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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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세상을 상상한 적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게 되는 게 일상이면 좋겠다는, 아주 철없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어른이 된 후에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모를 때 오해와 다툼이 생기는 거라고. 적당한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기도 하고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기도 할 텐데, 이상하게 그 말은 적당하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너무 모자라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 너무 넘쳐서 듣기 싫은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라는 게 참, 어렵다.


에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있다. 저자는 언어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며, 그 시간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한다. 세상과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도 있노라고. 장애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언어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 자폐와 같은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발달을 저자가 돕는다.


처음 언어장애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말더듬이나 언어장애로 소통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수업하고, 그 후기 같은 기록을 남긴 거다. 다 설명하자면 긴 듯하지만, 말더듬을 위한 처방(?) 같은 지침이 실제 이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이가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말을 더듬는 아이에게 낱말의 첫소리를 늘려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동화를 함께 들으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거다. 자폐 초등학생과는 놀이터에서 같이 그네를 타기도 하고, 게임을 함께 하기도 한다. 무슨 치료가 이럴까 싶은 마음은 넣어두시라. 다른 질병도 그렇겠지만, 저자의 말을 듣고 보면 특히 언어치료는 타인이 소통의 상대이니만큼 서로가 가까이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누군가에게 마음속 말을 하려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을 여기에서도 새삼 배운다.


이야기의 중반부로 들어갈수록 이 언어 세계는 더 깊고 진득하다. 저자는 언어치료의 전문가이지만, 그에게도 항상 성공적인 경험만 있던 건 아니었다. 소통이 잘 되어 좋은 결과로 이어진 일도 있고, 치료에 잘 접근하기 어려워 힘들었던 적도 있다. 의외의 순간에 아이가 마음을 열었던 것도 기쁨의 순간이었다. 이런 장면에서 알게 되는 건 역시 교감이었다. 요즘 관심 두던 상담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나온다. 상담사와 내담자의 시작은 라포를 형성하는 거라고. 저자도 이 라포 형성을 시작으로 치료에 접근하고, 그 시작은 치료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다양한 사례가 저자의 경험에 쌓였겠지만, 역시 실패로 끝난 수업은 그의 가슴에도 오래 남을 일이 되었을 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더 좋은 치료 수업을 위해 노력한다.


장애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까? 전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인 걸까?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통이 우리의 부족한 문제 치료에 중요한 일인지 알 것 같다. 언어장애가 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그 행복의 추구는 보통의 사람이 똑같이 향해가는 일이었다. 저자가 만난 아이 중에서도, 자격증을 따고 미래를 설계하면서 인생을 완성하는 이가 있다는 걸 보면, 장애가 있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우리 사는 사회에서 정상의 기준은 필요 없음을 이렇게 확인한다. 그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한 것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배우고 알아가면서 채워가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 언어를 이루는 명사, 동사, 형용사가 이 아이들이 사는 세계에 가득했다. 저자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그 세계를 찾아냈고 뛰어놀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방식을 배운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역시 이 세계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언어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 누구도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어치료사로 살아가면서, 저자에게도 시행착오의 시간이 있었을 테다. 그런데도 언어가 가득한 그 세계에서 치료와 소통의 노력을 멈출 수 없는 건,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 저자의 문장 곳곳에 묻어나고 있던 건 인내심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져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다그치고 자책하던 일은, 나와 조금 다른 상황에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달한다. 아이에게 언어장애가 있거나 언어발달이 조금 늦는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도 좋고 이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놀이나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언어에 장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게 어려운 순간은 종종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저자가 여러 아이를 만난 후 그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놓은, 각 에피소드의 끝부분에 자리한 마음을 만나봐도 좋겠다.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꼭 말이 아니어도 대화할 수 있는 손짓 몸짓도 괜찮다라는 것. 많은 사람 낯선 이들과도 말과 글을 나누는 이유는, 우리 사는 이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나 역시 언어장애나 언어치료의 분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닌데도,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으로 소통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기본인 자세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저자가 전달하는 이 감동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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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싶은데,
다른 거 생각하고 걱정하느라 책을 거의 못 읽었다.
당분간 계속 이럴 거 같은데,
그 와중에 신간 기웃거리면서 또 책을 사긴 했는데,
택배 상자 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꺼내면 읽고 싶을까 싶어서, 어차피 못 읽을 거 괜히 짜증날 것 같아서.

