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백 점 대작전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57
정연철 지음, 송효정 그림 / 시공주니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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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생은 여덟 살이 아니다. 생애 최초로 학교-배우기 위한 곳에 가는 존재라면 그가 여든이 넘었든, 이주민이든 모두 입학생이다. 아주 단순한 상식인데 이 작품은 그동안 우리가 좀 진지했다고 말하는 동화여서 반갑다.

학교로부터, 앎으로부터 배제되면서 할머니가 된 그녀들의 뒤늦은 입학은 또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가. 공부라고 대순가. 할머니 학생들은 공부라는 게 설거지하고 일하는 것보다 특별히 좋을 것도 없다는 태도다. 1, 백점을 향해 바짝 몰두해있는 어린 학생들의 딱딱한 긴장이 과자 부스러지듯 깨지는 것 같은 통쾌가 즐겁다.

비어가는 농촌마을, 늙어가는 마을 공동체, 이주민으로 간신히 이어지는 농촌의 세대 등 그 바탕에 깔린 현실은 제법 갑갑하다. 그런 저간의 현실이 엄연하지만 폐교의 쓸쓸함이 뭔가라는 듯 늙은 입학생들의 느긋함, 그것을 받아주는 학교(권위)의 여유, 어린 동무들의 우정과 불편을 발랄한 언어에 실어 날려버렸다. 이렇다보니 오랜만에 생동감 있는 농촌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늙은 입학생들의 친구로 등장하는 어린 동무 종달이와 지용이의 이중 구도가 단순해보이지만 두 인물을 갈등으로 대립시키지 않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문화상품권이라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되 개성에 맡기며 같은 상황, 다른 대처로 개별적 주체로 만들었다.

두 아이의 노력과 함께 반응을 보이는 종달이 할머니와 호호할머니의 변화 아닌 변화도 흥미롭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는 새벽어둠아침동산이슬이라는 글자가 궁금했어요.”(75)라는 문장은 마치 시와 같아서 채워 넣기 위해 상상할 행간이 넓다.

글자를 안다는 것의 경이로움에 눈뜨는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시적인 순간이라는 것. 사랑스러운 장면이다. 거기에 그림책을 선물하는 이장님의 센스와 눈물을 흘리면서 호호 웃는 호호 할머니의 모습이 감동적인 것은 너무 오래 미뤄두고 모른척한 한 존재에 대한 뒤늦은 보상이며 권리 회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시험을 못 본들 대수겠나.

호호 할머니와 리듬을 맞추며 이야기의 흥을 한껏 돋우는 종달이 할머니, 그러니까 최갑순 할머니도 한 매력 한다. 생긴 것이 다르듯 공부에 대한 반응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지만 이 작품이 놓치지 않는 핵심은 두 할머니의 빼앗긴 욕망이며 오랜 간절이며 지금은 그것조차 다 넘긴 여유다.

할머니 입학생이라는 사건의 반전 배치, 한껏 발랄한 언어, 아이다움의 조바심과 어른다움의 느긋함이 구부러지며 내는 울림, 본질에 닿아있는 욕망, 그걸 다스릴 줄 아는 나이, 학교라는 권위적인 공간이 품어주는 소외된 자들, 구세대와 신세대의 자연스러운 만남 등이 모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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