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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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을 잃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남아있는 게 없는데도 살아가야 하는 게 또 우리 인간들이라, 그래서 살아갈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럼 어디로 가서 그 사랑을, 이유를 찾아야 하나? 그 사랑을 되찾는 길은 누가 알려줄 수 있나? 생각하면 할수록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 길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얀 마텔의 이 소설 『포르투갈의 산』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길을 떠나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들이 한곳에 모여 상실을 견디는 순간을 그린다.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순간이기도 하고,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자세이기도 하다. 누구나, 언제나 다가올 수 있는 일을, 어차피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어떻게 잘 건너가야 하는지 묻는 순간이기도 하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이 서로 다른 등장인물을 배치함으로써 드러내고 싶은 이유도 비슷하다. 그렇게 걷다 보면 찾아지는 어떤 곳을 향해 가는 길, 각자가 간절히 바라는 믿음의 종착역-우리는 그곳을 각자의 유토피아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을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 우리가 돌아가야만 하는 곳을 이렇게 지켜보면서 구원의 순간을 그린다.

 

사랑은 방이 많은 집이다. 사랑을 먹이는 방, 사랑을 즐겁게 하는 방, 사랑을 씻기는 방, 사랑에게 옷을 입히는 방, 사랑을 쉬게 하는 방. 이 방들은 또한 웃음을 위한 방, 이야기를 듣는 방이거나 비밀을 털어놓는 방이거나 심통이 나는 방이거나 사과하는 방이거나 단란함을 위한 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새로 들어온 식구들을 위한 방들도 있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이제 그의 집은 어디에도 없고 ─ 알파마의 아파트는 수도사의 방처럼 을씨년스럽다 ─ 어느 집이든 발을 디디면 그의 집이 없다는 사실만 상기될 뿐이다. 애초에 율리시스 신부에게 끌린 것도 그 때문이라는 걸 토마스는 안다. 둘 다 집이 없다는 점 때문에. (35페이지)

 

1904년. 토마스는 고미술박물관에서 학예사 보조로 일한다. 운명이 그에게 이런 잔혹함을 줄 거로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그는 아들과 아내와 아버지를 잃는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그때 토마스는 기록보관소에서 한 신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17세기에 기록된 그 일기장으로 토마스는 신부가 남겨놓은 보물을 찾아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1939년. 에우제비우는 병리학자다. 그리고 두 명의 마리아.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는 둘이 같이 좋아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과 복음서를 이야기한다. 또 다른 마리아는 남편의 시신을 가방에 담아와 에우제비우에게 부검을 요청한다. 남편의 시신을 가방에 담아와 부검을 요구한 것도 평범하지 않은데, 부검의 이유도 특이하다. 남편의 사망 이유가 아니라, 남편이 살아온 시간을 듣고 싶어 하는 거다.

 

1981년. 피터는 40여 년을 함께한 아내를 떠나보내고 상원의원으로 살아온 정치에도 환멸을 느낀다. 출장지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침팬지 '오도'에게 끌리고 오도와 함께 살기로 한다. 자신을 옥죄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침팬지 오도와 함께 고향인 포르투갈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꾸린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다. 3주 동안 - 아니 한평생일까? - 쉼 없이 움직였는데, 이제 할 일이 없다. 무수한 종속절과 수십 개의 형용사와 부사가 들어가고, 기발한 접속사들이 문장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는 와중에 - 예기치 못한 막간의 촌극까지 끼어들고 - 하이픈 없는 명사들이 난무하는 장문이 마침내, 놀랍도록 고요한 마침표와 함께 끝이 난다. 한 시간쯤, 꼭대기 층 계단참에 나가 앉아서, 지치고 조금 긴장이 풀리고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그 마침표에 대해 생각한다. 다음 문장은 무엇을 가져오려나? (332페이지)

 

