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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4 2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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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4 2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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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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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늘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당신의 지치고 파리한 얼굴을 볼 때마다 잘 지내는 거냐고 물어보는 걱정스러운 시선 앞에서는, 더더욱 괜찮다고 말한다. 다 괜찮아질 거야, 이 시간도 결국 지나갈 거야. 하지만 우리는 애써 모른 척한다. 우리가 괜찮다, 힘들지 않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 안의 어떤 것이 짓밟히고 있다. 시들어 간다. 그 무언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트라우마, 그림자, 그리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가 애써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동안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쓰고 싶다. 우리가 다 괜찮다고 말하는 동안 놓쳐 버린 아픔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당신이 억압한 감정들이 언젠가 상처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더 아프게 찌르기 전에. 이 책은 늘 괜찮다고 말하며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애틋한 공감의 편지다. (5~6페이지)

 

새해 해돋이는 못 볼 것 같아서 지난해 마지막 날에 친구와 해넘이를 보러 갔다. 해가 점점 기울어 수평선 아래로 넘어가는 게 그대로 보였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한 살 더 먹는구나, 내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 더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옆에 같이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올 한해 어땠어? 잘 지냈니?" 친구는 내 물음에 곰곰이 생각하면서 말했다. "괜찮았어. 크게 나쁜 일도 없었고, 이 정도면 잘 지냈어."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의 대답을 듣기 전부터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친구에게 물었던 그대로, 나에게 되돌아온 질문에 미리 말문이 막혀버렸다. '나는 올 한해 어땠나?' 이 생각을 떠올린 순간부터였을 거다. 막막하게 생각하다가 겨우 꺼내놓은 답은 "잘 견뎌온 것 같아..." 그 순간 목 놓아 울고 말았다. 해넘이의 장관을 보겠다고 모인 불특정 다수의 사람 사이에서 나는 울었고, 친구는 가만히 내 어깨를 다독였다.

 

아마도, 그런 지점이었던 것 같다. 아닌 척, 모르는 척, 무심한 척. 그렇게 모인 많은 '척'이 만들어낸 '괜찮은 척'의 폭발 지점. 참고 참다가, 괜찮은 척하면서 견뎌오다가 터져 나올 게 터져버린 순간. 생각하다 보니 정말 그랬다. 힘든 것도, 싫은 것도, 아팠던 것도, 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건너온 시간이었다. 싫은 말을 들어도 묵묵히 참고 견뎠고, 짜증 나고 화가 나던 순간도 참았다. 내 입에서 나가는 안 좋은 말들, 부정의 말들이 건너가면 무슨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연습, 아니다 싶은 건 거절하는 연습을 하는데도 잘되지 않았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온갖 '척'을 해가며 건너온 시간 중에 유독 아프고 어려웠던 시간이 작년이었던 듯하다. 물론 순전히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의 상황이나 생각들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며, 또 나를 바라보는 각자의 또 다른 시선이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라 자기를 먼저 보게 되는 존재'라고, 이렇게 위무하며 나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더 크게 바라보게 된다. 그래, 나, 괜찮지 않았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도 참아야 했고,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순간을 건너왔다. 얼굴에는 찡그림보다 웃음을 먼저 그렸고, 싫은 내색 참아가며 받아들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터지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내내 견뎌온 것들은 거대한 벽이 되어 나를 가두는 보이지 않는 막이 되어왔던 거다. 보호막이 아니라 더 침잠하고 바닥 깊숙하게 파고들게 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게 '괜찮은 척'하면서 가까이하던 게 책이었다. 그중에서도 문학은,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은 내가 눌러오며 지내온 많은 부분을 드러나게 한다. 주인공의 환경, 그들이 겪는 슬픔과 고통,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근원, 그 모든 상황 속의 바탕에 깔린 많은 것을 들여다보게 했다. 나와 닮았나? 다른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들은 어떻게 건너가고 있는 거지? 영원히 부정적인 결말을 만날 수밖에 없는 거였나? 'the end' 이후의 그들은 잘살고 있을까? 가슴 속을 파고드는 문장들을 읽으며 소리 없이 계속 묻곤 했다. 세상살이의 모든 답을 이 소설들 속에서 다 찾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시간이 문장으로 계속 이어질 때마다 몰입해서 들었다. 그 많은 문장 안에서 혹시 나를 위로해줄 문장 하나 없겠나 하는 간절함으로 말이다. 저자는 아마도 이와 비슷한 감각으로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소설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꿰뚫듯이 바라보며, 그들이 겪었던 순간들에서 찾아낸 감성으로 어떤 위기, 절망과 슬픔을 건너오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저자가 찾아낸 소설의 인용구나, 인물들이 겪는 상처의 은밀한 속내를 주저하지 않고 파헤친다. 마치 그들에게서 꼭 반창고 하나쯤을 찾아낼 수 있다는 듯이...

