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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살인 - 벼랑 끝에 몰린 가족의 고백
마에다 미키 외 지음, 남궁가윤 옮김 / 시그마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지난해, 가입한 보험을 바꿔볼까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문장을 봤다. '100세 시대'라는 말. 보험의 만기를 정하는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 산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100세 시대라는 말이 그리 좋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아직 100세 시대의 절반도 다 살지 않은 내 몸도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 갈 일이 늘어나는데, 오래 산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일까? 아버지 때문에 대학병원부터 요양병원까지 경험해본 시간이 늘어날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래 산다는 건 누구나의 바람이지만, 병을 안고 오래 산다는 건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리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이른바, '무병장수 시대'는 어디까지나 바람에 멈추어 있을 뿐, 현재의 장수 시대는 병을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가족 구성원이 앓는 질병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혹은 치료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꾸준한 진료와 돌봄, 병원비와 생활비가 필요하다. 남들이 볼 때 가볍거나 쉽게 보일지 몰라도 당사자들한테는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을 안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 취재반의 기록인 이 책 『간병 살인』은 가족 중에 환자가 있을 때 간병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 끝에 살인이 일어나고야 마는 사건을 취재했다. 간병을 둘러싼 가족 간의 비극이 그대로 펼쳐진다. 실제 일어난 사건의 취재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의 제도적인 차이는 있다. 하지만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는 비슷했다. 무엇 하나 부정할 수 있는 현실이 없었다. 평균 수명 80세가 넘어가는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무겁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이 오래 살 수 있는 사회는 훌륭한 사회다. 그러나 간병과 무관하게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구든 늙으면 다리와 허리가 약해지거나 병에 걸려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게 된다.
계속 간병을 받으며 긴 노후를 보내는 사람은 상당수에 달했다. 장수 사회는 가족에 의한 간병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225페이지)
취재로 만난 대부분의 사람은 고령인 부모나 배우자를 돌보면서 고통을 겪었다. 물론 가족이니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몫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자 한 명을 돌본다는 건, 그것도 전문화된 시설의 24시간 케어가 아니라 집에서 온전히 혼자 돌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능하다고 믿고 시도했던 처음에는 희망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고 점점 힘들어지면서 더는 희망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들(환자나 간병인인 가족)이 다시 찾은 희망은 죽는 거였다. 간병인은 자신이 없을 때 이 환자를 누가 돌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간병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놓고 경제력을 상실하고, 결국 이 상태로는 내일을 기다릴 수 없음을 느꼈을 때 마지막 선택을 한다.
고령화 시대에 치매나 다른 중증 질환자는 당연히 늘어나고, 기대수명 역시 늘어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기는 간병 생활은 길어지고, 간병하는 사람의 일상은 사라진다. 점점 간병인의 몸을 파고드는 고통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시게루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다 살해했다. 반백년을 함께 해온 사이였는데, 재택 간병의 고통을 부부애가 이기지는 못했다. 선천성 뇌성마비 아들을 40년 넘게 돌본 요시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요시코의 몸이 더는 아들의 간병을 감당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아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를 찾지 못했던 거다. 오랜 중증 질환을 앓아온 어머니와 동반자살을 시도한 사나에도 그랬다. 취재로 만난 사례들은 모두 비슷했다. 처음부터 간병을 거부한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당신들의 몫이라 여기고, 가족의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며 간병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 간병 생활은 간병인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한 사람도 그런 무너짐을 피해 가지 못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간병 생활의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그때는 정말 정신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와줄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저 혼자 떠안고 있었습니다.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죠." (44페이지)
많은 경험자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간병을 시작하면 어찌 됐건 혼자 떠안고 있지 말고, 때로는 적당한 선까지만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간병은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10년, 20년 동안 계속될지도 모른다. (238페이지)
일본의 이야기만 같고, 남의 일 같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당장 내일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미 몇 번 병원과 요양병원을 거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면서 이들의 취재가 너무 와 닿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도움을 받을 곳은 없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보호자와 간병의 역할을 같이 해야 했다. 솔직히 처음부터 간병인을 고용하고 싶었지만, 하루 10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가 너무 부담됐다. 병원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간병인을 계속 고용하는데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컸다. 병원비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금액이어서 간병은 가족이 직접 하면서 비용을 절약하고자 했으나, 어느 순간이 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12시간 간병인을 고용하면서 그나마 숨을 쉬고 지냈던 기억이 난다. 요양병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시로 찾아가서 환자와 간호사 사이의 불통을 해결해야 했고,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서 전화벨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요양병원 역시 비용의 부담도 계속됐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간병인의 고충을 그대로 겪은 셈이다. 경제적인 문제도 간병 살인의 원인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간병인의 불면이 심신을 피폐하게 했다는 것이다. 나도 겪었고 가해자가 된 그들도 겪었던 불면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제대로 자지 못하는 잠은 일상을 마비시키는 시작이자 모든 것이 된다. 환자를 감당할 수 없는 신체적인 이유도 큰 이유를 차지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불면은 간병을 부담스럽게 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존재한다.
이 책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령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닥친, 절대 무병장수 시대를 맞이할 수 없는 인간의 육체를 안고 살아가고 있기에 분명하게 봐두어야 할 문제들을 언급한다. 그에 빠질 수 없는 간병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문제이기도 하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이기에 심각하다. 순식간에 가족의 가해자가 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만든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처음에야 간병을 잘 할 수 있을 거로 믿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처음 마음먹었던 상태는 변한다. 그런 현실을 피해갈 수 없는 게 또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몸은 힘들어지고, 간병에 할애하는 시간 때문에 경제활동 역시 어려워지므로 경제적인 문제가 당연히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간병의 문제에서 무엇을 알고 현명하게 대해야 하는지 묻는다. 더불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고민거리다. 재택간병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이 이야기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가 어떤 제도로 이런 상황의 불행을 같이 건너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