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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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난 이야기꾼

 

“제게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얼마나 그럴싸하게 하느냐 하는 거예요.” (한겨레신문, 2012. 1.8일자 인터뷰 중에서)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작가는 초고를 쓰고 그 초고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새로이 이야기를 쓴다. 한 장면을 위해 서너 가지의 상황을 만들고 고른다. 철저한 취재는 기본, 부족하면 소설을 쓰다가도 취재를 나가다 보니 보통 2년은 넘게 걸린다. ‘그럴싸하게’라는 말이 좋다.

이 기사를 보면 현재 정유정 작가는 동물과 사람이 같이 전염병에 걸리는 이야기를 쓰고 있고, 내년 쯤이면 그녀의 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설을 앞뒤로 정유정의 소설 세 편을 읽었다.

<내 심장을 쏴라>를 시작으로,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7년의 밤>을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라고 감탄하면서.

작가가 직접 말한 것처럼 일단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그럴싸하다. 이야기가 그럴싸하다는 것은 재미있다는 것이니, 그녀의 소설은 소설을 잘 못 읽는 내가 읽기에도 무척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그녀가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설적 진실’(알라딘 작가 취재)이다. 아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소설적 진실’일 것이다.

일단 그녀가 말하는 독서적 즐거움을 주는 소설은 크게 두 유형이다. 독자의 사고에 어필하는 소설, 정서에 호소하는 소설. 정유정은 자신의 소설은 정서에 호소하는 소설이라고 밝혔다.

두 유형이 어디에서 크게 구별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그녀의 구분에 따르면 나는 독자의 사고에 어필하는 소설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소설 한 편에 거는 기대가 컸고, 나를 한 번에 눈뜨게 하지 못하는 소설에 안달을 하고, 결국은 소설도 제대로 못읽고, 소설이 주는 재미도 놓치고 말았다. 못난 독자를 소설이 주는 재미가 이런 거거든요. 하면서 알려준 그녀에게 먼저 감사를. 또 모국어의 가치에 다시 한번 찬사를.

 

병적인 것의 경계

 

<내 심장을 쏴라>는 탈출과 감금을 반복하다가 끝내 탈출에 성공하는 수리정신병원입원환자 수명과 승민의 이야기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자유로움 혹은 절망, 희망 같은 말을 내내 떠올렸다.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 감금의 기능에 갇혀버린 승민, 수명 또한 부모 없이 보호의 목적이라 했지만 버려진 것만 같았다. 상처 받는 자와 상처 주는 자는 동시성을 갖는다. 병원 밖의 우리들은 그렇지 않은가. 병적인 것의 경계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미쳐버리겠다’는 심정으로 남편을, 아이를 대한 적이 있지 않던가.

이 소설은 영상의 시대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거, 어디서 많이 봐왔던 장면이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그럴싸하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뜻이다. 글을 읽으면서 영화의 장면을 떠올린다는 것은 글이 갖고 있는 힘이 그만큼 세다는 것이다. 평면의 글을 입체의 영상으로 금방 전환시킬 수 있는 것, 이것이 정유정의 소설이 갖는 그럴싸함의 힘이다. 특히 정신병원 내부 묘사는 장르소설이라고 할 만큼 집요하고 정밀하다.

물론 웃기고, 슬프고, 끔찍하고, 무섭고, 재미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읽어보면 알 일.

 

길떠남의 의미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청소년문학상 당선 작품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이기 때문에 성인 독자는 한 발 물러나 있어야 한다.

소설은 시국 사건의 주범으로 쫓기는 친구의 형을 외국으로 탈출시키기 위한 막중한 임무를 전면에 걸었다. 계획은 늘 어긋나고 임무를 수행하는 자는 갖은 고난을 헤치고 끝내 임무를 수행한다. 길에는 예상하지 않았던 동행자가 생기고 이들의 티격태격과 그 강도만큼 가까워지는 여행의 과정을 독자는 함께 한다.

아비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정아, 독자로 애지중지 독불장군으로 큰 승주, 어느날 사라진 아빠를 잊지 못하는 주한은 길고 험난한 여행을 통해 그 어려운 한 고비를 넘기는 것 같다. 이 여행은 남은 인생을 살아야하는 힘을 기르는 스프링캠프, 삶이 180도 바뀌지는 않지만 절망의 끝에서 삶으로 방향을 틀기에는 충분하다. 그 길 또한 힘들고 위험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지옥에서의 탈출

 

<7년의 밤>은 아주 힘들게 읽어야하는 소설이다. 일단 책의 두께가 만만치가 않다. 사건의 얼개는 겹치고 겹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현재와 과거,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과정이 7년에 걸쳐 펼쳐지는데, 그 7년의 시간은 ‘밤’, 막막하고 캄캄하다. 게다가 앞이 안보일 만큼 짙은 안개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댐 주변이 소설의 배경이다.

소설은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잔인한 사람을 보여주기고 하고, 그 잔인한 사람에게 폭행을 당해 죽고 도망치는 딸과 아내를 보여주기도 한다. 추락 직전의 전직 프로야구 포수 출신 남자는 남의 딸을 죽인 살인마가 되고 그 대가로 아내를 잃는다. 열 두 살 아들은 이 폭풍같은 어른들의 세계를 목격하고 결국 희생자가 될 것인지, 이 덫에서 빠져 나갈 것인지 기로에 서있다. 작가의 말처럼 마음 속에 지옥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기가 힘이 들었다. 그들이 이 지옥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소설은 독자의 예감을 때로는 받아들이기도 하고 뒤엎기도 하면서 소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붙든다. 이제 열 아홉이 된 서원이가 과연 악마 이영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영제의 계획대로 같은 날, 죽게 될까?

무엇보다도 서원과 승환이 머무는 등대마을에서 승환과 서원이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의 묘사는 마치 함께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글을 다루는 솜씨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심장을 쏴라>의 정신병원 묘사는 더 생생하다.

 

타인을 연민할 줄 아는 인물

 

쓸쓸하고 두렵고 답답하고 안쓰러운 작품 속 인물들을 만나면서 그나마 정서적으로 마음이 놓이는 것은 <내 심장을 쏴라>의 최기훈 간호사, 정신줄을 놓은 줄 알았지만 인간 본성의 선함을 보여주었던 환자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의 할아버지, <7년의 밤>의 승환과 선수로 등장하는 형사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 곁에서 제정신을 갖고 그들을 돌보거나 지켜주는 그들을 작가는 ‘타인을 연민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절대악과 절대선, 혹은 절대 약자나 절대 강자만 있다면 그럴싸하지 않거나 재미없었을 것 같다. 세상은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얽히고 섥히며 돌아가는 것인데, 우리는 때로는 타인을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끝없이 해꼬지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정유정의 소설이 다루는 내용은 어둡고 힘들고 무서운 얘기이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그렇게 어둡거나 힘들지 않다.

 

나의 정서적 반응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독자의 사고에 어필하는 소설에만 의미를 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는 것도 알았다.

작가만이 작품 속 인물과 인연을 맺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만난 서원이 혼자 남은 생을 승환과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글라이더를 타고 탈출한 승민이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지만 어딘가에서 제정신으로 잘 살고 있기를, 수명이 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세상 안으로 들어오기를...

정유정의 소설이 독자의 정서에 어떻게 호소하는 지 과학적으로 살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바램대로 그녀의 소설은 독자의 정서에 호소하는 힘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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