 

엘리너는 자신의 버림받은 처지보다는, 에드워드가 교활하고 이기적인 루시와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는 상황에 절망한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사려 깊지만 정작 자신을 배려하는 방법을 모르는 엘리너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에드워드를 위해 눈물 흘린다. 한 번도 '나는 이것을 원한다.'고 말해본 적 없는 사람은, 항상 동생들을 생각해서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하며 살아온 맏이들은 엘리너의 슬픔에 처절하게 공감할 것이다. (66~67페이지)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안에서 간절하게 외치는 목소리의 정체를.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욕망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그 욕망이 하는 말을 두 귀로 멀쩡히 듣고 있으면서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얼마나 자신를 짓누르고 있는지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런 간절함 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데... 저자의 말을 듣다 보면, 왜 그 간절함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살아와야만 했는지 묻는 것만 같다. 괜찮다는 말에 가려진 진심, 그 말을 할 때마다 내 안에서 죽어가는 치유의 기회들, 차마 말하지 못한 그림자와 상처, 트라우마를 얼마나 드러내고 싶은지를. 착한 사람 이미지를 포장하느라 상처가 쌓이는 줄도 모르고, 타인을 배려한다는 의미로 나를 먼저 생각하지 못한 순간들에, 괜찮다는 말로 애써 스스로 위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자아를 확장하고 싶은 원초적 욕망과 타인을 향한 반성적 의식의 충돌 사이에서 로라는 깊은 성장통을 겪는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내가 잘되고 싶은 욕망, 내가 돋보이고 싶은 욕망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끝없이 충돌한다. 이제 로라는 수없이 이런 일을 겪을 것이다. 이보다 더 아픈 일도. 하지만 적어도 '반성적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성장의 시작이다. (253페이지)

 

심리학과 문학.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직접 겪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융심리학 이론을 문학의 감동과 함께 전한다. 언급된 많은 작품은 우리가 이미 읽은 책이나 이미 봤던 영화이기도 하고, 아직 만나지 못한 책이기도 할 것이다. 같은 지점에서 같은 감정을 봤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 어느 감각을 느꼈는지의 차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작품들로 새롭게 바라보는 내 마음이 중요하니까.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으로 저자만의 리스트를 만들고 보니, '내면의 트라우마' 목록이었다는 말에 잠깐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나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람들로 채워진 살생부가 결국은 내 안의 상처로 저장된 목록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된다. 화들짝, 순간 일시 정지. 동시에 꼭꼭 숨겨둔 상처를 겉으로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이미 내 바깥으로 나온 것의 시작점이 된다는 걸, 안다. 그렇게 걸어 나오는 것들이 나를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그렇게 심리학으로 분석한 우리 감정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동안 잘 알지 못하고 무시했던 무의식을 찾으라고 말한다. 무의식의 개성을 찾으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순간을 맞이하라고. 저자의 말을 듣다가 생각해보니, 저자가 언급한 문학들의 장면들을 떠올려보니, 그렇게 나를 찾아가는 순간을 문학과 함께했을 때 더 빨리, 더 많이 마주할 것만 같다. 공감과 이해, 혹은 새로운 시선들로 함께하는 시간이 가져다줄 나를 찾아가는 길 같은 거.

