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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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나는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여 오랫동안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열등감에 빠져 있어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한 것인가.

심리훈습에세이라는 낯선 이름표를 단 김형경의 <만가지 행동>을 읽고 내가 얻은 결론은 후자인 것 같다. 마음이라는 것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또한 분명하지 않다. 행동대로 하면 되는가 했는데 실천이란 그 마지막 단계다. 누구나 알되 실천하지 못하는 한계와 만나게 되어 있다. 이 책은 그녀가 앞서 쓴 심리에세이 완결편인데 산 정상을 앞두고 마지막 힘을 써야 하는 것 만큼 큰 고비로 다가왔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정신분석에 대해 이미 가진 지식이 있는 사람한테 해당한다. 즉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실천의 방법은 너무 높이 있는 것 같고, 나는 아직 내 마음 조차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다. 그 사이 몇 년이 흘렀는데,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나는 ‘살았는가, 살아졌는가’. 이런 반응 뒤에 또 허겁지겁 이것저것 말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밑줄을 그으며 오래 새기고 싶은 말들이 많다. 위로를 받을 만한 조언들도 많다. 프로이트와 융, 예수와 부처, 혹은 요가수행과 노자, 장자, 그리고 수많은 여행에서 그녀가 경험한 내적인 사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가능해보이지 않는다.

지금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에서 맺어진 결과 혹은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오랜 훈습 과정을 겪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과정이 어디 쉬이 나오는 것이던가.

이건 분명 ‘저항’의 마음인 것 같다. “흠, 당신은 이토록 많은 공부와 여행,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인류에게 성인으로 받들어지는 사람들이 한 말의 본질에 다가갔군요. 그런데 오늘도 내 마음이 왜 이런지도 모른채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기회가 전혀 없잖아요. 그 사람들은 몰라서 행복할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차라리 마음이고 뭐고 그런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죠 뭐. 그럴 수 있다면. 문제는 그런 사람들과 난 좀 달라 하는 저 같은 사람은요, 도무지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쑥대밭이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지 알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하나요? 혼자 책읽고 공부하는 것도 제자리고요. 여행은 꿈도 못꾸지요.” 이런 말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있다.

늘 이랬던 것 같다. 당신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마음 밑바닥에는 열등감이 자리했다. 누가 나 같은 사람의 말이나 마음에 관심을 두겠는가 하는 마음 안에는 인정받고 지지 받고 싶은 어린 내가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 속에는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는 마음도 있지만 낮은 자존감은 그 마음 조차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긋지긋하게 찐득허니 자라지도 않고 딱 그만큼으로.

김형경은 원인을 어려서 부모에게 사랑과 지지와 인정을 받지 못한 것에서 찾는다. 아마 내가 또다시 울고 말았던 대목이 여기쯤이었다. 친정 엄마와 가족에게는 단 한번도 내색해보지 못했던 깊은 우물 속 자갈처럼 분명한 마음의 돌. 확실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내 부모의 처지 또한 가엽다는 것이 내가 조금 변한 부분이다.

책의 어느 대목 쯤에 안 좋은 상황이 3대쯤 세습되면 그 3대 누군가에게 정신병증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몰래 안도의 숨을 내 쉰 것은 내 부모가 열등감을 물려주었으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더 나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과 나는 내 아이에게는 절대 이것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십 년이 흘러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의 원인을 안 것은 꽤 지난 일이다. 늘 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좋은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갖게 한 것이 이 열등감이다.

남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마음을 갖는 것 또한 분별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해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음이 생기고 나를 사랑하게 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정답을 알려주듯이 보편적인(그런것이 있을수가 있겠는가마는)행동 강령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은 저자 자신이 훈습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라 그것을 나에게 적용해도 되는 지 의문이 생기고 말았다. 그 전의 책에서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고 얻은 결론은 처음부터 다시였다.

이미 김형경은 정신분석을 끝내고 어느 단계에 도달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녀는 독서모임을 통해 분석가 혹은 치료자의 위치에 서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그 단계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다. 어느 위치, 어느 단계는 꿈도 못꾸고 다만 현재의 내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알아내서 내게서 끝나게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내 가족이 나를 규정지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그 대가로 누리는 지금의 여행이 즐겁다는 칠십 대 할머니 같은 존재감을 획득하고 싶은 것이다.

정신분석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대상이 신이라는 결론에 동의하면서 특정 종교가 아닌 일반적이 종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아주 소박하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인정하는 것,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래도 된다는 것, 좋은 사람 페르소나에 억압되어 있는 자유 의지를 이제 꺼내어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도 된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만가지 행동>을 읽으며 프로이트나 융, 예수, 부처, 노자, 인도의 수행자 같은 대상들을 걷어 내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기대 내 마음을 들여다 볼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책과 나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그들을 다 알아야 하는가라는 저항의 마음이 책을 다 읽을 즈음에 가서야 이런 마음으로 바뀌었다. 즉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이기를 한 것이다.

가장 소중한 거둠은 유효기간이 또 언제가 될 지는 몰라도 마음과 접속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마음의 변화에 집중하고 묻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위로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전이와 역전이가 일으키는 소란스러움 혹은 싸움들도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고 힘있게 늙어가기를 희망한다.

내 삶의 결론은 죽음으로 끝날테고 죽음의 순간을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단계를 소망한다.(가장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많은 감정의 입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테지만 <만가지 행동>을 읽는 과정 속에서 생긴 지금의 마음을 기록하는 일에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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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6 14:32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