서로 다른 시간대의 세 남자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공통의 목적지를 찾아간다. 각자의 다른 이야기였지만, 결국에는 그곳에서 마주할 치유의 순간이 같은 거였다. 어찌 보면 그곳은 신비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슬픔과 고통, 분노를 털어내면서 마주하는 것은 예수의 여정을 이어가듯 그 끝에서 마주할 무언가로 우리는 슬픔을 정돈하는 시간을 만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낯선 존재들과 마주침이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고, 계속되는 대화로 우리가 가둬두었던 상실과 직면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신비의 장소처럼 보이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지정된다. 그것은 곧 사랑의 시작이자 사랑이 존재하는 '집'이라는 공간과 동의어가 되기도 하는데, 우리의 회복과 안정을 만들어주는 곳이라는 개념을 심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 '집을 잃은' 우리의 상실감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기 마련이지만, '집으로' 가는 여정을 통해 새로운 시간을 겪으면서, 결국 '집'에 도착해 우리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인 것처럼... 그렇게 삶이 나아가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흐르는 이야기에 또 한 번의 기적 같은 순간을 목도한다.

 

분위기가 상당히 묘해서 마치 환상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전작 『파이 이야기』가 조금은 강한 느낌의 모험 같았다면, 이번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조금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여행 같은 느낌이다. 뭔가를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목적과 오늘의 슬픔과는 다른 내일의 빛을 보려는 노력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을 곧 확인하게 될 것 같다는 확신. 그렇게 우리는 잃은 사랑을 찾아가며, 남아 있는 삶을 향해가는 존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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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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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로 만나는 여성의 삶을 볼 때마다, 세상은 이렇게 발전되고 변해가는데 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잘 변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그 시선을 보내는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이 있겠지만, 내가 살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제 만난, 어떤 남자 어른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랬다. 겉으로는 '어디서 그런 고릿적 사고방식을 들이대느냐?' 라며 웃으면서 에둘러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왜 세상과 여자를 대하는 방식이 저렇게 자리 잡았을까 하는 의문뿐이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보는 것보다, 인간과 여자를 구분하여 인지하는 경우를 겪으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로 그 시각을 좁혀야 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바뀔 방식들은 아니겠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고 확인하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 가는데 참 시간이 많이 필요할 듯하다.

 

일곱 명의 작가가 뭉친 이 소설집은 그러한 변화의 시도에 한발 들여놓는 문을 열어준다. 이야기와 문장으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했던 속내의 답답함을 풀어준다. 소설에서 만나는 여성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추면서, 때로는 SF적인 분위기로 강한 여자의 이미지를 찾아내면서 고정관념처럼 박힌 여성의 존재를 새로 쓰려 애쓴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로 등장하면서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조남주의 「현남 오빠에게」는 10년을 만난 남자친구에게 길들듯 살아온 여자의 깨달음이 인상적이다. 믿고 의지하는, 마음을 나눈다고 여겼던 대상이라고 믿었던 남자 친구의 태도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거다. 편지로 전하는 진심과 솔직함으로 잘 몰라서 끌려가는 게 옳다고 믿었던 시간을 끝낸다. 세상을 당당하게 바라보는 눈을 뜨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이 여자가 지나간 10년보다 앞으로의 남은 시간이 더 빛날 거라는 걸 안다. 10년이란 수업료를 톡톡하게 치러냄으로써 인생이 더 단단해지고 자존감 있는 인간으로 살아낼 것이라는 걸.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38페이지 「현남 오빠에게」)

 

그리고 이어지는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와 김이설의 「경년(更年」에서는 '엄마'라는 자리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무시당하고 살았던 지난 시간의 고충을 딸에게 토로하고, 아들의 결혼을 두고 아들 가진 자의 당당함을 내세우려 하는 엄마의 모습. 또 아들의 성적인 문제에 관대한 남편과 주변의 말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선뜻 나서서 상대 여자아이들의 입장까지 파악하지 못하는 엄마의 불안함을 드러낸다. 본인들도 여자이면서, 여자로 살면서 당해온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시선과 태도를 견뎌왔으면서, 정작 그런 문제들에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으면 안으로 감싸 안는 자세를 취하는 게 옳은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들. 아들이니까 당연히, 남자라서 다행인 일들이라고 들어왔던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쏟아진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가 익숙하고 당연하게 보아왔던 가치관을 머릿속에 심어놓고 그대로 행하면서 사는 시간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공포가 찾아든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그가 말했던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무슨 의미였을까. 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들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 그가 '현명함'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유진은 거부감을 느꼈다. (51페이지 「당신의 평화」)

