생각하고 8년을 지내왔지만, 메일 한 통에 그 믿음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메일을 받은 후 취한 벡의 모든 행동은 누구라도 비슷할 거다. 그 호기심을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을. 위험할 걸 알면서도 아내가 보내는 신호를 따라가서 찾아야만 했다. 8년 전 아내의 죽음이 거짓이었다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유를 밝혀야 했다. 그 어떤 진실을 마주하며 충격을 받더라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함부로 속단할 수 없게, 한번 시작된 사건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간다. 주변에 말하고 도움을 구하고 싶을 때마다 귓가에 아내의 경고가 울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특히 FBI에 쫓기는 벡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모든 증거를 그에게 향하게 만드는 FBI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서 답답하기까지 하다. 어디 이들뿐인가. 누군가 벡의 모든 생활 주거지를 도청하고 있다. 모든 전화, 이메일,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의 감시하에 8년을 지내왔다는 게 믿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사건의 배후는 누구인가. 모든 진실을 파묻은 채로 세월이 흐르게 놔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벡은 누명을 벗고 죽은 아내의 진실까지 마주할 수 있을까?


크고 작은 단서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위기에 처한 벡이 순간을 모면하면서 진실의 중심에 다가설 때마다 긴장하면서 읽게 된다.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다. 아내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장인, 벡의 누나와 함께 사는 쇼나가 정말 벡에게 아군일까, 아들을 구해줬다고 벡에게 호의를 표하는 티라이스가 정말 벡을 돕고 있는 걸까 싶고, 누군가 어둠 속에서 지시하는 건 이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다. 심지어 벡이 정말 아내를 죽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실에 다가서다가 매번 뒷걸음질 치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언젠가 끝은 있고, 그 끝에서 마주하는 건 진실뿐이겠지. 그때 벡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더한 진실을 마주하며 경악하고 있을까. 한 번의 위기를 벗어날 때마다 반전이 펼쳐질 걸 기대하게 하는 이 묘한 이야기는 뭔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란 바로 이런 건가 싶을 정도였다.


할런 코벤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작품 역시 진실을 알 것처럼 안심하게 하다가,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서야 완벽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이 사람이 범인이군 싶다가도, 조금 아쉬운 증거에 그 확신을 무너뜨린다. 우리 사는 곳곳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과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 곳곳에 담아내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이 이야기 역시 작은 일 하나에서 시작한다. 정의를 찾는다고, 옳다고 믿은 일을 수행하고자 했을 뿐인데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걸 바로잡고자 했더니 또 사건은 벌어진다. 작가는 그렇게 크기를 다르게 해서 반복하는 듯한 흐름에, 인간이 따라가려고 하는 호기심까지 심어놓는다. 밝히지 않고서는 궁금해서 잠을 못 잘 갈증을 뿌려놓는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일을 서로 엮어놓고, 그렇게 엮인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을 독자가 끝까지 확인해야만 잠들 수 있게 한다.


살면서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 실수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몰라도, 해결해야만 하는 게 실수를 저지른 사람의 몫이다. 이야기의 끝에는 결말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에 우리는 인생의 찰나에 조금 더 집중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순간의 선택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슬퍼하며 고통에 빠져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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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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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림으로 보는 차별의 역사 같았다. 저자는 권력자의 의도로 달라지는 그림을 이야기한다. 흑인, 장애인, 여성 등 그림 속에 존재하는 이들은 그저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어떤 혐오의 시선까지 더해지면 이들의 존재는 상당히 깎아내려 진다.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어떤 소품을 그려 넣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그림의 의미를 저자는 권력으로 달라지는 시선에 집중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을 수 없는 그림의 해석, 누군가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어느 시대이라도 이런 시선을 만드는 이가 있다는 게 가슴 아플 뿐이다.


저자는 이 책으로 말한다. 그림을 예술로만 볼 수 없다면 그림이 말하는 시대의 모습까지 같이 보게 한다. 얼핏 권력을 담은 그림 때문에 오해나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을 듯하지만,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예술가들이 바라는, 예술 그 자체에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에 담긴 많은 대상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듣고 있노라면, 예술이 이래도 되는가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어린이, 노인, 성소수자, 인종, 질병 등을 중심으로 사회가 정한 정상에서 벗어난 차별을 그려 넣는다. 하지만 이들은 이 차별을 그대로 감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해방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작품 속 소품에 머물지 않게 되기까지의 험난한 시간을 저자는 풀어낸다. 4부의 구성으로, 각 장에서는 주제에 맞는 그림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이다.


