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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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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섬뜩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이보다 더한 부드러움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

이미 원작으로 그 아련함을 증명한 소설이기에 이번 영화 개봉이 기대된다.

예고편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기분에, 서늘해지는 가을인데 봄 느낌이 나기도 한다.

살짝, 오래전의 어떤 시간이 떠오르기도 하고. ^^

읽는 재미, 보는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선사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오랜만에 추억여행 하고 싶게 만드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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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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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싶은 순간,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만 남겨놓고 소설은 끝나버렸다. 다른 국적, 다른 배경을 가진 세 사람이 만들어낸 역사의 한 시절은, 서로가 바라는 게 달랐어도 결국 같은 의미를 남겨놓았다. 살아야 한다. 아니, '이렇게 살아냈으니 살아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일까. 어쨌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세 사람의 인연이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로 엮인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칼로 잘라내도 의미를 잃지 않은 혀의 감각으로 모든 것을 이겨낸 이들의 운명이라고.

 

요리사 첸의 아버지는 도마 위에서 태어났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첸의 요리 솜씨 또한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다만, 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이 그의 요리를 우아하게 만들지 못했을 뿐이다. 첸은 비밀 자경단원이 되어 적지에 위장하고 들어간다.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의 군대를 몰락시키겠다고 자기 목숨을 걸다니. 최고의 요리로 모리의 혀를 사로잡을 요리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첸의 뒤에는 위안부 출신의 조선인 아내 길순이 있다. 길순 또한 첸의 작전이 실패하면 바로 투입될 계획으로 늘 긴장한 상태다. 길순에게는 적진으로 뛰어들어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모리 한 사람만 사로잡으면 더욱 빠른 길로 가는 거였다.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일본의 전쟁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소설에서 보는 그는 오히려 전쟁보다는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맛을 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맛의 기억에 빠져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세 사람이 한국, 중국, 일본의 배경이 되어, 세상에 없는 요리를 맛보며 역사 속으로 스며든다.

 

소설이기에 허구일 테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실제 이야기에 더해진 게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으나, 모리라는 인물은 전쟁에 대해 조금 다른 시선을 갖게 한다. 강력한 군인의 모습이어야 할 그의 캐릭터는 오히려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으로서는 맞지 않는 이미지다. 전쟁을 무서워하며, 미륵불의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맛을 탐미하는 인물이다. 그가 빠져드는 맛의 세계에는 어김없이 어머니가 등장한다. 피가 낭자하고 전쟁터라는 배경에 음식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싶지만, 이들 모두 음식과 맛에 매료되어 혹은 그 음식을 무기로 상대를 누를 수 있는 계획까지 세운다는 게 사실이다. 그 맛 때문에 모리는 첸의 시한부 목숨을 약점으로 채용하게 되고, 첸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기의 요리 실력으로 자경단원의 임무를 수행하려 하며, 길순은 그런 두 사람이 경쟁하듯 맛의 세계에 빠져들 때 그 맛을 보며 목숨을 유지해가는 여인이다. 물론 이들 각자가 가진 요리와 맛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우리가 보는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자기만의 기억으로 채운 세상에서 취한 듯한, 기다리는 듯한 감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게 맛이었다.

 

무언가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은 인간이 자신의 생 앞에서 가장 진실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매운맛을 견뎌낸 소고기들이 혀에 부드럽게 녹을 때 비로소 고통조차 달콤해진다. 적들이 넘실거리며 국경을 넘어와 온몸이 무거운 사슬갑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해질 때도 나는 한 끼의 식사 앞에서 여유를 부릴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다리를 베고 누워 먹던 분고규의 평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식탁에 빈 접시가 덩그마니 남게 될 풍경을 머리에 드리며 달그닥거리는 소리조차도 아름답게 들리는 시각, 원형의 식탁을 점령하고 앉아 나는 당장 내일 죽어도 좋으니 이 순간만큼은 평화롭다고 외칠 수 있다. 내가 진정으로 신을 느끼는 순간은 포화에 살이 찢긴 시체를 목격할 때가 아닌, 부지런히 뭔가를 먹는 그런 순간이다. (122페이지)

 

