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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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온라인 설문 조사에 응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이와 성별을 선택하는데, 언젠가부터 마주한 설문 조사에서 그동안 2개였던 성별 항목이 3개였던 적이 종종 있다. 남성, 여성, 선택하지 않음. 익숙하게 남성과 여성 중에서 고르면 되는 성별이 3개가 되었다는 게 처음에는 놀라웠다. 점점 그 항목을 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성전환하거나 혹은 같은 성을 사랑하거나 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런 시선은 아니었을 테다. 놀랍고, 이상하고,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볼 때 이상한 시선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점점 알아간다. 우리가 이성을 사랑하듯, 지금의 성을 자연스럽게 살아가듯, 나와 다른 이가 분명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면 되는 일이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소우와 아이 커플은 여행지에서 소우의 친구 다쿠마와 그의 연인 사이카를 만난다. 우연히 만난 두 커플은 소우와 다쿠마의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워하면서 여행지에서 같이 지낸다. 처음 아이가 사이카를 봤을 때는 제법 도도하고 냉랭한 분위기여서 거리감이 있었는데, 여행 이후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아이와 사이카는 서로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가 된다. 이십 대 초반, 성인이 된 이들의 새로운 우정은 돈독하고 깊어진다. 일반인으로 단순한 일을 하던 아이와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사이카는 서로의 환경은 달랐지만, 제법 친해진다. 이제는 소우와 다쿠마와 상관없이 둘만의 우정을 쌓기에 바쁘다. 거부감 있던 첫인상은 언제였냐는 듯, 둘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돈독한 관계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다쿠마가 사이카와 헤어졌다는 말을 듣는다. 바로 어제 만난 사이카는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은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 걸까. 어떤 순간에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사이카는 아이를 마음에 담았다. 여행지에서 이후에 자주 만나면서 자기 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고백했다. 사랑한다고. 입을 맞추고 안고, 온몸으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 처음 아이는 사이카의 행동에 당황했다. 사실 아이는 학창시절 짝사랑하던 소우와 연인이 되었고, 별일 없다면 두 사람은 곧 결혼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사이카의 고백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 고백 때문이 아니었다. 사이카의 고백과 동시에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그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매몰차게 거절하면 되는 일인데, 중요한 건 사이카의 마음을 점점 받아들이는 아이 자신의 마음이었다.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이 뭔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건 이미 그 사랑에 빠져들었다는 거 아닐까?


아이가 혼란스러워할수록 이 소설을 읽는 나의 마음도 불안해졌다. 각자의 애인이 있던 상황에서 어떻게 정리가 될까 싶어서 말이다. 소우와 다쿠마는 선뜻 둘의 사랑을 인정해주고 애인의 자리에서 깔끔하게 물러날까 궁금했다. 어떻게 이 마음을,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사회의 시선은 아직 이 사랑을 예쁘게만 바라볼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헤쳐나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아이와 사이카는 두 사람의 사랑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소우와 다쿠마가 인정하고 물러났음에도, 두 사람은 당당하게 서로의 사랑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사랑했고, 각자의 일을 응원했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하루하루 감정을 쌓아갔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위태로워 보이기만 했던 건, 아마도 내가 가진 시선 때문이겠지. 타인의 사랑, 누구나 사랑이 같은 모습을 아닐 거라고 알면서도, 인정하면서도 시원하게 이 사랑을 바라볼 수 없던 건, 나 역시 그 사랑을 바라보는 많은 이의 시선에서 비껴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지.


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서부터다. 동성의 사랑은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많이 들을 수도 없을 지극히 사적이고 드러나지 않은 표현일 것 같았다. 서로 입을 맞추고 몸을 만지고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는 이미 이들의 사랑을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하는 마음 너머에 서로의 육체에 닿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부분에서였다. 보기만 해도 좋은데, 입 맞추고 그 피부에 닿고 싶은데, 저 표정 저 행동 하나에 반해버렸는데, 이 마음 그대로 육체로 표현하고 나누었으면 좋을 텐데... 같은 성의 연애가 아니라, 그냥 서로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보면 되는 일이다. 이 마음이 사랑이라고 인정하면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현실은 이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 연애를 공개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서 부딪힌다. 한창 주가를 올리는 배우 사이카의 활동에 제약이 될 두 사람의 관계를 사이카의 소속사에서 정리한다. 공개되어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기 전에, 사이카의 경력에 방해되지 않게 미리 잘라낸다. 아이는 이 사랑을 위해 잠깐 물러난다. 소문이 잠잠해지면, 곧 사이카에게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소속사의 의견에 따른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흐른다.


