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의 인생상담 (20만부 판매기념 특별판)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김신회 옮김 / 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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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와 그 일당들(?)에 관해 선입견이 있었다. 한없이 가볍고 또 가벼워서 이들이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을 담아올 수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앞섰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덤벼들 수는 없으니, 그냥 한번 가볍게 웃어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특히 이 책을 읽기 전에 목차를 살펴보다가 이게 무슨 말장난 같은 질문인가 싶은 노파심도 있었고, 진지한 질문을 담은 소제목에서는 얘들이 무슨 답이나 제대로 줄 수나 있겠나 싶은 기대가 사라진 마음이 더 컸다. 막상 다 읽고 보니, 나는 정말 얘들을 잘 몰랐던 거라는 걸 알겠더라. 가벼워서 홀가분해지고 무거워서 진지해지고 싶을 때. 보노보노의 상담소의 문을 활짝 열어보시라.

 

본때를 보여주는 방법 없을까요? 취업은 왜 하는 건가요? 고양이 똥 냄새가 심해요. 우주를 생각하면 마음이 술렁대요. 개복치를 집에서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살 빼는 법을 알려주세요. 입 냄새가 나요. 도저히 토마토를 못 먹겠어요. 다크서클이 안 없어져요.

 

이런 질문을 보면, 질문자는 보노보노 상담소에 웃음을 전달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각각의 분야 전문가에게 찾아가 상담받으면서 치료하는 게 답이거나, 아니면 질문 자체가 좀 어이없어 보이는 것도 많았다. 본때를 보여주는 방법? 고양이 똥 냄새가 심한데 어떻게 하라는 거지? 장난이라도 하자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데, 보노보노 상담소는 끝까지 그 답을 찾아주려 애쓴다. 정답이 있는 해결 방법이 아니라, ‘나는 이랬는데?’ 하는 그들만의 경험들이 자꾸 튀어나온다. 뭐 별거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한 바퀴 뛴 것처럼 스르르 고민의 ‘고’자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반면에 누구나의 인생에서 한 번쯤 떠올려보지 않았을까 싶은 질문들 앞에서는, 보노보노의 긍정적인 말투에서 전해져오는 안심 같은 게 있었다.

 

되고 싶은 걸 어떻게 찾으면 될까요?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게 됩니다.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운 이유는 뭘까요? 일에서 보람이나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건가요? 인생이 두 번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혼은 하는 게 좋을까요?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요?

 

어렴풋하게라도 한 번씩 생각했던 질문들, 어느 날 갑자기 묵직한 무게로 다가와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생각들, 누군가에게 꺼내놓고 말하기 어려워서 주저하기에 더 담게 되는 고민들. 누군가가 들으면 너무 사소하다고, 고민 같지도 않아서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말문을 닫게 될지도 모를... 일상의 그런 많은 고민거리를 보노보노 앞에 풀어놓으니, 고민을 꺼내놓으면서 조금 후련해지고, 보노보노 일당의 만담 같은 상담 시간에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뭣이라? 이거 별거 아니었잖아?!

 

포로리 : 누가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하는 걸까?

보노보노 : 누가?

포로리 : 흐음......

보노보노 : 부모님하고 친구들이?

포로리 : 분명 자기 자신일걸. (17페이지, 인생을 땡땡이 치고 싶어요.)

 

노보노 : 하지만 애 같은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

포로리 : 앗, 그럴지도 몰라.

보노보노 : 행복하다면 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건지 모르는 거 아냐?

포로리 : 오오, 보노보노 예리하네. 다들 뭔가 힘든 일이 있어서 어른이 되는 건가?

보노보노 : 힘든 일이 있으면 왜 어른이 되는 걸까?

포로리 : 힘든 일이란, 자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는 거니까.

(171~172페이지,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건가요?)

