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실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80
이나영 지음, 이수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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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이 짜 올리는 뜨개는 어떤 무늬인가. 실과 관련한 동서양의 풍속과 신화(서양신화 속 실은 믿음, 동양풍속에서 실은 생명 혹은 인연)를 안뜨기로 해서 은결, 강우, 민서의 현재적 삶을 겉뜨기로 교차시키면서 용기와 화해라는 무늬를 짠다. 악연으로 헤어진 친구에게는 목도리가, 곧 태어날 동생에게는 조끼가 되었다.

붉다에는 각각 생명과 인연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어서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성적이다. 뜨개질하는 남자도 있으나 뜨개는 좀 더 빠르게 여성과 이어지고 여기에 따뜻하고 상냥한 새엄마의 임신, 친엄마가 짜다 만 무언가, 새엄마가 끓여주는 꽃잎 생강차, 강우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는 따뜻한 벽난로 앞, 뜨개 하는 강우, 밥하는 아이 민서 같은 이미지는 여성성의 분위기를 짜 넣는다. 여성성은 부정적인 남성성에 의해 부각된다. 특히 낚시 광이며 성공지향적인 강우 아빠의 폭력성, 남편에게 굴복하는 강우 엄마의 무기력은 가장을 중심으로 한 현대 핵가족의 가족 계급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가족 계급 구조 속에서 가장 약자가 강우이며 강우가 떠야 할 과제는 아빠를 극복하는 것. 아빠에게 가기 위해 우선 찬혁이를 만나 목도리를 전해주며 전하는 미안하다는 용기 있는 화해였다.

부족할 것 없는 은별이가 떠안은 과제는 새엄마의 딸이 되는 것. 뚱뚱한 은별이가 새엄마를 닮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다이어트다. 이것은 사실 죽은 엄마와 비로소 이별하는 것이며 새로 올 가족-동생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으로 작용할 것이다. 친엄마가 뜨다 만 조끼는 은별이의 조끼였으나 은별이가 완성한 조끼는 곧 태어날 동생 것으로 완성되는 것은 헤어지고 만나는 인연의 연결코들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의젓한 딸이겠지만 나로서는 가장 불행한 인물이 민서라고 하겠다. 아침저녁을 차려 부모의 출퇴근을 돕는 미성년 딸을 어떻게 봐야하나. 민서의 과제는 오해로 멀어진 뚱스의 은별과 재결합하는 것.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고 선언하는 것. 그러나 엄마의 다짐은 저녁이 되기도 전에 바뀔 것 같아 불길하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 별 저항없이 쌀을 씻고 된장국을 끓일 민서가 떠오르니. 부모를 먹이기 위해 당연한 듯 밥을 하는 열세 살 민서를 효로 포장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열세 살 민서의 과제여서도 안 되지 않나.

뜨개라는 행위는 풀었다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결국 완성된 형태를 향해 멈출 수 없다는 확정이다. 이야기와 뜨개는 구조가 닮았다. 각자의 뜨개가 완성되듯이 이야기도 아퀴를 지었다. 당연하다는 듯 단정하게!

뜨개질이라는 행위에 내포된 여러 겹의 의미, 실과 관련된 동서양의 풍속과 신화, ‘붉다에 담긴 상징성 등이 결국 인연과 화해라는 무늬로 완성되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도들이 반갑다.

그러나 이것이 손의 감각과 힘 조절, 뜨는 사람의 감정과 자세까지 녹아 있어서 세상에 하나 뿐인 조끼나 목도리가 되는 것처럼 개성적인 작품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짜기 위해 선택한 무늬들이 낯익음과 새로움 사이에서 새로운 무늬를 상상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착한 새엄마, 가부장적인 강우아빠와 순종적인 강우 엄마는 낯익고 쌍으로 철없는 민서 부모, 뜨개질하는 강우, 밥하는 민서가 주는 배반의 쾌감도 사실은 이면의 드러냄이라는 패턴으로 익숙하다. 단 하나의 작품, 유일한 뜨개(뜨갯것)를 위해 풀고 다시 짜는 일의 반복은 글쓰기나 뜨개질이나 같은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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