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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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나라>는 때리고 맞는 일이 다반사다. 아비가 아들을 때리고, 선배가 후배를 때리고 선생이 학생을 때린다. 또래가 또래를 때린다. 때린다보다는 ‘패고 맞는다’가 더 어울린다. 그래도 다들 아무렇지 않게 얼굴 맞대고 밥을 먹고 담배를 나눠 피며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한다. 더러는 맞고 때리면서 정도 드는데, 그러다 보니 남녀의 잠자리를 위해 방까지 비워준다. 그건 일상이고 그러면서 학생은 학생이 되어가고 선생은 선생이 되어간다. 이상하지만 거기 까지다. 그래서 독자는 남자 애들은 맞으면서, 때리면서 크나보다 한다. 침 뱉는 여자 애들도 담배 피고 술 마시는 남자 애들도 다 지나가는 한 때로 추억이 된다. 이때 아이들의 바램은 얼른얼른 커서 어른이 되는 거다. 어른이 되면 맞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주인공 ‘나’의 간절한 바램이기도 하다.  


어른은 완강하다. 주인공의 아비거나, 학교 교련 선생이거나 사회 선생이거나 도대체 어른들은 어떻게 생겨먹은 꼬라지가 자식이거나 제자를 때리고 패고 무시하면서 길들인다. 이 폭력의 시기를 거치며 아이들은 이를 악물고 어서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데, 그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어른들은 처음부터 어른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아마 그걸 뼈저리게 알리라. 그래도 한 줌 햇살 같은 선생도 있어서 학생은 꾸역꾸역 학교에 간다.
가출한 제자를 찾아갔다가 칼에 맞은 상처를 보여주며 생물 선생은 제자들에게 말한다.  


“같은 종족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짓은 동물세계에선 없다. (중략) 사람만이 먹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같은 종족에게 이런 상처를 남긴다.”  


그러는 중에도 인간 세상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상처를 남기기 위해 숨을 조여오고 있다.
오로지 아버지한테서 벗어나고자 도시로 나온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오월 그날을 낱낱이 경험한다.
인간살인병기로 단련된 군인에게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주먹질은 애처롭다. 그건 도저히 대거리가 안되는 싸움이다. 일상이 맞고 패던 지난 시간은 현실의 폭력 앞에서는 서로 친해지기 위한 애교의 몸짓처럼 느껴진다.
광주를 읽는 것은 아직도 고통스럽다. 곤봉에 맞아 죽고 총에 맞아 죽는 살육의 현장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들여다 보는 일이 과연 괜찮아질 때가 있겠는가. 그걸 한 글자 한 글자 적어가는 작가의 손끝이 어땠을지 나는 가늠할 수 없다.
이야기는 후일담이 아니고 처음부터 그 날을 향해 가기 때문에 독자가 경험하는 폭력의 강도 또한 점점 증대된다.
일상의 폭력이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 이후 그 며칠간의 폭력은 그 행태가 가히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라서 일상의 폭력 쯤이야 지나갈 일로 치부해 버릴 정도다.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미움이다. 미움의 힘이다. 미워할 것을 분명하게 미워하지 않아서 생긴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광주를 역사교과서에서 빼버리려는 자들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나의 미움을 어디다 써먹을텐가. 째려보다 사팔뜨기가 된다해도 내 미움을 거두지 않겠지만 그런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란 말인가.  


<꽃의 나라>를 읽는 동안 한동안 잠잠하던 공황증세가 도졌다.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밀려드는 절대 고독, 혹은 외로움,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공포, 살아 있는 것의 헛헛함. 그럴땐 자리를 박차고 나가 나만 살아있고, 나만 죽는 것이 아님을 사람을 통해 위로받아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사람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아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며 나만 살아있고,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는 걸 빠른 시간안에 이해시켜야 한다. 시간은 단 몇 십초지만 나는 그 순간, 그 경험이 참으로 힘들다. 목숨은 또 다른 목숨에 기대어 유한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숨 쉬는 것을 꽃 모가지를 칼로 잘라버리듯 죽여 없애는 행위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꽃의 나라>는 삼십 년 전 그 도시(광주)의 그 시간을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쫓을 뿐 그 배후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때 사령관의 신분으로 대통령이 된 자는 감옥에 다녀와 지금 소리소문 없이 살고있고 역시 같이 일을 도모했던 자는 대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가 지금은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는 인터넷 기사를 접한 것이 며칠 전이다.
주인공의 기억은 그 사령관이 대통령이 된 데에서 끊겼지만 그들은 여전히 또 다른 폭력으로 연명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제대로 미워할 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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