 

 

 

 

“좋은 사람들만 고민을 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우리가 하는 고민의 무겁고 가벼움을 떠나서, 고민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얘들의 말에 안심이 된다. 우울하고 슬펐던 순간들이 자리했던 마음 한구석에 편안함이 내려앉는다. 괴로운 생각만 하니 괴롭기만 한 기억이 남는 것 같아서 마음을 조금 바꾸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긍정의 자세가 생긴다. 살면서 겪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대하는 마음을 배웠다고 해야 할까. 슬픔에 익숙해지려면 제대로 슬퍼해야 한다고, 얼버무리지 않고 그냥 달래거나 하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슬픔에 익숙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보노보노와 포로리의 대화에서 진중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결혼하니 다른 게 보인다는 포로리의 누나 도로리의 말로 해결의 답을 대신 전하기도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완벽하지 않아서, 서툴러서 더 마음이 가는 보노보노 상담소에 머물고만 싶다. 문득 이 순간, 엉터리 같은 나의 고민도 하나 던져주면서 답을 듣고 싶기도 하단 말이다.

 

“교복 이후로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어요. 집에서 잠옷으로 입거나 동네 마실 다닐 때 추레한 원피스 입은 거 말고는, 외출용으로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치마였어요. 그런 제가 큰맘 먹고 원피스를 한 벌 샀는데요. 아니 글쎄, 이 원피스 허리가 고무 밴딩으로 되어있는 거예요. ㅠㅠ 그래서인지 살이 쪄서 두꺼운 허리가 더 두드러져 보이더라고요. 거울을 보는데 너무 슬펐어요. 치마 입기를 포기하고 이 원피스를 반품해야 할까요? 아니면 두툼한 허리 도드라지게 그냥 입어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허리 고무줄을 뜯어내고 입어야 할까요? 지금 너무 고민돼서 종일 이 원피스만 보고 있어요...”

 

포로리 : 오오. 그럼 그걸로 해결이네. 토마토를 먹으려면 한 달 전부터 결심한 다음 여러 번 머릿속으로 토마토의 맛과 식감을 떠올린다. 그거야말로 ‘맛있는 음식의 맛’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점점 먹고 싶어지더라도 조금 더 기다리면서 참다가, 한 달 지났을 때 토마토를 먹어본다. 그러면 너무나 신기하게도, ‘마, 맛있다’ !! 그리고 당신은 토마토와 사랑에 빠집니다. (262페이지, 도저히 토마토를 못 먹겠어요.)

 

아마도 보노보노는 이런 답을 줄 것 같다.

니가 이 원피스를 보면서 입고 싶다고 생각하던 처음 그때는 생각해 봐. 뭣 때문에 이 원피스가 입고 싶었어? 그냥 이 원피스의 디자인 그대로 선택했던 거 아냐? 그럼 그냥 입어봐. 입다 보면 튀어나온 뱃살을 보는 것도 둔해질 거고. 혹시 알아? 그 뱃살 보기가 부담스러워서 저절로 다이어트 욕구가 생길지? 그것도 괜찮지 않아? 너 항상 살 빼고 싶어 했잖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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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4-01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노보노 상담소에 물어보고 싶어요 별거 아닌 것도 함께 생각하려고 한다니...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죠 어떤 건 말하기가 참 어렵기도 하네요 누구한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조금 나은 거군요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니...


희선

구단씨 2018-04-02 14:32   좋아요 1 | URL
저도 비슷해요...
이런 저런 걱정에 말하지도 못하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답이 없이 시간만 흘러보내기도 합니다.
근데 또 얘네들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라도 계속 생각하는 게 나은 건가 싶기도 해서 조금 위로가 됩니다. ^^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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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심한 관계였을 것 같다. 서점상과 이름 없는 작가. 굳이 관심두지 않아도 되는 사이. 책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딱 거기까지만인 관계.  아니, 그냥 아무 의미를 두지 않고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책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장사꾼, 책이 필요해 구매하려는 소비자. 무엇이 더 필요한 관계일 수가 없지 않은가.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가 인터넷서점의 창을 열고 책을 주문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책값을 지불하고 서점은 책을 배송해주고. 각자의 목적에 맞게 그 자리에서 요구하거나 책임 의무를 다하면 되는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조금 특이한 관계가 눈길을 끈다. 책 구매로 시작된 단순한(?) 편지가, 어느 순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선물을 주고받는, 애정을 담은 무게를 가지게 된 거다.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다. 정말 이게 가능한 일인 걸까?