근데 정말이지,
인터넷서점 배송비 오르니까 한 권씩 사는 기쁨이 사라졌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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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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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보니, 저자의 책이 많이 출간되었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저자의 책을 읽은 지 한참 되기도 해서 궁금했던 참에 이 책을 만났다. 두께도 상당했지만, 내가 읽었던 전작의 느낌을 떠올려 그의 차분한 말투 속의 경건함(?) 같은 분위기 다시 만나고 싶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투는 여전했고, 그의 철학은 감히 내가 평가하기 어렵지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그는 앞으로 무슨 말을 더하고 싶을까 하는 궁금증이 잠깐 생기기도 했지만, 어렴풋한 생각으로는 어쩌면 이 책의 그의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에게 암이라는 몹쓸 놈이 찾아오기 7년 전의 단상들이 모였다. 그것도 양이 상당하다. 1348편의 글이라고 한다. 각 단락에 숫자가 쓰여 있기는 하지만, 장마다 다시 시작하는 그 숫자를 다 세어보지 않아서 이렇게 많은 기록으로 남겨진 줄 몰랐다. 짧은 글은 한 줄 한 문장 정도, 긴 글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하는 터라 한 단락마다 양이 일정하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그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놨다는 게 실감이 난다. 어느 날은 메모지에, 어떤 날은 책상 위에 펼쳐놓은 노트에 써 내려간 말들이 아닐까 싶다. 하긴, 언제 어디에다 썼는지 뭐가 중요할까. 누군가의 생각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지고, 후에 누군가 이렇게 읽고 있다는 게 중요하겠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잠깐 생각하고, 혹시 그 순간의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적었을까 또 생각하는, 생각이 이어지는 거 자체가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 하나를 맞으려면 생각 하나를 쫓아내야 한다. 이럴 때는 뇌가 아프고 슬프다. 발자크는 문장들이 쇄도하고 범람해서 잠을 못 잔다고, 상드에게 썼다. 그 또한 얼마나 머리가 슬프고 아팠을까. (572페이지)


아마도 나만 느낀 건 아닐 듯하다. 이상하게도 그의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가 암 선고를 받을 것을 미리 아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이 묘한 기분(우리는 그걸 우울증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거 말이다. 그의 죽음은 정신적인 문제와 거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의 글은 차분하면서도 무게 있게 다가왔다. 존재를 고민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철학자의 사고에 닿으려고 애쓰는 듯, 그렇게 어느 햇살 좋은 날 생각에 잠긴 그를 상상하면서 문장을 읽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많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은 가득 차 있었다. 우리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외로움, 인간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고, 한 사람이면서 다양한 존재(남자, 철학자, 가장 등)로 살아가는 역할에 대한 고뇌, 그가 오랜 시간 마주해온 철학과 문장에 대한 사유 등, 마치 온 세상을 망라한 또 하나의 철학서를 보는 듯했다. 아마도 그의 사유는, 책 소개에서 말했던 것처럼 철학과 문학의 힘이 바탕이 되는 건 아닐까 싶다. 세상에 속한 우리가 줄곧 생각하는 것들이, 어느 현자의 말에서 답을 찾기도 하고, 어느 작가의 문장에서 확인하게 되니까. 그가 말하는 것과 그가 살면서 담아온 것들을 소개하듯 전달하는 문장들에 시선이 머무는 건 그런 이유겠지. 조용한 일상이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까닭 말이다.


눈도 침침해진다. 손가락 통증도 심해진다. 모든 것들이 쓰는 걸 은밀하게 방해한다. 아니면 격렬한 충동질인가. (382페이지)


그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누군가의 하루를 읽기도 하고 어떤 책의 문장에 눈길이 머물렀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오늘 무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어떤 약속을 지키며 살았는지,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그의 시간을 엿보면서 동시에 그의 삶을 보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그의 건강에 문제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느낀다. 혹시 그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몸의 이상을 알아챘더라면, 지금쯤 마지막 책이 아니라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독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여전히 사랑과 믿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냥 아쉽기만 하다.