 

『감정조절』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조절은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는 것도,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을 마비시키는 것도 아니다. 모든 감정을 느끼되, 그것에 압도되거나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떤 분노의 해일이 당신에게 닥쳐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 감정의 격랑에 휩쓸리지 말자. 냉정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아주 천천히 대책을 세우자. 격한 감정이 우리를 제멋대로 휘두르게 내버려 두지 말자. 우리 자신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보다 더 강하다.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분노의 원인보다 훨씬 복잡하고, 강인하며, 냉철한 존재다. (204페이지)

 

저자는 상처, 슬픔, 고통 같은,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게 했던 감각들을 문학으로 보게 하면서, 그렇게 아팠던 순간의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언젠가 다른 책에서 읽었던, 나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반드시 만나야 한다고 들었던 '내면 아이'를 여기서 또 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인 상처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 그렇게 확인한 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가장 기본이고 우선이 되는 일이 나의 내면 아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문학 속 인물들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 역시 저자의 말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듣고 보니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시선들이 생긴다. 그랬구나, 그 순간의 아픔은 이렇게 시작된 거였구나, 또 그렇게 치유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답을 찾아가는 듯한 기대와 긍정의 시선들의 보게 된다. 너무 유명해서 안 읽었어도 읽은 것처럼 착각이 들게 하는 작품들, 그 안에서 세상과 싸우느라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주인공으로 저자의 이야기를 같이 들려준다. 그렇게 하나씩, 예전에 읽으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행간 사이의 많은 감정을 이렇게 다시 듣고 있다.

 

듣고 있다 보면, 나를 채웠던 많은 상처를 이렇게 끌어냈는데 어떻게 흘러가야 치유의 종착역에 다다를 수 있는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친절하다. 그 길까지 한꺼번에 열어준다. 저자가 꾸준한 책 읽기와 계속된 글쓰기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면, 우리는 또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누르던 어둠의 그림자를 마주하며, 살생부에나 기록된 이름으로 남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아픈 순간의 시작점을 따라가고 그 상처의 과정을 되짚어봄으로써 상처가 더는 상처로 남지 않게 하는 일, 그때 상처의 순간조차 지금의 나를 만든 에너지가 되었다는 일부분으로 만들었다는 인정. 그 시간이 지금을 살아가는 순간의 또 다른 방식을 열어줄 바탕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것과 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겠다는 긍정의 생각이 차분하게 쌓이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나는 괜찮지 않았다고, 힘들었다고, 싫었다고,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입이 트이는 것만 같다. 이런 말을 하는 대상이 누구여도 상관없다. 그저 내가 가진 상처가 더는 상처가 아니게 만드는 일,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살아가는 순간들에 트라우마나 콤플렉스가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 나의 부족한 것들과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이 나를 흔들지 못하게 하면서 결국은 내가 이뤄내야 할 것은 내 삶의 행복일 테니 말이다.

 

상처란 이렇다. 극복하려고 애쓸 때는 꿈쩍도 안 하다가 때로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스르르 극복된다. 물론 죽을 떠낸 자리처럼 완전히 말끔하고 평평하진 않지만. 이제 나는 '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만나기 싫다는 생각에는 시달리지 않는다. 최근까지도 그 10여 년 전의 트라우마를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내가 행복해질 수 없는 건 다 그 시절의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의식의 판단'이었다. (35~36페이지)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바로 그 트라우마가 우리의 심리적 유전자를 결정하는 '밑그림'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완성작은 될 수 없다. 트라우마가 밑그림을 그리는 연필이 될 수는 있지만 그림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구도나 색채가 되지 않도록 끝끝내 막아 내는 것, 그것이 자기 치유의 노력이고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우리의 끈질긴 자유의지이니까. (314~315페이지)

 

지난 일 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참 많이 우울했다. 머릿속 생각과 따로 노는 현실들에 무기력만 남은 듯했다. 그러다 보니 누구에게도 완전하게 솔직하지 못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 보니, 가능하면 말을 하지 않았다. 얼굴에 가면 몇 개는 늘 장착된 삶이었다. 그런 시간이었으니, 살아오는 게 아닌 '견딘' 시간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저자가 언급한 책 몇 권을 다시 꺼냈다. 소설 속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나를, 내가 다가가지 못했던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지금의 나는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지낸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소리 내어 말하는 연습을 한다. 스스로 주눅이 들어 움츠러들게 했던 단점들, 모자란 점들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그런 것들조차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이니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면서,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솔직하게 잘 전달하려고 목소리를 내면서,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가려 애쓰는 중이다. 그렇게,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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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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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은 언제나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 때로는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로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부정하며 거부하던 것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게 다 아는 게 아니었다는 새로운 사실과 맞닥뜨리며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을 열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다. 우리 삶에 스며드는 것처럼 다가오는 순간 중의 하나인, 바로 '내 옆의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는 이 소설처럼 말이다.