흑인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걸까 싶었던 그림마저 백인을 돋보이게 하려고 흑인을 배치했다는 게 놀라웠다. 한 인간의 존재가 장치로 사용되었고, 그를 비판하며 흑인의 자리를 찾아주려고 <올랭피아의 하녀>를 그렸다는 화가 바스키아. 얼핏 패러디처럼 보이지만, 웃음이 아니라 진지한 생각을 남겨주는 느낌에 단순한 그림이 아니구나 싶었다. 열 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으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질병이 벌을 받는 거라고 여긴 시대의 잘못된 시선을 말하는 <병든 아이>는 질병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같이 풀어가야 할 문제임을 시사한다. 질병은 단순히 육체의 아픔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꼬집어야 하는 일이었다. <가니페데스의 납치>로 미켈란젤로가 자기의 성정체성을 커버하려고 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영화 <데니쉬 걸>로 알게 된 게르다 베게너의 성정체성을 관한 이야기와 연결해서 보게 되는데, 드러내지 못해서 커버해야만 했던 시대의 배경을 듣는다. 우리가 말하는 정상성은 도대체 무엇이 기준이 되는지 알 수 없음을 다시 생각한다.


여성 혐오의 시대는 끝나지 않은 듯하다. 오늘날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도 그렇지만, 그림 속 시대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러하다. 자신이 태어난 곳인 자궁을 혐오하는 역사가 이렇게 깊었다니. 월경하는 여성을 열등하게 여겼으며, 여성에게는 그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어머니상을 강요하기만 한다. 그림 속 여성은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않거나 너무 과하게 해서 욕을 먹는다. 여성에게 모성 신화를 강요하면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심 잡기를 강요에 더한다. 시쳇말로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고 하는 것인가 따지고 싶지만, 모성을 강요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에 모성의 정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계속되는, 여성의 가사노동에 관한 <네덜란드 집의 내부> 등의 그림도 사회적인 문제를 비판한다.


많은 혐오로 사회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 우리가 강요하는 이미지는 그 나이와 위치에 맞는 역할이다. 아이도 노인도, 전염병이나 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은 많은 불평등에 노출된 거다. 여성의 늙음을 죄악이라 여겼던 <피에타>와 달리, <농암 이현보의 초상>은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렸다. 평소에 생각하던 게 이 그림이 녹아든 것 같아서 설명을 듣는데 가슴이 뭉클해졌다. 늘어가는 눈가의 주름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확인받은 것만 같다. 이런 것을 보면 그림이 권력에 기울어지거나 혐오에 쓰이는 도구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장치로도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겠다.


좀 더 분야를 넓혀서 얘기하는 게 마지막 4장이다. 권력자들이 그림을 이용해 자기의 독재나 권력 누리는 걸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기도 한 화가가 있는 걸 보면, 예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노력한 이들이 분명 있다는 거다. 저자가 그림으로 풀어내고 해석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다양한 시선으로 예술을 봐야 하는 이유가 이런 거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베네치아에서 열린 코뿔소 전시회>는 이미 제목에서 그림의 의도가 들린다. 관광지에서 보게 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학대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그대로 담았다.


권력자들의 시선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는 예술 세계. 저자는 많은 그림과 마음을 담은 설명으로 그 기울기를 뒤집는다. 그림에 표현되기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묵인되었고, 인간이 평등하게 살아가야 함에도 불평등은 늘 있었다는 것. 그림에 담아내지 못한, 그림에 담긴 아름다움이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림을 제대로 보기를 말한다. 제대로는 기존의 설명이나 소개 같은 거 대신, 우리의 시선을 약간 비틀리게 하면서 그림 속 이야기를 담아내게 한다. 많은 것을 보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삶의 방향이 되어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왔던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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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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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9페이지)