한없이 인간적으로 보이면서도 때로는 무너져 내리는 인간을 구원할 철학자의 면모도 갖춘 그였다. 때로 고독하고 우울할지라도 결국 용기 내어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에, 그의 문장은 더 친근하고 마음 깊숙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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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문구점에 갑니다 - 꼭 가야 하는 도쿄 문구점 80곳
하야테노 고지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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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문구를 대하는 내 마음은 이랬다. 예쁘고, 좋고, 비싼 거.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예쁜 거 보고 있으면 공부도 더 잘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뭐 이런 마음? ^^ 이런 마음도 오래전 일이긴 하다. 이제는 글씨 쓸 일이 생기면 자판으로 두드리는 게 대부분이고, 급하게 메모하게 되면 휘갈겨 쓰느라 내가 써놓고 내가 못 알아보는 일이 흔하다. 그러니 나에게 문구는, 이제는 별 상관없는 세계의 일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잠깐이지만 다시 문구 장비빨에 빠져든 시간을 보냈다. 뭘 좀 배우겠다고 학원에 등록했고, 두 달 예정의 수업을 듣느라 나는 다시 장비(?)를 마련해야 했다.


 

 

(연필, 샤프펜, 샤프심, 필통 : 판매자 알라딘 ^^)




학원 등록하고 처음에는 다 있는 매장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집에 볼펜은 흔하게 넘치지만, ‘잘 써지는펜이 필요했다. 집에 이면지나 메모지, 노트도 넘쳐났지만, ‘펜이 잘 먹히는노트도 마련했다. (볼펜)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아니더라. 공부하려면 연필을 쓸 일도 생겼다. 연필을 쓰다 보니 필통이 더러워지더라. 안 되겠다, 연필 뚜껑도 필요해. 연필 깎으려고 오랜만에 커터칼을 밀었는데, 정말 안 예쁘게 깎인다. 또 다른 장비 마련에 눈길이 돌아간다. 몇십 년 만에 연필깎이도 샀다. 연필깎이 검색하면서 알았는데, 기차 모양 말고도 연필깎이가 정말 많더라는 거. 신세계를 본 것 같아! , 정말 중요한 거. 책 넣어서 다닐 가방이 있어야 하잖아! 네모반듯한 가방을 찾다가, 당근에서 7천 원 주고 가방도 하나 샀다. (이거 너무 싼 거 아니야? 라는 의심을 잠깐 했지만, 7천 원에 눈이 멀어 일단 샀는데, 7천 원이어야 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됐다는 슬프고 분노하는 마음. ㅠㅠ) 또 뭐가 있더라? 암튼, 어떤 공부 좀 하자면 일단 공부할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 거다. 그 환경에 당연히 장비는 포함되고 말이다. 근데, 이거 제대로 하는 거 맞나? 뭐가 없어서 공부를 못 한다는 핑계를 삼기에 이제는 발을 뺄 수가 없다. 뭐든 다 마련한 거 같은데, 공부는 진짜 안 해서 발등에 불 떨어졌다. 공부에 장비가 중요하지 않았더라는 후회를 할 즈음에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바로 하야테노 고지의 오늘도 문구점에 갑니다되시겠다.