 

69세 아서의 아내 미리엄은 1년 전에 죽었다. 그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는 것도 의미 없다. 현재 그의 일상은 살아있는 사람의 시간이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 그는 미리엄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그런 아내를 잃은 상실에 스스로 집안에 가둔 삶을 1년 동안 이어왔다. 꽉 닫힌 집안에서 아내를 기억하는 일이 그가 사는 일상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1년 만에 정리하는 아내의 옷장 속에서 낯선 팔찌 하나를 발견한다. 참이라 불리는 팔찌의 펜던트들. 옷장 깊숙이 숨겨있던, 처음 보는 아내의 물건에서 그의 여정이 시작된다.

 

처음 시작은 그에게 아내를 추억하는 여행처럼 여기게 했다. 읽는 나도 그랬다. 아서의 상실과 슬픔은 우연히 발견한 팔찌 하나로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을 것만 같았다. 그가 몰랐던 아내의 물건이 그가 알기 전의 아내의 시간으로 불러줄 거로 믿었다. 그 시간의 아내를 만나는 일은 그가 아내의 부재를 인정하며 슬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내의 팔찌와 그가 좇은 아내의 시간은 그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된 건 맞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마주하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는 거다. 40년을 함께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그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아내의 시간을 마주함으로써 그는 아내의 숨겨진 마음을 듣게 된다.

 

"만약 당신이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당신을 만나기 전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귀었고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했는데 그 얘기를 당신한테 하지 않았다면, 그게 문제가 될까요?" (162페이지)

 

책, 코끼리, 호랑이, 팔레트, 반지, 꽃, 골무, 하트. 아내의 팔찌에 끼어있던 여덟 개의 참을 단서로 아서는 아내의 삶을 추적한다.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아내의 과거를 하나씩 마주하면서 슬픔과 의심으로 가득해진다. 런던, 파리, 인도까지. 아내의 친구, 아내의 인생, 아내의 남자. 영혼의 동반자라고 믿었던 그의 아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아내의 시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마주한 아내의 과거로 그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그가 아내의 흔적을 하나씩 찾을 때마다 그의 의심과 분노, 질투를 하늘을 찌르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시간이 흐를 때마다 점점 세상 속으로 스며드는, 집 밖으로 나오는 아서를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의 방문이 귀찮아서 거부하고, 집 밖으로 나갈 일조차 만들지 않고, 오직 아내 미리엄과 함께한 그 집에 붙박이가 되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아내를 위한 애도의 모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틀렸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거였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곳에서 그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고, 그때마다 그 사람들 상황들 속에 부딪힌다. 피해가거나 숨거나 드러내지 않는 게 그가 보낸 1년의 세월이었다면, 아내의 팔찌를 들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그의 시간은 사람들 속에 속하면서 이야기와 마음을 주고받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는 평범한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는 것만 같았다.

 

아서가 발견한 건 결국 그 자신에 관한 것들이었다. 호랑이한테 물렸을 때 그토록 용감하게 행동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는 침착하게 대처했다. 정말이지 그는 자신이 비명을 지르거나 겁에 질릴 줄 알았다. 또 잠옷과 치약도 없이 이상한 영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바로 전날만 해도 일상의 조화가 깨어진다는 생각만으로 이마에 진땀이 나던 그였건만.

카페에서 낯선 사람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했고, 그 조언이 그가 그 자신을 두고 생각하는 것처럼 한심한 노인네가 하는 소리 같진 않았다. 과거의 연적을 만났고 무심히 돌아설 수도 있었지만 세바스티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약물 중독 전력이 있는 청년과 청년의 개에게 보여준 열린 마음과 포용력에 스스로도 놀랐다. 그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아서는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고 더 속 깊은 사람이었고,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마음에 들었다.

