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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쌀벌레야 - 제3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 ㅣ 문학동네 동시집 39
주미경 지음, 서현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주미경의 첫 시집 『나 쌀벌레야』는 전해오는 이야기의 채록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그 새로 듣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마늘이 꼭 끌어안게 된 이야기, 욕쟁이가 된 노루, 개구리를 부러워한 미꾸라지, 가위에 얽힌 이야기, 뱀이 된 사연 등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읽다보면 마치 그가 천일 동안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던 ‘세헤라자데’인 것만 같다. 이 얘기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전하는 말법은 익숙해서 마치 오래된 이야기인 듯 가볍게 스며든다.
짧거나 길거나 그에게 시의 형식이 주는 부담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주미경은 이야기꾼의 기질이 다분한데 이야기가 재미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그의 상상력은 탄력적이어서 때로는 작은 세상을 깊이 상상하고 때로는 하늘을 가로지르거나 썰기도 할 만큼 활달하다.
첫 시집인 만큼 다양한 시적 모색의 흔적이 담겨있는 시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시인이 세상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빈 땅을 보면/노는 땅 아깝다”고 하는 것은 알뜰함이 아니라 그에게는 사람의 욕심으로 인식된다.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한 해 놀게 두자”는 말이 심상치 않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느끼고 있는 어떤 피로감 때문일 것이다. 놀면 안 되고, 개발은 필수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의 삶은 아이나 어른이 다르지 않다. 그러지 말자고 뭔가 더 하려는 ‘맘’도 두지 말자는 말은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가 되는 말이다. 특히 자연스럽게 그냥 놀게 두자는 말이 필요한 존재는 이 땅의 아이들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권위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자존심이 아닐까.
숲을 통째로 자를 듯이 날아와/나뭇가지에 앉으면서/스윽 칼집에 칼을 집어넣은/솔개 장군/휘 둘러보며/자, 나를 따르겠느냐/그랬더니/다람쥐도/뱁새도/한칼에/흥!
-「흥!」 전문
권위와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고 내 인생 내 주장 대로 살겠다는 다람쥐와 뱁새의 저 단호한 한칼이 몹시도 통쾌하다. 솔개 장군과 다람쥐, 뱁새의 관계는 다양한 대입이 가능한 조합이다. 이 짧은 시로부터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각자가 처한 사정에 맞게 각자의 얘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첫 시집은 시인에게도 기쁘고 흥분되는 일이겠지만 독자도 똑같은 심정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