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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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온라인 설문 조사에 응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이와 성별을 선택하는데, 언젠가부터 마주한 설문 조사에서 그동안 2개였던 성별 항목이 3개였던 적이 종종 있다. 남성, 여성, 선택하지 않음. 익숙하게 남성과 여성 중에서 고르면 되는 성별이 3개가 되었다는 게 처음에는 놀라웠다. 점점 그 항목을 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성전환하거나 혹은 같은 성을 사랑하거나 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런 시선은 아니었을 테다. 놀랍고, 이상하고,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볼 때 이상한 시선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점점 알아간다. 우리가 이성을 사랑하듯, 지금의 성을 자연스럽게 살아가듯, 나와 다른 이가 분명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면 되는 일이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소우와 아이 커플은 여행지에서 소우의 친구 다쿠마와 그의 연인 사이카를 만난다. 우연히 만난 두 커플은 소우와 다쿠마의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워하면서 여행지에서 같이 지낸다. 처음 아이가 사이카를 봤을 때는 제법 도도하고 냉랭한 분위기여서 거리감이 있었는데, 여행 이후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아이와 사이카는 서로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가 된다. 이십 대 초반, 성인이 된 이들의 새로운 우정은 돈독하고 깊어진다. 일반인으로 단순한 일을 하던 아이와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사이카는 서로의 환경은 달랐지만, 제법 친해진다. 이제는 소우와 다쿠마와 상관없이 둘만의 우정을 쌓기에 바쁘다. 거부감 있던 첫인상은 언제였냐는 듯, 둘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돈독한 관계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다쿠마가 사이카와 헤어졌다는 말을 듣는다. 바로 어제 만난 사이카는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은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 걸까. 어떤 순간에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사이카는 아이를 마음에 담았다. 여행지에서 이후에 자주 만나면서 자기 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고백했다. 사랑한다고. 입을 맞추고 안고, 온몸으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 처음 아이는 사이카의 행동에 당황했다. 사실 아이는 학창시절 짝사랑하던 소우와 연인이 되었고, 별일 없다면 두 사람은 곧 결혼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사이카의 고백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 고백 때문이 아니었다. 사이카의 고백과 동시에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그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매몰차게 거절하면 되는 일인데, 중요한 건 사이카의 마음을 점점 받아들이는 아이 자신의 마음이었다.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이 뭔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건 이미 그 사랑에 빠져들었다는 거 아닐까?


아이가 혼란스러워할수록 이 소설을 읽는 나의 마음도 불안해졌다. 각자의 애인이 있던 상황에서 어떻게 정리가 될까 싶어서 말이다. 소우와 다쿠마는 선뜻 둘의 사랑을 인정해주고 애인의 자리에서 깔끔하게 물러날까 궁금했다. 어떻게 이 마음을,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사회의 시선은 아직 이 사랑을 예쁘게만 바라볼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헤쳐나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아이와 사이카는 두 사람의 사랑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소우와 다쿠마가 인정하고 물러났음에도, 두 사람은 당당하게 서로의 사랑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사랑했고, 각자의 일을 응원했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하루하루 감정을 쌓아갔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위태로워 보이기만 했던 건, 아마도 내가 가진 시선 때문이겠지. 타인의 사랑, 누구나 사랑이 같은 모습을 아닐 거라고 알면서도, 인정하면서도 시원하게 이 사랑을 바라볼 수 없던 건, 나 역시 그 사랑을 바라보는 많은 이의 시선에서 비껴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지.


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서부터다. 동성의 사랑은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많이 들을 수도 없을 지극히 사적이고 드러나지 않은 표현일 것 같았다. 서로 입을 맞추고 몸을 만지고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는 이미 이들의 사랑을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하는 마음 너머에 서로의 육체에 닿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부분에서였다. 보기만 해도 좋은데, 입 맞추고 그 피부에 닿고 싶은데, 저 표정 저 행동 하나에 반해버렸는데, 이 마음 그대로 육체로 표현하고 나누었으면 좋을 텐데... 같은 성의 연애가 아니라, 그냥 서로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보면 되는 일이다. 이 마음이 사랑이라고 인정하면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현실은 이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 연애를 공개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서 부딪힌다. 한창 주가를 올리는 배우 사이카의 활동에 제약이 될 두 사람의 관계를 사이카의 소속사에서 정리한다. 공개되어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기 전에, 사이카의 경력에 방해되지 않게 미리 잘라낸다. 아이는 이 사랑을 위해 잠깐 물러난다. 소문이 잠잠해지면, 곧 사이카에게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소속사의 의견에 따른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흐른다.


읽으면서 누구나 비슷할 거로 생각한다. 당신의, 나의 사랑은 어떠했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게 된다. 이 사랑을 오래 지키기 위해 지금 잠깐 물러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오래 만나지 못해도 그 마음 변함없이 지킬 수 있는지, 나를 거부하는 상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이기에 나를 더 보듬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이 사랑을 위해 이렇게 애써왔는데, 보지 못해도 이 마음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것도 몰라주고 나를 향한 원망만 쏟아내는 상대를 품어줄 마음이 나에게 남아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의 그런 의문에 답을 내려주듯,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의 사랑을 어떻게 복기하는지 증명한다. 오직 가슴에 자리한 사랑만 꺼내놓는다. 과거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나눴던 사랑을 기억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어떤 이유도 필요 없이, 그저 계속되는 사랑에만 집중한다. 이십 대 초반의, 인생의 찬란했던 시절에 경험했던 그 사랑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청춘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세월을 이기고야 만 사랑에 관해 말한다.


그동안 퀴어 소설을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완독하거나 깊게 읽으면서 그 사랑을 헤아려보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는 사회에서 점점 그 시선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더 알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현실 속 동성의 사랑은 이럴지도 모른다는 솔직한 느낌을 받았다. 사랑은 이런 거지. 이렇게 진하고, 솔직하고, 다정하고, 배려하는 마음. 사랑을 나누는 상대가 누군지, 성별이 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사랑이면, 그거면 된 거다. 원래 사랑은 그런 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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