개성 가득한 도쿄 문구점 순례를 담은 책이다. 꼭 문구 덕후가 아니더라도 한번은 눈길이 갈만한 소재의 여행기 같다. 얼마 전에는 빵지순례를 보다가 빵을 따라가는 여행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새로운 것을 만나는 재미로 문구순례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왜 문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저자의 이력과 연관해 보니 그럴 수도 있구나 싶다. 거기에 열성적인 문구 마니아란다. 그러니 이 책은, 마치 그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가 엄선한 도쿄 문구 지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사진이 아니라 그의 재능을 그대로 담은 삽화로 문구를 표현했고, 그가 찾아간 문구점의 개성과 매력을 그대로 그려냈다. 이상하게도 그가 그린 그림과 설명을 보고 있자면, 마치 컨셉이 뚜렷한 카페를 보는 듯했다. 가게의 외관부터 보여주고, 그 가게의 역사, 직원의 서비스 만족도, 그 가게의 특별한 문구 자랑까지 가득하다. 어떤 곳은 종이에 특화되어 있고, 어떤 곳은 펜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한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하고 예쁘고 매력적인 문구가 넘쳐난다는 게 새삼스럽기도 하고, 이거 언제 다 써보고 죽나 싶기도 하다. ^^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문구의 고전적인 브랜드와 제품부터 문구 마니아가 두 팔 벌려 가득 안고 돌아가고 싶게 하는 개성 넘치는 제품들까지. 눈에 다 담을 수조차 없는 설명에 제품의 이미지가 저절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진 문구라고 해도 어찌 실물만 하겠는가.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그 매력을 온전히 알게 되기는 어렵겠다. 그런 이유로 이런 여행안내서(?)가 생겨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문구의 한계를 정할 수 없어서 더 흥미로웠던 이야기였다. 기본적인 필기구류부터 다꾸용품이나 감성 넘치고 아기자기한 제품들까지 다양했다. 에코백이나 캔들, 희귀한 그림책까지 문구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소개된다는 것도 특이했다. 아마도 이건 문구는 이런 제품이라고 한정해서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 때문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한계를 두지 않고, 넓고 다양하게 보는 눈이 제품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게 하고 발전을 이뤄내는 거 아닐까. 특히 저자의 삽화가 귀여운 느낌이 많아서 그런지 문구 하면 떠오르는 아기자기함이 더 와닿았던 듯하다. 아마 이 책에서 소개된 몇몇 페이지만 보더라도, 당장 도쿄의 그 문구점 앞을 서성이고 싶어질 거다.


이 책을 더 잘 활용하는 법도 안내해주었다. 그곳(도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문구 찾기 미션, 문구 원데이 클래스도 가능하니 체험해보기, 문구로 시작했지만 명소와 맛집도 놓치지 말 것. 저자가 친절하게도 가게의 상세 정보까지 다 담아주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이 책 한 권으로 도쿄 문구 여행이 충분해질 거다. 조심해야 할 것은, 귀국하는 길에 짐이 너무 많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것. 충동 구매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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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오로라의 모든 것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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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의 소설이었나. ‘어쩌다 한집에 살게 된 두 여자의 왠지 부끄러운 소원이 오로라의 너울 속으로 빨려 올라가 회오리쳤다.’라는 문장이었을 거다. 시어머니와 오로라 여행을 떠난 여자의 이야기에 처음에는 이 무슨 이상한 여행 조합인가 싶었다가,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여자로 살아가는 순간의 한 장면일 뿐이라는 생각에 한참을 바라봤다. 아무 생각 없이 눈밭에 누워 바라본, 쏟아지는 오로라를 그대로 맞고 돌아온 이들의 일상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달라졌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분명 그 여행을 떠난, 오로라를 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권오철이 찍은 오로라 사진으로 가득한 이 책을, 그때 그 문장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떠올렸던 단어 오로라를 이제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던가 보다.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우아한 오로라 사진, 낯선 땅 밟고 멈춰선 곳에서 바라보는 오로라는 어떻게 다가올까 싶었다. 어떤 이는 생애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하나일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어디선가 일어나는 자연 현상쯤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달라도 이 책 속의 장면들에 빠져들 수밖에 없던 건 똑같으리라. 이미 저자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 터라 익숙하지만, 정작 그가 찍었다는 사진을 접해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니 이번 책은 나에게 그의 사진과 가까워질 기회이기도 했고, 문장으로 봤던 오로라의 우아함에 취할 시간이 됐다.


신의 영혼이라 불리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완전 무장을 하고 닿은 곳에서 마주한 오로라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굳이 어딜 가서 뭘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곤 했는데, 아니다. 이건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봐야 할, 생애 꼭 한 번은 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만드는 장면이었다. 그 신비로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무리 아름다운 색을 골라서 칠해봐도 오로라의 모습과 색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니 어쩌겠나, 직접 보는 수밖에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을 테다. 어디선가 들었던 아이슬란드의 오로라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저자의 친절한 안내로 새롭게 알게 됐다. 캐나다의 옐로나이프에서 더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유명한 관광상품으로 되어버린 오로라 여행 목적지는 정해진 셈이다.