 

이름 없는 작가 헬렌은 채링크로스가의 고서점으로 메일을 보낸다. 구매하려는 책 목록을 적어 보내고 책의 재고 여부를 묻는다. 헬렌은 적당한 서점에 금액을 지불하고 의뢰한 책을 배송받는다. 서점상 프랭크는 헬렌이 원하는 책을 찾아주고, 헬렌은 계속 구하는 책을 프랭크에게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주문서와 영수증에 불과할 그들의 편지가 점점 색깔을 달리한다. 헬렌은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식료품을 프랭크의 서점에 보내주고, 프랭크는 헬렌의 선물에 고마워한다. 전쟁 때문에 사람들은 풍요롭지 못했던 시절이다. 프랭크의 가족은 식료품을 배급받으며 생활했고, 헬렌은 미국의 식품 문화를 그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선물을 주고받자고 약속한 건 없다. 누가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다. 점점 그들의 사이에 서점상과 고객이라는 관계 이외의 것이 자리하기 시작한 거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걸까? 저절로 누군가에게 향하는 마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쌓이는 어떤 마음. 혹시나 하는 상상을 했다. 헬렌과 프랭크는 편지로 마음을 쌓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 이런 설정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에서 머문 이야기다. 두 사람의 편지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프랭크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남자라는 게 밝혀진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로맨스가 없다고 해도 아쉽거나 이상할 게 없었다. 이들의 편지에는 오롯이 책이 가득했다. 헬렌이 찾는 책, 그 책을 또 열심히 구하려는 프랭크와 서점 직원들. 한 번씩 오가는 선물에 인사와 답례를 하는 편지들이 또 이어지는 반복. 책으로 시작된 편지에 다른 마음이 끼어들면서 그들의 편지는 더 뜨거워진다. 사람 사이의 온기가 그대로 실려 오는 느낌이다.

 

이런 인연이 가능할 수 있을까 묻고 있다가도, 가능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답에 나의 물음은 우문이 되었다. 새 책이 아닌, 헌책만이 줄 수 있는 감성이 전해진다. 오래된 종이, 헌책 특유의 냄새를 맡는 것만 같다. 클릭 한 번에 결제가 되고 배송이 되는 오늘날의 시스템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감각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갑자기 아날로그 세상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기도 하다. 나 역시 언젠가 오래된 절판본을 애타게 찾았던 경험도 있었기에, 어느 판매자에게 간절한 문의를 한 적도 있었기에, 헬렌과 프랭크 사이의 편지가 더 애틋하다.

 

책에 대한 애정이 바탕에 깔렸고, 그 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서점상과 독자의 이야기. 머릿속으로 그들이 편지를 쓰고, 책을 읽고, 책을 찾아다니는 장면을 수도 없이 그리면 읽게 된다. 책에 대한 로망이나 서가의 먼지가 일으키는 기침 따위 상관없이도, 한 번쯤은 나도 그 안에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책으로 이어지는 어떤 낭만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책이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감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누군가, 채링크로스 84번가를 걷다가 이 서점을 발견하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들어갈 것 같다. 그 책 냄새에 이끌려, 누군가 간절히 찾는 책을 수배하고 있을 서점 직원을 떠올리며...

 

이름 없는 작가와 서점상이 주고받은 편지 묶음에, 페이지 수도 적은 이 책이, 막상 구입한 나도 놀랐을 정도의 분량이었다. 그런데 이 얇은 책이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개정판까지 나오게 되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답정너'였다. 책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애정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오늘날 휴대폰만 열어도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고, 검색 한 번에 그 책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의 편함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래도 퀴퀴한 책 냄새가 주는 무언가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이 알지 않은가. 이 얇은 책이 전하는 감성은 그런 거다. 처음 책을 접하면서 느낀 그 감각을, 그 정서를, 그 애정을 새록새록 하게 만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말이다. 오늘날 사라진 책의 낭만을 찾아가게 하는 이 짧은 순간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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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4-01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과 영국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도 감동을 주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에도 헌책방은 있었을 텐데 헬렌은 영국 책방에 편지를 쓰고 책을 사기도 했네요 편지로 이런저런 말을 나누어서 좋았던 거겠지요 이건 그 시대였기에 할 수 있었겠습니다 여기 실린 편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해도 여기 쌓인 시간은 길지요 긴 시간 동안 마음을 나누다니... 프랭크가 갑자기 죽은 뒤에는 연락이 끊겨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희선