읽으면서 누구나 비슷할 거로 생각한다. 당신의, 나의 사랑은 어떠했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게 된다. 이 사랑을 오래 지키기 위해 지금 잠깐 물러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오래 만나지 못해도 그 마음 변함없이 지킬 수 있는지, 나를 거부하는 상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이기에 나를 더 보듬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이 사랑을 위해 이렇게 애써왔는데, 보지 못해도 이 마음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것도 몰라주고 나를 향한 원망만 쏟아내는 상대를 품어줄 마음이 나에게 남아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의 그런 의문에 답을 내려주듯,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의 사랑을 어떻게 복기하는지 증명한다. 오직 가슴에 자리한 사랑만 꺼내놓는다. 과거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나눴던 사랑을 기억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어떤 이유도 필요 없이, 그저 계속되는 사랑에만 집중한다. 이십 대 초반의, 인생의 찬란했던 시절에 경험했던 그 사랑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청춘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세월을 이기고야 만 사랑에 관해 말한다.


그동안 퀴어 소설을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완독하거나 깊게 읽으면서 그 사랑을 헤아려보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는 사회에서 점점 그 시선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더 알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현실 속 동성의 사랑은 이럴지도 모른다는 솔직한 느낌을 받았다. 사랑은 이런 거지. 이렇게 진하고, 솔직하고, 다정하고, 배려하는 마음. 사랑을 나누는 상대가 누군지, 성별이 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사랑이면, 그거면 된 거다. 원래 사랑은 그런 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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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과 싸는 것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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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내 것인데, 그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경험. 혹시 경험해본 적 있는가? 한 달 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옆으로 돌아눕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저절로 났다. 이렇게 죽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만큼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아프다는 게 두려웠다. 맹장 수술 말고는 수술대 위에 누워본 적도 없고, 자잘하게 병원 드나들곤 했지만 큰 병을 걱정한 적은 없다. 그러니 많은 이가 겪는 질병의 고통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테다. 이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할 수 있던 건, 저자의 말처럼 상상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알아야 한다는 거다. 누군가 아픈 일, 그 고통을 상상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쉽게 말하면 안 된다. 아니, 상상 이상의 것이 존재하고,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저자가 겪은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이 책을 다 읽고도 알 수 없었다.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희귀질환을 처음 들었다. 갑자기 스무 살 청년에게 닥친 설사. 뭐 살다 보면 설사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싶었는데, 단순한 설사가 아니었다. 혈변이었다. 혹시 큰 병이 아닐까 걱정하면서,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고통을 견디고 있으니 병은 더 심해졌다.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다 찾은 병원에서 생소한 병명을 듣게 된다. 궤양성 대장염. 여기까지 읽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 아니고 이니 다행인 거 아닌가 했다가, 바로 후회했다. 그 어떤 병명 앞에서도 다행인 건 없었다. 병을 알게 된 그 날부터 저자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이고, 아무리 노력하고 좋은 약을 써도 완치가 되지 않는 병 앞에서 절망한다.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병은 더 심해질 테니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병원의 처방대로 하면 몸은 좋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낫는 게 아니라 괜찮아졌다가, 그 노력이 좀 부족해지면 다시 안 좋아지는 상황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완전히 알 수 없다. 몸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중요하고 인간의 기본이 무너진다. 아무거나 먹지 못했다. 아무 데서나 변을 지릴까 무서웠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타인에게 옮을 병이 두려웠다. 그런 삶을 13년이나 계속했다. 그 시간 동안 반복된 입원과 퇴원은 단순히 환자라는 이름만 붙여준 게 아니었다. 그가 먹는 것과 싸는 것을 어려워하는 동안 그의 사회생활은 불가능했다. 아무거나 먹을 수 없으니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변을 지릴까 봐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그의 생활은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집에서 나가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먹고 싸는 제법 단순한(?) 문제를 두고 굳이 책으로 써야 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지만, 반전은 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먹는 것과 싸는 일이 인간에게 무엇인지 묻는 게 되었다. 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저자가 생각하고 쏟아내는 말은, 독자에게도 강한 충격이 된다.