오로라는 왜 생기는 걸까? 그 빛의 출처는 태양이었다. 태양에서 나온 전기 입자들이 행성의 자기장에 이끌려 오면서 대기와 반응하여 빛을 낸다고 한다. 사진에서는 대부분 초록이었는데, 오로라의 색이 꼭 초록만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색이 아니었다. 그럼 언제 오로라를 가장 잘 볼 수 있을까? 태양의 활동이 극대기에 달하면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단다. 특히 춘분이나 추분을 전후로 한 시기가 안성맞춤이라고 하니, 오로라 여행을 계획한다면 참고하시라. 듣다 보면 이 책에는 저자의 사진뿐만 아니라, 오로라를 더 자주, 잘 볼 수 있는 여행 팁까지 함께한다. 혼자서 찾아가는 오로라도 의미 있겠지만, 여행 상품을 정해서 가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저자처럼 이 분야를 직업으로 삼은 이가 아니라면, 대부분 오로라 여행은 초보일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여행 상품으로 오로라를 보러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지구 자기력선이 강하게 형성되는 오로라 존은 대개 춥고 교통마저 좋지 않은 곳이다. 저자의 말로는 캐나다 옐로나이프는 오로라를 보기 위한 최적 날씨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다. 미국 NASA가 꼽은 최고의 오로라 관측지라고 하니 믿고 가도 좋겠다. 흐리면 오로라를 볼 수 없는데, 옐로나이프는 연중 맑은 날이 240일이나 된다니 딱 맞다.


몰랐는데, 생각보다 많은 오로라 여행 상품이 있더라. 저자가 항공편부터 숙박까지, 그 추운 날씨에 어떻게 하면 안심하고 오로라를 보러 갈 수 있는지 오로라 여행 전 알아야 할 기초 상식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사실 어떤 여행이 처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게 시행착오 아니던가. 생애 몇 번이나 이 여행을 계획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어차피 두 번 가능한 여행이 아니라면 안심하고 안전하게, 만족할만한 여행이 되면 좋지 않을까. 저자의 권유 같은 추천 방법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이 이번 책에서 저자는 오로라 폭풍을 만날 방법을 들려준다. 거의 11년 주기로 활동하는 태양의 극대기에 오로라 폭풍을 만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하니 참고하시라. 오로라 예보와 실시간 관측자료까지 잘 숙지하고 간다면, 그곳에 머무는 동안 부족함 없이 오로라를 가슴에 담아올 수도 있겠지. 거기에 언제 또 담아올 수 있을지 모를 오로라를 사진에 잘 담을 수 있는 비결까지 들려주고 있으니 꼼꼼하게 살펴보면 좋겠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저자가 그동안 찍어왔던 오로라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가 느낀 황홀함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정도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에게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가 사진 찍는 일을 전업으로 삼기까지 혼자 고민하고 갈등하던 시간도 있었다.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많은 시간 노력이 빠지지 않았으리라는 걸 안다. 그러니 이런 사진을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거겠지. 여행서라고 하기에는 그 퀄리티가 높다. 누구라도 이 책에 담긴 사진을 본다면 당장 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어질 테다. 막상 오로라를 보겠다고 하니 막막할 것을 알아채고 작가는 친절하게 오로라를 찾아가는 방법까지 안내한다. 마치 그가 봤던 그 장면을 독자도 놓치지 않고 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뭐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소화제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펼친 이 책에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그 눈밭에 누워 하늘에서 쏟아지는 오로라를 눈에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직 눈앞의 빛만 가득한 것처럼, 그때만큼은 다 잊어도 좋을 만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듯했다. 이런 사진을 보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 그 장면을 눈으로 그리면서 현실의 답답함을 밀어두어도 괜찮은 마음이 이런 건가. 정말 그래도 괜찮다면 한동안은 계속 보고 있어도 좋겠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에 들어와 버린 여행지로, 오로라로 남아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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