 

"세훈이가 아니라 세은이한테 벌어진 일이라면? 세은이가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남자애들이랑 그런 짓을 하고 다녔다면? 그때도 당신은 공부 잘하는 애가 그랬으니 괜찮다 할 거야?"

"어디 끔찍하게 세은이한테 갖다붙여! 여자랑 남자랑 같아?"

"다를 게 뭐 있어?"

"어깃장 부리지 마. 계집애가 무슨. 여자들은 태생저으로 그런 짓 안 해."

"세훈이랑 한 애들은?"

"그것들이 미친년이지. 세운이 때 남자애들은 여자라면 정신 못 차리니까 어떻게든 몸으로 꼬셔보려고. 그럼 내가 가마니 안 두지. 우리 애 공부 방해한 것들이면 가만두면 안 된다고. 싸가지 없는 년들. 어린것들이 발랑 까져서 밝히기나 하고."

싸가지 없이 밝힌 건 그 여자애들이 아니라 아들아이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 또한 아들아이가 그런 아이라고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97페이지 「경년(更年」)

 

조금은 다른 분위기로 여성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최정화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 손보미의 「이방인」, 구병모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과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 역시 다른 세상 속 여성을 보는 듯한 분위기다. 고정관념처럼 여겨지던 여성 직업의 다양성을 부각하고 여성 살해의 역사를 남자가 경험하게 하면서, 임신한 여성의 존재가 출산을 이루는 과정에서 함께한 사람들의 존재를 따뜻함으로 언급한다. 앞서 나열된 소설들과는 다르게 마지막 소설이 주는 분위기는 사뭇 다른데, 이러한 배열은 이 소설집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흐름을 같이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편 가르기나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떠한 존재이든, 같이하면서 따뜻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싶었던 듯하다. 화성으로 보내져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로 다른 역할의 존재들이었지만, 한 생명의 탄생을 함께 하면서 같은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들로 인식하면 되는 일로...

 

나는 이 모든 풍경에, 익숙한 이미지와 친구들로 이루어진 내 둥지에 와락 안심이 된다. 그러자 너로 인해 발생한 나의 말, 다정한 말을 아이에게 건네고 싶어진다.

"나는 온 우주에서 오직 너만을 걱정한단다. 얘야. 모든 별들은 어머니이고 우리는 춥지 않단다." (271페이지 「화성의 아이」)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여 말하는 경우가 늘었다.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기에는 내가 아는 게 많지 않고,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기에는 나의 의지가 강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서 보게 되는 차별과 이해 못 할 태도들에 관해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늘었다. 특히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서 들리는 말이 불편하다고 여길 때 더 자주 말한다. 엄마나 주변의 다른 연장자들(이들 대부분은 남자인 경우가 많았다)이 하는 말에, '지금 하는 말이 옳지 않으며, 당신의 아내와 딸이 살아갈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다르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면서 말이다.

 

이 소설집이 전하는 게, 단순하게 가부장제를 비난하고, 차별받으며 살아온 여자의 시간이 결혼으로 더 많은 차별을 유발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두려워서 주저앉았던 순간들을 변화시키면서, 이야기의 중심에 나 자신이 설 수 있는 인생을 만들 여성을 생각하게 한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다양한 소재로 현실과 미래를 넘나들며 인간다운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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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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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경제학 수업 같은 것을 이런 책으로 진행한다면 훨씬 집중하고 재밌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딱딱하고 원론적인 내용 말고, 좀 더 쉽게 설명이 되고 차근차근 하나씩 귀에 들어오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누구라도 즐겁게 들을만한 강연 느낌이다. 물론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에 알아두면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거의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내용을 한꺼번에 다 소화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나하나 새겨듣다 보면 경제를 보는 시야도 넓어질 것 같다. 인플레이션이 우리 생활에 작용하는 것들, 그로 인해 우리 삶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인플레이션을 조종하는 듯한 배우의 일들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위기를 극복할 자세를 만들어갈 수 있다.