그 사람들과 사건들이 아서의 내면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갈망이었다. 욕정이나 그리움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는 돕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호랑이가 그를 공격했을 때 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오렌지색 짐승이 그를 내려다볼 때, 그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생각했다. (225~226페이지)

 

그랬다. 아서의 여정이 시작된 처음의 마음이나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아내의 과거가 불러오는 그가 느끼는 감정은 배신감이나 분노, 절망이 아니었던 거다. 처음의 예상이나 의도와는 다르게, 그 여정은 아서에게 조금 더 멋진 애도의 시간을 만들게 했다. 아내와 함께한 40년의 추억으로 충분한 행복이었으니, 이제 아내가 떠난 현재의 아서가 살아가야 하는 오늘과 내일을 보게 했다. 언제까지 우울하게 아내가 떠난 시간의 상실만 되새김하면서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아내도 그걸 바라지는 않을 거다. 아서와 미리엄이 사랑했던 시간은 아주 아름답게 남아있으므로, 이제는 혼자 남은 아서가 살아가야 할 시간을 채워야만 한다. 그가 아내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발견한 것은, 그가 몰랐던 아내의 삶이 아니라 아내가 살아가고자 했던 방향의 시선이었다. 아내는 자유로운, 멋진 삶을 이룬 여자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아서에 대한 사랑도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여자였다. 그런 아내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는데, 아서가 주눅이 들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서는 충분히 사랑받고,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었다는 확인과 확신을 얻은 게 이 여정의 수확이었다. 절망과 슬픔에서 희망과 기쁨, 용기로 바뀌는 시간...

 

"날씨가 아주 고약하네요. 걷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신 거예요? 날씨가 이렇게 변덕스러운지 원." 여자가 손가락으로 소리를 냈다. "기가 막히게 화창하다가도 갑자기 어두워지고 음산해지죠. 하지만 태양은 반드시 다시 나와요.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네요. 이제 곧 갤 거예요." (370페이지)

 

아서의 마지막 여행지에서 그가 느끼는 자유로움이 폴폴 느껴졌다. 잃었다고 여긴 것들 대신 그를 채우는 것들로 행복해하는 표정이 저절로 그려진다. 일흔의 노인이 가진 삶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삶의 방식이었는데, 그런 생각 역시 편견이고 불필요한 생각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나이가, 누군가의 과거가, 상실의 슬픔이 문제가 되지 않는, 우리가 바라고 나아가야 하는 삶의 자세라고 말이다. 그의 사랑으로 충분했던, 그의 사랑이 불러온 자아 찾기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어딘가로 한 발짝 나아갈 용기를 부르게 하는 아서의 이야기에 새해의 시작과 함께 밀려오던 우울함이 가신다. 문 한 번 열고, 한 발 내딛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이렇게 또 한 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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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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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그렇구나' 하고 느꼈을 때는 대개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면서 저절로 깨닫게 되는 일,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다. 뭔가 지나가고 있는 그 순간에는 다 알지 못 하는 일들이, 반드시 시간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나타난다. 절대 공짜로는 알려줄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젊음을 잘 모르고 흘러가 버린 시간에, 노년이 되어 되돌아보고 나니 다가오는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노을 지는 저녁 풍경을 바라보듯, 집사라는 자부심으로 온 인생을 채운 스티븐스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그러했다.

 

집사의 본분이 자기 인생의 모든 것처럼 살아온 스티븐스다. '달링턴 가'에서 35년을 그렇게 지내오던 중 주인이 바뀌면서 뜻밖에 주어진 시간. 새 주인으로부터 여행을 제안받고 떠나온 길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스티븐스는 새 주인의 휴가 제안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달링턴 가에서 스스로 갇힌 듯이 살아온 그의 평생인데, 갑자기 밖으로 밀려난 느낌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떠밀리듯(?) 발걸음을 뗀 여행마저 달링턴 가의 이로움을 위한 목적이라니, 이 남자의 인생 어떻게 흘러왔는지 훤히 보일 지경이다. 새 주인이 시키지도 않은 짓, 오래전에 달링턴 가를 떠난 켄턴 양을 만나러 가는 게 그가 택한 여행의 목적이 된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켄턴 양을 만나는 일도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었다. 혹시나 켄턴 양과 뒤늦은 해후를 하며 황혼의 사랑이라도 만들려는 것일까 기대했건만, 그는 오로지 달링턴 가의 부족한 일꾼 섭외가 목적이었던 거다. 이 여정이 그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감히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스티븐스는 나의 예상 밖을 벗어난 인물이 되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일주일 동안의 여정에서 그의 시간은 두 가지로 채워진다. 여행길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이거나,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며 떠올리는 자기 일(집사)의 뿌듯함과 만족감을 곱씹어보거나. 특히 그가 35년의 집사 일을 떠올릴 때면 아주 위대한 업적을 세운 듯한 표정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한 위대한 일은 없을 것 같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그의 현재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가는 길 곳곳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하고, 영국의 위대함에 만족스러워하며, 자기가 서 있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허물없이 받아들인다. 그저 위대함으로...

