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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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세상을 상상한 적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게 되는 게 일상이면 좋겠다는, 아주 철없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어른이 된 후에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모를 때 오해와 다툼이 생기는 거라고. 적당한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기도 하고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기도 할 텐데, 이상하게 그 말은 적당하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너무 모자라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 너무 넘쳐서 듣기 싫은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라는 게 참, 어렵다.


에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있다. 저자는 언어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며, 그 시간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한다. 세상과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도 있노라고. 장애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언어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 자폐와 같은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발달을 저자가 돕는다.


처음 언어장애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말더듬이나 언어장애로 소통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수업하고, 그 후기 같은 기록을 남긴 거다. 다 설명하자면 긴 듯하지만, 말더듬을 위한 처방(?) 같은 지침이 실제 이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이가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말을 더듬는 아이에게 낱말의 첫소리를 늘려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동화를 함께 들으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거다. 자폐 초등학생과는 놀이터에서 같이 그네를 타기도 하고, 게임을 함께 하기도 한다. 무슨 치료가 이럴까 싶은 마음은 넣어두시라. 다른 질병도 그렇겠지만, 저자의 말을 듣고 보면 특히 언어치료는 타인이 소통의 상대이니만큼 서로가 가까이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누군가에게 마음속 말을 하려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을 여기에서도 새삼 배운다.


이야기의 중반부로 들어갈수록 이 언어 세계는 더 깊고 진득하다. 저자는 언어치료의 전문가이지만, 그에게도 항상 성공적인 경험만 있던 건 아니었다. 소통이 잘 되어 좋은 결과로 이어진 일도 있고, 치료에 잘 접근하기 어려워 힘들었던 적도 있다. 의외의 순간에 아이가 마음을 열었던 것도 기쁨의 순간이었다. 이런 장면에서 알게 되는 건 역시 교감이었다. 요즘 관심 두던 상담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나온다. 상담사와 내담자의 시작은 라포를 형성하는 거라고. 저자도 이 라포 형성을 시작으로 치료에 접근하고, 그 시작은 치료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다양한 사례가 저자의 경험에 쌓였겠지만, 역시 실패로 끝난 수업은 그의 가슴에도 오래 남을 일이 되었을 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더 좋은 치료 수업을 위해 노력한다.


장애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까? 전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인 걸까?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통이 우리의 부족한 문제 치료에 중요한 일인지 알 것 같다. 언어장애가 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그 행복의 추구는 보통의 사람이 똑같이 향해가는 일이었다. 저자가 만난 아이 중에서도, 자격증을 따고 미래를 설계하면서 인생을 완성하는 이가 있다는 걸 보면, 장애가 있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우리 사는 사회에서 정상의 기준은 필요 없음을 이렇게 확인한다. 그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한 것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배우고 알아가면서 채워가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 언어를 이루는 명사, 동사, 형용사가 이 아이들이 사는 세계에 가득했다. 저자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그 세계를 찾아냈고 뛰어놀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방식을 배운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역시 이 세계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언어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 누구도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어치료사로 살아가면서, 저자에게도 시행착오의 시간이 있었을 테다. 그런데도 언어가 가득한 그 세계에서 치료와 소통의 노력을 멈출 수 없는 건,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 저자의 문장 곳곳에 묻어나고 있던 건 인내심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져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다그치고 자책하던 일은, 나와 조금 다른 상황에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달한다. 아이에게 언어장애가 있거나 언어발달이 조금 늦는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도 좋고 이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놀이나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언어에 장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게 어려운 순간은 종종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저자가 여러 아이를 만난 후 그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놓은, 각 에피소드의 끝부분에 자리한 마음을 만나봐도 좋겠다.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꼭 말이 아니어도 대화할 수 있는 손짓 몸짓도 괜찮다라는 것. 많은 사람 낯선 이들과도 말과 글을 나누는 이유는, 우리 사는 이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나 역시 언어장애나 언어치료의 분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닌데도,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으로 소통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기본인 자세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저자가 전달하는 이 감동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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