 

화폐량에 비해 재화량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물가는 당연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를 양팔저울로 도식화시키면 더 이해하기 쉽다.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화폐가, 다른 한쪽 접시에는 재화가 담겨 있다. 화폐가 담긴 접시에 화폐를 너무 많이 올려놓으면 접시가 아래로 기울면서, 재화가 담긴 접시가 위로 올라간다. 쉽게 말해 물가가 상승한다. (187페이지)

 

학교 다닐 때, 경제 과목에서나 제대로 들어봤을 단어, 인플레이션. 실생활에서는 물가의 상승을 이야기할 때나 튀어나왔을 단어이기도 하다. 아기 주먹만 한 호박 하나에 2천 원이나 하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인플레이션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인플레이션'에 보다 흥미롭고 세세하게 접근한다. 독일인 저자 세 명이 같이 쏟아낸 이야기가 그 인플레이션의 시작과 역사를 말한다. 더불어 돈, 권력, 부의 미래가 어디를 어떻게 향해 가는지 풀어내면서, 그에 대응할 우리의 자세까지 언급한다.

 

10세기 중국 교역 상인들이 거래 수단으로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동전을 주조할 금속이 부족했고 종이는 사용하기 편리했다. 이전에는 상인들과 교역을 할 때 물건을 담보로 맡겼지만, 이제 물건의 가치를 명시한 종이만 있으면 간단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이 종이가 발전하여 고유한 화폐가 되었다. (43페이지)

 

인플레이션은 화폐와 함께 시작되었다? 2000년 전쯤에 화폐가 사용되면서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같이한다. 거의 모든 시대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생되어 부의 흐름과 세계 경제를 좌우해왔다. 그 배경에는 국가가 있었고, 부의 권력자들이 있었다. 화폐 가치를 조작한다거나, 나라의 경제 위기를 인플레이션으로 눈가림하면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취했다. 그로 인해 서민들은 더욱 가난으로 몰렸고, 이런 상황은 늘 반복되어 흘러왔다. 아는 사람만 알고 쥐고 흔들 수 있는 수단이었던 거다. 물론 거기에는 나라 안팎의 위기와 전쟁 같은 일들이 발생해서 더해진 것도 있었지만, 그 배경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던 거다. 특히 지폐의 사용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녹아내리기도 하는 금속 화폐 대신 종이 화폐의 등장은, 부의 탄생과도 그 흐름을 같이 한다. '돈의 역사 = 인플레이션의 역사'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 모습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발생과 과정은 같다고 한다. 화폐가 붕괴하는 시작은 국가 채무나 통치자가 책임 회피를 하려 했고, 그 해결을 위한다고 하는 게 인플레이션의 발생이고, 실제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의 생활에 다가왔다. 매번 이런 흐름은 계속 반복될 것이고,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의회는 세금을 징수할 능력이 없었고, 각 주는 국가 예산을 지원할 재정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용의도 없었다.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데에도 제약이 있었다. 남은 방법은 전쟁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지폐를 발행하는 것뿐이었다. 미국은 지폐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봐도 뻔한 것이다. 매년 약 100퍼센트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105페이지)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 사태를 예로 들면서 그 심각성을 고발하고, 헝가리와 독일의 경제를 바꿔놓은 화폐개혁 등으로 위기 정돈 상황을 보여준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하지 않기도 하고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잘 알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보이기 마련이라고 길을 열어준다. 사태의 심각성과 우리 삶에 적나라하게 와 닿는 일들을 살펴보면서 인플레이션의 장단에 휘둘리지 않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언급하면서 위기를 직면하게 하고, 그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몸에 새겨야 한다는 경고를 서슴지 않는다. 그래야 부의 권력자나 통치자들이 만들어놓은 인플레이션으로 우리가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경제 위기의 거대한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뼈아픈 경고다.