 

그의 회고록 같은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그에게 집사계의 공로상이라도 주어야 할 판이다. 그의 젊은 날은 오직 달링턴 가에 머문 흔적밖에 없다. 그마저도 철저한 을로 살아가는 모습만 강조된다. 주인의 심기를 받드는 일이 최우선이며, 그곳에서 열리는 모든 일의 완벽한 마무리까지 그가 주관해야 할 일이었다. 일하는 사람의 관리부터, 저택에서 일어는 모든 일은 완벽해야 했다. 특히 주인이 영국 사회에서 처한 위치나 처세까지 감당해야 했다. 거슬리지 않는 조언도 해야 했으며, 저택을 방문하는 손님들의 품위까지 챙겨야 했다. 당시 영국의 시대적 배경까지 생각하면, 그의 말 한마디나 행동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함부로 언급할 상황이 아니었던 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는 어느 위치에서 누군가의 시선으로 저택의 사람들을 대해야 했던 걸까. 반유대주의에 앞장서야 했는지, 아니면 그에 반대하여 켄턴 양의 화에 동참해야 했는지... 여기서 또 한 번 그의 집사 자리가 그의 말처럼 우아하고 위대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파고든다. 그는 여전히 달링턴 가의 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앞날을 무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집사의 자리가 평생 그러한 것이라는 걸 몸에 새기고 살아온 습관이거나. 어쨌거나, 그가 임무를 완수하는 모든 시간의 행동과 선택을 나무랄 수만은 없었다는 게 그의 집사 업무의 위대함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답이 된다.

 

소설의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달링턴 가의 총무 켄턴 양은 오히려 당찬 현실적인 여성이었다. 당당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부조리를 상사(?)인 스티븐스에게 언급할 줄 알았고, 잘못된 일에 화를 낼 줄 아는, 우리가 아는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녀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티븐스 같은 남자를 판단하느라 달링턴 가에 머물며 보낸 시간이다. 내가 보기에 켄턴 양은 자기가 떠나야 할 때를 미룬 것만 같다. 눈치 없는, 혹시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스티븐스 때문에 말이다. 완벽한 집사의 모습으로 채운 그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켄턴 양이 한 번씩 그를 찌를 때마다 그가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곤 했다. 감정의 흥분을 드러내고, 우아함을 내던지고 화를 내는, 자기의 자리를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쳐주길 바랐던 거다. 그래서 살살 긁는 듯한 켄턴 양의 시비(?)가 너무 긴장됐다. 스릴 있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그는 자기의 모든 시간을 하나의 일직선으로 그어놓고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 선을 그대로 밟고 살아갈 것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켄턴 양이 조금의 시간이라도 그를 기다렸던 게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그는 올곧았다. 그런 그에게 개인 시간이 주어질 리 없다. 아니다. 아마 그는 그가 누려야 할 개인적인 시간조차 생각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진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켄턴 양이 보내는 신호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세상 누구보다 눈치 없는 남자로 기록된 거겠지.

 

그의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듣는 것도 아련했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우리를 붙잡는 건 그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문득문득 던지는 한마디들이었다.

"내 말을 믿어 보시오, 선생. 올라가 보지 않으면 후회하게 도리 거요. 그리고 또 누가 알겠소, 몇 년 더 세월이 지나고 나면 너무 늦었을지도."

노인은 약간 천박하게 껄껄거렸다.