누군가 무엇을 먹든 무엇을 먹지 않든, 다른 사람이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 누군가의 식단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이 뭐라 불평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가만둘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난하고, 먹이려 한다. (133페이지)


지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병에 걸렸으니, 나이가 먹었으니, 수치스러워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역시 수치스러운 일이다. (193페이지)


먹고 싸는 일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먹고 싸는 일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었다. 먹고 싶다고 다 먹을 수 없었고, 싸는 일도 자유롭지 않았다. 먹는 일은 여럿이 모여서 함께 하는 일이 되고, 누구에게나 드러내놓을 수 있다. 식사는 같이하기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싸는 일은 왜 혼자 숨어서 해야 하는 부끄러운 행위가 되었나. 배설하는 일은 수치스러움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배설의 상황에 수치까지 얹어지면 인간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싸는 일이 두려워 스스로 은둔을 선택하면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그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저 타인으로 지켜봤을 일이, 자기 일이 되니까 시야가 넓어진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알지 못했던 일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자기 병으로 인해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리고 싶기도 하다. 이런 병도 있다고, 이 병은 이런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모르고 하는 한 마디가 상처와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린다.


꼭 질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먹기를 강요(?)당하는 게 너무 괴로워서 힘든 적이 있다. 먹고 싶지 않은데 굳이 같이 먹어야 하는 경우, 간단하게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도 굳이 식사를 같이해야 하는 자리를 만들 때마다 괴롭기만 했다. 물론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면서 쌓이는 신뢰나 관계의 돈독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원할 때 좋은 효과를 내는 거 아닐까. 특히 저자처럼 병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상대의 이유를 무시하면서 끊임없이 권하는 건 무슨 마음일까 싶기도 하다. 같이 먹는 걸 거절하면 비난하면서 배제하는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한다. 음식을 거절했다고 그 사람을 거절한 것으로 여기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다. 같이 먹지 않는다고 마치 무슨 문제가 큰 사람으로 여긴다. 왜 우리는 타인의 절박한 상황을 듣지 않고 함께 먹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코로나 상황이 전 세계를 고통에 빠트렸지만, 여럿이 모이거나 함께 먹기를 강요하는 사회를 잠시나마 멈출 수 있어서 좋았던 점도 있다. 솔직히 이제 거리 두기 해제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방역 지침으로, 잠깐 멈췄던 회식 문화나 불편했던 사적 모임이 다시 불을 피울 것 같아서 걱정이긴 하다.


단순하게 보면 이 책은 한 사람의 투병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다 읽고 나서 독자는 그 단순함을 머릿속에서 지우게 될 거다. 아픈 이야기가 무슨 책이 될까 싶겠지만, 질병의 고통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다양하게 뻗어 나간다. 희귀질환 앞에서 고통스러운 사람, 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먹기를 강요하는 사회, 똥을 지릴까 봐 선뜻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을 이어진다. 단순히 먹는 것과 싸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것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그러니 혹시라도 저자처럼 낫지 않는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의 진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상상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 고통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사자가 왜 같이 식사하는 걸 어려워하고 음식을 가려야 하는지, 인간의 기본인 생리현상으로 힘들어하면서 외출을 두려워하는지 알아야 하는 거다.


