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괜찮아, 야옹
김미혜 지음, 강지연 그림 / 창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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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시인이 꽃과 해피와 새를 사랑하여 그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는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오랜만에 나온 이번 시집에서도 그러한 시인의 개성은 여전하다. 그가 찾고 불러내는 꽃들은 더욱 야생에 가 있고 새들은 고유명사로 호출된다. 류선열 시인이 냉이꽃이건 산수유건 노란꽃이라 하고 피라미건 배가사리건 그냥 물고기라고만 부르는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자고 했던 다짐이 김미혜 시인에게는 현재형이다. 이렇게 그가 부르는 개불알꽃 때문에, 해피를 기르면서 생기는 얘기들로 인해 일상의 한쪽이 환하고 따뜻하다.

그러나 우리가 특히 눈여겨 봐야하는 시들은 2부와 3부에 실린 시들이다. 시인이 먼저 말했듯이 불편하고 마음을 힘들게 하거나 거북한말들이다. 그 말을 하는 목소리는 더욱 우렁우렁해졌다. 이 시들은 대부분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 이야기다. 유강희 시인의 시 족제비처럼 동물이 인간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우발적 사고와 치밀하고 잔인한 계획 살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다. 김미혜 시인은 계획된 동물 학대 현실에 대해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 잔인한 현실을 견디고 끝내 시로 형상화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그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로서 그 현실의 밑까지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시인은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것을 견디고 나왔기에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시를 건져 올릴 수 있었다고 본다.

 

두드려 맞고 기절한 너구리/잠시 정신이 돌아와/제 털가죽이 벗겨지는 걸/벌룩벌룩 붉은 몸이 뛰는 걸/제 눈으로 보다가/몽둥이로 다시 두드려 맞고/정신을 잃었어.//철창에 갇힌 너구리들이/두 눈을 뜨고/이걸 다 보았어.//어헝/어헝/어허헝//내 겨울 옷 모자 끝에 달린 털은/어디에서 온 거야?

-멍텅구리전문

 

확실히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동시와 다르고 낯설다. 너구리 털가죽을 취하는 저 장면은 어떤 과장도 없고 제 옷에 달린 털을 의심하는 저 목소리는 아이와 어른이 다르지 않다. ‘벌룩벌룩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표현하기 힘든 말이다.

관광 목적으로 길들여지는 코끼리, 가장 맛있는 요리가 되기 위해 끔찍한 학대를 받으며 사육되는 거위, 산 채로 털가죽이 벗겨지는 너구리, 너무나 쉽게 길 죽음을 당하는 두꺼비, 날아오를 공간이 없어 유리창에 부딪히는 새, 부실공사와 책임 떠넘기기, 그 모든 것의 종합적 결과인 세월호 까지. 그의 시가 다루는 사건은 대강의 말만 들어도 마음이 사나워져서차라리 외면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이미 짐작하고 있듯이 본질은 돈에 대한 욕망이다. 시인은 그런 인간을 향해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라고 에두르지 않고 말해버린다. 이것이 한손에는 예쁜 꽃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세상을 향한 통렬한 외침을 들고 김미혜의 동시가 하는 말들이다.

인용한 동시를 비롯해 현실비판적인 동시는 조금은 낯설고 망설여왔던 정서이다. 그의 시가 나아가는 방향이 모험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시 창작 작업이 기존의 동시에 대한 균열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가 시로만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동시가 다루는 현실은 어린이에 대한 현실이기도 하지만 어린이를 비롯해 우리가 살고 있는 좀 더 넓은 의미로서의 현실이기도 하다. 감상자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목격자로서의 시적 주체, 남호섭의 시적 작업만큼 강렬한 또 하나의 문제적 모험은 이렇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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