"할 수 있을 때 올라가 보는 게 좋아요." (35페이지)

어쩌면 그의 여정은 지금 어느 길을 올라가 보는 중일지도 모른다. 올라가 본 아래의 풍경에서 자기가 놓치고 살아온 것들을 찾아보는 건지도 모른다. 그게 켄턴 양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자기 삶이 아닌 주인의 삶에 맞춰 흘러간 그의 시간일지도 모르지. 그게 무엇인지 찾는 것 역시나 스티븐스 자신의 의무이자 역할로 남아 있다. 그게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듯, 인생의 황혼 녘에 찾는다는 게 무척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하는 여정이다.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소설이다. 동시에 한 남자의 인생에서 우선하며 살아온 시간을 타인이 판단할 수도 없다. 그가 놓치고 살아온 것, 그 자신이 아닌 저택에 속박된 것처럼 지내온 시간이 후회스럽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가 가고자 했던 '위대한 집사'로 향하는 길을, 그는 충분히 밟아왔을 테니까. 다만, '그에게 지금 남은 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던져졌을 때 나올 대답이 무엇인지는 궁금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종속 관계가 주는 서글픔, 임무에 충실 하느라 바로 위층에 누워있던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한 안타까움, 사랑인 줄도 모르고 놓쳐버린 여자를 끝까지 붙잡지 못 하는 일들이 그의 내일도 채울 것만 같은 불안함은 뭔지... 일주일의 여행이 끝나고 다시 달링턴 가로 돌아왔을 때의 그의 모습이 어떨지,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 그의 35년을 '다시보기'하는 느낌이다.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놓치고 후회하는 것들이지만 다시 선택하는 게 변함없을 거라는 불안함. 그가 보냈던 일주일의 시간은 뭔지 참 모순적이지만, 그런 그의 선택을 공감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우리 삶이 그러하다고 확인이라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읽는 내내 '이상하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이미 다 알게 되었으니 스티븐스가 다른 선택을 하길 바라면서도, 그가 택한 마지막을 인정했다. 그럴 때마다, 다 안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하면서도 자꾸만 튀어나오려는 다른 생각들이 충돌했다. 그럴 때마다 슬퍼졌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고민과 갈등으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스티븐스가 선택한 결말은 절망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상 같아서다. 그런데도 그의 선택과 다짐 앞에서 또 한 번의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을 겹쳐본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우리이므로, 내일의 어느 순간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후회하더라도, 현실의 선택에 순응하며 살아왔노라고 말하는 게 우리여서.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294페이지)

 

하긴 그렇다. 언제까지나 뒤만 돌아보며 내 인생이 바랐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책해 본들 무엇이 나오겠는가?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의 중심축에서 우리의 봉사를 받는 저 위대한 신사들의 손에 운명을 맡길 뿐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내 인생이 택했던 길을 두고 왜 이렇게 했던가 못했던가 끙끙대고 속을 태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진실되고 가치 있는 일에 작으나마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야망을 추구하는 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도 긍지와 만족을 느낄 만하다. (300~301페이지)

 

며칠 전에 만난 어떤 사람은 "인생 뭐 있겠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하면서 지금의 힘든 시간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잠깐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래 인생 뭐 있을까 싶은 마음에 눈길을 돌리며 다른 선택에 시선을 두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말처럼 인생 뭐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가도, 인생 뭐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또 다른 기대를 한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나날은 지금껏 그래왔듯, 어쩔 수 없이 후회와 기대의 양가감정으로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 순간들 안에 또 수많은 선택과 갈등, 후회가 자리하겠지만, 어쩌겠나.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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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종말 - 탐욕이 부른 국가 이기주의와 불신의 시대
스티븐 D. 킹 지음, 곽동훈 옮김 / 비즈니스맵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세계화'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초록창에 물어보니 이런 지식백과 결과가 나온다. '세계 여러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교류가 많아지는 현상'이라고 말이다. 말로는 교류이지만, 점점 그 교류라는 의미로 참여의 강요가 많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너도나도 함께'라는 외침은 점점 희미해지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세계화라는 게 어떻게 보면 연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같이 나아가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게 모든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얼마나 자세히 알 수 있을까 싶은 노파심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알고 있던 세계화의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긴 장점들이 더는 좋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느낌이다. 세계화의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결과다. 물론, 지금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볼 계기가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이 책에서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이슈가 될 만하다.