구단씨 2018-04-02 14:35   좋아요 1 | URL
글쵸? ^^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것 자체로도 거리감이 생길 수 있는데,
그렇게 멀리 떨어진 두 나라에서 오가는 편지에 정이 뚝뚝 묻어나서 감동이었어요.
 
간병 살인 - 벼랑 끝에 몰린 가족의 고백
마에다 미키 외 지음, 남궁가윤 옮김 / 시그마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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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입한 보험을 바꿔볼까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문장을 봤다. '100세 시대'라는 말. 보험의 만기를 정하는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 산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100세 시대라는 말이 그리 좋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아직 100세 시대의 절반도 다 살지 않은 내 몸도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 갈 일이 늘어나는데, 오래 산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일까? 아버지 때문에 대학병원부터 요양병원까지 경험해본 시간이 늘어날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래 산다는 건 누구나의 바람이지만, 병을 안고 오래 산다는 건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리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이른바, '무병장수 시대'는 어디까지나 바람에 멈추어 있을 뿐, 현재의 장수 시대는 병을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가족 구성원이 앓는 질병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혹은 치료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꾸준한 진료와 돌봄, 병원비와 생활비가 필요하다. 남들이 볼 때 가볍거나 쉽게 보일지 몰라도 당사자들한테는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을 안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 취재반의 기록인 이 책 『간병 살인』은 가족 중에 환자가 있을 때 간병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 끝에 살인이 일어나고야 마는 사건을 취재했다. 간병을 둘러싼 가족 간의 비극이 그대로 펼쳐진다. 실제 일어난 사건의 취재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의 제도적인 차이는 있다. 하지만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는 비슷했다. 무엇 하나 부정할 수 있는 현실이 없었다. 평균 수명 80세가 넘어가는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무겁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이 오래 살 수 있는 사회는 훌륭한 사회다. 그러나 간병과 무관하게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구든 늙으면 다리와 허리가 약해지거나 병에 걸려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게 된다.

계속 간병을 받으며 긴 노후를 보내는 사람은 상당수에 달했다. 장수 사회는 가족에 의한 간병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225페이지)

 

취재로 만난 대부분의 사람은 고령인 부모나 배우자를 돌보면서 고통을 겪었다. 물론 가족이니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몫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자 한 명을 돌본다는 건, 그것도 전문화된 시설의 24시간 케어가 아니라 집에서 온전히 혼자 돌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능하다고 믿고 시도했던 처음에는 희망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고 점점 힘들어지면서 더는 희망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들(환자나 간병인인 가족)이 다시 찾은 희망은 죽는 거였다. 간병인은 자신이 없을 때 이 환자를 누가 돌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간병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놓고 경제력을 상실하고, 결국 이 상태로는 내일을 기다릴 수 없음을 느꼈을 때 마지막 선택을 한다.

 

고령화 시대에 치매나 다른 중증 질환자는 당연히 늘어나고, 기대수명 역시 늘어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기는 간병 생활은 길어지고, 간병하는 사람의 일상은 사라진다. 점점 간병인의 몸을 파고드는 고통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시게루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다 살해했다. 반백년을 함께 해온 사이였는데, 재택 간병의 고통을 부부애가 이기지는 못했다. 선천성 뇌성마비 아들을 40년 넘게 돌본 요시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요시코의 몸이 더는 아들의 간병을 감당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아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를 찾지 못했던 거다. 오랜 중증 질환을 앓아온 어머니와 동반자살을 시도한 사나에도 그랬다. 취재로 만난 사례들은 모두 비슷했다. 처음부터 간병을 거부한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당신들의 몫이라 여기고, 가족의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며 간병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 간병 생활은 간병인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한 사람도 그런 무너짐을 피해 가지 못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간병 생활의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그때는 정말 정신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와줄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저 혼자 떠안고 있었습니다.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죠." (44페이지)