다 알 수 없는 요리들, 그 요리가 풍기는 냄새, 그 요리가 오른 상 위의 모습을 그리면서 읽게 되는 장면이 많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풍성해야 할 것 같은 장면에서 느끼는 건 오히려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감각이다. 한 사람은 죽이기 위해 요리를 하고, 한 사람은 죽이기 위해 먹고, 한 사람은 그들 사이의 긴장감을 다 알지 못한 채로 위로가 되는 자리에서 또한 그 요리를 맛본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맛은 무엇일까, 하고. 그 맛을 느끼는 혀는 무엇으로 맛을 책임지는가, 하고. 긴장감이 서리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이들이 벌이는 맛의 싸움은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궁금증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첸과 모리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계속 떠올랐다. 혀는 목숨을 구하는 무기가 되기도 하면서 약점이 되기도 했다. 요리사에게 가장 필요한 맛을 보는 일, 누군가에게는 느끼기 위해 맛을 보는 일.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가진 그것, 혀. 첸이 세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요리하고, 모리가 첸의 요리에 점점 길드는 일이, 어쩌면 그때 진행되고 전쟁의 상황을 대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점점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져 오던 시기, 전쟁을 두려워했던 모리가 중국인 요리사가 내놓는 맛에 빠져들면서, 또 다른 인물이 놓은 함정까지도 알아채지 못하는 우둔한 눈을 만들어놓은 것. 그러면서도 국적이나 상황을 떠나 생존의 우선을 위해 손을 뻗는다.

 

모리와 첸, 길순이 각자의 시점에서 하는 이야기가 개인의 역사이면서도, 세 나라가 흘러온 현재의 모습이었다. 먹는다는 일. 어느 시대를 살고 있어도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음식에 깃든 추억과 아련함은 어떤 위기를 극복하게도 하지만,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한다. 첸과 모리의 기억의 대조적이면서도 닮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칼을 휘두르며 목숨을 위협하다가도 혀로 느끼는 맛으로 서로를 위무하는 게,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삶과 가까운 감각들. 장교식당의 화덕이나 극락사의 공양간에서 풍기는 냄새, 그 냄새로 평온해지는 마음, 눈앞에 드러나는 음식의 다채로움으로 나도 모르게 풀어지는 마음. 결국, 음식 앞에서는 불가능한 화해는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으로 들린다. 길순이 극락사의 부엌으로 그들을 끌어들인 것처럼... 그러고 보면 음식이 아니라 부엌이란 공간의 힘이었던가? 여러 가지 재료를 가져와 다듬고 자르고, 굽고 끓이고 익히면서, 하나의 그릇에 내놓아지고, 그렇게 내놓은 음식을 입에 넣는 자리에 모인 이들이 하나가 되는 듯한 힘을 가진 곳.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그 모든 게 결국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첸 아버지의 도마, 그 도마 위에서 춤을 추던 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요리, 그 요리의 맛을 보며 채워가던 마음이.

 

