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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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보니, 저자의 책이 많이 출간되었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저자의 책을 읽은 지 한참 되기도 해서 궁금했던 참에 이 책을 만났다. 두께도 상당했지만, 내가 읽었던 전작의 느낌을 떠올려 그의 차분한 말투 속의 경건함(?) 같은 분위기 다시 만나고 싶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투는 여전했고, 그의 철학은 감히 내가 평가하기 어렵지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그는 앞으로 무슨 말을 더하고 싶을까 하는 궁금증이 잠깐 생기기도 했지만, 어렴풋한 생각으로는 어쩌면 이 책의 그의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에게 암이라는 몹쓸 놈이 찾아오기 7년 전의 단상들이 모였다. 그것도 양이 상당하다. 1348편의 글이라고 한다. 각 단락에 숫자가 쓰여 있기는 하지만, 장마다 다시 시작하는 그 숫자를 다 세어보지 않아서 이렇게 많은 기록으로 남겨진 줄 몰랐다. 짧은 글은 한 줄 한 문장 정도, 긴 글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하는 터라 한 단락마다 양이 일정하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그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놨다는 게 실감이 난다. 어느 날은 메모지에, 어떤 날은 책상 위에 펼쳐놓은 노트에 써 내려간 말들이 아닐까 싶다. 하긴, 언제 어디에다 썼는지 뭐가 중요할까. 누군가의 생각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지고, 후에 누군가 이렇게 읽고 있다는 게 중요하겠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잠깐 생각하고, 혹시 그 순간의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적었을까 또 생각하는, 생각이 이어지는 거 자체가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 하나를 맞으려면 생각 하나를 쫓아내야 한다. 이럴 때는 뇌가 아프고 슬프다. 발자크는 문장들이 쇄도하고 범람해서 잠을 못 잔다고, 상드에게 썼다. 그 또한 얼마나 머리가 슬프고 아팠을까. (572페이지)


아마도 나만 느낀 건 아닐 듯하다. 이상하게도 그의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가 암 선고를 받을 것을 미리 아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이 묘한 기분(우리는 그걸 우울증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거 말이다. 그의 죽음은 정신적인 문제와 거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의 글은 차분하면서도 무게 있게 다가왔다. 존재를 고민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철학자의 사고에 닿으려고 애쓰는 듯, 그렇게 어느 햇살 좋은 날 생각에 잠긴 그를 상상하면서 문장을 읽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많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은 가득 차 있었다. 우리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외로움, 인간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고, 한 사람이면서 다양한 존재(남자, 철학자, 가장 등)로 살아가는 역할에 대한 고뇌, 그가 오랜 시간 마주해온 철학과 문장에 대한 사유 등, 마치 온 세상을 망라한 또 하나의 철학서를 보는 듯했다. 아마도 그의 사유는, 책 소개에서 말했던 것처럼 철학과 문학의 힘이 바탕이 되는 건 아닐까 싶다. 세상에 속한 우리가 줄곧 생각하는 것들이, 어느 현자의 말에서 답을 찾기도 하고, 어느 작가의 문장에서 확인하게 되니까. 그가 말하는 것과 그가 살면서 담아온 것들을 소개하듯 전달하는 문장들에 시선이 머무는 건 그런 이유겠지. 조용한 일상이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까닭 말이다.


눈도 침침해진다. 손가락 통증도 심해진다. 모든 것들이 쓰는 걸 은밀하게 방해한다. 아니면 격렬한 충동질인가. (382페이지)


그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누군가의 하루를 읽기도 하고 어떤 책의 문장에 눈길이 머물렀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오늘 무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어떤 약속을 지키며 살았는지,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그의 시간을 엿보면서 동시에 그의 삶을 보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그의 건강에 문제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느낀다. 혹시 그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몸의 이상을 알아챘더라면, 지금쯤 마지막 책이 아니라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독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여전히 사랑과 믿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냥 아쉽기만 하다.


한없이 인간적으로 보이면서도 때로는 무너져 내리는 인간을 구원할 철학자의 면모도 갖춘 그였다. 때로 고독하고 우울할지라도 결국 용기 내어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에, 그의 문장은 더 친근하고 마음 깊숙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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