 

인플레이션의 시작부터 다양한 접근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들려주어야 할 내용이 많다는 듯 저자가 언급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대부분이 몰랐던 사실이었으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고통받아온 경제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듯 새로운 접근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가 말하는 내용 모두를 옮길 수 없다는 게 아쉬우면서도 결국은 이 책은 지침서 삼아 금융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을 듣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인플레이션의 역사와 증상들, 보이는 이면의 어두운 사실들, 결국 부를 거머쥔 이들이 이끌어오다시피 한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데 있다.

 

첫째,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인플레이션만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화폐의 가치와 부채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의외의 결의안이나 장관의 공식 선언도 없이 익명으로 진행되는 행사다. 책임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부는 쉽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239페이지)

 

저자는 인플레이션은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라고, 빗겨간다는 건 불가능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 그럼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대비해야 인플레이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확실한 건 없다. 다만, 그 불확실 안에서 좀 더 안전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무작정 덤비는 게 아니라 전략과 준비로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는 것.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어떤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는 순발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인플레이션이 가지는 구조적 위험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애초부터 피해갈 수 없으니, 대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 책의 후반부에 언급되는 저자가 제시한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네 가지 시나리오'는 투자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응 방법일 수 있다. 투자하고자 하는 곳의 모든 것을 알아낸다는 자세로 파악해야 한다. 투자하기 전의 포트폴리오 구성은 필수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투자 종목의 구성뿐만 아니라 배분까지 확실하게 연구한 결과물이 필요하다. (특히 포트폴리오 작성법이 더 세분화하여 설명되어 있다) 투자의 실수를 경험 삼아 실패의 재발을 방지한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따라 하는 것, 우연을 맹신하는 것, 쓸데없는 집착들, 다시 가치 있기를 바라면서 처분을 미루는 것, 객관성이 없는 희망, 과도한 낙관주의는 피해야 할 것들이라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화폐의 형태, 모습, 발행자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화폐는 우리 인류가 발견한 가장 천재적인 아이디어다. 화폐는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52페이지)

 