나는 여전히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의 내기는 끝이 났다고. 나는 무엇도 요리하지 않았고 당신은 무엇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외로웠을 뿐이라고. 나는 요리를 했고 당신은 접시를 비웠다. 불과 싸우던 나의 시간도, 맵거나 짜거나 달콤하거나 시었을 온갖 요리의 맛들도, 우리를 아프게 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순간의 고통일 뿐이라고. 한 접시의 요리가 깨끗이 비워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 짧은 순간 나는 잘린 혀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318-31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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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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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문장으로 풀어내는 장면을 독자가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물론, 그 문장만으로도 소화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일 테지만, 이렇게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소설을 읽을 때면 상상하기만 했던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함으로써 이야기의 이해가 훨씬 빨라진다.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흥미로움은 배가 된다. 실제로 『파이 이야기』는 이미 영화화되어 관객의 사랑을 받은 적도 있어서인지, 이번 일러스트 특별판은 소설과 영화의 만남처럼 문장과 장면이 함께 만들어낸 애니메이션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처럼 장면을 다 그리지 못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까 겁이 나는 독자에게 안성맞춤인 형태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아직 소설로도 영화로도 만나지 못한 나에게 이 책을 만난 지금이 행운인 것을.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가족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주인공인 파인 파텔. 계속 인도에서 지내는 것의 불안함 때문이었을까. 이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위해 동물원 일부를 정리한다. 그렇게 남은 동물 몇몇과 캐나다행 화물선에 오른다. 하지만 이들이 캐나다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을 신이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 그들이 탄 배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침몰하고 살아남은 이는 파이와 동물뿐이다.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벵골 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에 오른 파이는 생존의 잔인한 현장을 목도한다. 다리를 다친 얼룩말을 하이에나가 잡아먹고, 두 동물의 싸움을 저지하던 오랑우탄을 하이에나가 또 잡아먹는다. 결국, 가장 힘이 센 벵골 호랑이가 하이에나를 처치하기에 이르고, 구명보트에는 파이와 벵골 호랑이만 남았다. 비상식량은 한정되어 있고, 잔인한 호랑이와 인간의 동거는 계속될 수 없었다. 망망대해에서 구조를 바라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고, 모든 것을 잃은 파이는 오직 이 순간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다짐뿐이다. 호랑이는 같이 구명보트에 타고 있던 동물들을 다 잡아먹었는데, 이제 남은 건 파이뿐인데, 결국 파이도 호랑이의 밥이 되어버리고 마는 걸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파이는 227일간을 표류하며 살아남았다. 호랑이와 대치하며, 긴장하며, 배고픔을 참으면서 말이다. 그게 가능했을까?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육지도 아니고 표류하는 바다 위에서 인간이 호랑이에게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게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 불가능했다. 호랑이가 없었어도 그 위기를 벗어나는 건 어려웠을 일이다. 그런데도 2백여 일이 넘는 시간을 버티며 육지에 도달한 파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은 처음부터 긴장하게 했는데, 파이가 신을 언급하면서부터였다. 보통 하나의 종교를 가지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파이는 여러 신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그가 아는 많은 신에게 기도했다. 그게 안 될 일이었을까? 각 종교의 사제들은 자기가 섬기는 신을 파이도 섬기기를 바라면서 이끌고자 했으나, 파이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나라식으로 하자면, 교회, 성당, 절 모든 곳에 의미를 두고 그 모든 신에 기도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언급된 신으로 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이야기하려나 싶은 찰나, 그들이 오른 배의 침몰과 파이의 표류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어쩌면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모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의 인생이 한 편의 소설에 가까운, '만들어지는 이야기'라거나. 그렇게 듣게 된 이 소설의 2부에 해당하는, 거의 3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파이 이야기는 생존에 관한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본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부에 해당하는 태평양 표류기는 모든 시간이 바다 위에서 진행된다. 하나씩 죽어가는 동물들, 결국 살아남은 호랑이와 파이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오는지 들려주면서, 생존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니까 이런 것. 우리 삶은 보편적으로 흐르는 것과 동시에, 이성이란 것이 탑재되어 본성이 먼저 나아가려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늘 이성적인 판단을 앞세우고 사는 것일 테다. 그러한 일상을 보내는 게 우리의 평소 삶이라면, 파이가 벵골 호랑이 리처트 파커와 함께한 생존기는 수시로 찾아오는 절망과 위기의 순간에 본능이 이성을 누르고 튀어나오는 순간을 증명한다. (이 소설의 3부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유추하자면 인간에게 내재한 생존을 위한 본능의 잔인함이 어떠한지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신에게 갈구해도, 누군가 나를 구해줄 거라 희망을 품으려고 애쓰는 와중에도 이성이 우리를 살게 하지는 않는다. 위기에 빠지는 순간마다, 특히 그 위기가 생존과 관련 있을 때는 더더욱 본능이 이성을 앞선다.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호랑이가 살아남기 위해 싸우듯이 상대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그러한 생존과 본능을 위한 일이었다. (3부에서 이 동물들의 의미가 더 깊게 드러난다) 이 동물들이 파이와 공존하면서, 자기 존재를 위해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공포의 대상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를. 강인해지고 잔혹해질 수밖에 없다. 목숨을 앞에 둔 우리는 그렇게 된다.