무슨 말이야? 어떤 마음으로 저런 문장으로 시작된 소설인지, 첫 페이지 첫 문장에 잠시 궁금증이 스쳤는데,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느낌으로 이 소설과 첫 대면을 했다. 누구에게 왜 전하려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참 다정하게 들린다. 모르기에 관계가 없고 한없이 거리가 먼 사이일 텐데, 이런 말을 건네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이 다정한 말을 서로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흐뭇해지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함께하는 사람과 평온하게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유리는 함께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통장 잔고 2만 원 정도에 빚이 7천만 원가량 있었다. 이게 인생에 남은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순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어서 답답했을 텐데, 그때 언니가 먼저 손을 내민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살기 시작하지만, 서로에게 완전히 닿지는 않는다.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남이라고 하기에는 가까운 정도. 그런데도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이 관계가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아 보인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하다고 여길 것 같기도 하다. 친구도 아니고 오랜 세월 봐온 사이도 아닌데, 이런 호의가 가능하다고?


가능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존중하며 살았으니까. 그 가운데 위로가 있었다. 각자가 가진 슬픔은 다르지만, 그 슬픔의 의미는 비슷하게 겪으며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 아니었었나. 그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나보다 싶고. 유리와 언니 두 사람은 넓지 않은 그 집에 많지 않은 돈으로 사는 데도 크게 불편해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이들이 가족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각자 자기 일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하고, 하루를 이야기하는 관계가 가족이 아닌데도 가능했다. 정말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들은 상대를 존중하듯 거리를 지키며 일상을 공유한다. 누군가는 이들의 마음, 관계의 정도가 애매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뭔가 분명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친밀하게 다가서는 것도 아닌데, 같이 사는 게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을지도.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그게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거나 대단한 미래를 꿈꾸며 살지는 않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어차피 바꿀 수 없고 오늘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으니까. 가진 것을 생각하면. (113~114페이지)


영화관에 같이 가서도 서로 다른 영화를 보는 관계, 산책하면서도 가까이 닿지 않는다. 모호하게도 보이는 이 관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는지 알게 된다. 마음이 풍요로워 보이지 않는 이들은 각자가 가진 슬픔과 외로움이 있지만, 그 감정을 살짝 누를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기에 고마움을 안다. 유리와 언니 사이에는 또 싱글대디 재환 씨가 있는데, 그 역시 어떤 순간에 이들을 만나서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고 서로의 근황을 묻기도 하지만, 이들의 삶에 깊숙하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감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딘가를 같이 가자고 말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게 놀랍다.


어쩌면 심심하게 보일 정도로 밋밋한 소설이다.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의 이름이 이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애틋하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좁히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서 이해의 마음을 표현할 뿐이다. 오히려 우리 사이의 이해는 그 거리 때문에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 정도에서 느껴지는 타인의 온기와 유대감이 서로 공존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은근하게 다가오는, 조심스러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당신을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인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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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름답게 이별하기 - 네 편의 소설로 읽는 여성심리학
김영신 지음 / 어나더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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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엄마를 떠나고 고향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관계 매김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는 엄마와 나를 잇는 진정한 관계의 시작이다. 장차 맞이할 생물학적 이별을 의연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든든한 기반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12페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엄마와 불편한 관계로 지낸 적이 있다. 아마 세상의 모든 딸이 비슷한 경험 한 번씩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항상 고맙고 든든한 지지자이지만, 한번 어긋나면 그 감정의 골이 누구보다 더 깊어지는 관계였다. 이해하면서도 밉고, 미워하면서도 멀리할 수 없는 대상이 바로 엄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그 관계의 모양을 다르게 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바탕에는 비슷한 마음이 자리한다고 믿는다. 많은 엄마와 딸이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걸 저자는 진즉에 알았나 보다. 저자가 심리상담사로 일하면서 만난 내담자의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짧은 소설 형식으로 네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묻는다. 당신은 어떤 딸이냐고.


