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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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9페이지)


무슨 말이야? 어떤 마음으로 저런 문장으로 시작된 소설인지, 첫 페이지 첫 문장에 잠시 궁금증이 스쳤는데,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느낌으로 이 소설과 첫 대면을 했다. 누구에게 왜 전하려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참 다정하게 들린다. 모르기에 관계가 없고 한없이 거리가 먼 사이일 텐데, 이런 말을 건네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이 다정한 말을 서로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흐뭇해지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함께하는 사람과 평온하게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유리는 함께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통장 잔고 2만 원 정도에 빚이 7천만 원가량 있었다. 이게 인생에 남은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순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어서 답답했을 텐데, 그때 언니가 먼저 손을 내민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살기 시작하지만, 서로에게 완전히 닿지는 않는다.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남이라고 하기에는 가까운 정도. 그런데도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이 관계가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아 보인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하다고 여길 것 같기도 하다. 친구도 아니고 오랜 세월 봐온 사이도 아닌데, 이런 호의가 가능하다고?


가능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존중하며 살았으니까. 그 가운데 위로가 있었다. 각자가 가진 슬픔은 다르지만, 그 슬픔의 의미는 비슷하게 겪으며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 아니었었나. 그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나보다 싶고. 유리와 언니 두 사람은 넓지 않은 그 집에 많지 않은 돈으로 사는 데도 크게 불편해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이들이 가족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각자 자기 일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하고, 하루를 이야기하는 관계가 가족이 아닌데도 가능했다. 정말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들은 상대를 존중하듯 거리를 지키며 일상을 공유한다. 누군가는 이들의 마음, 관계의 정도가 애매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뭔가 분명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친밀하게 다가서는 것도 아닌데, 같이 사는 게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을지도.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그게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거나 대단한 미래를 꿈꾸며 살지는 않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어차피 바꿀 수 없고 오늘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으니까. 가진 것을 생각하면. (113~114페이지)


영화관에 같이 가서도 서로 다른 영화를 보는 관계, 산책하면서도 가까이 닿지 않는다. 모호하게도 보이는 이 관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는지 알게 된다. 마음이 풍요로워 보이지 않는 이들은 각자가 가진 슬픔과 외로움이 있지만, 그 감정을 살짝 누를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기에 고마움을 안다. 유리와 언니 사이에는 또 싱글대디 재환 씨가 있는데, 그 역시 어떤 순간에 이들을 만나서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고 서로의 근황을 묻기도 하지만, 이들의 삶에 깊숙하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감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딘가를 같이 가자고 말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게 놀랍다.


어쩌면 심심하게 보일 정도로 밋밋한 소설이다.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의 이름이 이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애틋하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좁히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서 이해의 마음을 표현할 뿐이다. 오히려 우리 사이의 이해는 그 거리 때문에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 정도에서 느껴지는 타인의 온기와 유대감이 서로 공존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은근하게 다가오는, 조심스러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당신을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인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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