 

"지금 우리가 들러보지 않은 동물들도 위험하단다. 그것들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지 마. 생명이 있는 것은 아무리 작아도 방어를 한단다. 동물은 뭐든 사납고 위험해. 죽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다치게는 하지. 사람을 긁고 물어서, 상처가 붓고 곪지. 고열이 나고 열흘씩 입원해야 되기도 하고." (69페이지)

 

모든 생물은 광기가 있어서, 때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런 미치광이 기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것이 적응의 원천이기도 하니까. 그런 기질이 없으면 어떤 종도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72~73페이지)

 

내 목숨이 위협 받을 때는, 생존을 향한 이기적이고 무시무시한 갈망도 동정심도 가려져버린다. (189페이지)

 

동시에, 수많은 선택에 관한 고민을 안겨주기도 한다. 앞서 말한, 어떤 순간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생존이 달라진다. 파이(동물들)가 이성을 앞세웠다면 평소의 모습대로 했다면 상대의 강인함에 고개 한 번 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본능을 앞세웠다면 자기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치열하게 싸웠을 것이다. 파이의 아버지가 누누이 말했던 동물의 방어기제, 본성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신에게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하면서도, 실제로 응용하게 되는 건 목숨을 건 사투, 본능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능을 누르고 살면서 세상의 이치에 순응해야 할지, 나를 시험하듯 모험 속에 내던져야 할지 항상 선택의 길에 서게 될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던 절망을 생존의 희망으로 바꾼 파이처럼 살아가기 위해, 수없이 많은 내적 갈등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또 고민한다. 무엇이 이성과 본능, 무엇이 나를 살게 할 것인지를.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459~460페이지)

 

이렇게 유명하고 사랑받은 작품을 이제라도 읽게 된 게 다행이다. 문장과 일러스트가 함께 보여준 재미도 영화를 보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특히 색채가 강해서인지 동물들과 바다의 장면들이 더 생생한 느낌이다. 사진 한 장으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문장에서 보이는, 동물과의 대치에서 흐르는 긴장감, 이대로 생존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는 심각함, 낯설고 생소한 바다의 분위기까지 일러스트가 그대로 전한다. 마치 읽는 이가 파이가 되어 그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말이다. 올컬러 일러스트 40여 점이 수록된 이번 특별판이, 아직 파이 이야기를 만나지 못한 독자와 관객에게 호기심을 더해줄 것 같다. 문장과 장면 속으로 빠져들어, 힘껏 싸우고 헤엄쳐 육지에 도달할 그 순간까지의 모험을 피부로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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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7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8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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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읽은 시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꽤 어렵다. 늘 그랬다. 무언가 알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다 알지 못한 채로 시집을 덮는 일이 다반사였다. 특히 이번 시집은 더욱 그랬다. 나에게 세사르 바예호는, 유명하지만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시인이었다. 오랜 시간 절판이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온 시들, 여러 시인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시인을 만난다는 게 설레기까지 했다.

 

있는 그대로 읽었다. 문장 그대로 읽힌다. 그러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어떤 의미를 감춰둔 단어가 자리하기도 했다. 그의 생각이 엿보이는 부분에서는 각주로 설명되는 배경까지 읽어야 했다. 어느 밤을 기억하고, 어느 계절을 보낸다. 누군가의 일상 같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죽음을 언급한다.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화기애애한 형제애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는 죽은 형이 그립고, 시대의 배경이 아프다. 특히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그의 시어들은 고통을 느끼게도 하지만, 결국은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던가 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회자할 리 없겠지. 하지만 내가 느낀 그의 시들은 희망보다는 다른 게 더 많이 보이는 듯하다. 어둠, 우울, 괴로움 같은 거. 그 마음을 뭔가 더 표현하고 싶은데,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 한발 뒤로 숨기는 것 같은.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들은 희망과 반대되는 말들을 늘어놓음으로써 고통을 마주하게 하려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시간을 마주하면서 건너가는 고통의 순간들이 곧 희망에 닿을 거라는 기대라도 품게 하려는 걸까.

 

피할 수 없는 선을 따라

내가 멀리 아주 멀리

저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아침,

당신의 발들은 묘지를 향해 굴러가겠지.

(중략)

청동이 우는 동안

당신의 괴로운 마음속으로

한 무리 회한이 지나가겠지.