 

많은 경험자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간병을 시작하면 어찌 됐건 혼자 떠안고 있지 말고, 때로는 적당한 선까지만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간병은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10년, 20년 동안 계속될지도 모른다. (238페이지)

 

일본의 이야기만 같고, 남의 일 같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당장 내일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미 몇 번 병원과 요양병원을 거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면서 이들의 취재가 너무 와 닿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도움을 받을 곳은 없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보호자와 간병의 역할을 같이 해야 했다. 솔직히 처음부터 간병인을 고용하고 싶었지만, 하루 10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가 너무 부담됐다. 병원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간병인을 계속 고용하는데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컸다. 병원비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금액이어서 간병은 가족이 직접 하면서 비용을 절약하고자 했으나, 어느 순간이 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12시간 간병인을 고용하면서 그나마 숨을 쉬고 지냈던 기억이 난다. 요양병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시로 찾아가서 환자와 간호사 사이의 불통을 해결해야 했고,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서 전화벨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요양병원 역시 비용의 부담도 계속됐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간병인의 고충을 그대로 겪은 셈이다. 경제적인 문제도 간병 살인의 원인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간병인의 불면이 심신을 피폐하게 했다는 것이다. 나도 겪었고 가해자가 된 그들도 겪었던 불면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제대로 자지 못하는 잠은 일상을 마비시키는 시작이자 모든 것이 된다. 환자를 감당할 수 없는 신체적인 이유도 큰 이유를 차지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불면은 간병을 부담스럽게 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존재한다.

 

이 책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령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닥친, 절대 무병장수 시대를 맞이할 수 없는 인간의 육체를 안고 살아가고 있기에 분명하게 봐두어야 할 문제들을 언급한다. 그에 빠질 수 없는 간병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문제이기도 하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이기에 심각하다. 순식간에 가족의 가해자가 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만든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처음에야 간병을 잘 할 수 있을 거로 믿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처음 마음먹었던 상태는 변한다. 그런 현실을 피해갈 수 없는 게 또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몸은 힘들어지고, 간병에 할애하는 시간 때문에 경제활동 역시 어려워지므로 경제적인 문제가 당연히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간병의 문제에서 무엇을 알고 현명하게 대해야 하는지 묻는다. 더불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고민거리다. 재택간병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이 이야기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가 어떤 제도로 이런 상황의 불행을 같이 건너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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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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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것은 뭘까. 우리의 하루를 표현하는 단위이자 우리가 느끼는 모든 삶을 채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간을 보고, 정해진 약속이나 일 처리 같은 것도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빨리빨리’를 외치며 뛰고 움직이는 시간이 우리 삶 전체에 깔렸음에도, 시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단 한 번도 궁금한 적이 없었다. 시간과 돈의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기도 하는 일에 저자의 여행 같은 설명이 답을 내놓는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가장 뜻이 많은 단어라는 ‘시간’은 다양한 방면에서 그 의미가 있다.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그렇구나!’ 하는 공감의 끄덕임이 나온다. 역사나 철학에서부터 계속 발전해오는 산업까지, 시간이 개입하지 않은 곳은 없다. 모두 15장으로 나누어 설명한 시간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처음 태양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던 우리가 어떻게 표준시간제를 채택하여 살고 있는지, 산업혁명 후 빠르게 진행된 시간혁명을 이야기한다. 점점 더 정확하게 시간을 알 수 있게 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언급한다. 우리가 항상 인지하지 않았어도 우리 삶 깊숙하게 자리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시간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인간 이외의 존재가 어떻게 시간을 파악하는지도 궁금했던 적이 없었다. 그저 인간보다 덜 진화하거나 다른 동물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시간’을 주제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동물은 시간 개념보다는 본능으로 움직이는 면이 강하다고 한다. 오로지 자기의 감각에 의지해 우리가 아는 시간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무기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인간에게만 적용하는 하루의 계산법 같고, 시간의 활용에 따라 부와 권력의 차이가 생기도 하는 현대의 비즈니스에서도 중요한 존재니까 말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길고 짧은 감각마저 다르게 다가오는 걸 보면, 무기임을 넘어서서 겁이 나는 존재로 다가오기도 한다. 바쁠수록 더 빠르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지 물음에 물음을 더하는 저자의 설명들이 더 가깝게 와 닿는 이유다.