다른 매체에서도 들었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앞으로의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뭐, 언제는 그렇게 투명하게 보인 경제 전망이었겠느냐마는...) 지나간 역사에서의 인플레이션에 대책 없이 당해온 것은 서민들뿐이다. 투자로 고수익을 얻겠다는 얄팍한 수를 생각하지 말고, 알지 못해서 당해온 희생을 더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에 뭔가 크게 바뀔 효과를 얻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 책임이 아닌 일로 마이너스의 경제를 안는 삶을 만나서는 안 될 것이기에 말이다. 피부로 닿지 않는다고 해서 인플레이션이 사라진 건 아니다. 더 현명하고 (그나마) 안정적인 돈 관리를 위해, 누군가 휘두르는 경제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한번은 만나 봐도 좋을 경제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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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8-31 0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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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책에 그대로 담겼다. 이 책은 오직 그 시 한 편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시 구절 그대로를 그림으로 옮겨놓아, 그림으로 읽는 시라고 말해도 좋겠다. 가을밤, 누군가의 낭랑한 목소리로 들으며 봐도 좋을 조합이다. 특히 시 구절이 뭔가 함축적인 내용을 가득 머금고 있어서 해석하려고 머리카락 쥐어뜯는 어려움을 품지 않은 듯한 느낌이, 이 시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한다. 얼핏 우리네 인생의 한 줄기 흐름을 그대로 담아낸 것 같아서 더 애틋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계절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사 안팎으로 들려오는 아픈 소식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때 만난 이 시가 때로는 더 서늘하고 시리게 다가온다. 괜한 마음에 울컥해지기도 하면서...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참죽나무를 가지치기할 때 전해지는 떨림이 있다고 한다. 그 떨림을 지켜보는 시선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아슬아슬하게 그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한, 흔들리지 않고 버티려고 애쓰는 듯한, 그대로 중심 잡고 서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느낌. 때가 되면 잘라내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사의 한 부분일 텐데, 매번 그걸 지켜보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런데도 버티고 견디며 살아내는 게 우리의 의무이자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빈자리를 채워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면서 잘라내어진, 비워진 자리를 흔들리면서 채우려 애쓰는 것만 같다. 그림으로 그리자면 구멍 뚫린 자리에 흔들리는 나뭇잎 색깔로 칠하는 것 같은. 붓을 들고 칠할 수 없었으니 바람에 흔들리면서 눈앞에서 가득 채운 느낌으로 끌어주려는 것도 같다. 그 빈자리가 보이지 않게, 애써 흔들리고 있지만, 더 흔들리지 않기 위해 그렇게라도 흔들리면서 뿌리 내리듯 중심 내리려는 몸부림처럼. 마치 우리 사는 일이 그렇지 않으냐는 듯 동의를 구하며, 삶을 그렇게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고. 매번 절박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렇게 붙잡고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듯이 삶을 표현한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 흔들고, 때로는 비가 내려 흠뻑 적시면서 괴롭혀도,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일에 절망해도,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이런 흔들림 정도야 건너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처럼. 그러니 또 한번 살아내어 보자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어쩌다가, 시인은 참죽나무의 생에 우리의 생을 덧입혀 보았을까. 흔들리는 가지에서 뿌리까지 어떻게 시선을 내렸을까. 아마도 사는 동안 지켜낸 자기의 시간을 돌아보는 순간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커다란 나뭇가지 아래의 그늘도, 힘들다면서 한숨을 내쉬는 일도, 크고 작게 휘청거리며 흔들리는 일도 모두,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고.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게 우리 인생이라면, 흔들리고 잘라내고 다시 채우면서 뿌리를 더 굵게 만드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처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만 같다. 마치 '인생이란 건 좀 흔들려야 제맛'이라는 것처럼. (사실은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을 바라는 게 우리의 진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상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일까. 얇은 외투를 꺼낸 게 며칠 전인데 이제 다시 두툼한 겉옷을 꺼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인생이 그렇다고 말하는 시의 구절 때문일까. 누군가의 읊조림이나 일기장의 몇 문장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어가고 있는데, 괜한 마음에 순간 울컥해지고는 했다. 첫 페이지를 열면서 보이는 서늘함과 어두컴컴함 때문이었는지, 시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한 장의 그림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계절에 떠올리는 사람 사는 모양의 긴 흐름이 너무 추워 보였다. 매번 흔들려야만 지탱할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거부하고 싶기도 하건만, 야속하게도 그렇게 흔들리면서 버티는 게 우리 삶의 표본처럼, 당연한 받아들임처럼 보여서 속이 상했다. 그러지 말라고 거부한다고 해서 안 그렇게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시인도 그렇게 말했겠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는' 몸부림처럼, 마치 그것 말고 더 이상의 최선은 없는 것처럼.

 

 

경의선 책거리 낭독회 행사로 먼저 소식을 접했던 시그림책이다. 직접 가보지 못해서 그 낭독회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접했지만, 가을밤과 너무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을 듯하다. 시인 함민복과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작가 한성옥의 콜라보가 이 계절에 만나는 시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시리즈의 시작으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시의 구절과 지금 이 계절과 시인과 그림이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시를 어렵지 않게, 즐겁고 재밌게 만나는 또 하나의 길을 열어주는 듯하다. '시그림책 시리즈'의 좋은 시 한 편과 시를 품은 그림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시를 기다린다.