네 편의 이야기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반한 저항형, 순응형, 경쟁형, 동화형 네 가지 유형을 보여준다. 네 명이 딸이 들려주는 네 가지 유형의 모녀 관계는 누군가의 고민이면서 우리가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엄마와의 갈등이다. 각 소설에 등장하는 딸은 오랜 세월 엄마와의 관계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알면서도 그 관계를 바꾸거나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으며 알게 모르게 가슴에 박힌 상처 치유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저항형. 엄마와 애인이 만난 자리 이후로 관계가 악화하였다. 애인은 헤어지자고 했고,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자기만의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딸은 엄마와의 기억을 조금씩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어렸을 적부터 독립을 꿈꿨던 딸. 엄마를 벗어나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게 온전한 바람이었을까. 엄마를 떠나와 외로움과 불안감이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순응형. 좋은 엄마를 보고 자란 딸은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되었고, 그 능력은 그녀의 업무량을 증가시켰다. 거절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만 하는 게 익숙했던 걸까. 그녀에게 쌓인 피로감과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경쟁형. 서로 할퀴듯 함부로 대하면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모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엄마는 없었다. 자기만 잘하면 된다고, 주변 사람의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도 모른다. 특히 엄마. 가장 가까울 것 같은 관계가 가장 멀고 다툼의 대상이 된다. 갈등은 극에 달하고 독립을 얘기하지만, 결국에는 엄마와의 화해로 자기의 문제를 바로 본다.

동화형. 자기가 모두를 돌봐야 한다고 여기는 주인공은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선을 넘어서면서까지 주변을 챙긴다. 정작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다. 주변에 말하지도 못하고 자기의 문제를 안으로만 감싸 안다가 둑이 터지고야 마는 것처럼 큰 문제가 된다.


한편 한편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는다. 세상에 보이는 모녀의 모습은 보통 한 가지로 다 비슷하다고 여겼는데, 내밀한 속내를 들어보면 그 관계가 다 달랐다.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었던가 싶으면서도, 추려보면 몇 가지로 정의되는 듯하다. 저자가 말하는 네 가지 유형은 우리가 겪는 모녀 관계 갈등의 대표적인 모습이었고, 그 유형 곳곳에 내 모습도 있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내가 사는 모습의 중심에 엄마가 있더라. 엄마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지 하면서 나의 바람을 일부러 잊고 지낸 적도 있다. 가장 다정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엄마의 삶을 부러워하며 질투하기도 했다. 무슨 관계가 이런가 싶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이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융이 분석하고 저자가 설명해준 이 유형들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던 거다.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제목만 보면 이 책을 오해할 수도 있다. 생물학적 이별을 앞에 둔 마음 자세처럼 들리지만, 그에 앞서 정신적으로 엄마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상담서에 가깝다. 언젠가 우리가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겠지만, 그 전에 우리가 완성해야 할 것은 엄마와의 관계가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동안 겪었을지도 모를 혼란을 마주하는 일이다. 때로는 그 관계의 거리감에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이 관계를 다시 보는 시간은 엄마뿐만 아니라 내가 겪는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가 있으면 그 시작점을 찾아봐야 하는 것처럼 관계도 그렇다. 저자의 말도 비슷하다. 이상화된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내 옆에서 실재하는 엄마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정신적인 이별을 준비하라고. 그게 말처럼 쉽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한다. 그리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며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갇혀 있게 된다.


세상 아이들은 엄마를 통해 인간관계를 경험한다. 이때 엄마의 반응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반응에 따라 생각과 행동을 수정해가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발전해간다. 추후 이렇게 강화된 특징은 인간관계에서 기질처럼 발휘된다. (105페이지)


엄마는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 말 그대로 이상화된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도 진득하게 붙어 있었다. 너무 친밀한 관계, 엄마니까 무조건 해줘야 하는 일들, 그러다가 싸우고 원망하며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 상황의 반복이 감정을 상하게 한다.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이 책에서 그 답을 완벽하게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네 딸의 사례로 살펴보면 나에게도 이들과 비슷한 장면들이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겪는, 자리한 줄도 모르고 가지고 있던, 절대화된 엄마 원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딸의 심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런 딸의 모성 콤플렉스에 기반한 심리 특성은 두 가지 이상의 유형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개인의 유형 변화는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한다. 더불어 이 문제는 모녀 관계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 거다.