 

우리는 시간이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이 재미있는 상상이라고 여기거나 영화의 단골 소재임을 알고 있다. 혁명기 프랑스에서 시간이 멈추는 일이 그럴듯하게 보였다면 그것은 각관주의와 열정을 위해, 그리고 다른 혁명, 즉 운송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위해 우리가 만들어야만 하는 욕망일 것이다. 기차 한 대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단단하게 만든 믿음이 가는 물건이었다. 시간의 관점에서, 기차는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55페이지)

 

처음부터 시간이 정확하다는 개념은 없었을 것이다. 오차범위도 넓었을 테고, 어디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시간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철도의 발전으로 더욱 정확한 시간의 개념이 생겼다. 철도는 발전하면서 문명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마차가 다하지 못한 시간 절약과 대량 운송으로 점점 교통 기능으로의 자리가 커졌다. 그러다가 보니 더욱 정확한 시간 조정표가 필요했고, 표준시가 만들어졌다. ‘정확하게’라는 말이 무엇인지 더 깊게 자리 잡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 개의 노선을 연결하는 최초의 일반 승객용 철도 시간표는 1839년에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표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중략) 옥스퍼드 지역의 시간이 런던의 시간보다 5분 2초 늦고 브리스톨 지역의 시간이 런던보다 10분, 엑서터 지역의 시간은 14분 늦었다면 열차 승객들은 도착지에서 시곗바늘을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중략) 시간 조정표를 제공하는 마차회사도 간혹 있었지만 대개 신뢰성이 떨어지는 회중시계나 휴대용 시계를 보고 시간차를 대강 짐작했었다. 그러다가 철도가 도입되면서 여행자들의 시간 개념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정확성’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69~70페이지)

 

사상 최초로 영국 전역에 표준시가 도입되어 철도 회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기차 시간표를 만들었다. (71페이지)

 

정확한 시간의 개념과 확인이 필요하면서도, 시간은 추상적인 존재라는 건 변함없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시간의 모습과 의미를 그렸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바도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여유를 바라지만 현실 속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고, 또 바쁘게 살아가면서 얻어야 할 삶의 필요한 것들을 놓칠 수도 없는 일. 시간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시간에서 멀어질 수도 없는 일상을 살면서 우리가 좀 더 애쓰면서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하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실시간보다 약 0.5초 늦다고 한다. 외부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그 신호를 뇌로 보내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메시지를 뇌가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그 시간차를 교정하고 유동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겠다고 생각한 후 결심을 하고 그 행동을 실행하여 눈으로 보거나 듣기까지는 항상 생각보다 늦다. 따라서 인간은 늘 지금(now)보다 뒤에 있으며 절대 지금을 따라잡지 못한다. (429페이지)

 