 

 

 

흔들린다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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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기억
안채윤 지음 / 자화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언젠가부터 누구를 향한 마음에 본전을 생각하곤 했다. 내가 너를 이만큼 좋아하니 너도 나를 이만큼 좋아해야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계산.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한 계산인데, 아마도 상처받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더 깊고 큰 법이기에, 그 상처의 주인공이 내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다짐 같은 것. 그렇게 이기적이고 나를 먼저 챙기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도, 안채윤의 『서촌의 기억』을 읽는 동안에는 그런 본전 생각을 안 하게 된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마음, 그게 짝사랑인데도 한없이 절절한 마음을 혼자서 앓고만 있던 순간을 보고 있노라면, 일방적으로 보내는 마음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겠다.

 

태인은 서촌의 어느 골목길 끝에 자리한 흉흉한 건물을 매입하고 공사를 시작한다. 그도 왜 그 집을 구매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갑자기 마음이 끌렸다고 할 수밖에 할 말이 없다. 친구와 함께 가구 공방을 차릴 장소로 선택한 곳이다. 오래된 그 집을 수리해서 사무실 겸 공방으로 만들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편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집의 외양간 밑에서 방공호 같은 작은 공간을 발견했고, 그 공간 안의 나무 상자에서 나온 오래된 물건들을 본다. 낡은 담요, 이백 통이 넘는 오래된 편지들. 중단되었던 공사는 계속되고, 태인은 그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1950년에 써진, 일 년 동안 계속된 한 남자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였다. 차마 부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쓰는 걸 멈출 수도 없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친구가 직접 와야 할 만큼 외출도 안 하는 남자 태인은 그 편지로 인해 뭔가가 꿈틀거린다. 이백 통이 넘는 편지와 빛바랜 사진 두 장, 그나마 사진 한 장은 가장 궁금한 얼굴이 잘려나가기까지 해서 잘 알아볼 수가 없다. 궁금했다. 무엇인지 모를 호기심에 심장이 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접 나섰다. 편지의 주인공, 혹은 그 편지와 관련한 인물을 알려줄 단서를 찾아서. 태인은 그렇게 한발 한발, 누가 등 떠밀지 않았는데 그가 직접 대문을 열고 나갔다.

 

1950년의 흔적을 발견하다.

 

1950년 1월 1일 일요일 저녁. 당신에게 쓰는 편지.

이 편지가 언제쯤 당신의 손에 쥐여지게 될는지 기약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편지를 쓰는 연유는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하루가 다르게 강물 불어나듯 넘쳐나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봄, 오후 늦게 내리던 소낙비를 피해 나의 벗들과 들어간 그 간판 없는 전집에서 당신을 처음 본 것이 이 연모의 시작이었습니다. (28페이지)

 

편지는 1950년 1월 1일부터 시작한다. 서촌의 한 막걸리 집에서 본 여인에게 마음을 뺏긴 문학도 구자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친구들에게 먼저 막걸리 마시러 가자고 말할 정도로, 그 술집의 여인을 보고 싶어 한다. 그녀는 그를 모르지만, 그는 그녀의 행동과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보면서 마음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책 한 권을 가슴에 품고 길을 걷는 그녀를 본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그녀가 숨긴 열정을 읽는다. 그녀가 일하는 시간, 그녀가 일하는 공간이 현재의 그녀에게 어떤 시간을 살게 하는 건지 알게 된다. 그렇게 그녀에 관해 하나씩 알아갈수록 구자윤이 그녀를 향한 마음은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그 마음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편지에 꾹꾹 눌러 담는다. 그러던 중에 발발한 전쟁으로 그는, 더는 그녀를 볼 수 없게 된다.