누구도 몰라줄 경험이 점점 쌓여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푸념하지 않으려고 참기도 힘들지만, 푸념을 해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더욱 힘들다. (255페이지)


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다는 걸 그대로 확인한다. 섣부르게 아는 척하면서 병은 나아야 하는 거라는 둥, 인간은 성장해야 하는 존재라는 식의 판단은 넣어두시라. 세상에는 회복되지 않는 병도 많고, 그 많은 시련을 겪었는데도 성장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다. 그게 사실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 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극복 서사가 아픈 사람에게 육체적 고통에 정신적 고통까지 얹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와 현실에서 위로와 이해를 받지 못한 저자는, 자기가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서 문학으로 구원을 찾는다. 그가 연구하는 문학에서 마주한 문장으로 그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아프고 나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타인에 대한 이해 넓혀주기를 바라는 게 저자의 마음이고,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 사회가 낫지 않는 병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지적하는 저자의 절실한 마음을 듣는 게,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웃음이 난다. 재밌다. 이 불편한 상황을 너무 적나라하게, 감추고 싶은 진심까지 드러내면서 쏟아낸다. 거기에 너무 잘 어울리는 표지, 저자의 솔직함과 재치 있는 문장(말투), 문학에서 찾아낸 적재적소의 인용구까지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 즐겁게 읽힌다. 제목만 보고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마시라. 도대체 먹는 것과 싸는 것으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느냐고 걱정하고 있다면, 기우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식욕)와 생리현상(싸는 일)이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나 민감하고 중요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될 것이다. 너무 감동적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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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손이 고민해결사무소 2 - 도깨비시장 위험에 빠지다 천년손이 고민해결사무소 2
김성효 지음, 정용환 그림 / 해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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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보다 이야기가 더 탄탄해졌다. 미지의 시공간에 빠져들어 생생한 모험이 펼쳐진다. 등장인물도 더 많아지고, 조금 더 복잡해진 관계 속에서 재미는 더해진다. 우리의 옛이야기를 재해석한 상상이, 누가 읽어도 즐거울 수밖에 없는 소재로 이용했다. 익숙한 이야기가 신선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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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살아가는 모든 시절의 장면과 이야기를 색으로 담아내면 이렇게 될까. 이렇게 그립고 예쁜 색이 있을까? 우리가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색으로 칠하면서 살아왔을까? 개인이 살아온 모습이 다르니까 그 색도 다르겠지만 비슷할 것이다. 다들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면서 늙어가는 거라고, 그게 뭐 별거냐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상하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암튼 그렇다. 간단한 한 마디로 풀어낼 수 없는 게 우리 살아온 시간이 아닐까 하는 마음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하고 농도가 다른 색채로 표현했을까 싶다. 하고 싶은데 표현되지 않는 많은 말처럼, 색으로 그 말을 계속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게, 지나온 시간의 색이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지나온 시절의 색은 희미했다. 이 봄날에 보는 찬란함과는 거리가 먼, 느슨하고 흐릿한 무채색에 가까웠다. 지금보다 어렸고, 하고 싶은 게 많았고, 힘이 넘쳤던, 말 그대로 찬란했던 시절의 우리가 걸어온 길의 색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뭔가 해놓은 게 없어도 그냥 좋았던 때 아니었던가? 뭘 몰라서 천진난만했던 시절을 지나, 엄마한테 대들면서 눈을 부릅뜨던 청소년 시절도 겪었고,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어른이라 불리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고, 부모가 되고 자기와 똑같은 아이를 키우면서 사는 동안 점점 나를 키웠던 부모의 마음을 알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늙어간다. 노년이라 불리는 나이가 된다. 어디 나이뿐일까. 외모도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항상 부족하게 살아왔던 마음이, 나를 노년으로 이끈다. 아이가 없으니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는 못할 테다. 지금 나는 아이를 키우며 부모의 마음을 읽는 어른이 아니라,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 마음을 배우는 중이다.


지금 하는 일은 노인분을 자주 대하는 일이다. 휴대폰을 조작하면서 간단한 문진을 하고, 검사가 진행된다. 검사를 받으러 온 어르신들에게 휴대폰과 신분증을 꺼내 달라고 말하면 서슴없이 꺼내시는데, 이렇게 저렇게 작성해달라고 안내를 하면 표정이 변하시는 분이 대부분이다. 나는 이거 할 줄 몰라, 대신 좀 해줘. 바쁘지 않으면 한 분씩 천천히 응대해 드리지만, 사람이 너무 많고 바쁘면 종이에 적어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때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침침해진 눈으로, 잘 배우지 못한 한글 때문에, 늙은 몸으로 손에 힘이 없고 떨려서 직접 작성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그때에도 나는 천천히 그분들 신분증을 보고 개인정보를 작성해준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본인이 직접 작성하지 못하는 상황에 어르신들은 당황한다. 민망해한다. 못 배워서 슬프다며 혼잣말을 한다. 다 써주면 고맙다고 한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그분들에게는 그게 고마운 일이 된다.