시간에 물리적인 의미를 두지 않고, 시간에 속박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우리는 시간에 맞춰 달리고 움직이는 삶을 이어왔다. 저자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시간을 이제는 조금 늦추어도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며, 이제는 그 시간이라는 공을 우리에게 던졌다. 분침 없는 시계의 아이디어를 언급하면서, 일상의 속도를 늦추는 일을 넌지시 추천하는 것만 같다. 지금처럼 경쟁에 둘러싸여 시간을 걷는 게 아니라 뛰는 것처럼 살아온 사람에게 느긋한 쟁기질은 무서운 일일지도 모른다. 삶을 놓아버리는 선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내려놓고 우리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면 저자가 말하는 ‘도시를 떠나 밭에서 쟁기질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걷는 일을 떠올릴 수 있다. 문명이 우리에게 주는 온갖 방식의 편리함과 발전된 세상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 이면의 단점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의 역사’가 아닌 ‘시간의 관계와 감각’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무거울 것 같은 주제를 흥미롭게 이끌면서 시간에 대한 편견을 사그라지게 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저자가 들려주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계속되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 속 사건들이 아닌 인간의 삶에 초점이 맞춰있다. 인간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시간의 영향이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흐르던 시간과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 묻는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분침 없는 시계의 아이디어가 언급되었던 그 순간 이미 우리는 답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직진으로 달리던 삶 옆에 다른 시간의 삶도 있음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심스레 말하는 책이다. 과거로 가려고 애쓰는 시간의 감각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저자의 권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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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3-14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인간만(?)이 하는 추상적 개념이기도 하지만 시공간이 같이 출현했고 같이 움직인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그리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그것도 좀 신기해요. 이 책 궁금했는데 시간 다루는 다른 책들과 큰 변별점은 안 느껴지는군요. 전개 내용보면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랑도 좀 겹치는 듯도 보이고.
시간(관리까지)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이런 대중서가 꾸준히 나오는가 싶습니다.

구단씨 2018-03-15 13:02   좋아요 0 | URL
시간의 개념을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서 보는 듯했어요.
제가 읽기에는 뭔가 에세이 분위기가 강하더라고요. ^^
 
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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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이어서가 아니라, 수록된 작품 중에 가장 먼저 읽어서가 아니라, 이기호여서가 아니라... 수록된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호감으로 남아있지만, 이기호의 소설 「한정희와 나」는 굉장히 잘 읽히면서도 결말 부분에 다다르면 희미하게 남아있던 불꽃이 스르르 꺼지는 기분이 들어서 기억에서 쉽게 잊히지 못할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화자인 '나'의 집에 같이 살게 된 초등학교 6학년 한정희를 바라보면서,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나는 타인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계속 묻게 된다.

 

그저 입 하나 보탠, 그것도 겨우(?)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인데 뭐가 어려울까 싶었던 화자의 안일함은, 그가 몰랐던 정희의 일상이 드러나면서 심경이 복잡해진다. 화자를 고모부라고 부를 정도로 잘 지냈던 사이였는데, 결국에는 정희가 '학폭위'에 회부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른다. 화자의 감정도 요동친다. 이해는 불이해로 변하고, 안 해도 될 말까지 꺼낸다. 그 정도 악화한 감정에 혼란스러운 건 화자 혼자였나 보다. 정희는 그 사건 이후로도 변하지 않는다. 화자는 더는 정희에게 연민의 감정마저 보낼 수 없음을 안다. 그 기록을 소설로 담아보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웠다. 화자는 자칭 실패한 소설가라고 말한다.

 

그는 왜 실패한 소설가로 남았을까? 막상 소설을 읽으면서는 잘 보이지 않던 게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조금씩 보인다. 소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거였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에게 현실의 실제는 소설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정희와의 시간이 그가 쓰려는 소설의 바탕이 되지 않더라도 분명하게 찾아보고 싶은 게 있을 터였다. 소설에 녹아들 수 있는 인간의 한 감정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것들. 그는 끝내 정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정희를 보듬고 있던 연민마저 사라진 게 화자가 기억하는 정희의 마지막이다. 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그가 쓰려는 소설의 완성을 이루지 못함을 동시에 말한다. 그까짓 한 사람의 이해쯤이야 못해도 그만,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나와 관계한 모든 이들의 감정을 다 보듬을 수도 없다. 다만, 이해 언저리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못할 뿐이다. 그게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가는 여기서 한 가지 더 나아가려고 애쓰다가 실패한 것이다. 그가 글로 풀어낼 이야기는, 내가 이해 못하고 포기한 지점에서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깊게 보면서, 내가 알 수 없는 타인의 마음 한 가닥을 더 봐야만 쓸 수 있는 게 소설이 아니었을까? 화자가 실패한 소설가라고 말했을 때 그 역시 나와 똑같은 시선을 가진 인간이구나 싶으면서도, 그가 써야만 했던 소설의 완성(어쩌면 시작 자체를 못 했을지도 모르지만)을 이뤄내지 못함을 안타까워해야 했다. 그동안 만난 이기호의 소설이 웃음이 절로 나는 유쾌함이었다면, 「한정희와 나」는 웃음기를 뺀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소설이었다. 우리가 타인에게 가려고 아무리 애써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우리가 타인에게 갖는 많은 감정의 한계를 이렇게 드러낸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이므로, 우리 사는 세상 흘러가는 게 그러하므로.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노력하면서, 타인에 대한 감정이 미완으로 끝나는 것을 멈추지 않고 반복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므로.

