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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의 선택 - 제17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70
김태호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인간 중심적인 과학의 눈으로 볼 때 연애하는 개, 사람과 동거하는 모기, 말하는 나리꽃, 간을 갈구하는 용왕, 사람으로 변신하는 쥐는 어불성설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과학의 잣대에 따른 것이며 신화의 눈은 존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개나 모기, 꽃으로 범주화 하지 않고 연애하는 개와 사람과 동거하는 모기, 말하는 나리꽃으로 구체화된 대상은 과학이 가려놓은 또 다른 세계다. 김태호의 작가적 태도는 이 세계의 드러냄에 있는 듯 보인다.
『제후의 선택』도 독자를 강타하는 한 방의 위력은 여전하다. 대개는 인간의 눈-기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한 독자들이 이 펀치를 맞고 휘청할 것이다.
변치 않은 듯 약간의 변화로 반가웠던 것은 그의 목소리가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 유머가 부족한가 싶었지만 통쾌하지 않을 뿐,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강렬해서였지 사람의 일에도 관심이 깊음을 알겠다. 옛이야기를 변주하되 현재의 이야기를 넣음으로서 연속성을 유지하는 변주도 의외의 재미였다. 그러니까 이 작품집은 그의 관심사와 표현 가능성의 지도 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혼나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그가 묻고 있는 존재의 이유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내게는 중요한데, 신화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가 묻고 있는 것은 삶의 리얼리티, 모든 존재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그가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불편했던 까닭은 인간의 눈에 대한 맹신과 맹목에 회초리를 들이대고, 그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자가 나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이 모든 존재에게 위협의 근원지라는 인식, 인간의 맹독성, 폭력성, 이기심은 인간이 다른 종에게 저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 자신에게도 가해지므로 더 위험하다. 그들은 늘 약한 자, 장애가 있는 자, 벌거벗은 자, 아이들, 끝내는 가장 비극적인 방향인 자기 자식을 향한다.
그럼에도 존재해야 할 이유를 되묻고 그런 존재조차 품어야하는 불가사의한 존재의 의미를 밀고 나가는 것, 어렵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김태호의 작가적 태도와 방향을 믿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 될 것 같다. 약간의 의심과 주제의식에 치우친 것 같아 불편했던 독자의 심기가 작가에 대한 기대와 신뢰로 전환되는 지점이 여기다. 그러니까, “사실, 아토인은 당신들과 함께 사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지구인이 또 다른 행성을 찾아 헤매다 우주에서 사라져 가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습니다. 이 넓은 우주에 지구인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꽃지뢰」, 157쪽)라고 말하는 여기.
그가 과학의 눈을 버리고 신화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그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도구를 사용해 물건을 만드는 브리꼴뢰르가 된다. 「나목이」처럼 과잉이 되기도 하지만 「나리꽃은 지지 않는다」처럼 아름다운 환상이 연출되기도 한다. 아마 인간의 눈이 아닌 다른 눈으로 세상 보기를 가장 잘 하는 작가가 현재로서는 김태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하니. 거기에 삶을 들여다보는 깊이(특히 「구멍 난 손」은 힘 있는 문장과 함께 인식의 깊이가 주는 위로가 인상적이다.)까지 확보했으니 흔한 말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가 된 것일까.
시의 압축성은 한 가지 정서로 모아지면서 시의 심장되기로 이어지는데 김태호 작품의 힘 또한 작품의 심장, 즉 주제가 선명하다는 것이다. 주제 의식의 과잉은 자칫 독자를 가르치는 훈육의 길로 들어설 위험도 있고 불편함의 또 다른 근원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무용한 것이 문학의 쓰임(김현)이라면 과한 주제의식이 책 읽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을 덜어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건 이 작품집에 대해서만큼은 애써 찾은 티끌임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