그 답은 홀로서기였다. 언제나 내 편이었던 엄마와 울면 바로 달려와 해결해주었던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 누군가의 도움 없이 외로움을 이기고 혼자 힘으로 자신의 길을 걷는 것. 그러니 엄마와 정신적으로 이별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함께하되 상처 주지 않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야 하지만 모든 것을 기대지 않는,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존재로 머물러야 한다. 혹시나 어떤 매듭으로 얽혀 괴로워하고 있다면, 감당하지 못해 꾹꾹 누르고만 있었다면, 엄마는 물론이고 많은 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한 번쯤 만나도 좋겠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 한구석을 짚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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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심장을 쳐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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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사이에 질투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엄마가 딸을 질투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엄마란 원래 자식의 아름다움이나 지혜로움 같은, 내 자식을 돋보이게 하는 모든 것에 자부심이 생기기 마련 아닌가? 어쩌면 표현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자식을 향한 그 묘한 질투심도 드러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뭘까? 아멜리 노통브가 모녀 사이의 정의할 수 없는 그 감정을 소설로 풀어냈지만, 여전히 나는 그 감정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모녀 사이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여자와 여자 사이의 질투였다고 말하면 오히려 더 쉽게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엄마와 딸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대했던 게 아닐까 싶은. 그랬기에 딸은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다. 다른 친구들이 부모에게 받는 사랑 그대로를 바랐다. 평범하게.


어딜 가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아가씨 마리. 자기 외모가 얼마나 잘났는지 아는 그녀는 그 아름다움을 한껏 이용한다. 주변 여자들의 질투가 어린 시선을 즐기고, 그녀 주변을 서성이는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차지하지 못하게 했고, 그 순간을 영원히 누리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마리에게 근방의 잘생기고 착한 젊은 약사 올리비에가 반한다. 그는 누구라도 원하는 완벽한 신랑감이었다. 마리는 올리비에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여자들의 질투 유발을 목적으로 올리비에와 사귄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까. 마리는 올리비에의 아이를 가지면서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하고, 딸 디안을 낳는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이야기다. 젊은 남녀가 사귀면서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부모가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 책임을 지려고 선택한 결혼 이후에 마리가 어떤 엄마가 되었느냐 하는 거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웠던 아이 디안. 디안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이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그때마다 마리는 괴롭다. 아름다웠던 그녀의 찬란한 인생은 사라지고, 아름다움의 주인공은 그녀의 딸 디안이 되었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스무 살의 나이에 예상하지 못한 결혼생활의 시작과 육아는 그녀에게 딸을 질투하는 엄마로 만든다. 딸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고, 육아에 관심도 없는 엄마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사랑을 자연스러운 거니까. 마음이 가는 곳으로 사랑도 향하니까 말이다.


그럼 마리의 딸 디안은 어땠을까. 엄마가 자기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버린 딸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된다. 읽는 나도 이해를 못 하겠는데, 그 질투를 고스란히 받고 자란 딸은 어떻겠는가. 어느 날 밤 딱 한 번 보여 준 엄마의 포옹이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듯했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았다. 남동생과 여동생이 차례로 태어나면서, 디안은 알게 되었다. 엄마가 자기에게 주지 않는 사랑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따스한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자라온 시간에 절망했다. 그건 괴로움이었다. 살아가는 내내 디안을 괴롭힐 그 감정을 잊으려고 공부에 집중했다. 어렸을 적 어떤 날의 기억으로 의사가 되고자 했던 디안은 심장내과 의사가 되고,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교수 올리비아를 따르고 존경하며 그녀의 성공을 기원하지만, 올리비아가 그녀의 딸 마리엘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오래전의 자기 엄마를 보는 듯한 감정에, 디안은 마리엘에 더 시선을 두게 된다.


딸을 질투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를 피해 달아난 곳에서 엄마와 같은 사람을 발견한 순간 디안의 마음은 순간 과거로 속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작가가 올리비아에게서 마리의 모습을 순간 포착하듯 묘사한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반전을 보여 주는 건가? 엄마에게서 엿본 그 차가운 감정을 겨우 잊고 살아가는 디안에게 어떻게 올리비아에게서 마리를 보여 줄 수 있느냔 말이지. 결국, 세상 모든 여자의 관계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말하려는 것인지 잠깐 생각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의 관계가 우리가 살면서 만드는 관계와 같다. 모녀, 스승과 제자, 친구, 자매 같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관계를 쌓으면서 우리는 사랑과 우정도 나누지만, 질투와 배신도 함께 나눈다는 것을. 웃기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다. 왜 한쪽으로만 향할 수는 없는 걸까. 좋은 관계라면 좋은 것만 나누고, 나쁜 관계라면 그냥 나쁜 것만 내주면서 관계 정리하고 지내면 되는 거니까. 그러니 서로 등을 대고 있는 듯한 이 묘한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고단할까 짐작할 만하다.