(부재(不在) 중에서)

 

존재하지 않을 어느 순간을 떠올리기라도 한 걸까. 이 세상에서 사라진 형을 기억해내려 애쓰기도 하면서 그 부재의 시간을 견디기라도 하는 걸까. 그냥 일기처럼 써 내려갔다고 생각하면 평범하게 흘러갔을 문장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의 시라고 생각하니 문장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게 한다. 이런 느낌이겠지, 이런 고통을 담아놨겠지, 그의 사색의 깊이가 이러하겠지, 하는 기대감이 시어에 저절로 묻어난다. 물론 누가 강요하지 않은, 읽는 독자의 느낌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어렵다면, 그냥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의 시간을 상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음습한 포유동물, 빗질할 줄 아는

존재라고

공평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

(중략)

인간이 때로 생각에 잠겨

울고 싶어 하며, 자신을 하나의 물건처럼

쉽사리 내팽개치고,

훌륭한 목수도 되고, 땀 흘리고, 죽이고,

그러고도 노래하고, 밥 먹고, 단추 채운다는 것을

어렵잖게 이해한다고 할 때…

(중략)

내가 사랑함을 알고,

사랑하기에 미워하는데도,

인간은 내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할 때…

 

인간의 모든 서류를 살펴볼 때,

아주 조그맣게 태어났음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안경을 써가며 볼 때…

 

손짓을 하자 내게

온다.

나는 감동에 겨워 그를 얼싸안는다.

어쩌겠는가? 그저 감동, 감동에 겨울 뿐…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중에서)

 

122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선집은 세사르 바예호를 만나고 싶었던 독자의 목마름을 충분히 해소해주는 듯하다.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를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일기를 읽는 느낌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가 세계문학에 남긴 궤적이 대단하고, 중남미 시단의 거장이라고 해도,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시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주함으로써 또 한 명의 시인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그와 만남에 신중하게 한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 고통에 관한 시선을 같이 보는 시간이 나쁘지 않다. 아직은 내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도 있기에 충분한 공감을 이룰 수는 없지만, 시 한편 한편에서 보이는 그의 고백 같은 진심은,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예상하지 못했던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 부분에서는 그가 스페인 내전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겼다. 스페인의 시련이라고 말하며 아파했다. 특히 전쟁 속에 던져진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전쟁이든 가장 아프게 보이는 건 아이들일 테니까 말이다.

 

얘들아,

전사들의 아이들아, 그동안에라도

목소리를 낮추렴. 스페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동물의 왕국, 꽃, 연, 인간 사이에서

힘을 쪼개고 있단다.

목소리를 낮추렴. 스페인은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단다. 어찌할 바도

모르는데, 손에 있는

해골들은 말을 한다, 말을 해.

저 머리 땋은 해골,

저 살아 있는 해골.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 중에서)

 

시인의 삶과 닮았다는,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비극적인 시각이 그의 시어를 더 집중해서 읽게 한다. 그는 형제 많은 집의 막내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가족을 떠나 살았으며, 도망자로 살기도 했다고 한다. 평생의 가난이 불러온 고통과 병 앞에서 그가 표현한 내면의 말들은 그대로 들려온다. 희망에 대해 말하겠다면서 아프다고 그대로 드러낸다. 아픈 원인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니라고,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다면서, 고통의 원인을 또렷하게 한 가지로 말하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시로 마음을 이야기하고, 시로 전쟁의 참상까지 토로하는 일. 세사르 바예호의 시를 만나는 즐거움을 그대로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의 시가 보는 범위가 넓고, 하는 말의 깊이가 다양하다. 결국은 인간 내면의 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게, 그가 시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의 모든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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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2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시 읽었으니 시에 대해 써 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끝내고 읽어보면 항상 뭔가 읽은 시랑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더라구요.... 그럼 걍 냅둡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이러면서 ㅎㅎㅎ

자꾸 그래서 아직도 시를 모르나봐요.....

구단씨 2017-09-26 10:49   좋아요 0 | URL
아... ㅠㅠ
당분간, 시는 그냥 읽는 것에서 만족하는 걸로...

stella.K 2017-09-2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구단님,
덕분에 공연 잘 보고 왔습니다.
평소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는데 이렇게 구단님을 통해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이 은혜를 뭘로 갚아야 할지...ㅠ

암튼 고마웠습니다.
행복한 추석되십시오.^^

2017-09-30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