 

수상작 외의 작품들 역시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오늘을 살면서 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에 답하려고 애쓰는 작품들이다.

구병모의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는 만삭의 몸으로 시골로 이사한 정주의 시선을 보여준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착각들을 그대로 확인한 기분이다. 간섭과 관심의 구분을 짓지 못하고 당신들의 오지랖을 관심이라 착각하는 사람들, 외부인의 편견으로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한국 사회의 시선을 확인한다. 최은영의 「601, 602」 역시 폭력의 침묵에 방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담았다. 옆집 친구 효진과 그의 가족의 행태를 보면서 화자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세상을 배운다. 하지만 그게 옆집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집에서도 벌어지는 고요한 폭력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침묵의 의미를 읽는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드러내서는 안 될 문 안의 일이라는 것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 외에도 편혜영의 「개의 밤」, 기준영의 「마켓」, 김애란의 「가리는 손」, 박민정의 「바비의 분위기」, 김경욱의 「고양이를 위한 만찬」 같은 작품들도 하나같이 상처와 아픔, 실패의 이야기들이다. 다문화 가정의 편견이나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책임에서 벗어날 방법만 기를 쓰고 찾아다니는 가해자의 잔인함, 이민자 삶의 힘겨움 같은 일들. 그중에서도 특히 권여선의 「손톱」은 시차를 두고 사라진 가족 대신에 빚을 갚아가면서 사는 20대 초반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상처가 깊은 손톱을 제대로 치료하지도 못하고 상처를 키워가면서 하루를 버틴다. 돈 얼마 더 받는다고 옮긴 직장에서의 장점은 찾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 번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만찬으로 즐기는 인생에 낫지 않는 손톱의 상처는 더 깊어지기만 한다.

 

진통제 기운이 떨어졌는지 손톱이 쿡쿡 쑤신다. 약을 먹고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 밥도 짓고 국도 끓여야 하는데 소희는 가만히 앉아 있다. 어디서 내릴지 어느 역에서 헤어질지 소희는 알지 못한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른다. 밖은 어두워지고 휴일이 지나가는데 소희는 조금만, 조금만, 하며 앉아 있다. (145페이지, 손톱)

 

너무나 고단한 삶을 감당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폭발지점을 만나게 된다. 「손톱」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외치던 목소리는 아마도 그 폭발지점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또 그런 터트림은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눈앞의 주어진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야만 하는 일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저지른 일을 차마 말하지 못한 엄마도, 이혼을 준비하는 여자의 현실도, 짖지 않는 개처럼 침묵해야만 하는 가해자의 대리인도, 글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도... 지금의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계속 안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삶이 실패였다면, 그 실패를 벗어날 다른 방법으로 시선을 돌려야만 하니까. 이 무력감이 되돌려줄 '더 나음'을 기다리며 사는 게 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기다림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함에, 더 심한 상처에, 더 깊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

 

이들의 이야기에, 격한 현실의 공감과 실패의 두려움과 상처의 고통을 동시에 느낀다. 뭔가 이해받는 느낌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나와 네가 같이 겪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위로가 된다고 해도 될까. 그렇다고 타인의 고통에 나를 위로하려는 건 아니다. 이 순간을 사는 우리가 겪는 너무 닮은 일들에 누군가의 서툰 위로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거다. 아마도 현실을 사는 모습이 전하는 무언의 이해가 우리 사이를 더 가깝게 했는지도... 솔직한 뭔가가 그곳(소설 속)에서 이곳(현실)으로 넘어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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