 

저자가 전하는 가장 큰 외침은, 다가올(어쩌면 이미 다가왔는지도 모를) 탈 세계화의 시대를 대비하라는 거다. 한때는 우리를 구원해줄 거로 생각했던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게 나라의 발전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관계가 점점 흐트러지고 있다. 붕괴에 가깝게 각자의 노선을 주도하기 시작한 거다. 트럼프 때문에 더 이슈가 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 탈 세계화다. 세계화를 주도한다고 생각했던 미국이 먼저 세계화 곳곳에서 발을 빼는 모습은 그 변화를 증명하는 셈이다. 저자 역시 이 부분의 경고를 더 크게 말한다. 현재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더 강한 탈 세계화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거다.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가 추구하는 것은 자국의 이익일 테니, 그것이 목적이 된다면 탈 세계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의 세계화의 모습은 점점 더 변할 것이고, 각국의 이익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만들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찾아야 할 것들을 각국이 모여 논의해야 한다는 방법도 언급한다.

 

세계화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제시함으로써 꼬리에 꼬리를 무는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지게 하면서, 현재 상황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안을 모색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 되기도 하는 책이다. 그동안 세계화가 끌어온 발전이 무엇인지, 세계화의 폐해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세계화를 이루면서 부의 평등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등등. 무엇이 세계화의 정당화를 뒷받침하면서 흘러왔는지 다시 살펴보게 한다.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해온 우리가 오늘날의 그 '함께'가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방안을 살펴야 하는지 묻기도 한다. 선진국이 앞장서서 이뤄낸 세계화는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 도모를 위한 최선으로 여겨왔고, 선진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개도국이나 신흥국가들의 몸부림이 효과를 얻어내고자 하는 목적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국제기구에 가입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1980년 이후로 변하기 시작했다. 자유무역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고, 각국이 더는 자국의 이익에 관해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손해 보는 장사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세계'라는 큰 시장이나 타국과의 관계가 아닌 자국의 모든 것이 1순위가 되어간다. 그래서 확인하게 되는 게, 많은 국제기구를 탈퇴하는 국가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시행한 일들이나, 영국의 브렉시트,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는 것들이 탈 세계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계 경제가 더욱더 통합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관리하는 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한동안은 보이지 않는 손의 놀라운 힘으로 시스템이 저절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계 금융 위기가 시작되면서 그런 견해는 확실히 잘못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자기 관리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 각국의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때때로 워싱턴에 있는 다양한 기구들의 간섭을 받는 - 기존 체제는 점점 더 통합되어 가는 세계 경제에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세계화의 문제에 있어 우리는 진짜 갈림길에 도달한 것이다. (115페이지)

 

저자가 언급한 대부분 상황들이나 세계화의 붕괴의 원인은, 현재의 세계적인 사건들과 각국의 여러 가지 정책들을 말하고 있지만, 거의 한가지로 귀결되는 듯하다. 자국의 이익이 세계화의 이익과 맞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 같이 나아가자고 하지만 자기에게 이익이 없으면 더는 함께 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하나둘, 쌓이다 보면 결국 발을 빼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서서히 세계화의 종말에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을 하다 보면, 그동안 못 본 척하며 세계화에 발맞추려 했던 자국이 놓친 이익이 자꾸 수면 위로 떠 오르기도 하기에,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며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찾아야 한다. 탈 세계화에 살아남기 위한 각국의 방안과 전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보면서 준비해야만 한다. 세계 질서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결국 언젠가 그 무너짐을 볼 때를 대비하는 최선을 방법을 말이다.

 

21세기의 세 가지 도전 과제 - 즉 이민, 테크놀로지, 돈 - 는 세계화가 점점 더 파괴적인 힘의 압력 아래에 놓일 거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전통적인 경제적 거사를 정치적 서사가 지배할 것이며, 브레튼우즈 정신은 사라지고 서로에 대한 의심만 남을 것이다. 국민 국가들은 점점 더 서로 협조하기 어려워지고, 최소한 경제 영역의 갈등은 더욱 잦아질 것이다. (259페이지)

 

국제정세가 변화하는 원인을 찾아가면서, 각국의 이해관계와 국제사회가 재편되어야 하는 방향을 보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탈 세계화의 경고로 시작되어, 현재 상황이 오기까지의 국제 정세의 변화와 흐름을 설명한다. 그 결과로 현재의 국제 정세가 보여주는 게 어떤 의미인지 판단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한 방법의 모색이란 어려운 숙제까지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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