이 소설의 제목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소설 내용에 언급되는데,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가 친구에게 바친 시에서 따온 문장이다. ‘자네 심장을 치게, 천재성이 거기 있으니. 연민, 고통, 사랑이 있는 곳도 거기라네.’ 주인공 디안이 이 관계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질투나 경멸 같은 감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인용한 구절이나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어떤 감정들이 나를 슬프고 고통스럽게 해도, 심지어 그게 엄마에게서 나오는 외면의 시선이라고 해도, 내 심장은 나의 중심에서 계속 뛰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는 말로 들린다. 그 심장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연민과 고통도 함께 담겨 있으니 다 감당하고 이겨내리라는 주문처럼 말이다. 디안이 심장내과의 길로 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 심장이 하는 말, 좋든 싫든 다 듣고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면, 이 심장의 말을 지배하는 것도 나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듯이.


그러니까 모든 생명의 의미이자 존재 이유는 그것이었다. 우리가 여기에 있고, 그토록 많은 시련을 견뎌 내고, 계속 숨을 쉬려고 애쓰며, 그리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은 바로 사랑을 알기 위해서였다. (34페이지)


분량은 짧은데, 그 짧은 흐름이 너무 빠르고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결말이다. 그 결말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밤, 디안의 집 현관문을 두드린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이들이 잃어버린 감정 하나를 찾아낸 것만 같았다. 인간의 감정이란, 엄마가 사랑을 주지 않는 딸의 소외된 삶이란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운지 그대로 드러내는 결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새롭게 시작될 또 다른 인생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괜찮을까? 서로가 줄 수 있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과 염려, 희망을 동시에 보여 주는 마지막 장면 역시 강렬해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건조한 분위기와 잔인한 감정이 사랑을 만나니 이런 이야기도 펼쳐진다. 그래서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된다.



#너의심장을쳐라 #아멜리노통브 #열린책들 #소설 #문학 #모녀사이 #애증 #질투

##책리뷰 #책추천 #심장의말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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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02 1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잘 쓰셨네요.
으음... 저도 딸이 있는 입장에서 느낀 바를 말한다면... 딸의 젊음과 나의 나이 들음을 비교할 때
딸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질투한다기보다 딸에 비해 늙어 버린 (젊음을 잃은) 어머니로서의 비애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어린 나이에 결혼하면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그걸 질투로 착각할 수 있겠다 싶은데요, (흔히 자기 감정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죠.) 막상 딸애가 큰 불행을 겪으면 무지 힘들어할 게 어머니, 라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외라는 게 있는 법이니 예외적인 사람이 있을 순 있겠어요.^^

구단씨 2022-09-09 22:02   좋아요 2 | URL
그 비슷한 마음을 저도 느낄 때가 있어요. 저는 아이가 없지만, 엄마는 항상 그런 얘길 하셨어요.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이걸 하고, 5년만 젊었으면 저걸 하고... 무언가 간절한 것들이 늙음이라는 것 때문에 포기하게 하는 마음이요.
길을 가다가 보는, 카페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전혀 타인인 저도 부러움 같은 거 느끼거든요...
이 소설 속 엄마는 약간, 음, 엄마가 될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엄마가 된, 원하지 않는 결혼과 임신으로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된 생활을 시작한 여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본인 위주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mini74 2022-10-07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딸과 엄마의 이야기 ~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납니다.
축하드려요 *^^*

구단씨 2022-10-10 22:10   좋아요 1 | URL
mini74님도 읽으셨군요. ^^
그 모녀 관계의 묘한 심리가 매력적이었어요.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2-10-07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구단씨 2022-10-10 22: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연휴가 다 끝났네요. 비도 추적추적...

얄라알라 2022-10-10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은게 벌써 작년이었나봐요
구단씨님의 리뷰로 기억 소환해보았습니다.

저 역시, 노통브 책이군! 하며 읽었는데..

멋진 리뷰,당선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2-10-10 22:11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1년쯤 전에 출간되었어요.
짧은 글인데, 머리가 복잡해지고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뭘까... 하면서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