 

태인이 66년 전 구자윤의 편지를 한 통씩 읽어갈 때마다 드러나는 그 시간의 진실이 애절하다. 한 여자를 향한 마음을 담은, 차마 전해지지 못한 편지는 그 마음을 더 애타게 한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그는 그녀에게 직접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짝사랑의 끓는 마음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자윤의 편지였다. 그녀를 살짝이라도 보고 싶어서 자꾸 그 술집을 찾고, 우연히 알게 된 그녀의 이름에 설레 잠 못 이루고, 그녀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내일을 기다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그의 마음은 하루하루 이어가는 편지의 양과 비례한다.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끝내 전해지지 못할 것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때 적어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을 풀어놓아야만 했으니, 지금 같다면 온라인 어디에 말하거나 혼자만의 일기장에 적어두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시인을 꿈꾸던 남자였으니 그 마음의 표현이 오죽했으랴. 옛날식 말투가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그런 편지글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어떤 말투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편지에 담긴 마음이 어떤 건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꺼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을 거라는 예측 가능한 진심이기도 하다. 그렇게 계속 적다 보면 언젠가는 전할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 그렇게 전하고 나서 마음을 나눌지도 모르지,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하지만 운명은 참 얄궂다. 구자윤에게 그렇게 중요한 시기였는데, 감성 폭발하여 절절한 연애편지로 시를 쓰는 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때에 전쟁이 일어나다니. 살아남기 위해 몸을 숨기며 갇혀(?) 지낸 그 순간이 그에게는 더할 수 없는 습작의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한 그 아픈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을 듯하다. 아, 이 남자의 순정은 이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이제 마지막 종이입니다. 나에게 남은 종이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수중에 돈도 없고 상점도 열지 않으니 아마도 이 편지가 당신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낙마저 없어지면 난 이제 어떻게 하루를 버텨내야 하나, 눈앞이 아찔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봐야겠지요. 그동안 참아오고 버텨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나마 날 여기까지 살 게 한 건 두말할 여지없이 당신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온 정성을 다해 사모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도 당신 덕분에 알게 되었으며 당신 덕분에 가슴 뛰었던 나의 젊은 날들을 사랑해 마지않습니다. (293~294페이지)

 

설정은 달달하다. 21세기에 발견된 1950년도의 편지라니. 내용을 몰라도 이런 분위기를 미리 알고 나니 설레기부터 한다.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현재의 사람이 과거의 흔적을 굳이 찾아 나서게 하는 마음에 저절로 이끌린다. 그 호기심이 불러낸 어떤 감정을 읽기도 전에 공감할 것만 같다. 태인이 구자윤의 편지를 단서로 찾아가는 과거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니까 말이다. 현재 태인의 발자취와 과거 구자윤의 편지가 교차하듯 보이는데, 그게 더 호기심을 부른다. 그는 그녀를 만났을까? 못 만났을까? 이십 대 초반의 그들은 어떤 세월을 보냈을까? 만약 그들이 현재까지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건을 추적하듯 태인의 여정에 동행하다 보니, 어느새 소설은 끝이 났다. 구자윤은 매번 편지의 끝에 '당신을 사모하는 구 자 윤'이라 적었다. 언제 부쳐질지 모를 편지에 자기 이름 넣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당신을 '사모한다'는 마음도 잊지 않고 적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통화 연결음이 들리는,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바로 전송되는 문자, 자판 몇 번 두드리며 발송하는 이메일. 점점 악필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익숙한 지금 만나는, 이런 아날로그적인 이야기가 생소하면서도 정겹다. 어린 시절에 적어보던, 누가 볼 새라 잠금장치를 걸어두었던 일기장, 몇 번인가 적었다가 찢어서 버렸던 마음들, 아닌 척하면서 몰래 훔쳐보던 누군가를,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야 마는 순간들을 기억에서 꺼내본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세상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는 했는지... 그런 마음에 더해진 시대 상황이 구자윤의 사랑을 더 진하게 만든다. 우리 기억 속 '언젠가'의 감정과 전쟁이 부른 안타까운 이별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감성, 추억을 부른다. 살면서 세상에 부대끼며 잊고 지냈던, 누구에게나 한번은 있었을 감정을 이렇게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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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25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영화 <파이란>이 떠올랐습니다. 참 좋았는데요 그 영화.

2017-10-2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