젠가 내가 마주할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처럼, 그분들에게도 태어난 아기 시절이 있을 것이고, 부모의 손길로 잘 자라던 순간이 있을 테지.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과 조잘거리던 때도 있을 테고, 미래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걱정보다 그 순간을 즐기는 재미도 있었을 거다. 우리 모두 비슷하게 살아왔다. 또 그렇게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에게 그분들은 내가 지금보다 더 늙은 어느 순간의 모습이겠지. 나는 휴대폰을 아는 젊은 시절을 겪었기에 나이가 든 후에도 휴대폰으로 조작하는 웬만한 건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그때가 되면 또 새로운 문명에 당황하고 불안할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도 이분들처럼 민망해하면서 혼잣말을 읊조리게 될까.


한 페이지 넘기고 한 문장을 곱씹을 때마다 노래 한 곡이 계속 생각났다. 김광석이 부르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사 한 줄 한 줄이 그대로 눈물 쏟아내게 하는지라, 웬만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노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떠올라버렸다. 젊은 시절부터 함께해온 부부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한 사람을 보내는 슬픔이 가득할 것만 같은데, 남겨진 사람이 소환하는 젊은 시절부터의 부부의 삶은 그리움이었다. 곱고 희던 손으로 넥타이를 만져주며, 아이들 학업 뒷바라지를 하던, 자녀 결혼식에서 흘리던 눈물을, 그렇게 흰머리 가득한 인생이 되어버렸음을. 그게 후회가 아니라, 그렇게 걸어온 삶을 추억하는 기분에 더 눈물이 나곤 한다. 우리 이렇게 잘 살아왔구려, 옆에 있어 주어서 고맙네, 누군가 먼저 떠나겠지만 먼저 가면 나를 기다려주시게, 곧 다시 만나세. 뭐 이런 말을 하는 거 아닐까. 누구나 가진 눈부신 시절을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한 사람의 생을 여행으로 표현한다면, 길고 긴 여행을 마친 누군가의 삶을 들려주는 것만 같다. 누가 만들어준 한 생의 동영상을 보는 기분도 든다. 지나온 세월이, 태어나고 자라온 젊은 시절이 결코 바래거나 잊힌 색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름답게만 그리지 않았다. 슬프고 아플 때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 시절에 어울리는 시기를 잘 건너왔고, 인생의 많은 감정을 배우고 표현하고 겪으면서 걸어왔으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역시 그렇게 걸어온 색으로 채워지고 칠해지고 있음을... 때로는 기억을 잃고 천진난만한 늙은 아이가 되어 있더라도, 어느 한순간도 사랑받지 않았던 때가 없으니, 언제나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태어난 우리가 자라는 모습 그대로, 소년에서 성인으로, 중년, 노년으로 가는 삶의 궤적이 짧은 그림과 몇 개의 문장으로 다 표현되는 게 놀랍다. 그 짧은 이야기에 눈물 줄줄 흘리고 있는 나는 또 뭐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출렁이는 이 울컥거림은 또 뭔지 모르겠다. 우리 삶의 색이 결코 흑백으로 저장되지 않았음을 확인해주는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다. 어쩌면 그립고 아쉬운, 돌이킬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 보고 싶은, 아름답고 찬란하던 시간을 소환하는 마법 같은 책이다. 솔직히 구매하기 전에는 책값 비싸다고 많이 망설였는데, 이제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되어버렸다. 노년에 관한 책 읽고 있다가 꼬리를 물 듯이 함께하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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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07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

구단씨 2022-05-13 16: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림책이었어요. ^^

이하라 2022-05-07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2-05-13 16: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시는 것도 잘 보고 있어요. ^^

thkang1001 2022-05-07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구단씨 2022-05-13 16: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후텁지근한 주말 시작이네요. 좋은 날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5-07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구단씨 2022-05-13 16:0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5월의 중간이 이렇게 넘어가고 있네요. 즐겁게 지내세요~
 



알라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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